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성별·젠더 요소 주제로 ‘네이처 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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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편집장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 ©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포용적이고 신뢰성 있는 과학‧기술 연구를 위해 성별과 젠더를 과학적 변수로 반영하여 분석한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한국연구재단, 네이처 메타볼리즘이 10월 5일 기초 의‧생명과학, 임상과학, 데이터 과학에서의 성별·젠더 요소를 고려한 연구의 필요성과 우수성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네이처 포럼’을 열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 연구 지원기관, 정책 전문가, 학술지, 그 외 과학기술 분야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하는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별과 젠더 분석 통한 과학기술 연구의 다양성 확보 필요”
‘성별과 젠더 분석을 통한 과학기술 연구의 우수성 증진’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 국제 학술지 네이처 편집장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가 성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기조 강연을 했다. 성별과 젠더 분석을 통한 연구는 생명과학, 임상과학, 데이터 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영향력 높아지고 있다. 현재 성별·젠더 요소는 연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생물학적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스키퍼 박사는 세계 3대 학술지로 불리는 네이처의 8번째 편집장이자 첫 여성 편집장으로, 영국 캠브리지의 MRC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성결정을 공부했고 런던 ICRF연구소(오늘날 CRUK)에서 척추 내장 상피의 노치 신호전달을 공부했다. 그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과학연구 분야에서 성별과 젠더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이런 소홀함으로 인해 생물학, 의학, 사회과학, 공학 등의 연구가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거나 불균형해지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연구에서 성별을 고려하지 않으면 기술과 혁신은 물론, 어떠한 과학적 진보와 진전도 확신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스키퍼 박사는 과학적 진보와 함께 누구나 그 응용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며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15조를 상기시켰다. 제15조의 요점은 모든 사람이 문화적 삶에 참여할 권리는 물론 과학적 발전과 그 적용으로 얻을 혜택도 똑같이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발전, 연구에 있어서 남녀가 같은 기준으로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스키퍼 박사는 그 대표적 사례로 생체 의학 연구를 들었다.
특정 신약을 개발할 때 여성과 남성은 생리적 특성이 다르므로 약의 효능과 대사율에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임상시험에 남성과 여성 참가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전통적으로 심장마비 연구도 남성에 치중돼 있었다. 실제로는 여성에게도 비슷한 빈도로 발병한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심혈관 연구를 설계할 때도 성별이 간과되는 사례들이 있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서도 일어나며 편향된 연구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학과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모든 연구가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스키퍼 박사는 “테스트용 더미 역시 남성의 상체 형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전벨트 디자인이 여성의 신체 특징을 반영하지 못해 차 사고가 나면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볼 확률이 커진다. 공공장소에 화장실을 설계할 때 생리학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자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고 있다. 음성 인식 프로그램 역시 남자의 목소리에 맞춰져 있다. 방탄복도 남성 위주로 디자인으로 여성 군인이나 경찰관에게 더 심한 부상을 유발하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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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편집장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 ©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
네이처, 10년 전부터 성별 특성 반영한 편집 정책 수립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처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성별 특성을 반영함과 동시에 지난해 관련한 편집 정책을 발표했다. 스키퍼 박사는 “성별과 젠더가 투명하게 반영되도록 독려하고, 연구 설계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성별 특성을 반영한 결과를 보고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네이처는 논평 등에 관련 주제를 적극적으로 싣고 있으며, 현재는 성별과 젠더 반영 여부를 투고 체크리스트에 통합하여 논문을 투고하는 연구자들에게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즉, 연구 설계 단계에서 성별과 젠더가 어떻게 명확히 고려되었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뿐만 아니라 네이처는 ‘연구에서의 성평등 가이드라인’도 배포했다. 스키퍼 박사는 가이드라인을 수립한 이유에 대해 성별과 젠더 관련 내용이 적극적으로 연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연구자들을 독려할 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시에도 성별과 젠더 요소를 포함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저자들에게 좀 더 명확한 기준 제안의 필요성을 느껴 수립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의 다양성뿐 아니라 연구 주제, 연구 분야의 다양성은 여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성별과 젠더는 생물학적 변수다. 미래의 연구에서 연구 공동체의 지원을 받으려면 이 변수들이 연구 설계에 잘 녹아 들어가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스키퍼 박사의 의견이다.
스키퍼 박사는 “성별과 젠더라는 변수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논문의 결과로 명확히 나타나야 한다. 이 변수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더 넓은 맥락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공정성 부족이다. 우선 연구·개발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가 부족하다. 그는 “현재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과거에 비하면 늘어난 숫자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성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며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 연구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여성의 연구 성과 역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 연구자들이 상을 받아야 하고, 연구 성과나 견해를 발표할 자리도 또한 더 필요하다는 것이 스키퍼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여성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나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며 “아직도 많은 학회나 포럼에선 대부분 남성들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여성은 진행자로 참여할 뿐이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때 회의에도 균형 잡힌 의제가 선정되고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적인 권위의 노벨상 수상자가 유럽계 남성에게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스키퍼 박사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을 여성이 수상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지난 12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 600명 중에 여성은 23명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은 늘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아직도 유럽에서 과학자가 어떤 모습인지를 묻는다면 대개 흰 가운을 입은 백인 남성을 상상한다. 적어도 연구 분야에서 여성 구성원이 25~30%는 되어야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네이처는 처음 발간된 1869년부터 교육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왔다. 그래서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기본적인 교육뿐 아니라 재능있는 여성들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리더 단계까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스키퍼 박사는 “여기서부터 멘토의 역할이 시작된다. 여성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성과나 아이디어, 보상 등을 빼앗기지 않도록 특허 출원 등 여러 부분을 도울 수 있는 역할 때문”이라며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여성 연구원들이 서로 협력하며 연구 분야의 변화를 이끄는 연구원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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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편집장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 ©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
성별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은?
기조강연 후에는 니라오 샤 스탠퍼드 교수, 김은준 KAIST 교수, 카렌 루 UCLA 교수, 제나 윈스 미시간대 교수,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박성미 고려대 교수 등 기초과학·의학·데이터 과학에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강연이 이어졌다. 특히 카렌 루 교수는 “사람의 신체, 혈액 구성은 성별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성별이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지표로 살펴봐야 한다”고 피력했다. 성별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성차의학’이라며 그 대표적 성과로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로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스타틴을 소개했다.
또 김은준 교수는 ASD 자폐스펙트럼장애도 성별에 따라 발생 정도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언급했다. ASD는 사회적 행동 장애를 유발하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자폐증에 걸릴 확률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실제로 어미 생쥐와의 분리가 미치는 정서적인 영향이 생쥐의 성별에 따라 달리 다르다는 것도 밝혀졌다. 유전자 변이가 뇌 활동을 조절하는 세포외소포에 미치는 영향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여성의 세포외소포가 신경활동을 보호하는 것이 자폐증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