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책속의죽비소리 - (1057) 행복이 머무는 자리 - ② 고난을 견딘 대가/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김형석

[화룡이(이창모)]

행복이 머무는 자리

네이버블로그/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_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② 고난을 견딘 대가

인생에는 고통과 슬픔이 있는 반면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그러나 이 둘 중 어느 편이 더 많은가. 옛날부터 많은 사람이 기쁨은 일시적이나 고난은 유구하며, 한때의 만족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고통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환희의 극치와 고통의 절정을 비교해보면 고통의 짐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거운 것이 아니겠는가. 심한 고통이 인생의 모든 의미를 빼앗아가며 죽음이 삶의 가능성 자체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고 만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결국 인생은 고통과 수난의 길이 아닌가 싶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같은 사실을 주변에서 대하고 있다.

왜 인간은 고난의 짐을 져야 하는가.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나는 내 친구들이 겪어온 수난을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삼대독자로 자라온 한 친구는 장래가 촉망되는 외아들을 떠나보냈다. 그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온갖 준비를 갖춘 뒤, 마지막으로 제주도 여행에 나섰다가 익사하는 참변을 당했다.

내 제자 한 사람은 애써 독일 유학의 절차를 끝내고 친구들과 야유회를 나갔다가 실수로 생명을 잃었다. 남편의 사망을 겪은 만삭이던 젊은 부인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게 무거운 고뇌의 짐을 지면서도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싶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짐을 지면서 살아야 하는가.

누구도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예술, 철학, 종교가 탄생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각은 함께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어차피 겪어야 할 고난의 짐이라면 성실과 경건한 자세로 그 해결에 임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첫째는, 고난은 우리의 삶을 풍부히 해주며 우리 인격을 더 고상히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코스를 극복했을 때 등산의 희열과 쾌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과감히 극복하는 사람은 그만큼 값있는 인생을 살 수 있으며, 또 자신의 인격을 보다 고귀하게 육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녀를 기르는 일은 많은 고난을 동반한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하나하나 자라 성년이 될 때까지 그 부모가 겪는 무거운 고통의 짐과 가슴 아픈 사연은 겪어본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어려운 생을 이겨나가는 부모들은 인생을 성스럽고 경건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고귀한 품위와 존경받을 만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 악마는 우리를 유혹하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다는 말이 뜻깊게 들려온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고난은 이웃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더해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난에 동참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상처를 한 내 친구의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내를 잃고 여러 가지 절차를 끝내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전사와 같이 보이더라는 이야기다. 자신이 외로움과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수많은 친구들이 위로와 동정을 더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사랑을 받고 나니까 사랑을 베풀어준 모든 사람이 천사와 같이 보이더라는 뜻이다. 그 후부터 내 친구는 원수가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 모든 원한과 질투심이 자취를 감추게 마련이다.

고난에의 동참은 이렇게 고귀한 뜻을 갖는다. 많은 마음의 죄악을 씻고 경견하고 사랑이 넘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고난의 짐을 나누어 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셋째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진실하고 영구한 삶을 약속해주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

고난의 극치는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체험하는 일만큼 충격적인 고난은 없다. 그런 돌이킬 수 없는 고난에도 어떤 의미은 있지 않겠는가.

나는 내 가까운 친지의 경우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단란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 딸이 회복하기 어려운 병으로 눕게 되었다. 부모는 딸의 건강을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래도 딸은 부모를 떠나 죽음의 길을 가고야 말았다.

죽음을 앞둔 딸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알고 있기나 했듯이 또렷이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아버지를 기디릴 테니까 내가 죽은 뒤에는 술을 끊고 교회에 나가주어야 해……” 하는 말이었다.

딸은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술을 끊고 교회에 나가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딸의 마지막 유언을 들은 아버지는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다. 딸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뒤 아버지는 술을 끊었다. 그리고 말없이 부인과 함께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좋은 신앙을 가진 가장이 되었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 부인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우리 아이 아빠는 딸의 죽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만일 우리의 견디기 어려운 수난의 짐이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고난의 의미는 더욱 성스러운 것이 되지 않을까.

종교의 뜻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김형석, 열림원,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6. 9. 화룡이) >

[의초 이정석]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진실하고
영구한 삶을 약속해주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화룡이(이창모)]

고난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 소중한 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