코다리
재래시장 좌판 위에 턱을 꿰인 중년 사내
불어 터진 꿈들이 차올랐다 빠지면
봄날의 흐늑한 등뼈 꾸덕꾸덕 말라간다
거친 물살 홉뜬 눈들 심해를 휘젓는데
너른한 이맛살은 수굿이 내려앉고
한판승 뒤집은 광땡, 화투판에 물이 오른다
사릿물 갯창 빠지듯 파장에 든 장터어름엔
오늘 하루도 코가 꿰인 일용직 노동자들
살그래 가슴지느러미 꿈틀도 해보는 것이다
나도 고집이 있다
아무리 뽑아 봐라 밀어내고 밟아 봐라
나도 고집이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풀뿌리 무끈한 발끝 만져본 적 있는가
하룻머리 길섶에 나앉아 손끝 다잡는 노인
뽑고 또 뽑는 일을 빚진 듯 깁고 있다
전생의 질긴 일구덕 아직도 깁고 있다
뽑힌 것이 풀뿌리인지 뽑는 이가 풀뿌리인지
누구도 언질 없고 뙤약볕만 허벅진데
어둑밭 손갈퀴 어늬 잡힌 두 고집 지고 있다
꽃인 줄 알았는데
꽃인 줄 알았는데
갈 곳 없는 나비였다
나비인 줄 알았는데 빗물든 나뭇잎이었다
간밤에 흩어진 너는대숲에 인 바람이었다
한 걸음 더 내딪지 못해
기침만 쿨력였다
눈설레 진 성급한 날 무릎만 으스러졌다
기억의 길모퉁이엔
녈비만 흩어졌다
꽃도 나비도 나뭇잎도
피었다 진 날에는
한낮에도 보래구름 저 혼자 피었다 지고
생다지 서리아침이
설핏하니 젖어왔다
봄, 폭설
때 늦은 봄 폭설에 세상 길이 끊겼다
재바른 텃새 몇몇 발그레 발뒤축이
무너진 집터의 잔해
그 기억을 더듬는다
그 어디쯤 숨었나 단단했던 생의 허리
알숭달숭 꽃 벽지에 꾸두러진 구들목은
재개발 붉은 깃발에
재갈 물려 엎어졌다
이 땅이면 어떻고 저 땅이면 또 어떤지
깃발이 갈라놓은 봄의 행간 사이로
난분분 불모의 눈꽃
저뭇하니 흩어진다
풀의 뒤꼍
마당 가득 풀이 돋았다 제집인지 아닌지
관심은커녕 애초 마음조차 두지 않았다
저들만 어우렁더우렁 키 맞추고 입 맞췄다
살면서도 더러는 발밑이 궁금해서
눈보라 회오리에 언 바람이 들이대도
등짝의 무성한 풀들 여태도 그 자리였다
걸으면서 알았다 달리면서 보았다
달빛이 흩뿌려지고 별들끼리 얽혀도
풀들은 제 땅 떠난 적 달아난 적 없었음을
외벽의 꿈
초고층 유리벽에대롱대롱 매달렸네
꾸역꾸역 접힌 날개 펼쳐내는 그 사내
건들면 바스라질 듯 허리춤 호라맸네
더 높이 오를수록흔들리는 바닥이네
사막이 내어놓은 파랑이는 첩첩의 날
한 덩이 공중뿌리발 그 뒤를 따라가네
한 발을 동백에 두고
동박새 울음 울던 당신 뒤를 붙쫓는데
눈썹까지 차올랐던 허공이 뚝뚝 떨어진다
통화 중 짙붉은 신호음만 바닥에 흥그럽다
볏단
- 눈썹지 가을
마루 끝이 내려앉았다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하루가 다른 가실볕에
애마르게 저물었다
뭉실한 서녘의 볏단은
진작 꽃노을에 넘어갔다
초판본, 붉히다
앵두꽃 떨어지네
봄비 놀라 흠칫하네
부끄럼 벗어던진 저 눈부신 하얀 몸들
적막의 짙붉은 날들
이때다 겁탈하네
태양초
-눈썹지 가을
1.
고가철도 아랫녘 탁 트인 보도 위에
태양초 물고추들 찐득하니 누워있다
처서의 상기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2.
길모퉁이 한쪽에 삼각 텐트 펼쳐놓고
일 년 농사 으스러질까 모로 누운 저 남자
저물녘 노을의 무게 온몸으로 받고 있다
3.
별 없는 밤이어도 달 없는 새벽이라도
두툼발 뒤척이며 애블스럽게 살아내야지
희아리 질벅거린 날은 철길에나 널어워야지
- 박지현 시조집 『코다리』 (2023.11.시와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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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집˚감상하기
박지현 시인의 시조집 『코다리』
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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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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