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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합작 이차전지, 미국 진출 이상 없나?
조동진
✔ 이차전지 점유율 앞선 중국, 광물 분야에 강점
✔ 이차전지 소재·장비·완제품 한국이 중국 압도, 단 하나 전구체 취약
✔ 중국, 'Made in Korea' 간판으로 미국 시장 진출 도모
✔ LG엔솔·포스코·에코프로 등 변고점 맞은 한국 기업
✔ "반도체와 다르다"는 낙관? 미국의 중국 압박 강화할 것
예상했던 우려가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이차전지 업체의 활발한 한국 투자(올들어 6조 원 이상)가 계획상이지만 발표되었다. 이게 자칫 미국의 IRA법이나 FEOC(해외우려단체)의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다. 중국이 돈을 대고 한국에서 같이 만든 제품이 막상 미국 시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다.
물론 반도체와 달리 이차전지 산업은 핵심광물에서부터 중국 의존도가 독점적으로 높아서 미국도 함부로 못 할 것이란 관측이 상당하다. 그러나 업계는 투자 유치와 함께 유사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미중 분쟁 속에 대부분 업계의 운명이긴 한데, 이차전지 업계는 덩치가 좀 크다. 미국이 기침이라도 하면 한국 주가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편집자 주]
최근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중국과 관련한 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중국 이차전지 업체들의 한국 투자, 좋으면서도 자칫 미국으로부터 매맞을 일이다.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 자본 투자와 합작사 설립은 물론 공동 경영에 기술 제휴, 인력 교류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중국 기업들이 깊고 빠르게 한국 이차전지 산업계로 파고드는 중이다. 한국 이차전지 산업계의 이런 상황을 미국과 유럽 주요국 정부들은 이미 다양한 루트를 통해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중국, 이차전지 세계 시장 점유율 압도적
현재 세계 이차전지 시장은 완제품 생산량과 매출 등 외형적 부분에서 CATL(닝더스다이)와 BYD(비야디)로 대표되는 중국 기업들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차전치 최대 수요처는 전기자동차 분야.
전기차용 이차전지 탑재량을 기준으로 2023년 1~7월까지 이차전지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면 1위는 중국 CATL로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CATL의 이차전지 132.9GWh를 사용했다. 점유율이 36.6%(자료 SNE리서치, 이하 동일).
중국 CATL는 전기차용 이차전지 탑재량을 기준으로 2023년 1월~7월까지 이차전지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 사진=셔터스톡
2위는 점유율 16%의 중국 BYD, 3위는 점유율 14.2%인 한국 LG에너지솔루션이다. 4위 일본 파나소닉은 7.3%, 5위 한국 SK온은 5.2%다. 6~7위는 각각 중국 CALB와 삼성SDI다.(출하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1위 CATL, 2위 LG에너지솔루션, 3위 BYD, 4위 SK온, 5위 삼성SDI, 6위 파나소닉, 7위 CALB 순이다.)
CATL와 BYD, 두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전체 시장의 절반을 넘는 52.2%에 이른다. 여기에 CALB Guoxuan(궈시안), EVE, Farasis(파라시스) 등 나머지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점유율까지 합하면 중국 이차전지 산업계가 세계 시장을 압도하는 듯 보인다.
내수 독식한 중국 제하면 LG엔솔이 세계 1위
얼핏 세계 시장을 휩쓰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철저히 중국 내 전기차 시장 덕분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지인 동시에 판매 시장이다. 이런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외국 이차전지 기업들을 사실상 배제한 채 낮은 성능과 품질에도 자국 이차전기 기업들이 생산한 물량을 독점적으로 매입해 주고 있다. 결국 중국 내수 시장 독식이라는 특수성이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높은 시장 점유율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자. 2023년 상반기 기준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 북미와 유럽, 한국 등을 대상으로 산출한 이차전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는 시장 점유율이 28.7%인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이다. 2위가 점유율 27.2%인 중국 CATL이다.
전기차 탑재 용량과 출하량이라는 양적 기준으로 분석한 것만 이런 게 아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 수익성 기준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심각하다. 이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저성능 전기차에 사용하는 저품질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저가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경쟁자인 한국 기업들은 저가형 LFP배터리는 물론 고성능 이차전지로 평가받는 NCM(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에, 최근에는 니켈 함량을 80~90%까지 대폭 높여 주행거리를 늘리면서도 제조 원가는 낮춘 하이니켈 배터리까지 양산하고 있다. 양호한 수율을 바탕으로 저성능부터 고성능까지 안정성을 키운 고품질의 다양한 제품들로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
수출길 막히니 중국 이차전지 재고 폭증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고민은 사실 세계 시장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중국 내 이차전지 재고 역시 심각하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자국 이차전지 기업 제품을 사실상 독점 구매해 주고 있지만, 현재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생산량은 이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중국 자동차 매체 가스구(Gasgoo)는 중국 내 주요 이차전지 완성품 업체를 48개로 집계하고 있다. 출하량 세계 1~2위 CATL와 BYD를 포함해 48개 기업이 쏟아내는 이차전지 양이 전기차 업체들의 수요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중국 밖으로 수출이 사실상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이차전지 물량 상당수가 재고로 쌓이는 것이다.
2021년 7~8월 가시화된 중국 내 이차전지 재고 문제는 2021년 말부터 드러났다. 2022년 9월 204GWh(자료 CABIA·중국 자동차 배터리 혁신얼라이언스, 이하 동일)를 넘어선 재고가 같은 해 12월 219GWh까지 치솟았다. 이후 증가폭이 잠시 둔화되는 듯했지만 2023년 3월부터 다시 증가해 5월 253GWh까지 재고량이 쌓여버렸다. 참고로 2022년 한 해 동안 중국 전기자동차 제조사들이 만든 전기차 전체에 탑재한 이차전지 총용량이 294GWh 수준이었다. 일 년치 이상이 쌓여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카운터 펀치, IRA법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IRA는 재고 문제 해결과 수익성 개선을 위해 시장 확대가 절실한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과 산업계를 옥죄고 있다. 이차전지 완제품 기업뿐 아니라 광물 등 원·부재료, 1·2차 중간재 등 이차전지 생태계에 포함된 거의 모든 중국 기업들이 IRA에 발목이 잡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IRA에 따라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전기차용 이차전지에 중국 등 우려국에서 채굴·생산·재활용된 광물을 일정 비율 아래로 낮춰야 한다. 특히 리튬과 코발트, 니켈 등 이차전지 핵심 원재료는 반드시 미국 또 미국과 FTA를 맺은 경제 동맹국에서 공급받아야만 한다.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들 역시 미국을 포함해 북미 지역 생산 비중이 50%를 넘어야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비율은 2029년 100%까지 올라가게 된다. 세계 최대 전기자 및 이차전지 격전장인 북미 지역으로 중국산 원자재와 중국의 자본 유입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여기에 EU의 핵심원자재법(CRMA·Critical Raw Materials Act) 역시 미국의 IRA만큼의 강도는 아니지만 지난 3월 EU진행위원회와 9월 EU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한국 기업 제휴로 '우회로' 확보…정치적·법적 규제 회피 노려
이런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과 산업계가 상황 개선을 위해 선택한 카드가 한국이다. 한국의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과 적극적인 제휴를 통한 합작사 설립, 지분 확보와 자본 투자 등 일종의 ‘우회로 확보’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규제, IRA와 CRMA 법망 회피를 노리고 있다.
한국 이차전지 산업 생태계를 잠깐 보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로 대표되는 이차전지 완성품 업체들의 경쟁력에서 한국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포스코와 LG화학, 에코프로 등은 계열사와 자회사를 통해 원재료인 핵심 광물부터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등 1·2차 중간재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전세계 이차전지 기업들 사이 비교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선두권 기업들만이 아니다. 중견·중소기업들 역시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과 촉매, 동박과 생산·검사 장비 등 사실상 이차전지 산업 대부분의 영역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이차전지 기업만한 선택지 없어
여기에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경제·안보 동맹국 중 하나다. FTA 체결국으로 주요 핵심 산업은 물론 개별 기업들의 자본 교류와 투자, 제휴 역시 매우 활발하다. 당장 LG이노베이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주요 이차전지 기업들과 GM과 포드, 스탈란티스 등 미국 메이저 자동차 기업들의 관계는 수조 원대 합작과 투자 관계로 연결돼 있을 만큼 끈끈하다.
이들은 최근 1~2년 사이 지속성이 보장된 천문학적 규모의 전기차용 이차전지 공급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고 있다. 나아가 공급자와 수요자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아예 미국 각 지역에 합작사를 만들어 수십 GWh 용량을 생산하는 대규모 이차전지 생산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형태로 진화해 있다. 지분 투자와 자본 교류, 공동 경영과 기술 제휴 등 밀접한 관계로 연결된 것이다.
유럽 상황도 다르지 않다. 폭스바겐그룹, 벤츠, 르노닛산 등 상당수 유럽 자동차 기업들 역시 중국 기업에서 공급받는 저성능 전기차용 LFP배터리를 제외하면, 전기차용 이차전지 핵심 공급체인으로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을 선택하고 있다. 북미지역 수출에 대한 해법이자, 향후 강화될 것이 분명한 EU의 CRMA에 대응하기 위한 파트너로 한국 이차전지 기업만한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은 파나소닉 등 일본의 이차전지 기업들을 제치고, 토요타와 혼다에 수십 GWh 규모의 이차전지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들과 손잡고 미국 현지 합작사를 설립, 대규모 생산 공장을 함께 만드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이차전지 생태계 취약점? 전구체에서 밀려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이 조성한 이런 시장 환경은 중국 업체들에 절호의 기회다. 한국 이차전지 기업을 향한 자본 투자와 합작사 설립, 지분 확보는 물론 기술 제휴 등의 방식을 활용해 한국 이차전지 산업계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한국 생태계 진입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이차전지 완성품 기업들이 아닌, 전구체와 양극재 등 원자재 가공과 중간 소재,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를 집중 공략하는 식으로 한국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이차전지 생태계의 취약점을 파악해, 이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한국 이차전지 산업은 리튬, 니켈 같은 광물 등 원재료 부분에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원재료 부분을 제외하면,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등 1·2차 핵심 소재는 물론 촉매와 동박, 생산·검사 장비, 그리고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딱 하나,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전구체(precursor, 이하 전구체로 표기)’ 분야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기술 노하우, 가격, 생산력에서 중국 기업들이 앞서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한국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 입장에서 전구체 관련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국내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자본과 노하우가 아쉬운 상황인 게 사실이다.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으로의 진출로를 봉쇄당한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이 바로 지점을 간파하고, 이 틈을 절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전구체란 화학반응을 통해 A라는 새 물질을 만들어 질 때, 최종 산물인 A가 형성되기 바로 직전 단계의 물질을 말한다. 이차전지로 전구체를 설명하면 이차전지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양극재가 되기 직전, 즉 양극재의 원료 물질이다. |
배터리 양극재. / 사진=LG화학
4대 핵심 소재 원가 비중 87%…양극재 압도적
이차전지 산업과 생태계에서 전구체가 갖는 중요성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차전지를 생산에 필요한 무수히 많은 부품과 소재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성 물질로 꼽히는 4가지 소재가 있다. 흔히 이차전지 4대 핵심 소재로 불리는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질)’이 그것이다.
이차전지 완제품 하나에서 이들 이차전지 4대 핵심 소재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무려 87%(자료 KB증권)에 이른다. 이차전지 원가 구조는 통상 양극재 37%, 음극재 18%, 분리막 19%, 전해액 13%, 기타 13%로 분석되고 있다. 4대 핵심 소재 중에서도 양극재의 원가 비중이 압도적이다. 결국 양극재 기술력과 경쟁력을 끌어 올리면 끌어 올릴수록 이차전지 시장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은 이 양극재 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 LG그룹 최대 계열사 LG화학, 포스코그룹 이차전지 핵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 올해 기록적인 주가 폭등으로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에코프로그룹의 에코프로비엠, LG그룹과 GS그룹 방계인 엘앤에프, 코스모신소재 등 한국의 주요 양극재 기업들이 향후 세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다.
한국의 '전구체' 고민, 중국 이차전지 산업계가 파고들어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양극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소재인 ‘전구체’의 국내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중국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과 비교해 열세라는 점이다.
생산량 기준 리튬 이차전지 전구체 시장을 살펴보자. 시장 1위는 중국 기업들로 무려 전구체 점유율이 무려 75.8%(QY Research Korea 자료, 이하 동일)다.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불과 13.9%로 일본의 9.7%보다 높지만 중국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세계 이차전지 시장에서 전구체 소비량을 보면 중국이 42.5%, 한국이 41.5%다. 사실상 차이가 없다.
이 수치는 한국 기업들은 양극재를 만들기 위해 중국 이차전지 1차 소재 기업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제 한국 양극재 기업들의 중국 전구체 의존도는 최소 80%에서 최대 90%에 이른다. 양극재 가격에서 전구체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70~80%로 알려져 있다. 이차전지 가격에서 양극재의 원가 비중이 37%임을 감안하면 실제 이차전지 전체 가격에서 전구체의 원가비중이 25~30%에 육박하고 있음을 읽어 낼 수 있다. 전구체 수입 비중이 80%에 이르는 한국 기업들에게 전구체의 국내 생산 확대와 기술 향상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고민을 중국 이차전지 산업계가 파고든 것이다. 전구체 분야 기술 제휴, 한국 내 공장 증설과 생산 설비 확대 등 대규모 자본 투자를 약속하며 한국의 이차전지 기업은 물론 국내외 기업 유치에 목을 매고 있는 지자체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여기 따라가고 있다.
지난 4월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Huayou)와 합작사 설립을 발표하며 2028년까지 전북 군산 새만금에 연 10만 톤 규모의 전구체 생산 공장 만들기로 했다. LG화학은 경북 구미에 역시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사 설립하고 2025년 연 6만 톤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지어 운영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6조 원 중국 자금 투자 열풍 속…미국 눈치 봐야 하는 상황
SK그룹의 SK온은 지난 3월 중국 전구체 기업 거린메이(GEM)의 투자를 받아 ‘지이엠 코리아 뉴에너지머티리얼즈’라는 합작사 만들었다. 2024년까지 전북 새만금에 이 합작사를 통해 약 5만 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 짓겠다고 발표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중웨이구펀(CNGR)과 합작사를 만들어 포항에 전구체 연 11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립에 나섰다. 포스코와 GS에너지는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전남 광양에 폐배터리 재활용 합작사 포스코HY클린메탈을 만들었다.
지이엠 코리아 뉴에너지머티리얼즈 새만금국가산단 투자협약식. 왼쪽부터 강임준 군산시장, 김관영 전라북도 도지사, 지앙미아오 지이에코리아 대표, 김규현 새만금개발청장, 조현찬 새만금산업단지 단장. / 사진=전라북도
취재 중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이차전지 관련 한국의 주요 대기업과 중국 기업들 간 합작 투자 규모가 올해 발표된 것만 6조 원을 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청난 숫자다.
이들 외에도 엘앤에프, 미래나노텍 등 이차전지 소재 부품 중견·중소기업들은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의 투자 유치와 합작사 설립 제안에 주요 대기업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전구체 원재료 확보, 중국은 대미 우회로 찾기?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 무조건적인 문제 제기나 부정적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료인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중국 관련 기업들과 합작은 한국 기업들에 안정적인 전구체 원재료 확보를 가능케 한다는 이점이 있다. 전구체 생산 설비 확대를 위해 수조 원대 자본이 필요한 한국 기업들에 자본 조달 고민도 덜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중국 기업으로부터 수조 원대 대규모 자본 유치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한국 내 전구체 공장 등 생산 설비를 빠르게 늘릴 수도 있다. 한국 내 생산량을 늘어나면 중국산 전구체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중국 합작사를 통한 생산 수율 안정화와 전구체 관련 기술 등 각종 노하우 습득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경제 안보 동맹이자, 미국 자동차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을 내세워 IRA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미국 등 북미 시장 ‘우회 진입’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일 정부출연연구원인 산업연구원(KIET)에서 ‘중국 이차전지산업의 공급망 강화 전략과 시사점(조은교, 심우중)’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10장 분량의 이 보고서 역시 최근 급증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이차전지 기업 간 자본 제휴, 한국 내 합작사 설립 현상과 관련해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 분야의 공급망을 단번에 다변화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짚으며 ”중국과의 전략적 기술 협력이나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협력관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을 정도다.
미국 정치권 격노에 포드-CATL 이차전지 합작 실패
문제는 현재 미국과 유럽 주요국 정부와 의회가 한국 기업들과 중국 기업들의 이러한 연대를 계속 놔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은 일단 의심한다. ‘IRA를 피해 미국 시장을 편법 공략하려는 중국의 우회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지난 7월 말 중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에 대해 “한국이 (전구체 등) 배터리 공급 기술을 습득할 기회”라고 평가하면서도 “중국이 (한국이라는) 우회로를 찾아 미국 시장으로 들어오려는 편법”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합작과 제휴라는 우회로를 활용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에 대해 미국 정부와 의회, 정치권이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있다. GM과 함께 미국 자동차산업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포드가 지난 2월 자사의 전기차 탑재용 이차전지 생산을 위해 세계 최대이자 중국 이차전지 산업의 상징으로 불리는 CATL과 합작을 발표했다. 35억 달러 규모로 미시간주에 CATL과 합작 형태로 이차전지 생산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 포드의 계획이었다. 포드와 CATL 간 합작은 중국산 원재료와 소재, 자본 투입 배제를 규정한 IRA를 회피하기 위해 ‘포드가 미국 공장 지분 100%를 출자하고 CATL은 이차전지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형태로 발표됐다.
포드와 CATL의 계획이 공개되자마자 미국 상·하원 의회와 정부, 주요 언론이 “IRA 무력화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내놨다. 미국 상원의 거물 마르코 루비오(공화) 의원은 이 발표 4일 뒤인 2월 17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제니퍼 그랜홀름 에너지부 장관,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 핵심 실세들에게 “IRA를 우회한 중국 자금 투입을 용인할 수 없다”는 강경 여론을 조성하며 “CATL의 이차전지 공장 건설 계약을 재검토해 달라”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이후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와 역시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가 나서 포드와 CATL 간 계약과 합작 공장 설립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직접 나서 포드를 압박한 것이다. 결국 9월 25일 포드는 ‘CATL과 함께 만들기로 했던 미시간주 합작 공장 건설 중단’을 발표했다. 합작·제휴를 통해 IRA의 틈을 비집고 미국 시장 우회 진출을 꿈꾸던 중국 이차전지 기업의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과 대규모 합작과 자본 유치, 기술 제휴에 나서고 있는 한국 이차전지 산업계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한·중 이차전지 합작사의 미국 FEOC 지정 가능성은?
IRA를 통한 규제 가능성과 별도로 자칫 한·중 이차전지 기업의 합작사·제휴사가 미국의 ‘FEOC(해외우려단체·Foreign Entity of Concern)’로 지목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FEOC란 미국 기업과 단체, 산업계가 거래나 제휴 등의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외국 정부, 기업, 단체를 선별·지정하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 산업과 인프라 산업에서는 FEOC 규정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월 공개된 이차전지 관련 IRA 세부지침은 ‘FEOC로 지정된 국가나 단체로부터 유입된 광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고, 세액 공제 혜택도 주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 기업과 이차전지 기업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차전지 산업과 관련해 FEOC 지정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거래불가 기업 규정 등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 정부와 중국 이차전지 기업, 관련 기관이 향후 FEOC로 지목될 가능성은? 미국의 인프라법은 도로, 철도, 항공은 물론 인터넷·통신과 전력망까지 관할하며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정부와 이들이 소유·통제 등 관여하는 기업들을 FEOC로 정의하고 있다.
흔히 칩스나 반도체지원법으로 불리는 미국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중국 정부가 직접·간접 보유한 지분이 25%를 넘거나, 중국 국적 주주의 지분(의결권)이 25%라면 이 기업(단체)의 실제 소재지와 영업지역, 최대 주주 국적 등과 상관없이 중국 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조건에 해당되면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해외에서조차 미국 반도체·IT 기업들과의 거래 및 제휴, 투자가 막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법과 지침이 만들어지기 이전 이미 중국 반도체 공장 등 생산 설비를 운영하는 기업들의 경우, 기업 성장에 필요한 증산 등 반도체 생산량까지 제한받게 된다.
투자 받으면서도…LG화학 "여차하면 지분 회수하겠다"
취재에 응한 한 외국계 투자사 관계자는 “미국이 IRA와 관련 이차전지 분야 FEOC 세부 가이드라인을 정하는데 있어 현재 미국 내 여론과 관례 상 인프라법이나 칩스를 참고하고나, 유사한 수준에 맞출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특정 사안에 대해 일부 예외나 완화 내용이 포함될 수 있겠지만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이해관계를 이유로 유사한 법률 규정보다 느슨한 규정을 내놓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기업들과 이차전지 관련 합작사 설립·제휴에 나선 한국 기업들 역시 이런 리스크를 잘 알고 있다.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해 한국 내 전구체와 양극재 공장을 운영하겠다는 LG화학은 이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합작사의 화유코발트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LG화학은 22일 중국 화유그룹과 양극재 공급망에 대한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LG화학은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합작사의 화유코발트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LG화학
LG화학뿐 아니라 중국 기업과 합작 관계에 있거나, 추진 중인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런 대응 역시 리스크를 온전히 털어 내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크다. 중국 합작사와 지분관계를 청산한다 해도 전구체 원재료의 안정적 수급과 생산 공장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결국 합작 파트너와 기술 제휴 관계는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이것은 이 포드와 CATL가 IRA를 회피하기 위해 시도했던 합작 형태였다. 결과는 지난 9월 25일 합작 중단을 선언하며 실패한 모델로 확인됐다.
반도체와 다르다지만…미국이 마음 먹으면 시간 문제
상황을 낙관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차전지 산업과 전기차 산업에서 이에 들어가는 광물 및 1차 가공 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압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이차전지와 전기차 생태계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경우 자칫 미국 전기차 산업과 기업들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이것도 미국이 마음먹으면 시간문제 같다.
이차전지 제조에 있어 중국산 광물 및 1차 가공 소재의 의존도 낮아지거나 공급망이 다변화되면, 특히 대체재가 등장할 경우 결국 어떤 형태로든 중국 이차전지 기업에 대한 규제와 압박이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중국 이차전지 기업만이 아니라 중국 이차전지 기업이 지분을 투자하거나 합작한 기업, 기술 제휴 관계에 있는 기업들까지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1~2년 사이 한국 이차전지 기업들은 중국 커넥션으로 해도 부인하기 힘들만큼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과 수조 원 규모의 합작사 설립과 생산 공장 공동 운영에 적극적이다. 자칫 한국 이차전지 산업계와 관련 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몰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현명한 리스크 관리와 촘촘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쓴이 조동진은
18년 차 기자. 사회 현안에 대한 이슈와 함께, 경제와 금융, 그리고 자본 시장과 기업들의 지배구조, 자금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하고 써왔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자, 예컨대 기업·정부·정치·주주 소비자 등이 얽혀 서로 부딪치는 난수표 같은 자본의 흐름을 풀어헤치는 일에서 일의 재미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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