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쌀

[울 청조]

묵은쌀.

-푸석하고 바람이 불면 밥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맛도 없고 금새 배가 꺼져서 항상 배가 고팠다. -

예전에 비축식량으로 저장했다가 내어놓은 쌀을 정부미라 불렀다.
그리고 정부미의 밥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재난이나 전쟁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보관했던 비상식량이었지만 몇 년을 묵혔기 때문에 밥맛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밥맛도 맛이지만 이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쉽게 배가 고팠다.
아닌 말로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들 하였다.

지금이야 해안 일대로 간척지를 만들어 해마다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되어 묵은쌀은 우리의 밥상에서 사라졌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이 푸석하고 맛없는 정부미를 먹어야만 했다.

흔히 일반미라고 하는 백미로 어쩌다가 밥을 지어서 먹으면 밥이 그리 맛있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백미로만 밥을 지어 먹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선망의 대상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힘 있고 가진 자들은 몸에 좋지 않은 것들만 골라서 먹었고
힘 없고 가난한 자들은 마지못해 몸에 좋은 것들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평등이었다.
모든 먹거리는 이 불변의 법칙에서 어긋난 적이 없었다.
가진 자들은 육류나 채소도 신선한 것, 맛이 좋은 것, 부드러운 것 등 먹기 좋은 것들로 골라서 먹었다.

없는 자들은 시들한 것, 맛이 없는 것, 딱딱한 것들을 어쩔 수없이 먹어야만 했다.

필자는 이를 두고 불변의 법칙이라 말하는 것이다.

시들한 채소는 고유한 독성이 빠진 것이고 맛이 없는 묵은 곡류나 육류는 후숙되어 소화가 잘 되었다.

또한 딱딱한 것들은 잇몸을 단련시켜서 치아를 단단하게 하였다.

먹기에는 맛없고 힘들었지만 없는 실정에 이것저것 가릴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있는 자들은 가리고 따져서 먹는 특권을 누렸지만 온전한 천수를 누리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갓 도축한 신선한 육류나 너비아니 같은 고급지고 기름진 고기를 먹은 자들은 대부분 질병으로 오래 고생하거나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단명하였다.

소갈병이나 고혈압, 통풍으로 고생을 하다가 죽었다.

없는 자들은 몸을 지나치게 움직이고 못먹어서 골병통 즉 영양실조나 관절염, 신경통 등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는 자들도 기본적인 식사는 가능해져서 왠만하면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날 우리나라에서 굶어죽는 아사(餓死)자들은 드물다.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개구리가 올챙이적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있거나 없거나 누구나 시대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오늘 필자가 이야기 하고픈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을 제대로 알리고자 함이다.

앞서 언급했던 묵은 쌀 정부미다.
오래 비축했다가 정부에서 풀어서 정부미라고 불리면서 무시의 대상이 되었지만 묵은 쌀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쌀이다.

최소한 2~3년, 길게는 7년 이상 묵은 쌀이 가장 좋은 쌀이다.

배불리 먹고 뒤돌아서면 금방 꺼질 정도로 소화가 잘 되었고 쌀 특유의 탄수화물이 어느 정도 중화가 되어서 혈관 속 당의 수치를 올리지도 않는다.

묵은 쌀의 대체법으로 잡곡을 섞어서 먹지만 묵은 쌀은 그 자체로 소화가 잘 되어서 잡곡을 섞을 필요도 없다.

즉 쌀 고유의 끈적임을 갖는 코팅제인 찰기가 없어져서 위장은 무리없이 소화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화가 잘 되고 당류는 효소로 변해서 피를 맑게 하는 작용도 한다.
또한 소화가 잘 되니 간이 피로하지 않는다.
간이 피로하면 만성 무기력증이 생기는데 간이 황산화를 잘 이루니 무기력증이 없어져서 활력이 생긴다.
그리고 활력은 모든 음식을 맛있게 한다.
방금 식사를 했는데도 허기지니 모든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든든하지 못함이 뱃속에 든든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부족하니 채우려하고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니 혀끝은 늘 풍족함을 갈구한다.

이러한 이치는 당연히 모든 음식을 맛있게 한다.
필자가 말하는 불변의 법칙 즉 자연의 법칙이다.
지나친 풍족함은 부족함만 못하다.
그러나 이를 느끼고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지구상 유일의 동물일 것이다.

묵은 쌀은 옛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 있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시고 짜며 독이 없으니 번열을 제거하고 위를 열고 설사를 그치게 하며 장위(澁)를 틀어 막거나 거두어들인다. 환자에게 미음을 끓여서 먹이면 좋다.-

묵은 쌀을 먹는 곳은 또 있다.
바로 우리와 같은 반도국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의 북부 피에몬테 지역에서 쌀 농사를 짓는 론돌리노 가문이 바로 그들이다.
그 가문은 쌀을 7년 동안 숙성시킨다.
그 쌀을 ‘아퀘렐로’(Aquerello)라 부르며 대대로 가문의 쌀로 생산하고 있다.
론돌리노가문은 이 지역에서 500여년 동안 쌀농사를 지으며 묵은 쌀을 만들고 있다.

오래 묵어서 쌀의 색이 탁하고 검어지지만 이탈리아의 요리명장들이 최고로 치는 쌀이다.
사람의 뱃속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똑같다.
소화가 잘 되어 뱃속이 편안하고 배변에 도움을 주니 그만큼 좋은 쌀로 인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묵은 쌀로 만든 과자도 먹지를 않는다.
점점 입맛만 몹쓸 경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예부터 미운 자식은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은 매 한번 더 치라고 했지만
정작 예쁜 자식에거 떡 하나가 아니라 보양식을 먹이고 있다.

불필요한 보양음식 즉 열(火)성 음식을 먹이니 간이 노하게 되어 화를 내고 있다.
고도비만은 물론 아토피, 백반, 홍반, 흑반 등을 비롯해서 당뇨, 고혈압 심지어 관절염까지 앓고 있는 것이다.

좋은 쌀은 맛이 좋은 햅쌀이나 찰기가 있는 쌀이 아니라 찰기를 잃은 푸석한 묵은 쌀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간사한 혀끝은 찰기 있고 맛 좋은 밥을 원한다.

그리고 당뇨, 혈압, 고지혈증, 협심증, 비만, 피부병 등을 달고 살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의 집에 묵은 쌀이 있는가?

*묵은 쌀로 밥을 지을 때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린 물에 하루저녁 불린 후
식용유(모든 식물성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서 밥을 지으면 밥맛 좋은 밥이 된다.

해강.
약초연구소 둥지.

[풍경지키미]

누리님
제발 묵은 쌀 좀 먹지 말자

[들꽃 장광순]

낱알이 많이 열리는 통일벼
밥이 푸석푸석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