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꽃에 관한 시모음 12)
라일락 향기 /조순자
누구를 연모하던
그리움이런가
라일락 향기 감미롭다
보랏빛 수수 다래 꽃
소담하게 피어나
그리움의 강 출렁인다
처마 끝에 찾아든 제비
새집 지을 때 라일락
희망의 향기 코끝을 적신다
그리운 사람 기다리는 이
지치고 허기진 영혼 속에
강물처럼 흘러드는 라일락 향기
라일락 향기 /조순자
순결한 하얀빛으로
고고한 보랏빛으로
소담하게 핀 라일락꽃이
청잣빛 하늘 아래에서
매혹적인 천연의 향기를
사방 천지에 풍겨 날린다
만고풍상을 이겨낸
어두운 밤의 파수꾼이
승리의 이야기 전해주듯
라일락꽃 천연적인 향기가
어둠 속에서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 자신만의 향기를 전한다.
하얀 라일락 /이원문
지나는 길 하얀 꽃
누구의 집일까
담 넘어온 라일락
가지 휘어내려 앉고
작년 이맘때
그때 처럼 올려보면
향기에 멈춘 나
누가 나를 숨어본다
라일락 향기 /賢智 이경옥
그날 피었던 라일락 향기는
너와의 긴 추억이었지
다시 돌아가지 못 할
그날을 이제 기억해 보는 것은
네가 언제라도
부르면 내게로 올 것만 같아서일까
그날 지난 후로
다시 찾지 못하는 그곳에는
네가 남기고 간 라일락 향기가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아서 일까
난, 오늘도 그곳을 기억속에
떠올리며 돌아가지 못함을 아쉬워 하지
네가 행여라도
그곳에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일까
언제라도 가고 싶은
그곳엔,
오늘도 라일락 향기 머물러 있을까
라일락 향기 /정연복
라일락꽃 앞에 서서
가만히 눈 감으면
꽃은 보이지 않아도
코끝에 맴도는 향기.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태양 나의 애인이여
너에게서도
똑같은 향기가 난다.
수수꽃다리 /하나비
둥근달 한 마리
학에 아련한 생각
간절 바람 소녀
사이에 뉘고 지난날
솔바람소리
돌아오는 길에
흰 꽃비 내리고
수수꽃다리 그늘처럼
시간은 흘러서
학령에 한가로움 닿고
홍곡 눈보다 희어진
홍안에 저 학처럼
아픈 연분으로 가슴
미여 아리는 만고절색
쳐다보면 산처럼
학 같은 무비일색
인연 형태처럼
절세미인
질언거색깊으면
초록동색처럼 스밀 때
한 색즉시공밑
돌아오는 일에는
나는 아린 천향국색
회한 눈물 납니다
하얀 수건에 등잔을 닦고
소담한 불을 밝혀서 평조화가
머리 숙인 오늘 밤에는
아름다운 상양고무 생각난다
어제는 비가 왔었다 /이향아
어제는 비가 왔었다.
간직했던 사랑을 모두 털어서
비는 흙 속에 피처럼 스미더니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수수꽃다리
맑게 흔들리는 옆모습이 되었나.
꽃이여,
이제는 입을 열어 말하려는가
다 지난 일이라고.
걸어가는 음계의 옥타브마다
노역의 발바닥은 숨을 뽑아 올리고
저 하늘 자락을 깊게 물들이면서
소금가루 날리는 한낮 일광에
머리칼 억새처럼 흩날리게 둔다.
어제는 비가 왔었다.
그 비에 나도 봄흙처럼 젖어
오늘 아침 늦게 피는 수수꽃다리
한 사흘 날아가는 물무늬나 되련다
라일락이 우는 5월 /정민기
라일락,
물푸레나뭇과,
연한 자주색으로 운다
잎이 지는 떨기나무,
2에서 3미터의 높이,
우는 그녀를
사람들은 다독여주기는커녕
관상용으로 즐긴다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라라,
자정향,
릴라,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라일락을 껴안고 눈물을 소비한다
착한 소비 동참
내 눈물방울과 그녀의 눈물방울이
포개어지자
향기가 짙어진다
눈물방울, 눈물방울
꽃잎 방울
라일락 ·사월 /류미월
라일락과
라일락의 사이
사막여우와
낙타풀의 사이
사방에 그늘지지 않는
벽뿐이다
라일락, 라일락 따내도
따내도 지지 않는 꽃
아무리 지우려고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
라일락 향기
라일락, 라일락
수수한 옷차림 고혹한
자정향紫丁香 수수꽃다리
꽃향은 멀리멀리 벽을 뚫고
낙타 등을 타넘는다
낙타 등을 타고 사막여우의
꼬리에까지
풀포기 하나 없는 사막
모래언덕 위에
라일락 라일락
수수꽃다리 라일락의
꽃말이 카라반의 꿈속을
건넌다
바람이 바람을 구름이
구름을
독오른 방울뱀이 일 년 치의
울음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라일락같이 /정연복
살아서
은은한 향기였던
라일락은 지고서도
잊히지 않는다.
코끝을 맴돌던
그 향기
오래오래
가슴속에 추억된다.
라일락같이 향기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
죽어서도
영영 못 잊힌다.
말없이 깊고 그윽했던
그 사람다움의 향기
뭇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된다.
라일락꽃 필 때면 /은파 오애숙
살포시
가슴에 스미어오는
네 향기
말없이
미소 짓는 네 마음의
순수한 사랑
5월의 창 열어
보랏빛 라일락 향그럼
은은하게 풍겨오면
그리움의 물결
그 옛날 젊은 날 한 때가
가슴에서 피어납니다
수수꽃다리 /김정섭
봄비 내리는 날
보라색 꽃다발 곱게 물들어
가슴에 스며들어 꽃망울 키워낸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
라일락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삶
한 올 한 올 풀어 헤친다
꽃처럼 고운 무지갯빛 그대 모습
사랑의 숨비 소리로 한 발 더 다가가
둥근 원의 열정으로 품어본다
수수꽃다리 잎새 엮어
그리움의 날개바람에 말려가며
오늘도 내일도 그대만 바라보고 싶다.
라일락 사랑 /未松 오보영
환영 합니다
누구든지..
내 향기 좋아하는 이는
아무 때나
가까이로 다가 오세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나누어드릴게요
가능한 한껏 퍼 담아 가셔서
이 향기를
주위에 좀 나누어 주세요
사실은 요즘
사방에서 풍기는 썩는 냄새로
맘고생 하는 이들이 많거든요
그들에게
내 향기 듬뿍 안겨주어서
희망을 가지라고
용기를 가지라고
위로를 좀 해주면 좋겠거든요
미스김 라일락 /김용화
미군정기 삼각산 바위틈에 자생하던
토종 수수꽃다리가
태평양 건너가 서양 물 먹고
파란 눈의 미스 김이 되어 돌아왔다
진보랏빛 꽃망울이
연보라를 띠다
활짝 피며 백옥같이 흰옷으로 갈아입고
짙디짙은 향기를 멀리까지 내뿜어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라일락 중 라일락,
키 작고 당돌한 우리 귀여운 아가씨
미스 김이 돌아와
까치발구두, 개미허리 드레스
폼나게 걸치고
두 눈에 눈물 매달은 채
고혹적 자태를 한껏 발산하며 서 있다
라일락 비 /이영지
하아얀 라일락이
보라의 라일락이 대문을 활짝열자 보일락 말락하던
머언데 산이 코를
들이대 향기 담느라 향기비가
내린다
라일락을 쏟았다 /박지웅
자정 넘어 북아현동에 간다 집들의 사체가 엉겨 붙은 그 위에 라일락이 쏟아져 있다
동네에 희망이 전염병처럼 돌았다 뒤로 지폐가 오고가고 이주동의서가
집집마다 전해졌다 그때는 모두가 욕망과 한패였다 욕망과 새 가정을 이루었다
파렴치한 희망의 가면을 쓰고 희망에 감염된 자들이 가난의 슬하를 떠나지 못하는 아들딸들을 구슬리었다 희망을 두둔하고 모의하고 결심하는 동안 내가 비천하게 욕망 앞에 어슬렁거렸다
희망에게 빵을 구걸하고 밀서를 전하고 희망을 침대로 끌어들였다 희망에 다리를 벌렸다
희망이라면 이제 소름이 돋겠구나
미안하다 라일락이여,
깨진 유리를 밟고 서 있는 한때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여
백 년 라일락 /장 욱
두방 뜰 나직이 나 됨도 부려 놓고
하늘의 무게로 등 굽어 섰다
한때는 송이송이 봄 달을 이고 진 청춘
모든 세상의 무게가 너에게 몰려와
화관을 씌우고 꽃 갈채를 보내더니
계절은 돌고 돌아 늙은 줄기를 비틀어 놓았네
백 년을 살고 다시 백 년을 죽어도
삶은 나에게 이르러 향기가 되었지
세상에 빚진 것은 그리움 하나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