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해석
평택 안중에 사는 수원 백씨(水原白氏)들은 태어나는 아이들마다 머리에 흰머리가 점처럼 박혀있었다. 이런 특이한 유전을 두고 원인을 알 수 없어 궁금해 하였다. 그런데 개발에 밀려 백씨의 선영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이다. 한 묘를 팠더니, 시신의 머리 뒤쪽이 닿는 부분에 흰 차돌이 박혀있었다. 장사지낼 때에 머리 부위에 박힌 차돌을 미쳐 파 내지 못한 것이다. 후손들은 그 차돌을 보고, 자기들의 머리 뒤퉁수에 박힌 흰 점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물론 묘를 이장한 다음부터는 후손 중에 흰 점박이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 과학문명에 비추어보면 동기감응론은 이해하기 힘든 현상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상기와 같이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동기감응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또 다른 과학일 수도 있다.
뼈를 구성하는 원소는 생체 에너지와 독특한 진동 파장을 가지는데, 시신의 유골이 산화될 때 발하는 전자 파장이 동일한 기를 가진 후손과 서로 감응을 일으켜 영향을 준다. 또 그 결과 길지에 매장하면 유골이 우주의 대생명력과 오기(五氣)의 상호작용으로 부식된 백골도 다시 살아나 황골이 되어 영원히 부식되지 않는다.
유골에서 발하는 방사선은 직계 자손의 방사선 파장과 합치되며, 혈에 가득찬 우주의 정기는 그 후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인간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풍수학에서는 말한다.
동기감응론의 초현실성 때문에 풍수학은 현대에 들어 미신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구의 과학과 합리라는 잣대 역시 많은 모순에 싸여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뉴톤이 만유인력을 발견했을 때 모두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자, 만유인력은 위력을 잃어버렸다.
동양 사상 중에 현대에 와 과학으로 인정받는 것이 있다. 침술학도 그중의 하나이다. 서양인은 약을 쓰지 않은 채 침으로 인체를 마취시키는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취가 되니 어쩔 것인가? 따라서 동기감응론도 이 시대의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 뿐이지, 미래에 증명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동기감응론을 믿고 믿지 않는 것은 개인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제5장 한국 풍수의 현실
현재 한국의 풍수학은 물형론에 치우쳐, 마치 물형론이 풍수의 전부인 양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물형론은 이론적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정통풍수학은 형기론과 이기론으로만 나누어 진다.
여기서 형기론은 용(龍), 혈(穴), 사(砂), 수(水)에 대한 길흉을 눈으로 판단해 종합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고, 이기론은 패철을 이용해 길흉을 판단하다. 그런데 한국 풍수는 99%가 형기론에 치우쳐 있고, 이기론을 정통으로 계승하여 보급하는 곳은 적다.
또 형기론을 배우고도 현장에서 혈을 제대로 찾지 못함으로 최종적으로 물형론에 기대어 혈을 짐작하는 수준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기 풍수학은 이기 풍수학에 대해 지나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또 이기 풍수학의 입장에서 보면 형기 풍수사는 패철의 용법에 너무 어두운 것 처럼 보인다.
이제 한국 풍수학은 형기와 이기 풍수학이 반목만을 일삼아서는 안된다. 현장에서 혈을 잡고 좌향을 놓으려는 풍수사는 구태어 형기외 이기를 구분짓지 않는다. 풍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형기와 이기를 통합한 풍수학을 연구하고 또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이에 대동풍수지리연구원은 이기 풍수학을 중심으로 형기 풍수학을 현장에 접목시키는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제6장 생활 풍수학의 의의
풍수학은 바람과 물의 순환 이치[天] 그리고 땅의 형성 과정과 지질적 여건[地]을 연구하여 사람[人]이 자연 속에서 좀더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터를 구하는 동양의 지리관이며 경험 과학적 학문이다. 방법은 지질, 일조, 기후, 풍향, 물길, 경관 등 일련의 자연적 요소를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에 의해 관찰한 다음, 그들이 사람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파악하고, 각각의 우열을 가려서 그 중에서 좋은 것만 생활에 이용한다.
조상의 묘지를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한 곳에 택하여 영혼과 유골의 편안함을 구하거나, 주택을 길지(吉地)에 지어서 지력(地力)에 의해 건강과 행복을 꾀하거나, 마을과 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선택하거나 혹 부지와 건물 내부에 생기(生氣)가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바꾸는 것 역시 풍수지리학이 일상에 쓰인 방법들이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우리의 주거문화는 크게 변모하였다. 이는 일상생활문화가 달라졌고, 특히 도시가 주된 생활근거지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당연히 생활문화의 변화와 함께 가족구조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다. 과거에 3대 이상의 직계 존비속 뿐 아니라, 방계 친인척까지 한 집, 또는 이웃한 집에서 함께 살던 가족구조는 이제 남편, 주부, 아이 둘 정도로 단출한 핵가족으로 변했다.
이 현상은 도시화의 결과이기도 하며, 이웃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게 되었으며, 높은 담장과 든든한 빗장으로써 외부 세계와 분리된 삶을 살게 되었다. 수천년 동안 자연속에서 이웃과 벗삼아 살던 우리네 삶의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진행되어 온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주로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는 일본식 주거양식이 영향을 미쳤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서양식 주거양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주택구조도 목가구에서 벽돌조적조, 철근 콘크리트조로 바뀌고, 평면도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등이 집안에 들어오는 서구식 평면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근래에 와서는 아파트라는 서양특유의 주거양식이 가장 선호되면서 편리함과 기능성만이 극대화된 메마른 주거공간으로 치닫고 있다. 따라서 풍수지리학은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 대안으로 풍수를 제시하고 있다. 근대화 과정과 굴곡의 역사를 지나면서 사라졌던, 풍수지리가 21세기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기능 위주 공간의 단점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그 공간문화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펼쳐질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제7장 富의 상징은 붉은색과 녹색
경영에 도움되는 색상과 팔괘 활용… “면접 때는 검정·회색 정장을”
풍수교정법(FengShui Cure)에서는 색상을 활용하는 것도 사업장의 기(氣)를 조정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는 팔괘(八卦)의 해당 영역에 알맞은 색상을 사용하여 발전과 번영을 꾀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어느 영역에 무슨 색상이 유익한지 판별하고 응용하기 위해서는 ‘오행(五行)과 팔괘(八卦)’에 대한 간단한 지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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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708호)에 언급한 ‘책상 위의 풍수 팔괘 적용법’에서 팔괘의 해당 영역-건(乾:조력자), 태(兌:자녀), 이(離:명예), 진(震:가족·건강), 손(巽:재물), 감(坎:진로), 간(艮:지식), 곤(坤:결혼)-이 상징하는 요소와 해당 영역에 적합한 물건을 두는 방법으로 운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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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의 경우 팔괘에 오행과 해당 색상을 적용해 자금의 확보나 명예 회복을 기하는 방식이 실리콘 밸리에서 꽤 유행하는 실내 풍수 인테리어의 주요 테마인 걸 보면 쉽게 간과할 일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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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각 색상이 팔괘의 특정한 영역을 향상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팔괘를 오행의 색상과 연결시켜 보면, 사무실의 입구를 등지고 섰을 때 정면의 중앙 부위(離:명예)가 명성, 불과 붉은색의 영역이 된다. 마찬가지로 정면 맞은편 좌측 모퉁이 부분이 부(富)를 암시하며 녹색이나 자주색의 영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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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개인의 진로나 회사의 순조로운 발전을 기하고자 하면, 해당되는 진로(水) 영역에 무언가 검정색(水)이나 수(水)를 살려주는(生) 금(金)의 색인 흰색의 물건들을 놓아 그것을 도모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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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1=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개인적인 명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붉은색의 물건을 이(離:명예) 영역에 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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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2=매출의 증대를 꾀하려면 싱싱한 녹색의 식물이나 화분 등을 손(巽:재물) 영역에 두는 게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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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3=직원간의 상호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진(震:가족) 영역에 녹색의 화분이나 파란색의 구조물 등을 설치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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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4=외부 펀딩을 무난하게 유치하고자 한다면 건(乾:조력자) 영역에 실버 계통의 장식물이나 스탠드를 놓아 환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협력자의 출현과 도움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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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이같은 오행상의 색상 활용법을 더욱 확장시켜 색상의 선택 범위를 넓혔다. 대체로 붉은색과 녹색은 부(富)를 증가시키고, 녹색·붉은색·노란색은 명성을 높이며, 붉은색과 흰색은 부부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노란색·흰색·검정색은 자녀에게 이로우며, 검정색과 흰색·회색은 귀인(貴人)을 불러오게 하고, 검정색은 진로를 열어준다는 식으로 색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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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취업을 앞둔 이들이나 면접을 해야 하는 신입사원 후보들은 어떤 색이 좋을까? 당연히 진로를 열어주는 검정색이나, 귀인의 도움을 의미하는 그레이 계통의 정장 차림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제8장 풍수지리적으로 살기좋은 아파트란?
정보화사회’라고 일컬어지며 인터넷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오늘날에도 조상의 묘자리를 위해 묘터의 풍수를 논하고 후손들의 길흉하복을 걱정하는 등 ‘풍수’는 우리 일상생활과 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미신이니 비과학이니 하면서 멸시를 받으면서 주로 집터나 묘터를 정할 때 시골 노인네들에게서나 관심꺼리로 치부되어 왔던 풍수지리가 현재는 제도권으로 들어와 대학에서 연구되고 있으며 현재 풍수지리 이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한자문화권에서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서구에서도 풍수지리에 의한 건축이나 인테리어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풍수(風水)라는 말은 사람이 살기에는 태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분다든가, 홍수나 가뭄이 빈번한 지역보다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깨끗하고 맛있는 식수가 풍부한 지역이 바람직하므로 주거지를 선택할 때 사람들이 바람과 물의 여건을 따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풍수이론이 아파트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살기좋은 아파트는 자연을 닮은 아파트
풍수에서 본다면 자연을 닮아야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파트의 지붕형태도 산을 닮아 솟은 초가지붕(돔형)으로서 처마를 내민 형태가 이상적이고, 기존의 아파트 슬라브 지붕에 돌출돼 있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이나 물탱크실 등은 지붕 구조 내부에 설치함으로써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구조라 하겠다.
또 천편일률적으로 남향으로만 배치된 병풍형 아파트를 짓기보다는 주택이나 산소에 있어서 이상적인 배치 원칙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배치를 아파트 동 배치에 적용해 산을 등지고 물이 흘러 내려가는 낮은 쪽으로 바라보도록 한다면 더욱 자연미가 살아날 것이다.
아파트의 평수도 무조건 큰 것만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풍수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아파트 평수가 거주자 한 사람당 전용면적 6평임을 감안한다면 가족수에 비해 지나치게 넓으면 그 공간의 기운에 사람이 눌리게 돼 흉가가 된다는 옛말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풍수와 저층 아파트
아파트의 가구수가 1000가구 이상일 경우를 보통 대단지 아파트라고 말한다. 저층 아파트에서 평형대가 10평형대, 20평형대, 30평형대, 40평형대, 50평형대 이상일 경우 다음과 같은 풍수를 응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1. 동쪽은 청룡의 기운이 왕성하므로 10평형대에 잘 맞다. 즉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 예술가가 살기에는 명당에 속한다. 그것은 청룡의 기운은 백호의 기운과 평행선이 되므로 백호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2. 남쪽은 주작의 기운이 왕성한 명당이므로 20평형대의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20평대의 사람은 신혼부부, 또는 스포츠 선수 등이 살기에 명당이다. 그것은 현무의 기운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3. 중앙은 구진의 기운을 말한다. 구진은 동네의 중심지를 말한다. 즉 안정적으로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30평형대에 속하는 것을 말하는데 구진에 살기에 적합한 사람은 공무원, 엔지니어, 전문직, 의사 등을 말한다. 또 구진은 모든 기운의 중심이므로 징용, 주작, 백호, 현무의 사람들이 항상 도움을 받을 수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4. 서쪽은 백호의 기운을 말한다. 동네의 중심에서 해가 지는 쪽을 말한다. 40평형대에 속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백호에 살기에 적합한 사람은 고위공직, 중소기업인, 상업을 하는 사람 등이다. 즉 CEO들이 살기에 좋은 지역이다. 청렴하고 깨끗하며, 의리를 중시하고 옳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기운을 말한다.
5. 북쪽은 현무의 위치에 속하는데 현무는 수의 기운을 나타내는 곳이다. 50평형대 이상을 말하는데 연예인, 종교인, 예술가 등이 살기에 좋은 지역이다. 현무는 지혜를 상징하는 방향인데 지혜의 개념은 자신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는 기운을 말한다.
풍수와 고층 복합 아파트
고층 복합아파트는 대략 25층 이상 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50층 규모의 고층 복합아파트를 지을 경우 10평형대, 20평형대, 30평형대, 40평형대, 50평형대 이상일 경우 다음과 같이 풍수를 응용하면 된다.
1. 10평형대는 1층에서 10층까지를 청룡의 기운이 형성하는 것이 좋다. 청룡의 기운은 몸과 같고 나무의 뿌리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즉 10평형대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항상 기운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운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운을 만들어내는 곳이기 때문에 아래 위치하는 것이 좋다.
2. 20평형대의 경우는 11층에서 20층까지에 위치를 두는 것이 좋다. 즉 주작의 기운을 형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름과 같고 항상 활기찬 젊은 기운이 왕성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좋다. 10층에서 20층 사이에 항상 활달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함으로 해서 항상 생기가 도는 기운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 곳에 위치하도록 한다.
3. 30평형대의 경우는 21층에서 30층에 위치를 두는 것이 좋다. 즉 구진의 위치에 속하는 곳이므로 권력이나 재물 즉 경제력의 중간을 말하는 곳이다. 따라서 항상 중간에서 중개역할을 하도록 하는 곳이기도 하다. 30평형대는 아래와 위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 곳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4. 40평형대의 경우는 31층에서 40층에 위치를 두는 것이 좋다. 즉 서쪽의 백호의 위치에 속하는 곳이므로 안정, 조용함, 권위, 명예 등을 지키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 백호는 충돌이 오면 심하게 오는 곳이므로 구진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친하고 현무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조용하게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5. 50평형대의 경우에는 41층 이상의 위치에 둔다. 즉 북방의 현무에 위치에 속하는 곳의 기운을 가진 사람을 뜻하므로 재력이나 권력의 변화가 심하고 음모가 있고 바쁜 일이 항상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과의 만남이 서로 비밀스럽기도 한 곳이기도 하므로 가장 위쪽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제9장 사람의 생기
1. 북쪽(의자)에 앉아 남쪽(책상)을 보라
2. 탁자 : 원탁 or 타원형
3. 의자는 비싼것
4. 상대방(손님)을 왼쪽에 앉게하라. (상담시)
5. 식물은 사람키보다 작은것으로 놔라
6. 그림을 걸어놔라 소그림-->재물 말그림(근면)-->팔마도
그림은 문과 정면 or 쇼파의 손님이 바라보는곳에...
7. 地氣(지기)를 받고 싶으면 6층까지 살것 (2~6층사이가 좋다)
- 상가의 입지선정
1. 문턱을 없애라
2. 도로가 커브를 형성할때-->안쪽이 좋음
3. 비탈길--> 아랫쪽이 가장 좋음
윗쪽은 중간정도
중간이 가장 좋지않음
4. 방향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봐야 좋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봐야 좋다
5 .역,정류장에서 왼쪽이 좋음
6. 정면넓이는 길쭉한것(세로) 보다 넓은것(가로)이 좋음 .
7. 문 위치는 가운데보다 한쪽으로 치우치는것이 좋음
8. 5평이하로 시작해서 7평, 10평이하로 할것(10평이상:법인)
* 부동산 비법
산에가서 흙(밝은 붉은색)을 한줌퍼서 단지안에 흙을 넣어 은밀한 장소에 놓아둔다
계란껍질에다 大夢大明(대몽대명)을 써서 흙위에 놓고 봉한다.
- APT 풍수
1. 현관:조명은 밝게
잡동사니 금물
청결 (신발은 신발장으로)
출입문 정면에 대형거울 X
물(어항등) X
쇼파는 현관쪽을 바라보고 놓지 말고 동쪽을 향해 놓을 것.
2. 엘리베이터 문과 현관문 직선 X ->복도식
3. 거실 : 중앙 O
방향 : 남쪽, 동남쪽.
장판 쇼파 -> 황색, 노랑, 갈색 => 土
4. 유실수 X. 키작은 분재 : 베란다로.
5. 모서리가 보이지 않게 장식용으로 가릴 것.
6. 거실 : a 호랑이그림
b 쇼파 뒤에 호랑이 가죽
c 호랑이 인형 (현관문쪽을 바라보도록.)
7. 주방은 서쪽 X
식탁-> 원탁 O 싱크대 : 푸른색
주방룸 없으면 문을 달아라 (커튼 or 버티칼등)
주방문과 침실문을 일직선상에 놓지 말 것.
8. 화장실 : 방과 방 사이에 X (만사가 불통)
9. 욕조 : 없애고 샤워부스로 바꿀 것
제13장 오랜세월 상권 번성한곳 사람 모여드는 명당지세
큰 상권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큰 상권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해 북쪽에는 종로통이, 남쪽에는 을지로통이 자리잡아왔다. 종로는 육의전이라 불렸다.
오늘날 국내에서 가장 큰 상권인 동대문 일대 시장은 청계천 바로 앞이다. 종로1가의 화신백화점은 우리나라 백화점의 1번지였다. 지금도 종로3가와 을지로3가 사이의 세운상가에서는 텔레비전·냉장고·오디오 등 전자제품을, 종로3가 일대에는 금은보석·시계·카메라 등 혼수품을, 동대문시장에는 원단과 의류제품을, 을지로2가 일대에는 건축자재와 가구류, 을지로4가에는 출판·인쇄제품 등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자리를 잡고 성업중이다.
종로와 을지로 일대 점포들은 비록 면적은 작아도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며, 거래 금액도 어마어마하다. 최근 강남의 강남역, 압구정동 등 상권이 크게 발전했다고 하지만 강북에 비하면 소매업에 지나지 않는다.
상권의 위치가 오랫동안 변함이 없는 이유는 풍수지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상권을 이뤄온 곳은 풍수지리로 보면 명당의 지세이기 때문이다. 명당은 산이나 강물 등 자연의 형태에 따라 형성되므로 그 기운은 쉽게 변화하지 않고 비교적 오랜기간 지속된다. 오래 전부터 시장이 발달한 서울의 청계천 일대는 상권으로서 명당이다. 주변이 야트막한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흘러가는 평화로운 곳이다. 이러한 지세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상담을 하게 되며, 그 결과 상거래가 솔직하고 즐겁게 이뤄진다.
다른 곳의 오래된 재래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지리적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다. 양지바른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래를 하다보니 큰 시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오래된 시장 안을 거닐다보면 시장 특유의 포근함과 인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시장이 자리잡은 땅에서 나오는 기운이 좋기 때문이다. 땅의 기운이 나빠 찬바람이 부는 곳에 시장이 선다면 그곳에선 사람의 마음이 불안해지고 남의 물건이 좋게 보이지도 않아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게 된다.
박시익/공학박사·영남대 겸임교수
제14장 유명인사 집터의 풍수학적 분석
인촌 김성수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정치가로서 재물과 덕망, 정치가로서의 능력을 모두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재물과 관직을 모두 겸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촌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와 줄포리의 고택은 아직도 원형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데, 두 곳 모두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인촌의 선대가 만석군이 된 줄포리 주택은 초가지붕이면서도 그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일반적인 초가집은 지붕이 야트막한 데 비해, 이 집은 기운차게 높이 솟아 있다. 이러한 형태는 금산(金山)의 강체 형태이다.
인촌 생가가 있는 인촌리의 지세를 살펴보면 청룡과 백호가 가지런하게 뻗어 내려와 있는데, 용호는 순용에 해당되며 이러한 지세에서는 인자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루어진다.
또 주봉은 노적봉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매봉이며, 인촌 생가는 이 매봉으로부터 북쪽을 향해 내려온 능선의 혈 위에 자리잡는 한편, 멀리 북쪽에 있는 바다를 향해 배치되어 있어서 배산임수의 원칙이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 배산임수 원칙에 따라 배치된 집은 마당에 들어서면 내부 공간에서 밝은 기운이 발생되어, 북향 집이라고 해도 북향 집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 집이 그 대표적인 경우로, 북향 집에 대문 역시 북향이다.
이러한 집의 배치를 음양으로 분석하면, 마당 중심에서 봤을 때 건물은 남쪽에 있으므로 음의 기운을 갖게 되고, 대문은 북쪽에 있으므로 양의 기운이 들어옴으로써 결과적으로 집 내부에는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뤄 생기를 발생하게 된다.
또 오행으로 분석하면, 남쪽은 오행상 불(火)에 해당되고 대문은 북쪽이어서 물(水)에 해당되어 상극 관계를 이루지만, 주택과 대문이 모두 동사택 방위로 일치하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므로 전체적으로 좋은 방위의 주택이다.
2.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안국동 주택
서울 종로구 안국동 8번지는 고려말 충신 정몽주의 생가 터가 지척에 있는 등, 예로부터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특히 조선 시대 맹사성 대감의 주택이 있어 예전에는 맹현골로 불리던 곳이기도 하다. 또 주변에 구 경기고등학교(현재 정독도서관), 덕성여자중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창덕여자중고등학교 등이 즐비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교육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얼마 전까지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 김활란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박흥식 전 화신백화점 사장 등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던 곳이다. 현재는 윤보선 전 대통령 유가족들만 이곳에 살고 있다.
서울시 민속사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집은 대지 1,411평, 건평 250평으로 안채와 사랑채, 별당채로 구분되어 있다. 이 집은 1800년경 당시 권력층에 있던 민(閔)모 대감이 자신의 주택으로 축조했는데, 당시 주택의 규모가 너무 커서 고종 황제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개화론자인 박영효가 이 집에서 살았고(1861~1939), 윤보선 전 대통령의 선친 윤치소씨가 매입해 살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충청남도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의, 일명 새말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10세를 전후해 이곳으로 이사온 후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줄곧 이 집에서 살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곳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이 집은 북한산의 큰 힘을 받은 말봉우리가 큰 용을 일으켜 남쪽, 즉 서울 시내를 향해 뻗어 내려가는데, 바로 생룡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강한 용은 강력한 추진력을 의미하며, 장룡은 오랫동안의 발복을 나타낸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용의 생기에 힘을 입었다고 보여지며, 대통령직을 하야한 후에도 별 탈 없이 조용하게 지낸 것은 용의 강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집 마당에 서면 백호인 북악산이 매우 가깝게 솟아 집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북악산은 맹현골의 전반적인 지세에 있어서 주산인 동시에 백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악산은 그 형태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봉오리와 같고, 강체의 목산으로 문필봉(文筆峰)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문필봉 기운은 선비의 지조와 중심 사상을 갖게 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준다.
이 집은 군포시를 비롯해 안양시, 안산시 등의 주산인 수리산의 맥이 동남쪽으로 연결되어 태을봉을 이루고 다시 그 맥이 집에 연결된다. 수리산의 태을봉은 모두 강한 형태의 목산이며, 중심이 잘 잡힌 문필봉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의 안산인 노적봉은 집을 향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노적봉이 안산으로 있는 지역에서는 큰 재벌이 배출되는데, 이 집안에서 몇 개의 기업 대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노적봉의 소응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집은 시골의 전형적인 남향 집으로서 안채 12평, 사랑채 13평 등 총 25평으로 되어 있는데, 농사에 필요한 창고 등의 면적을 제외한다면 그나마 주택 면적은 더욱더 줄어든다. 이렇듯 작은 공간에서 9남매가 모두 훌륭하게 자라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넓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의 적정 면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4.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마을은 노적봉을 주산으로 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강한 능선의 마지막 평탄한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담안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산들이 마치 담을 둘러친 것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산들은 모두 노적봉 형태를 띠고 있다.
호암 생가는 노적봉에서 내려온 내청룡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산으로부터 장룡을 이루고 내려온 청룡은 이 집의 주룡이 되는 한편 집의 좌측 울타리와 같은 형태를 이룬다. 용의 길이는 발복 기간을 나타내므로 장룡에서는 발복 기간도 장기간이 된다. 호암 집안이 대를 이어 재벌이 된 것은 이러한 장룡의 기운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또 청룡이 수구를 막고 있는 지세로서 생기를 이룰 뿐만 아니라, 10리 밖에서 흐르는 남강은 호암 생가가 있는 쪽으로 역수를 이룸으로써 생기가 더욱 강하게 발생한다.
5. 강릉 선교장(船橋莊)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 옆에 있는 선교장은 한국의 전통적인 민가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명당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흔히 ‘10년 가는 권력 없고 3대 가는 부자 없다’고들 하는데, 이 선교장은 이 말을 무색케 한다. 무려 9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으로 전해 내려오는가 하면 강릉 시장, 고려대·관동대·건국대 등 학계 교수와 출판사 열화당 대표 등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선교장에서 처음 만석꾼을 이룬 것은 지금부터 9대 위인 이내번(李乃燔)씨 때부터이다. 원래 충주에서 살던 이씨 집안이 강릉으로 와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경포대 바로 옆쪽이었다.
점차 가산이 늘어나자 좀더 넓은 터를 찾아 나섰는데, 어느 날 족제비들이 집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족제비 수는 점차 늘어나 어느 날 한 떼를 이뤄 서서히 서북쪽으로 이동했다.
이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이씨는 족제비떼를 따라 갔는데, 약 1킬로미터쯤 가서 울창한 송림에 이르자 그 많던 족제비들이 모두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이내번씨는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의 지세를 살펴보고는,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명당이라고 생각하고 집터를 이곳으로 잡았다. 이곳으로 이주한 후 이씨는 해마다 풍작을 거두었는데, 수확한 벼를 쌓아 놓으면 커다른 산과 같을 정도였다. 이후 그는 강릉 일대는 물론 타지역까지 이르는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문진 이북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주문진에, 묵호 이남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묵호에 각각 별도의 창고를 두고 관리할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이씨는 이곳에 이사하도록 집터를 알려 준 족제비에게 감사하며 매년 족제비 먹이를 뒷산에 갖다 놓았는데, 그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선교장 지세는 대부분의 명당이 그러하듯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있는데, 대관령에서부터 뻗어 내린 생룡이 시루봉을 지나 경포대 앞까지 내려와 이곳 선교장에서 혈을 이루고 있다.
선교장 마당에서 보면 야트막한 산이 4면을 병풍과 같이 둘러싸고 있어 매우 아늑하게 느껴지는데, 그 아늑함은 정도를 지나쳐 답답해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주산과 청룡, 백호 등이 매우 가깝게 감싸고 있는 명당은 금시발복하는 특징이 있다. 이내번씨가 이곳으로 이사하자마자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도 금시발복하는 지세의 효과를 본 것이다.
선교장 전면에는 경포대가 매우 가깝게 자리잡고 있지만 청룡과 백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강릉 앞바다는 더욱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재산이 모이는 명당에서는 바다나 강물과 같은 큰 물이 직접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선교장은 안채, 행랑채 등 총 99칸의 전형적인 조선 시대 민가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 마당이 정사각형이다.
6. 이화장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살던 곳이며, 이전에는 인평대군이 살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46년 1월부터 1948년 8월 경무대로 옮기기 전까지의 2년 7개월과, 1960년 4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하와이로 망명하기 직전의 1개월 동안이다.
대지 1,820평의 이화장의 본건물은 ㄷ자 형태의 한옥이며, 부속 건물은 5평 남짓한 조각당(대한민국 초대 각료들을 선정한 곳)과 유족들이 생활하는 건물 등 총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70여 평의 본채에는 이 대통령 내외가 쓰던 침실·거실·서재·응접실 등 6개의 방과 주방·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화장은 낙산의 주봉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어 내린 용 위에 자리잡고 있다. 낙산은 산세가 힘차고 단정하며, 서울의 명당수인 청계천이 역수가 되도록 하여 생기를 이루게 한다.
그러나 이화장의 주택 평면은 터만큼 명당 구조를 이루지는 못한다. 이화장은 남쪽을 향해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ㄷ자 평면 형태는 중심력이 부족하다. 주택의 기운은 중심에 강력한 공간이 있어야 생기가 발생하는데, 지붕도 생기가 부족한 형태이다. 특히 낙산의 용이 서쪽으로 내려오는 지세로 보면 서향으로 배치하는 것이 배산임수의 이론에 합당한데도 남향으로 배치, 생기를 저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세는 명당이지만, 건물 형태나 배치 방법은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많았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거주하는 동안 재물이 모이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친 혈육을 보지 못했으며, 말년을 외국에서 어렵게 보내게 되는 데 집 형태 등 주택의 풍수가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7. 경교장과 이기붕의 집
김구 선생이 살았고, 결국 암살당한 경교장(종로구 평동 108번지)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사거리로 통하는 야트막한 언덕의 큰 길 중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경교장은 인왕산 줄기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인왕산은 서울의 백호로서 서울을 서쪽에서 감싸고 있다. 그러나 경교장 위치는 용의 중심선 밖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백호의 후면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풍수로 보아 능선 안쪽은 산의 전면으로서 생기가 모이고, 백호의 좋은 기운을 받는다. 그러나 백호 후면은 생기를 전혀 받을 수 없는 곳이다. 경교장에서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용의 밖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이 살던 집은 김구 선생이 살해당한 경교장 바로 우측에 있다. 자유당 정권 말기에 부정 선거 책임자로 여론의 화살을 받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인 이강석의 손에 죽고 말았는데, 그 집은 철거되고 이후 4·19도서관이 건립, 이용되어 왔다.
이 집은 경교장 서쪽 담 바로 옆에 있어서 인왕산 능선을 완전히 벗어난 곳으로서, 백호 후면에 자리잡고 있다. 백호 전면은 명당이지만, 백호 후면은 흉지이다.
8. 다산 정약용 생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한강의 큰 물줄기가 잔잔하게 흘러나가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행정 구역상 경기도 와부면 능내리에 속하는 다산 선생의 생가 일대에는 다산 선생이 생전에 터를 잡았다는 자신의 묘소를 비롯해, 만년에 독서와 저술 등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사랑채가 복원돼 있다.
다산은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압해(나주의 옛 이름)이고, 호는 다산과 사암 등이며 세례명은 요한이다. 원래 8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지낸 양반 집안이었으나, 그의 고조 때에 이르러서는 모든 관직을 멀리하고 오직 생업과 학문만을 탐구하며 선비 정신으로 가문을 이어 왔다.
다산 선생이 태어난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살던 집터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현재의 생가는 당시의 형태를 어느 정도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생가 터의 지세는 예전과 변함없다.
다산 정약용의 생가는 한강에 매우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주산은 천마산 한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의 큰 물줄기 앞 능내리에서 멈추면서 이루어 놓은 혈이다.
일반적으로 큰 강물이 가까이에 있는 지세에서는 혈이 생기지 못한다. 큰 강물은 강한 음의 기운을 갖고 있어 양의 기운을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또 강물이 있는 지역에서 중요한 점은 수구인데, 수구가 좁으면 혈이 이루어지는 반면 수구가 넓으면 혈이 이루어질 수 없다. 수구가 좁게 되려면 청룡이나 백호가 역수해야 한다. 이곳 지세에서는 다행히도 백호가 역수를 하고 있어서 넓은 한강 기운을 부분적이나마 모아 주고 있다. 따라서 다산 생가의 지세는 백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오행에서 물과 불은 반대의 성질을 갖고 있다. 오상(五常)으로 물은 지식이며, 불은 예절을 나타낸다. 예절이 지나치면 허례가 되는데, 다산 철학의 특징은 그 당시 사회에 만연된 허례와 허식을 타파하고 실질적·현실적인 생산을 원칙으로 하는 실용주의에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철학은 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