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살로니가교회”
나영준 전도사
(데살로니가전서 )
바울은 탁월한 성경 교사이자 복음 전도사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도 여행 중에 세운 교회의 성도들에 대해서 아버지의 심정을 품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교사로서 성도들의 질문에 열심히 그리고 즐거이 듣고 인내심으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 모든 주제를 다 다두고, 모든 갈등을 다 해결해 주고, 모든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각 교회들에게 편지를 쓴 목적은 조금씩 다르고, 특정한 필요들을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겐 늘 질문이 있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질문에 답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헌신에 대해 칭찬하기 위해서 이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습니다.
그렇다면 이 바울은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게 된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팀을 꾸려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중 2차 여행 중에 현재 마케도니야 지역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이 과정에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행 17:1-2 ) 바울과 전도 팀들은 데살로니가에서도 늘 하던 대로 유대인들이 있는 회당에 가서 세 번의 안식일에 걸쳐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안식일은 토요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토요일이 3번 지날 정도로 시기입니다. 즉 이 말은 바울과 전도팀들은 3-4주정도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데살로니가 지역 사람들의 반발로 예수가 왕이라며 로마의 황제를 거역한다는 헛소문이 퍼지고, 바울과 전도 팀들을 잡으려는 소동이 생기자 그들은 베레아 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직 믿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무사한 것은 물론이고,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잘 성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 이 데살로니가전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이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떠나게 된 데살로니가 지역 교회와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이 데살로니가전서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살전 2:7-8,11 ) 바울은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대어성경 말씀처럼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 부드럽게 대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처럼 한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너무나 사랑해서 기쁜 소식을 전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까지 희생하려고 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나 극진히 사랑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박해와 차별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울은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내용 중에 1장부터 3장까지는 박해와 차별 속에서 있지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신실함에 대해 격려하고 칭찬합니다. 그리고 4장부터 5장까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현재 교회 안의 궁금증이나 문제에 대해서 지도해줍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전서의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이 데살로니가전서의 내용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특별히 우리 교회의 8월 주제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는 어떠한 모습인지를 오늘 본문과 데살로니가서를 중심으로 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이 말만 들으면 데살로니가교회는 확실히 믿은 지 얼마 안되서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지 않았던 교회구나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론 바울에게 약 3-4주 밖에 가르침을 받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했고 섬겼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 바울은 이들을 칭찬하는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살전 1:6-10 ) 6절에 그들은 많은 고난 중에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고, 7절에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모범이 되었고, 8절에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곳곳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여러분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까지 표현할 정도입니다. 특별히 9-10절에서는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날을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다고,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와 로마신들을 숭배하는 문화와 관습이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지역에서 우상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웃으로부터 소외와 가족들의 적대까지도 요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믿음은 자기 지역 넘어서까지 널리 퍼질 정도로 성도들의 모범이 되었고, 우상을 따르지 않으면 소외와 박해가 있는 상황에서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재림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오늘 설교 본문 (살전 4:1-3절 ) 4장 1-3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가르쳤는데 그렇게 살고 있다고 칭찬하며, 다시 한번 권면하면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라고 권하며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임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잘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권면하는 내용은 거룩한 삶입니다. 잘하고 있는 교회에게 다시 한번 강조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구별하다’, ‘분리(구분)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상태를 지칭합니다.그리고 세상의 부패나 악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 답게, 하나님의 법인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에 대해 가끔씩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예배당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임 안에서 하는 하나님을 위한 행동들은 모두 이것 또한 거룩합니다. 하지만 이 거룩의 범위를 예배당, 공동체, 모임 등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거룩해야 함을 하나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십니다. (살전 4:4-8 ) 3절에 음란, 4절 아내를 대하는 것, 5절 색욕을 따르지 않는 것, 6절 남의 아내를 가로채지 않는 것 등 우리가 부끄러워서 이야기 하지 못할 순 있지만 우리 일상에서 뗄레야 땔 수 없는 우리 일상에서의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늘 일상에서 유혹이 존재했습니다. 당시 문화는 이러했습니다. 로마 전체가 음란한 문화는 퍼져있었습니다. 음란은 혼외 관계, 매춘, 변태, 미혼 남녀의 성교 등 모든 비정상적인 성적 문란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상에게 제사 할 때는 성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남자가 성적인 관계를 자기 아내에게 국한하지 않는 것은 다반사였고, 동성연애도 흔한 일이었고, 근친상간도 문제 삼지 않았고, 노예들은 성적 도구로 이용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과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일상이 병들고 죄에 빠져 있을 지라도 세상의 중심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 이 거룩함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7-8절 말씀 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고, 이 교훈을 저버리는 자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예배당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임 안에서만 구별된 삶이 아닌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로서 거룩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는 더 많이, 더 힘써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살전 4:9-12)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칭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형제를 사랑한 것에 대해서는 쓸 것이 없을 정도로 그만큼 잘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이냐면 온 마게도니야 지역 모든 형제들에게도 사랑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교회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 그 이상이었습니다. (요 15:13)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사랑이 자기 주위의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한 목적, 사심이 없는 나눔이고, 자기 희생이고, 종 같이 섬김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나와 가까운 사람, 나와 친한 사람을 넘어 때론 나의 원수와 나를 힘들게 하는 박해하는 사람들까지도 나아 갈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결국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고, 교회가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름 받은 공동체 됨을 확인 할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합니다.
(살전 4:10)그런데 성경은 10절에서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사랑하라고 합니다. 더 많이, 더 힘써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이정도면 되겠지, 이정도 해줬으면 그만이지” 등의 사랑의 한계를 정해 놓고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자신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가족만, 자기 교회만을 사랑하지 않고, 한계를 정하지 않고, 더 많이, 더 힘써 사랑해야함 말씀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성도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살전 4:11-12)11-12절에 보면 교회 안에 다소 용납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면서 나태하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이용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왜 이런 나태하고 게으른 성도들이 생겨난 것에 대해 원인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2절 뒤에는 재림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들이 이렇게 태만하였는지는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을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은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언제든지 오실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로 결심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동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이용하였고, 이들을 궁핍하게 하였으며, 따라서 이는 형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신자들이 교회 구성원들에게 기생하기보다는 기여하라고 도전 합니다. 도움을 받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자립하고, 도와주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가라는 것 입니다.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 중에는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하여 그들의 행동 때문에 교회가 비난을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우리의 행동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직장과 가정과 학교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스도인에 대해 평가합니다. 이 평가는 우리의 삶을 보고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 5장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5:16 ) 우리 읽은 말씀처럼 아직도 하나님을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의 사랑은 예배당과 교회 모임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더 힘써, 더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일 3:17-18 ) 요한일서 말씀처럼 그저 말로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의 사랑이 아닙니다. 혀에 발린 말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우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의 올바른 사랑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사랑에 대해 표현할 때 “사랑의 수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살전 1:3 ) 이처럼 수고라 함은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힘을 들이고 애를 써야 합니다. 더 나아가 현대여 성경에서는 사랑에 대해 여러분의 넘치는 수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더 힘써, 더 많이 수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향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과 수고가 이미 받았고, 우리 안고, 그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일4:10-11, 요일 3:16 ) 이 말씀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여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희생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잔이 넘칠 것 같은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만, 우리 공동체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야 합니다. 수고와 같이 힘을 들이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 수고가 그냥 수고가 아니고 넘치는 수고라고 할만큼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넘치는 수고로, 더 힘써, 더 많이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바울과 전도팀들은 전도 여행 중에 3-4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다가 지역 사람들의 반발로 데살로니가 지역을 급히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데살로니가에는 교회가 세워지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따르는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상이 보기에는 아직 믿은 지 얼마 안된 어린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이 후에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 깜짝 놀랄만한 보고를 들었습니다. 이들이 무사한 것은 물론이고,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잘 성장하고,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고를 듣고 나서 칭찬과 권면이 담긴 이 데살로니가전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린 교회이지만 하나님과 바울이 보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교회였습니다. 당시 이곳은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는 영적으로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모범이 되었고, 주님의 말씀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곳곳에 퍼졌을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며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전체가 음란한 문화는 퍼져있었습니다. 남자가 성적인 관계를 자기 아내에게 국한하지 않는 것은 다반사였고, 동성연애도 흔한 일이었고, 근친상간도 문제 삼지 않았고, 노예들은 성적 도구로 이용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우상과,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켰습니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바울은 일상의 거룩함을 권면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고, 이전과 다르게 거듭난 사람으로 세상의 부패나 악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법인 성경대로 살아가라 데살로니가교회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권합니다. 사랑하는 남산교회 성도 여러분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 즉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는 더 많이, 더 힘써 사랑합니다.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 사랑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없을 정도였지만 바울은 더 많이 더 힘써 사랑해야 함을 권면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게으르고 나태하여 교회 공동체 지체들의 도움만으로만 살아가려는 지체들에게도 이 행동들은 동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이용하였고, 오히려 공동체의 다른 형제들을 궁핍하게 하였다고 깨우칩니다. 이것은 형제 사랑이 아니었고 이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합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 중에는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하여 그들의 행동 때문에 교회가 비난을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우리의 행동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하나님을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의 사랑은 예배당과 교회 모임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더 힘써, 더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함이 요구 됩니다.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향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과 수고가 이미 받았고, 우리 안고, 그 사랑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더 힘써, 더 많이, 수고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하기 위해선 수고와 같이 힘을 들이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수고가 그냥 수고가 아니고 넘치는 수고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이렇듯 교회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어느 정도로 이웃을 사랑 하냐면 이웃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넘치는 수고로, 더 힘써, 더 많이 사랑합니다.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제 자신이 먼저 데살로니가교회와 같은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세상은 점점 흉악해지고, 범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깨어 거룩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고, 이전과 다르게 거듭난 사람으로 세상의 부패나 악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법인 성경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형제 사랑을 이미 실천하고 있지만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도움을 받으려하기 보다는 먼저 자립하여 세상에서 본이 되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충만하여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성도가 되길 기도합시다.
한번 더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데살로니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모든 성도들의 모범이 되고, 우리 남산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지역을 넘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남산교회 성도들 믿음에 대한 소문이 곳곳에 퍼질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전에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며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준비하고 있는 건축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건축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건축이 되고, 모든 건축 과정에 다치는 분들이 없게 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달라고 기도합시다. 건축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 모두 기쁘게 하는 성전이 건축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세계 열방을 위해서 기도합시다.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고 지금도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 속히 코로나와 전쟁을 멈춰주시고, 이로 인해 더 이상 생명을 잃지 않도록, 또 전세계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올라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 받고 있는데 이 어려움들을 세계 열방에 있는 선교사님들과 보내는 선교사로 함께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버티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