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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 쉼터 스크랩 한국의 명문가문 - 11편 방응모家
켐트레일콘트레일 추천 10 조회 2,502 14.01.13 01:0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자, 날씨도 좋으니 한국의 명문가문(?)에 대해 또 논해보자.
 
요 며칠 머리가 아팠다. 사실 이 작업은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수구 떼들이
혈연과 혼맥으로 얽키고 설켜 있는 징그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정리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특히 하루 종일 듣기도 싫은 이름들이 머리 속에 뱅뱅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짜증난다.
 
어쨌든 고구마줄기같은 수구 떼 지도를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오늘은 그 11편, 조선일보 방응모 집안이다.
 
민주개혁세력 사이에서 이 집안의 방응모, 방일영, 방우영, 방상훈과 그들이 운영하는
조선일보는 너무나도 악명이 높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조선일보의 100대 죄악이라는 것을 정리해 놓은 사람들조차 있었다.
 
그 걸작을 한번 살펴보면 조선일보의 죄악은 크게 10가지로 분류가 된다.
 
우선 민족의 정기를 짓밟은 친일행각이 조선일보의 10대 죄목 가운데 하나다.
윤봉길의사를 범인이라고 지칭하고 일본군을 아군, 황군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스스로를 민족 정론지라고 칭하고 있다.
 
두번째 죄악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독재정권 찬양이다.
전두환 신군부와 결탁하여 급속하게 성장한 조선일보는 지금도 전사적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찬양에 열을 올린다.
 
세번째 죄악은 최대부수의 신문권력을 악용하여 민주화인사를 탄압하고
얼토당토한 사상검증을 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김정남, 한완상, 최장집 등을 황당한 빨갱이 여론몰이로 낙마시켰다.
 
네번째 죄악은 국가안보를 상품으로 팔아먹는 반민족적 행태를 서슴치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위협, 공포감 조장, 적대감, 긴장감을 유발시켜 여기에 편승해 신문장사를 한다.
 
다섯번째 죄악은 악랄한 지역감정 조장이다. 특히 호남인에 대한 차별이 극단적이다.
그래서 민주개혁세력은 조선일보를 반호남의 소굴이자 영남패권주의의 본산이라고 본다.
 
여섯번째 죄악은 반통일적인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상식이하의 딴지걸기.
 
일곱번째 죄악은 잦은 오보와 상습적인 곡필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어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86년 김일성 사망설이 대표적이다. 물론 김일성 사망설 그 자체보다는 타이밍이 문제다.
정권이 존립의 위기에 있을 때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교묘한 공작을
조선일보는 밥먹듯이 해 왔다. 금강산댐도 마찬가지... 서울 불바다 뻥튀기 보도도 마찬가지... 
 
여덟번째 죄악은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왜곡보도와 IMF 국가부도를 불러들인 책임이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왜곡보도가 대표적이다.
IMF사태 '이틀'전까지 '외환위기 없다'며 되풀이 호언장담하면서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라는 것이 한가하게 사상논쟁이나 했다.
 
아홉번째 죄악은 제왕적인 족벌세습경영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공공재인 신문을 사유물로 전락시키면서 편집권을 강력하게 행사한다.
 
열번째 죄악은 '나는 너를 비판해도 너는 나를 비판할 수 없다'는 오만과 독선으로
한국 사회의 최후의 성역으로 언론독재체제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런 특권적 발상이 오만방자한 권력을 행사하고 불법을 자행하게 하는 근원적 요인이다.
 
이상 조선일보의 큼직큼직한 죄악을 열가지로 살펴보았다.
이 이외에도 그들의 무책임한 반민주적, 반민족적 행태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노무현대통령은 조선일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 조선일보는 이미 신문도 아니고, 언론도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수구특권세력의 선봉이며,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의 기관지에 불과합니다.
(2001,6,28 민주당보와의 인터뷰)
 
## 나는 일찍이 '조선일보는 이회창의 기관지'임을 선언한 바 있다.
이회창총재와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은 아무런 근거없는 내용도 여과없이 대서특필하고
사설,칼럼으로 맞장구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설, 칼럼으로 공개훈수를 하기도 한다.
(2001, 9, 11 노무현홈페이지 무현생각에서)
 
## 조선일보와 싸우는 것은 민주화운동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상품성과 신뢰도를 높여주는 인터뷰는 할 수 없습니다.
(2001, 11,19 노무현홈페이지 무현생각에서)
 
## 조선일보의 부당한 공격의 피해를 본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조선일보의 편파와 왜곡보도에 짓밟혀 고통받는 수많은 분들에 대한
인간적 도리 차원에서도 조선일보의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습니다.
(2001,11,19 노무현홈페이지 무현생각에서)
 
## 조선일보가 극심한 왜곡,편파보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서
나의 지지자들과 함께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2001,11,19 노무현홈페이지 무현생각에서)
 
## 더이상 불공정신문 조선일보에게 아첨할 이유가 없습니다.
조선일보와 싸워서 이겨야 민주당이 정권재창출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언론은 개혁되어야 하고, 4분의 3인 영향력을 절반이하로 줄여 비주류의 힘으로 전락시켜야 합니다.
(2001,11,26 광주무등산관광호텔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 조선일보는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 신문입니다.
친일경력과 군사독재정권과 결탁했던 과거가 있는 신문입니다.
기득권층의 편에 서 있는 신문이고,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적대적인 신문입니다.
그들이 왜곡보도를 하는 한 국민들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신문과 어떻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깎아내려야 합니다.
(2001,12,3 오마이뉴스 인터뷰)
 
## 조선일보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정권 하나 세워보고 싶습니다.
(2002,1,31 전국대학신문 기자 간담회에서)
 
## 비열한 조선일보의 반격보다는 우리 사회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원만하고 노련한 것으로 생각하는 허위의식이 더 고민됩니다.
(2002, 1, 31  전국대학신문 기자간담회에서)
 
## 조선일보는 권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 앞에서 슬금슬금 피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기 조금 철없는 것처럼 싸우는 정치인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02, 2, 20 오마이뉴스 인터뷰)
 
## 소유지분제한 소신을 포기하라는
족벌언론의 압력에 굽히지않아 이렇게 부당한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언론에게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십시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요!!!!
( 2002, 4, 6 민주당 대통령후보 인천지역 경선 연설에서)
 
## 저는 아내에게 불만이 없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딱 하나 있습니다.
조선일보 보지 말라고 해도 자꾸 조선일보를 봅니다. 그것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계속 봅니다.
(2002년 4월 7일 민주당 포항경선 연설에서)
 
## 조선일보와 인터뷰는 앞으로도 안합니다.
조선일보는 분명히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언론의 정당한 권리로서 비판하는 건 얼마든지 받아주겠다 이겁니다.
그러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거짓말하면 안되지요.. 공정성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2002,4,30 오마이뉴스 창간1 주년 기념인터뷰)
 
## 분명하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조선일보 사장님 회장님처럼 그렇게 고상한 말만 쓰고 살지 않는지 모르지만
그 분들처럼 천황폐하를 모시고 일제에 아부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결탁해서 알랑거리고 특혜 받아가지고
뒷돈챙겨서 부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회주의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2002, 6, 30 경기도 시흥시 지방선거 지원연설에서)
 
## 개혁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바로 조선일보이며,
조선일보가 가장 굳게 손잡고 있는 정당이 바로 한나라당입니다.
(2002, 9, 28  오마이뉴스 인터뷰)
 
## 조선일보와 공개토론을 제안합니다. 국민들앞에서 공개토론 한번 해봅시다. 생방송으로 합시다.
언론이 자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악의적으로 특정인을 겨냥해서
그 사람을 해치는 그런 악의적인 기사를 마구 왜곡하고 조작해서 쓰는 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1인 지배체제입니다. 생사여탈권을 회장과 사장이 가지고 있습니다.
(2002, 9,28 오마이뉴스 인터뷰)
 
##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각을 세우고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을
마땅치 않게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신문이) 너무 악의적이고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신문에 협력해서 상품성을 높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부당한 구조와 협력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건 누구건 부당한 구조와 협력하지 않아야 합니다.
(2002, 11, 1  미디어 비평과의 인터뷰에서)
 
## 당신, 무슨 언론에게 고통을 받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선거전날요, 정몽준후보가 노무현과 공조를 파기했다는 그 신문을 무가지로
어마어마하게 해 가지고 온 천지에 뿌리고.. 조선일보 그랬지 않습니까??
이거 진실입니다. 진실이구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그 다음에 제가 당선되고 난 이후에 흔히들 밀월을 얘기하는데,
대통령 당선된 그날부터 저한테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합리적인 비판만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 말이 나왔으니까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그냥 원칙대로만 가겠습니다.
(2003, 5, 1  MBC 백분토론에서 중앙일보 김영희의 질문을 받고)
 
어쨌든 근래에는 대통령께서 그냥 꾹 참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조선일보의 불공정성과 편파성이 시정된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못하는 말을 이제 유시민의원이 앞장서서 한다.
 
'<조선일보>나 <문화일보> 같은 경우는 정상적인 언론기관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집단입니다.
대한민국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지배하고 싶어하는 정치적 욕구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언론행위라는 것을 빙자해서 사실상의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죠.
내용적으로는 정치적인 행위를 하면서 그것에 관해 비판하면
'언론에 대해서 왜 탓을 하고 왜 탄압하려고 하느냐,
언론은 본디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인데, 왜 우리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느냐'고 나옵니다.
이것은 언론의 행위가 아니죠.' 
- 2005, 8, 31 오마이뉴스 인터뷰
 
이쯤해두고 우선 신문재벌 방씨일가의 중시조로 일컬어지는 계초 방응모에 대해 알아보자.
 
본래 방응모는 머리가 좋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거의 맨손으로 광산사업을 시작했다.
운좋게 금맥을 발견, 떼돈을 벌었다.
1932년에 방응모가 거머쥔 돈이 135만원. 지금 돈으로 치면 1350억원이다.
 
1350억원을 거머쥔 방응모는 광산사업을 그만두고,
20만원, 지금 돈 200억원을 투자하여 조선일보를 인수한다.
 
또 12만원, 지금 돈 120억원을 투자하여
태평로 일대에 1400평의 땅을 사서 당시 초고층 빌딩인 4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방응모는 사업가다운 면모가 있었나보다. 그 후 50만원, 지금 돈 500억원을 투입하여
새로운 윤전기를 도입하는 등 시설투자를 했다.
 
또 50만원을 투입하여 경기도 수원에 97만평 규모의 간척사업을 전개하였다.
 
놀라운 것은 함경남도 일대에서 무려 3천 2백만평 규모의 조림사업을 진행하였다는 거다.
장차 신문용지를 확보하려는 계산이었다고 한다. 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마케팅기법을 도입하고, 중량급의 인사들을 주필로 영입하고,
조선일보 이외에 월간지, 여성지, 소년지를 또 창간하였다.
 
물론 친일행각도 보통 수준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일보라는 신문 자체가 친일실업인 단체인 대정친목회 명의로 발행허가가 나고,
친일악덕지주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하고, 친일상공인 조진태를 초대사장으로 창간되었으며(1920년),  
이후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 송병준이 조선일보를 경영했던 수치스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 신문이다.
이 것을 방응모가 사들여 운영한 것이다.

예종석과 조진태는 일본에 빌붙어 이권을 챙기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적용하여 고혈을 짜낸 악질적인 인간들이다.
또한 송병준이 누구냐?  
이완용과 더불어 이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진회의 중심멤버요 최고의 매국노다.
 
이런 조선일보를 인수하여 방응모 또한 부끄러운 친일행각에 나서게 된다.
 
1934년 당시 잡지 '삼천리'에 게재된 '신문사 사장의 하루 - 방응모씨'라는 글에는 
'저녁이면 사교관계로 명월관, 식도원으로 돌아다니면서 재벌과 대관 집을 찾기도 하고..
가와시마 군사령관의 저녁초대를 받고 갔다가 돌아와서는 고사포도 기부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운영하는 월간지에 발행인 방응모의 이름으로 스스로 기고한 글을 봐도
친일파 방응모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대일본제국 2천 6백년의 빛나는 역사에 청렴강직한 대화정신과 팔굉일우의 이상으로써 닦아놓은 성업은 일계직통의 천황어능위를 봉하여 우리 국민은 이 성은 속에 만폭적 희열을 느끼고 있다....  천황, 황후 양 폐하의 성수무강 하옵심을 삼가 비옵고....'
 
방응모가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일종의 장삿꾼이다.
언론사를 경영하면서도 장삿꾼적인 기질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기적인 변화에 편승하였던 것이다.
 
반도 최고 갑부에 해당되는 방응모가 먹고 살기 위한 친일을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친일행위자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인간적으로 좀 가엾기는 하다. 방응모가 해방이 된 이후 조선일보를 속간하면서 쓴 속간사를 보면
'우리는 입을 가졌으나 생벙어리 행세를 하여야 하였으며 할 말은 많았으나 호소할 곳이 없었다. 우리는 죽으라면 말없이 죽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안될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써 있다.
 
물론 변명과는 달리 방응모의 친일은 자기방어의 한계를 넘는 행위였다.
부패와 타락이 그 본질인 사회에서 깨끗한 사람은 좀 거만하게 굴어도 된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도 있지만
어쨌든 방응모가 겪었던 시대적 상황에 내가 처해보지 않았으니
그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서 왈가왈부할 입장은 못된다.
그러나 설령 그런 실수를 했더라도 방응모 자신과 그 일가 그리고 조선일보가
보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들이 보여줬던 비겁함과 한계를 보다 확실하게 드러내고
그 잘못된 과거를 부끄러워하면서 철저하게 반성적 고민을 하는 모습을 조선일보가 보여주었더라면
지금처럼 시민들에게 조롱과 불신을 당하는 조선일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조선일보가 그 잘못된 역사를 어떻게든 변명하고, 미화하고, 굴절시키고, 은폐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방응모의 친일행각보다도 더한 퇴영적인 결과를 유발하기에 더욱 그렇다.
 
방응모의 친일행각은 6.25가 발발하여 북한 인민군들에게 납북되는 불행한 결과로 끝을 맺었다.
 
방응모는 <압록강변의 겨울-납북요인들의 삶과 통일의 한>이라는 책에 의하면
납북 도중 이회창의 고향으로 유명한 황해도 서흥군 부근에서 미군의 공습을 받고 사망하였다.
미군 전투기 4대가 날아들어 닥치는대로 폭탄을 떨어뜨리고 기총사격을 하는 바람에
노근리의 유족처럼 민간인인 방응모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조선일보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1991년에 북한 정무원 부부장까지 지낸 신경완이라는 사람의 구술을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자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을 지낸 이태호씨가 쓴 매우 신뢰성이 높고,
자료가치가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책인데,
조선일보는 사주가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
 
역사는 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
한홍구교수에 의하면 조선일보가 펴낸 방응모의 전기도 납북장면에서 그냥 끝나고 만다고 한다. 
한홍구교수는 그 이유를 궁금해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납북해 간 인민군만 죽일 놈이고 정작 할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전쟁상황에서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일까?'  
 
하여튼 방응모의 납북 이후 방일영의 시대가 도래한다.   
 
방일영은 방응모의 손자다. 그 사이에는 방재윤이 있다.
방재윤은 방응모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사실은 방응모의 친형 방응곤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본래 방일영의 아버지 방재윤은 방응모의 조카다.
그러나 방응모가 아들이 없어서 조카를 양아들로 삼은 것이다.
 
방응모가 양자로 들인 방재윤이 방일영, 방우영 형제를 낳고 1940년에 사망하였다.
그런데 1943년, 골 때리게 방응모가 환갑의 나이에 아들을 낳았다
생물학적 순리를 거역하면 불가피하게 심각한 투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방응모가 환갑에 아들을 낳았을 때
이미 손자 방일영은 스무살이 되어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중앙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또 그 이후에는 조선일보에 근무하게 되었다.
방응모가 낳은 아들 방재선이 일곱살이 되던 시점에서 방응모가 납북되었다.
당시 방재선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방일영, 방우영 형제가 할아버지의 조선일보를 이어받아 운영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이 조선일보의 경영권 분쟁을 촉발한 것이다.
글쎄, 과연 누가 옳은 것인지.. 쉽게 판단이 안 선다.
그냥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조선일보를 방씨 일가 모두가 포기하고 시민들에게 돌려주었으면 싶다.^^
 
방응모에 이어 조선일보를 승계한 방일영은 호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술도 꽤 잘 마시는 모양이다.
방일영의 회고록을 보면 3748평의 흑석동 대저택에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 자주 놀러 왔다고 한다.
거기서 기생들을 불러놓고 질펀하게 놀았나보다.
그래서 육영수여사가 방일영을 무지 싫어했다고 한다. 자기 남편을 망치는 인간으로 본 것이다.  
 
왜 박정희는 대통령 체면을 벗어던지고 방일영의 집에 가서 신나게 놀았을까?
당시 박정희를 따라다니던 전 MBC 사장 황용주의 증언에 의하면
오직 '천하의 주도 방일영' 때문이었다고 한다.
방일영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주당이었다는 소리다.
 
카지노 황제 전낙원은 <태평로 1가>에 쓴 ‘지극하고 따스하고 멋진 방 형님’이란 제목의 헌사에서
방일영 사장을 가리켜 “권번출신 기생들의 머리를 제일 많이 얹어준 분”이라고 칭송을 했다.
'머리를 얹어준다'는 의미는 다들 아실 것이다.
 
방일영의 동생 방우영 또한 술자리에서 박정희와 대면하게 된다.
 
어쨌든 간에 방일영은 박정희를 비롯해 서정귀, 이후락 등과도 상당히 어울리면서 신나게 놀았던 모양이다.
 
방우영의 회고록을 보면 이렇게 나온다.
“내가 처음 박정희 대통령을 본 것은 그가 최고회의 의장 때
이후락 공보실장과 서정귀 씨(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동창) 등을 데리고
방일영사장과 함께한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박 의장이 한 여배우의 손을 붙잡고 밴드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는 광란의 도가니가 펼쳐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술로써 맺어진 의리가 가장 끈끈하다.
 
명문가문 이후락 편에서 언급했듯이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극동건설의 김용산, 대농의 박용학, 한국화약의 김종희, 호남정유의 서정귀 등은
이런 배경으로 이후락 5인방으로 불려졌고, 물론 그 주변에는 방일영이 있었다.
 
여기에 방일영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SK 창업자 최종건이 빠지면 안된다.
수원지방의 별 볼 일 없는 직물회사였던 선경이 급성장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종건은 죽는 순간까지 조선일보 사외이사였다.
 
방일영은 박정희대통령을 '대통령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의 삼촌인 방재선의 증언이다.
 
“대통령 형님, 한잔 쭈∼욱 드십시오.”
“내가 좀 과한 것 같은데….”
“아니, 제가 대통령 형님 술 실력을 모르는 사람입니까?”
 
이런 대화가 바깥에 까지 들려서
당시 권세가 하늘을 찔렀던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도 사실 박정희가 방일영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 속뜻은 요정정치에 데뷔해보니
항상 엄청난 화술과 주량으로 밤 문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방일영이라는 말이다.
 
박정희는 '이 세상에서 팔자 제일 좋은 사람이 방일영이다.'라면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하여간 술과 여자를 매개로 한 이런 요정정치를 통해서 거대한 이권과 권력이 거래되고,
정치와 언론이 비정상적으로 유착하는 정점에 조선일보 회장 방일영이 있었다.
 
사주가 대통령과 술자리에서 형님, 아우하는 조선일보는
언론사에 대한 사전검열 조치가 포함된 유신쿠데타가 일어나자 서슴없이
“구국의 영단”( 1 2 월 2 8 일자 사설)이라고 보도하며 언론사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런 방일영이 얼마전에 죽었는데 조선일보 사이트에 가봤더니 웃음도 안 나왔다.
무슨 임금님이라도 승하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우초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대나 뭐래나...
우초의 정신을 이어받아 질펀한 광란의 술자리를 열라는 건가?  껄껄
민족언론의 명맥을 유지시키며 조선일보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 언론으로 키워낸 거성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전문으로 올라온 문교부장관을 지낸 권이성이 쓴 방일영 조사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우초 형의 일생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고 따를 수 없는 위대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형의 일생은 민족 언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선두주자로서
이름 있는 언론인과 문화인을 길러낸 일생이고,
사회 각 분야에서 값진 활약을 하고 있는 인재들을 양성한 일생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이 자리를 슬픔을 뛰어넘어 인간 방일영을 재평가하는 장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비록 형의 몸은 갑니다만 방일영 정신·방일영 인간성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
그리고 이 땅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니 계속해서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고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을 밝혀 줘야 하는 의무와 소임을 다하셔야 한다는 부탁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무심코 읽다가 까딱 잘못하면 울지도 모르겠다.   
 
박정희는 방일영이 맡았고, 그 후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자
전두환의 비위를 맞추는 역할은 방일영의 동생 방우영이 맡았다
 
나치정권 선전상이던 괴벨스와 같이
국민 우민화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던 전두환의 심복 허문도를 도와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참여하여 희대의 언론통제 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살인마 전두환은 조선일보에 의해 민족의 영웅이며, 구국의 지도자로 둔갑하였다.
 
광주학살이 끝난후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떠들었다.
'국군이 절대다수 광주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리영희선생님의 정리를 끝으로 방씨들의 끝도없는 비리를 대충 끝내겠다. 손가락만 아프다.
 
“(역대정권은) 권력의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고,
그들의 범죄를 ‘반공’으로 정당화하며,
그들의 사리사욕을 ‘애국충정’으로 칭송하는 ‘언론인’들이 필요했다.
광주에서의 양민 대학살을 ‘국가 안보적 합법행위’로 감싸주고,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인사들의 목을 조르는 온갖 야만적 탄압행위를
‘빨갱이 잡기’로 정당화해주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소위 ‘언론사’와 ‘언론인’은 그 요구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
범죄적 권력의 공범자가 된 것이다.
그 대가로 소위 ‘언론사(주)’는 비대화하고 ‘언론인’을 자처하는 기능인들은
직장의 안과 밖에서 화려한 승진과 영달의 사다리를 달려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부정한 정치권력과 타락한 언론권력은 일체화되어갔다.”(리영희, <말> 1996.3)
 
방일영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 방상훈은 조선일보의 대표이사로서 현재 사주다. 숭문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작은 아들 방용훈코리아나호텔 대표이사다.
 
방일영의 장남 방상훈의 부인은 윤순명이다. 윤순명의 아버지가 윤영구다.
그러니까 방상훈의 장인이다. 윤영구의 아버지가 윤영선이다.
윤영선은 그 악명높은 윤치호의 아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방상훈의 부인 윤순명은 그 악명높은 윤치호의 증손녀다.
이런 부분은 조선일보에 전혀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방상훈의 부인 윤순명의 증조부 윤치호의 친일행위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한민국 한복판에 99칸짜리 고택을 지어놓고 명문가문 운운하는 바로 그 집안이다.
윤치호의 사촌형이 중추원 의관을 지낸 친일파 윤치소다.
그 윤치소가 낳은 아들이 바로 윤보선이다.
 
이 윤씨 명문가문은 앞으로 새로운 장에서 주의깊게 살펴보겠다. 아주 골 때리니까 기대하시라.
 
방상훈의 장인 윤영구는 교통부 관광국장, 육운국장을 거쳐 메트로 항공사 회장을 지냈다.
그의 동생 윤승구는 윤보선 비서를 지낸뒤 개인사업을 하다가
요즘은 충남 아산의 윤치호 고택을 지키고 있다.
 
윤영구의 작은아버지 윤광선은 6.25 때 북한으로 끌려갔다. 물론 아버지 윤치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이 윤광선의 딸 하나가 시집을 잘 갔다. 
서울대 약대 학장, 대한 약학회 회장을 지낸 채동규가 윤광선의 사위다. 
 
채동규는 아들들을 많이 두었는데 거의 의사, 교수로 키웠다.
절반은 미국물을 먹고 있고, 절반은 한국에 있다.
한국에 있는 채동규의 가지들 가운데 채영문 연대 보건대 교수, 채기준 이대 전산과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연세대 이사장으로 있는 일민 방우영은 1남 3녀를 두고 있다.
 
아들 방성훈이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 중이다.
방우영의 아들 방성훈의 장인은 영풍그룹의 주력사인 고려아연의 부회장 최창근이다.
 
나는 최창근을 전문경영인으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뒷조사를 해보니까 신기하게도 영풍그룹의 창업자인 장병희와 고향이 똑같다.
똑같이 황해도 봉산 출신이다. 뭐가 있는게 분명하다.
역시 개천에서 용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껄껄.
 
각설하고 이 부분에서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왜 방우영이 연세대학교 이사장인가? 
돈 주고 산 것인가?  무슨 학문적 업적을 남겼나?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연세대학교 이사장이 된 건가?  
거참 희한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의 사연은 연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본부의 자료를 참조하시길.. 
 
어쨌든 이 방우영의 딸 방혜성태평양 창업자 서성환의 큰아들 서영배와 결혼하였다.
 
방우영의 딸이 시집간 이 서씨집안의 혼맥이 화려하다.
 
서성환의 큰딸 서송숙서강대학교 상경대학장 박내희와 결혼하였다.
그렇다면 소위 서강학파의 정점에 있는 건가?
 
서성환의 둘째 딸 서혜숙김의광과 결혼하였다. 김의광은 현재 태평양 계열사의 회장이다.
김의광의 아버지는 만주군 대위 출신으로서
국방부 차관, 상공부장관, 내무부장관, 교통부장관, 한전 사장을 지낸 김일환이다.
 
김일환은 대한민국에서 군생활을 얼마나 했다고 재향군인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군으로 있다가 한국에서 군생활 5년 남짓 하고는,
재향군인회에서 영향력 행사하는 것은 50년 세월이다.
껄껄.  김일환은 경흥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서성환의 세째 딸 서은숙고려대 의대 교수 최상룡과 결혼하였다.
최상룡의 아버지는 박정희정권 하에서 국회의원, 국회 건설위원장을 지낸 최두고다.
부산 동성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서성환의 네째 딸 서미숙부도난 우성그룹 부회장 최승진과 결혼하였다.
서미숙은 리베라 호텔의 고문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비록 회사가 망했지만 굶지는 않을 것이다. 나보다는 잘 살겠지.
 
서성환의 둘째 아들 서경배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의 딸 신윤경과 결혼하였다.
이로서 조선일보는 막강한 롯데패밀리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역시 조선일보 혼맥의 백미는
방상훈의 장남 방준오와 LG 공동 창업자 허정구의 손녀 허유정이 결혼한 것이다.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이로써 조선일보는 김동조가문과 결합되면서
방준오는 정몽준의 처조카사위가 된다.
 
이 GS는 LG와 연결이 되어있고, LG는 한진과 연결이 되고, 한진은 롯데와 연결이 되고,
롯데는 농심과 연결이 되고, 농심은 태평양과, 태평양은 조선일보와 다시 연결이 된다.
 
이 부분은 훗날 한국의 명문가문 조중훈가, 또는 신격호가를 논할 때 세밀하게 따져보자.
 
굿바이..
 
☆ 예니아빠님이그려주신 방응모 집안 혼맥도 ☆
 





대한민국 파워 랭킹... 전두환 > 방우영 > 이명박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우영의 출판기념회 때 연출된 그림입니다.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박지원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에게 '90도 인사'

http://www.youtube.com/watch?v=G0i7Y9qEtTg


선출된 5년 임기의 '낮의 대통령'보다
선출되지 않은 무한임기의 '밤의 대통령'의 파워가 더 세다는 거,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분명히 드러나죠?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언론사주 앞에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방우영은 마치 부하를 맞이하듯 가볍게 목례만 하고 있구요.
<조선>이 MB의 약점을 훤히 꿰고 있는터라 더욱 그러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 매국행위 100가지


1. 민족의 정기를 짓밟은 친일행각

1) 총독부 언론정책의 일환으로 창간된 원죄
2) 항일투쟁 독립운동가들을 '범인' '주범' '비적'으로 폄하
3) 일제 우두머리에게 '천황폐하' 등의 극존칭 사용
4) 총독부의 '보도금지' 사항을 철저히 준수
5) 일본군을 '아군' '황군'으로 보도
6) 매일같이 '창씨 개명' 부추기는 기사로 도배질
7) 일제의 조선민족 말살정책 - 신사참배, 한글말살, 일장기 게양 등- 찬양
8) 조선일보 폐간 이후엔 자매지 '조광'을 통해 친일, 아부행위 연장
9) 우리 민족의 상징 '백의(흰옷)' 착용 금지 주장
10)'일제의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정론지'라 사기치는 파렴치한 몰상식


2.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독재정권 찬양

11)전두환 정권과의 결탁 - 권언유착- 으로 '급성장', 5공의 자식
12)쿠데타의 주역 전두환을 '인간 전두환'으로 극구 미화, 영웅화
13)5.18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악랄한 왜곡 보도
14)"우리는 (광주시민을 학살한)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사설 기재
15)전사적으로 추진해온 '이승만 미화' 작업
16)전사적으로 추진해온 '박정희 미화' 작업
17)박정희 10월 유신을 '구국의 영단'으로 아첨
18)KAL기 폭파 사건 부풀리기로 노태우 당선 운동에 적극적 가담
19)'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위헌론 옹호
20)'군부독재의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참회할 줄을 모르는 인간 그이하의 인간


3. 민주화 인사 탄압과 사상 검증

21)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언어 폭력과 빨갱이 사냥
22)대통령이자 민주투사였던 김대중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인권유린과 왜곡보도
23)김정남, 한완상, 최장집에 대한 진보인사 사상검증, 직위박탈
24)'남조선 명함 파문' 일으켜 이석현 의원 제명시켜버림
25)진보인사 김태동 때리기, 악의적 기사 남발
26)악질적 반동주의의 선봉 '한국논단' 강력한 후원
27)주사파 척결 캠패인 활동과 매카시즘 조장, 공안정국 조성에 앞장섬
28)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을 좌파라 규정하며 이념논쟁으로 몰아붙임
29)북조선을 경멸하면서도 자신은 정작 '조선(일보)'이라 칭하는 이중성
30)노동자들의 집회 및 투쟁에 대한 악랄한 보도


4. 국가 안보를 '상품'으로 팔아먹는 반민족적 행태

31)전쟁위협, 공포,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여기에 편승해 장사하는 조선일보
32)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는 조선일보가 의도적으로 만든 작문
33)미국 인디애나 대학 케네즈 웰즈 교수의 원고 고의로 조작-북한 부정보도-
34)박명규, 강정구 교수의 인터뷰 고의로 조작-한국전쟁 왜곡 보도-
35)황석영, 조정래, 리영희 교수 등 빨갱이 사냥-황석영 진술서 조작 보도-
36)'구국전위 간첩단사건' 대대적 '뻥튀기'로 되려 안기부가 축소해달라 읍소
37)노래패 '희망새'가 김일성을 찬양했다고 왜곡 보도
38)참다운 언론지 '기자협회보'를 가리켜 '김정일 편'이냐고 윽박지름
39)96년 9월 동해안 대포무장, 테러 등 왜곡 뻥튀기 보도 -대북강경정책유도-
40)이외에 결정적으로 수차례의 총선과 대선시 북한의 도발행위 최대한 악용


5. 지역감정 조장과 호남차별

41)조선일보 내부의 인사 출신지부터 반호남의 소굴 -전라도놈은 안키운다?-
42)영남집회 등을 통해 지역감정조장하는 한나라당의 행위 무비판 및 옹호
43)영남민심에 편승해 무조건적 반김대중, 반전라도 정서 유발, 기사화
44)김대중 정부의 인사 왜곡보도, 호남인맥 유달리 강조 설파
45)한나라당 인사 허위백서는 곧이곧대로 크게 보도
46)87,92.97 대선시 호남 한풀이론 적극 악용함
47)박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이어져왔던 영남패권주의 대해선 무비판
48)71년 대선시 지역감정 조장 이후 지역분열주의 30년 정책화
49)지역감정 문제를 되려 호남의 문제로 강조해온 어처구니없는 악랄함
50)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시 입에 개거품을 물고 영남패권주의 보호


6.대북화해, 평화정책에 딴지걸기

51)통일은 북한주석궁에 탱크가 주둔할때 가능하다고 말하는 상식 이하의논조
52)대립과 긴장을 최우선 정책으로 표방, 햇볕정책에 변함없는 딴지걸기
53)사설과 기사, 칼럼에선 반통일정책을 설파하면서도 NK리포트에선 통일에
부응하는 듯한 분위기를 심어주는 야비하고도 간사한 행위를 펼침
54)자신의 다양성만 알지 통일세력의 다양성에 대해선 무참히 짓밟는 독단성
55)종군기자, 전쟁 애호가들을 극진히 우대하는 사내 방침
56)그럴듯한 속도조절론과 남한 경제론을 이유로 남북화해에 찬물을 끼얹음
57)안보불감증을 강조하며 위기의식을 조장, 증폭시켜온 장삿속
58)몽골전사의 투지를 강조하는 코믹한 신문
59)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공무원들의 발언을 수첩에 적어 두고보자고 협박함
60)김대통령 평양방문시 연주된 '독립군가'를 '용진가'라 왜곡,날조한 사기극


7. 세계적 웃음거리, 기사 오보와 곡필 사례

61)금강산댐 왜곡 보도-평화의 댐 성금 모금 및 댐건설 해프닝, 국력 손실-
62)김일성 사망설 특종 오보-86년시 사망 보도, 그러나 김일성은 살아있었음
63)'서울 불바다'뻥튀기 보도-전후맥락 거두절미하고 '불바다'만 강조 위기의
식과 공포감 조성-
64)김일성 사망 조문 논쟁 보도 - 둘도 없는 기회, 빨갱이 사냥-
65)성혜림 망명설 관련 보도 - 한국언론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 오보-
66)박홍 주사파 발언 관련보도-검찰은 안 믿어도 박홍말은 연일 대서특필-
67)황장엽 망명 관련보도-김현철 비리사건을 한방에 잠재워줌-
68)양심수사면 관련보도-이회창이 말하면 인권옹호, 김대중이 말하면 빨갱이-
69)박노해의 조갑제 만남 희망, 왜곡보도
70)농구선수 우지원, 가수 이선희도 빨갱이라 매도함


8. 인권유린 왜곡보도와 IMF에 대한 그들의 책임

71)부천서 성고문 사건 왜곡 보도 -전두환의 충실한 개 역할 표방-
72)전교조 결성 관련 왜곡 보도 -빨갱이 사냥-
73)유서대필 의혹 조장 관련 왜곡보도
74)철도 지하철 파업 관련 왜곡 보도
75)연세대 사건 관련 보도 -경찰에게 강경진압 압박-
76)북한 식량 지원 관련 보도 -그놈들은 죽든지 말든지?-
77)IMF사태 "이틀"전까지 "외환위기 없다" 되풀이 호언장담!
78)국가부도 전야에까지 한가한 '사상 논쟁'이나 부채질
79)IMF재협상론 물고늘어지며, 자신의 위기방조 책임을 김대중에게 떠넘김
80)'윌 스트리트 저널' 기사 도둑질과 엉뚱한 오역 국제적 망신


9. 족벌경영체제, 세습언론의 부도덕성

81)'친일 애비' 잘 둔 탓에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림
82)방응모-방재선-방일영-방우영-방상훈-방성훈-방준오-방정오 등 세습권력화
83)코리아나 호텔, 정동사옥, 흑석동 대저택 등 의혹의 재산문제
84)의정부 호화무덤, 경기도 가평 소재 청평 호화별장, 남양주 부동산 등 의혹
에 가득찬 재산문제
85)조선일보를 방씨일가의 사유물로 전락시키며, "편집권"을 강력하게 행사함
86)방0영 요트사건 및 카지노 소유 문제(중앙일보 작성 내부 문건 입수됨)
87)남에겐 도덕과 투명을 자신에겐 불투명과 비공개를 원칙에 두고 경영함
88)왕자의 난, 용비어천가, 장자계승 등 복잡야릇한 족벌의 역학구조
89)89년,열다섯살 손자의 재산세 내역에 3천2백여 평의 저택 소유가 밝혀짐
90)이와같은 족벌의 부도덕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신문에선 '도덕군자'


10. 언론 독재 체제를 유지해온 한국 최후의 성역

91)'나는 비판해도 너는 비판할 수 없다'는 오만과 독선 -보복을 아주 잘함-
92)방송을 손아귀에 넣고 주물럭거리는 대단한 언론권력
93)KBS의 조선일보 해부 프로그램 끝내 불방시켜버림
94)조선일보 비판자들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버림
95)언론의 사세를 악용해 '이권'을 챙겨왔다는 소문 파다하게 이어져왔음
96)몇차례의 대선시 대통령 만들기까지 시도할 만큼 오만방자한 권력을 휘두름
97)동인문학상, 언론학자 후원금 조달 등을 통해 권력장악을 끊임없이 강행
98)구독에 대한 끈질긴 마케팅,물량공세 등을 통해 구독자 유지 및 확대
-가장 끊기 힘든 신문, 국민들에게 신문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99)자신의 구미에 맞게끔 국민여론을 조작, 홍보, 유도해왔음
100) 80년 역사 동안 한번도 심판 받지 않은 한국 최고의 성역으로 군림






조선일보 방응모 방일영 방우영 방상훈가 가계도

방응모 :

평북 정주 출신의 광산업자로 1933년 조만식을 내세워 조선일보 경영권을 인수했다. 일제 말기 조선 청년을 침략전쟁에 동원시키고 일왕을 천황이라 표현하는 등 친일매국의 길을 걸어왔다. 이후 한국 전쟁 당시 실종되었는데, 이것이 재산권을 둘러싼 친자(방재선)-양자(고 방재윤)의 아들(방일영, 방우영) 간의 투쟁, 이른바 '왕자의 난'(방씨 가문판)의 도화선이 되었다.

방재선(현 55세) :

방응모의 장남이다. "부친이 실종되던 당시 너무 어리다 보니 조카인 방일영, 방우영 형제에게 조선일보 재산권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재산권분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계초 방응모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방일영(현 77세) :

방응모의 양자 방재윤의 장남이다. 조선일보의 실질적 소유자로서 사장, 회장, 고문을 역임했다. 그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 방일영 문화재단이 조선일보 주식의 15%를 보유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동생 방우영과 더불어 '밤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방우영(현 72세) :

현 조선일보의 회장으로서 조선일보 주식의 19.84%를 소유하고 있다. 그의 처 이선영은 디지털 조선일보 주식의 15%를 소유하고 있다. 92년과 94년 외아들 방성훈에게 조선일보 주식을 증여하며 55억 원의 증여세를 납부했다.(12억 원은 미납)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 정재문 전 신한국당 의원과 사돈지간이다.

방상훈(현 52세) :

현 조선일보 사장이다. 방일영 전 회장의 장남으로서 명실상부한 조선일보의 대주주이자 후계자로 성장해 왔다. 조선일보의 30.03%, 디지털 조선일보의 20%, 코리아나 호텔의 40% 등 제일 많은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처 윤순명도 디지털 조선일보 주식의 15%를 소유하고 있다.

방용훈(현 48세) :

현 조선일보 이사 겸 코리아나호텔 사장이다. 방일영 전 회장의 차남으로 조선일보의10.57%, 디지털조선일보의 10%, 코리아나호텔의 30% 등 다량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청평과 남양주 등에 코리아나호텔 명의로 가등기한 별장과 부동산을 이종사촌 대리인을 소유주로 내세워 소유하고 있다.

방성훈(현 27세) :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의 장남으로 현 조선일보 이사 겸 국제부 기자이다. 조선일보 주식의 11%를 소유한 '20대 이사 기자'이다. 23세 무렵에 '경영 수업'을 위해 시험을 치르지 않고 기자로 '특채'됐다. 19세 당시부터 2년에 걸쳐 부친 방우영으로부터 조선일보 주식 19만 8천 주를 증여 받았다.

방준오(현 25세)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장남이다. 미국에 유학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14살 때부터 이미 2천 6백 여평의 토지를 소유한 '소년 땅부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89년에는 약관 15세의 나이로 서울시가 발표한 토지분 재산세 고액납세자 명단 6위에 오른 영광(?)을 누렸다. 

방정오(현 21세)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이다. 미국에 유학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일보 계열사인 디지털 조선일보의 최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조선일보 주식의 30%를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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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1.13 01:21

    첫댓글 세월이 모든걸 정리합니다,
    민초들은 믿는건 시간뿐입니다,^^

  • 14.01.14 13:45

    추천 눌렀는데 조회수가 그대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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