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김다위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
사무엘상: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7)
무능한 우상 전능한 하나님
삼상 5:1-12 (봉독 1-6)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무능한 우상,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예배하러 오신 분들 중에 이 제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별로 없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 명제가 우리의 실제 경험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실 겁니다.
정말 그렇다고 답하실 수 있는 분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왜냐하면 어떤 분들에게는 하나님보다 재물과 권력이 더 유능한 신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끔찍한 패배였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포함하여 군사 3만 명이 죽고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패배요 하나님보다 전능한 블레셋 신의 승리로 보였습니다.
지난 사무엘상 4장은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 무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로 대표되는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과 더불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는
블레셋의 승리, 세상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향한 영적 블레셋의 공세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멕시코에 사시는 어떤 분이 이메일을 보내셨어요. 멕시코는 이미 동성애가 합법화되어 아빠만 둘이거나 엄마만 둘인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세대는 학교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배운답니다. 아이들에게 피임을 가르쳐서 어떻게 안전하게 성생활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답니다. 다음 세대 아이들이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주일에 하루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다시 돌아가는 애들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답니다. 학교에서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꽉 막히고 고리타분한 아이라고 취급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학교에서 당당히 난 크리스천이야 말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하나님이지, 나의 하나님으로 만난 적이 없기에 나중에는 “굳이 만나야 하나” 이러다가 어른이 되면 신앙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다며 기도 부탁을 해오셨어요.
여러분, 블레셋의 공격은 사무엘 때나 지금이나 계속되어 왔습니다. 멕시코만이 아니라 미국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도 곧 그럴 위기 상황입니다.
마치 블레셋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두 차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탈취하여 그것을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의 성전 안, 다곤 신상 곁에 세워둡니다.
(삼상 5:2)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다곤 신상 곁에 세워 놓았다.
다곤이라는 신은 블레셋 족속의 주신입니다. 곡물의 신으로서 농사를 주관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다곤은 가나안 사람들이 주로 믿었던 바알 신의 아버지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외래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나안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바알의 아버지를 주신으로 섬겨 바알보다 우월한 신을 섬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곡물의 신을 믿음으로써 풍요와 번영을 원했던 것입니다.
다신론 vs 단일신론 vs 유일신론
흥미로운 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파괴시키지 않고 신전에 갖다 두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언약궤가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많은 승리를 가져다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가지고 있으면 자신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블레셋을 비롯하여 가나안 족속들은 다신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들은 여럿이고 다양하며 여러 신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신론과 달리 단일신론은 여러 신들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의 신만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신론도 아니고 단일신론도 아닙니다. “유일신론”입니다.
단일신론과 유일신론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단일신론은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중에 하나의 신만 섬기겠다는 것이라면,
유일신론은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신은 단 한 분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겉으로는 유일신 신앙이었으나,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에 하나로 보았습니다. 사실상 다신론자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7장에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 중에 있는 우상들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삼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전쟁에서 1차 패배했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패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언약궤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무엘은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패배의 원인은 “백성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뜻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거나 믿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도 섬기는 혼합신앙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다리, 문어발식으로 걸쳤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우상도 동시에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패배의 원인이었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이 패한 것은 블레셋이 너무 강했거나, 원수가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패한 것은 그들의 영적인 초점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어서 오직 하나님만 신뢰할 때에는 승리했습니다. 원수를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을 때,
자신의 능력과 경험과 재물을 의지할 때에는 항상 패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사실상 떠나서 패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젊은 세대가 떠나는 것이 블레셋이라는 세상이 너무 강해서일까요?
넷플릭스가 너무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어서 다음 세대가 신앙을 버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항상 세상은 그렇게 다음 세대를 공격해 왔습니다. 늘 쾌락과 유흥으로 유혹해 왔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질되고 변한 것은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조차도 세상과 똑같이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에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특히, 경제적 번영의 우상, 정치적 권력의 우상에 굽신 거립니다.
번영도 권력도 결코 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십계명의 다른 신들이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에 대해 마틴 루터는 “십계명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라,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십계명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계명이 이것이었습니다.
(출 20: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여러분들이 이 구절을 읽으실 때 반드시 의문을 가지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신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당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참모장님께서 대화 중에 군종참모 목사님께 물었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인데, 이것은 다른 신들이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곁에서 그 질문을 들었지만, 저 역시 그 질문에 대해 마음속으로 답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믿지 않는 분들이나 혹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 질문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계신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도 다곤 신을, 바알 신과 아스다롯 여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계신 것 아닌가?
이런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다시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다른 신들은 그 무엇, something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nothing인가?”
정답은 분명하지요.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nothing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증거 합니다.
[렘 10:5] 그것들(우상들)은 논에 세운 허수아비와 같아서, 말을 하지 못한다.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 늘 누가 메고 다녀야 한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수도 없고, 복도 내릴 수가 없으니, 너희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말도 못해, 걷지도 못해, 누가 메고 다녀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신입니까?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야 합니까?
제사 음식 먹어야 합니까? 그것이 우상과 귀신에게 바쳐진 것임을 알았다면 먹지 말라.
그러나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는데 그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 모른다면 그냥 먹어도 됩니다. 왜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전 8: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an idol is nothing),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을 섬겼으며,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여신을 섬겼는가?
왜냐하면, 그 바알과 우상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비교하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눈에는 그 어떤 것,
그 무엇 something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추천 일기에 보니 5천만 원이 긴급하게 필요했던 분이 계셨습니다.
살다보면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가 있지요. 물론 어떤 분에게는 5천만 원이 큰 금액이 아닐 테지만,
저를 포함하여 많은 분들에게는 큰 금액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금액이 5천이 아니라 5억, 50억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돈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신처럼 보일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돈에는 영적인 힘이 있기에 맘몬, 즉 돈의 신이라는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돈은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지만, 힘이 있기에 마치 신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첫 계명에서 다른 신들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신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이기도 합니다. 둘 다입니다.
가끔 외부에서 기도 받으러 오신 분들 중에는 몸이 아프고 힘드니까 굿을 받아야 하나 생각했다고 고백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무당이 섬기는 그 무엇이 마치 유능한 신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귀와 악한 영에도 어느 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권세를 당할 수 없습니다.
애굽에 10가지 재앙이 내려진 이유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절대로 노예의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어떤 나라도 애굽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노예였던 히브리 민족이 느꼈을 감정이 무엇이었을까요?
애굽의 신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 강력한 “무엇”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애굽의 풍성한 곡식을 가져다주는 태양, 비옥한 땅, 나일강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강물, 애굽의 강력한 군사력. 노예로 있던 백성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경험 속에서 애굽을 지키는 신적 실체가 있다고 느껴졌을 겁니다. 이 말에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일까요?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냥 데리고 나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지요. 왜죠? 열 가지 재앙은 바로 애굽의 거짓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신들처럼 여겨지는 그 우상들이 실상 모두 아무 힘도 없는 nothing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다 보여주시고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다! 나만을 섬기라!
그러므로 출애굽은 단순한 해방이 아닙니다.
출애굽은 애굽의 거짓 신들로부터 참 주인이요 유일한 신이신 야웨 하나님으로 교체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자유는 이제는 주인의 명령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참된 주인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사무엘상 4장은 블레셋의 공격에 맞서 영적으로 부패한 이스라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5장은 하나님께서 거짓 우상에 대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블레셋이 믿는 다곤 신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대단히 보여도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다곤 신 옆에 하나님의 궤가 놓였는데, 이튿날 일찍 가보니, 다곤이 엎어져 있는 겁니다.
[삼상 5:3] 그 다음날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보니, 다곤이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들은 다곤을 들어서 세운 다음에,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다곤이 주님의 궤 앞에 얼굴을 땅에 박고 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곤은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이게 신인가요?
하나님의 유머요 우상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갔더니 또 그렇게 엎어져 있는 겁니다.
[삼상 5:4] 그 다음날도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 보니, 다곤이 또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서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다곤의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져서 문지방 위에 나뒹굴었고, 다곤은 몸통만 남아 있었다.
다곤의 두 팔목과 머리가 부러졌다는 것은 고대근동에서 적의 머리와 손을 전리품으로 챙겼던 관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이 우상의 손과 목을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다곤 우상이 마치 무엇이 된 것 마냥 높아질 때, 신처럼 추앙받을 때,
사실상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심판하시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시다
하나님의 손은 우상을 섬기던 자들도 치십니다. 6절입니다.
[삼상 5:6] 주님께서 아스돗 사람들을 무섭게 내리치셨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악성 종양 재앙을 내리셔서, 아스돗과 그 지역 사람들을 망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우상을 섬기던 아스돗 사람들도 치십니다. 그들이 무서워서 궤를 가드라는 다른 도시로 옮깁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치셔서 악성 종양이 생기게 하셨어요. 이 종양은 주로 쥐를 통해서 전염되는 전염병인데 주로 배를 타고 들어온 쥐들에 번지곤 했습니다. 아마도 페스트, 흑사병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겼더니 거기서도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이 말씀들은 모든 우상 숭배자,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죄는 사실 우상숭배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우상숭배의 뿌리는 교만으로서, 인간이 왕이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주권과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5장의 심판은 마지막 날에 우상숭배자들에게 일어날 궁극적인 심판의 맛보기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보면,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지옥에 던져지는 자들이 누구인가?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자들에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생각할 때에, 그들의 삶을 뒤흔드십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두 번이나 큰 승리를 거두었고 언약궤도 탈취했습니다.
이제 블레셋을 이길 적들은 없을 것이라고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곤은 쓰러지고, 다곤 신상의 목과 팔은 부러지고 몸뚱이만 남았습니다.
그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던 우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왜죠? 블레셋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다윗의 장군들 중에는 블레셋 출신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잇대’라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블레셋 사람 600명과 함께 다윗에게 충성했던 사람입니다(삼하 15:19). 블레셋 사람 600명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 군대가 되었습니다. 신실하게 다윗 왕과 함께 하며 결국 반역을 제압하는 데에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왜 이 블레셋 사람들이 귀화하여 이스라엘에 함께 했을까요? 성경은 잇대가 본국에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윗이 잇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더니 그의 고백은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계시고 왕도 확실히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삶의 어느 순간, 참 신은 블레셋이 믿는 다곤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바뀌었다면 누구나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번영과 권력과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의 삶을 뒤흔드십니다. 지난 역사가 그래왔습니다.
19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제 신은 필요 없다. 인간의 이성, 과학, 교육으로 유토피아를 세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다곤이 쓰러진 겁니다.
전쟁 이후 세계 경제는 대부흥기를 맞이합니다. 광란의 20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쌓은 부와 재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929년 10월 29일 월스트리트 뉴욕증권시장의 주가 대폭락이 있었습니다. 검은 화요일로 알려진 날입니다. 미국의 역사상 가장 큰 주식 대폭락으로 그 영향과 사건이 가장 컸던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12년간 서구권 전체에 대공황 사태가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다시 다곤을 쓰러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냉전시대도 끝나고 그야말로 세계화가 일어나며 세계경제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이 폭락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한순간에 부를 날렸습니다.
사람들에게 부동산과 땅이 신처럼 여겨질 때, 하나님은 번영이라는 다곤의 목과 손을 부러뜨리십니다.
맘몬의 얼굴을 땅에 처박히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까요? 다곤이라는 우상을 쓰러뜨림으로써 누가 참된 신인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홀로 블레셋 땅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시며 선교하고 계시는 겁니다.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 나를 믿으라. 나를 의지하라!”
사탄은 창세기 3장에서 하와를 유혹하며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창 3:5)고 했습니다.
마치,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우상의 무능함을 드러내십니다.
왜냐하면 허무하게 피조물을 섬기던 우상숭배를 버리고, 참된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피조물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길 때에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들이 때로는 세상에서 블레셋에 의해 패배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계획한 일들을 어그러지게 만드시고 엉망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 살거나, 혼합주의적인 신앙 상태로 살도록 놔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신을 곁에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할 일은 블레셋의 신, 다곤을 쫓아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세상에서 우상 숭배를 거절하되, 하나님만을 섬기며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세대들도 그런 부모세대를 본받아 돌아옵니다. 따라옵니다.
블레셋이 너무 강해서, 세상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 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세대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 상징되는 블레셋의 권력은 우리보다 강할지 모르나 하나님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입니다.
[요일 4:4, 개정]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오늘 우리는 성찬을 받습니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예수님은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상숭배자인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포기하지 않겠다, 떠나지 않겠다는 겁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찬을 받을 때, 이렇게 기도합시다.
첫째로, 헛된 우상, 무능한 우상을 의지하려 했던 죄를 회개하십시다.
둘째로, 이렇게 고백하십시다.
“내 안에 성령으로 오신 주님, 주님이 세상에 있는 블레셋보다 크시다!
다곤은 아무것도 아니며 참된 신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전능한 하나님,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