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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2.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3.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정통
3.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
4. 대한 예수교 장로회 대신
* 한국 기독교 장로회에 대해서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대신'(예장 대신) 다음에 기술된 내용을 참조 하세요.
현재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예장 통합)은 전국적으로 모두 하나가 되었으므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 중에서는 그 교세가 가장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백과사전 자료에서는 예수교 장로회(합동)이 노회 수와 교회 수, 그리고 목회자 수에서 예장(통합)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예장(합동)은 또 다시 그 자체내의 분열로 수많은 계파로 또 갈라져 있기때문에 단일 교세로는 예장(통합)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大韓-敎長老會,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구분 종교단체
설립연도 1912년 9월 1일
소재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135
설립목적 장로교회간 협력, 장로교 전파
주요활동 선교활동, 신앙교육활동, 사회봉사활동
규모 노회 60개, 교회 6,494개, 목사 1만 3409명, 전도사 4,036명
장로교의 대표적 중도교단으로 예장통합측이라고도 한다. 성서를 하느님의 절대적인 말씀으로 믿고, 이를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으로 삼으며, 칼뱅주의에 입각한 장로회헌법과 12신조 및 대소교리문답의 교리를 기본신조로 한다.
1884년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앨런(H.Allen)이 고종의 지시에 따라 광혜원을 운영하고,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소속 로스(J.Ross)가 신약성서를 번역하여《예수셩교젼서》를 출간하면서 장로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1893년 선교사들이 장로회선교공의회를 조직하였고 이것은 1901년 한국교회 대표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로 발전하였다. 1907년 9월 17일 조선예수교장로회 대한로회가 조직되어 독로회(獨老會)라 불리었으며, 같은 해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 7명이 최초의 한국장로교회 목사가 되었다. 1912년 9월 1일 독로회시대를 청산하고 7개 노회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하였으며, 1922년에는 헌법을 제정하여 장로교의 신앙노선과 교리체계를 확립하였다.
1938년 9월 10일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으나, 이에 반대하는 50여 명의 목 사들이 순교하고 평양신학교는 폐쇄당하였다. 1943년 일제의 강압으로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으로 개편된 뒤 1945년 7월 18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 통합되었다. 광복후 1947년 총회를 재건하고 1949년 4월 22일 교단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바꾸었다. 1952년 9월 11일 고려신학교측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를 조직하여 분리해나가고, 1953년 6월 10일 조선신학교측이 대한기독교장로회를 조직하여 분리해나갔다. 1959년 9월 28일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 분리해나갔으며, 그 이후 50개가 넘는 교단이 생겼다.
주요 활동은 ① 선교, ② 총회산하 각 교회의 신앙교육 장려, 총회산하 각 기독교학교의 신앙교육 장려, 교육부 산하 각 연합회 지도 관리, ③ 노회 및 지교회의 사회선교·사회봉사 활동을 위한 지원활동, ④ 사회선교를 위한 인력 발굴, ⑤ 효과적인 구호를 위한 정책개발과 집행, ⑥ 소외된 농어촌교역자 재교육, ⑦ 각노회 농어촌부 활성화, ⑧ 농어촌살리기 운동, ⑨ 군종목사 지원, ⑩ 선교사 파송 및 관리업무 등이다. 기관지로는《기독공보》를 발행한다.
최고의결기관인 총회의 임원은 총회장·부총회장·서기·부서기·회계·부회계·회록서기·부회록서기로 구성되며, 총무단은 총무·사무국장·기획국장·7개부로 구성된다. 산하기구로는 10개 상임부, 10개 위원회, 24개 특별위원회, 4개 재단, 2개 기관, 7개 신학대학교, 19개 자치단체, 18개 국내연합선교기관, 해외선교협력교단, 해외교회연합기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이 있다. 그밖에 노회 60개, 교회 6,494개, 목사 1만 3409명, 전도사 4,036명, 장로 1만 6138명이 있다. 본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135번지에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大韓-敎長老會(合同),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한국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한 교파.
구분 한국 장로교 교단
설립연도 1912년(1959년 통합 측과 분리)
소재지 서울 강남구 대치3동 1007-3
설립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주요활동 복음 전파, 해외 선교, 교역자 약성
규모 노회 86개, 교회 6,795개, 교역자 1만 8038명, 평신도 230만 명, 선교사 1,076명(200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1901년 시작된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1912년 창립되었는데, 창립 당시의 명칭은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였다. 1949년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바꾼 뒤,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에큐머니즘 신학에 대한 이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분리되면서 WCC를 영구히 탈퇴하였다.
1963년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에 총회를 사회단체로 등록하고, 1965년부터 《기독신보》(지금의 기독신문)를 발행하였다. 1977년 주교교사통신대학을 설립하고, 1982년 총회유지재단 설립 인가를 받은 뒤, 1986년 연건평 2,300평의 총회 회관을 준공하였다.
개혁주의 신학을 근본 이념으로 하여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교리문답)을 교리의 표준으로 삼는다. 또 장로교 헌법의 정치원리를 가지며, 교회의 성례전적 전통과 권위·질서의 준수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와 함께 예수교장로교단를 대표하는 교단으로, 2002년 현재 전국에 86개의 노회와 6,795개의 교회가 있다. 목사·전도사 등 교역자는 1만 8038명, 평신도는 230만 명이며, 해외 86개국 53개 지부에 1,076명의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그 밖에 총신대학교·총신대학원·신학대학원·교육대학원·선교대학원 등 5개의 직영 총회신학원과 10개의 총회 인준 신학교가 있다. 총회 회관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3동 1007-3번지에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大韓-敎長老會(合同正統)]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구분 한국 장로교단
설립연도 1980년 5월 16일
소재지 서울 서초구 방배3동 1031-1(총회 회관)
설립목적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정통성 수호
주요활동 칼뱅주의 신앙을 근거로 한 개혁주의 신앙 전파, 해외 선교, 목회자 양성
규모 소속 교회 2,200개(2001), 산하 노회 52개(2002), 목회자 3,900명, 선교사 130명
1980년 5월 16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합동진리라는 이름으로 출범해 이듬해 합동진리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연합을 합해 합동정통으로 교단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으며, 보수정통주의를 표방한다.
신앙은 칼뱅주의를 특징으로 한 개혁주의적 신앙관을 가지며, 교리는 《사도신경》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기조로 하고 있다. 1984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을 완성하였고, 1995년 10월 연건평 340평에 지하 2층, 지상 6층의 총회관을 마련하였다.
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수는 2,200개(2001), 산하 노회는 52개(2002), 목사·강도사·전도사 등 목회자 수는 3,900여 명이다. 교단 내 교인의 수는 80만 명이고, 미국·러시아·아르헨티나·브라질·필리핀·유럽 등 16개국에 파송된 선교사 수는 130명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천안대학교를 비롯해 4개의 신학계 대학원, 5개의 특수대학원, 기독신학교, 총신예술학교, 천안외국어대학 등이 있으며, 《기독교연합신문》을 발행한다. 총회 회관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3동 1031-3번지에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大韓-敎長老會(高神),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PCK:Kosin)]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서를 신조로 하는 한국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한 교파.
구분 한국 장로교 교단
설립연도 1952년 9월 11일
소재지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58-10(총회 본부)
설립목적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유지, 칼뱅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앙
주요활동 복음 전파, 해외 선교
규모 노회 34개, 교회 1,578개, 교인 43만 8283명, 목회자 3,682명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 투옥되었다가 8·15 광복과 함께 출옥한 한상동·주남선 목사 등 초창기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1952년 9월 11일 경상남도 진주(晉州) 성남교회당에서 제1회 총노회를 개최하면서 출범하였다. 이들은 본래 다른 교파를 세우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신 측 총대들을 거부하고 총회로부터 축출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고신 교단을 출범시킨 것이다.
고신 교단의 역사는 고려신학교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데, 초기 지도자들은 1946년 6월 진해(鎭海)에 하기 신학강좌를 개설하고, 이어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얼마 뒤 고려신학대학으로 인가받았으며, 다시 부산광역시 송도의 고신대학교와 천안의 고려신학대학원으로 발전하였다.
교단 출범 이후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부르짖으며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고 있다. 또 웨스트민스터 교리 표준서를 신조로 삼아 칼뱅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견지하면서 한국 교계의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2년 현재 34개 노회에 1,578개의 교회가 있으며, 교인은 43만 8283명, 목회자는 3,682명(목사 2,230명, 강도사 425명, 전도사 1,027명)이다. 총회 본부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58-10번지에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大韓-敎長老會(大神),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Daeshin]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신조로 삼고 있는 한국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한 교파.
구분 한국 장로교 교단
설립연도 1961년
소재지 경기 안양시 동안구 신촌동 1073
설립목적 평양신학의 전통에 근거를 둔 성경적 복음과 개혁주의 신학 전파
주요활동 국내 복음 전파, 해외 선교, 목회자 양성
규모 노회 37개(국내 34, 해외 3), 교회 1,400개, 목회자 1,500명, 선교사 111명
1961년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로 출범해 1972년 한국 장로교 총회의 명칭이 다양화됨에 따라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로 개칭하였다. 1974년 교단 교회선언문을 채택하고, 이듬해 교단 교회 헌법을 제정하였다. 1980년 통합·개혁·기독교장로회·고신 등과 한국장로교협의회를 창립하고, 1985년에는 재일대한기독교연합회 회원교단이 되었다.
1986년 총회신학원을 설립하고, 1994년 한국기독교평화통일추진협의회 창립 교단으로 참여한 뒤, 같은 해 재단법인으로 총회 유지재단 설립 허가를 받았다. 1995년 대지 6,463평에 건평 443평의 총회 회관을 매입하고, 1998년 3월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개교하였다.
평양신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순수한 성경적 복음과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감 없이 신뢰해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신조로 삼는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교단과는 신앙적 뿌리가 같다.
2002년 현재 국내에 34개, 해외에 3개의 노회가 있으며, 교단 소속 교회는 1,400여 개, 목회자는 1,500명, 해외 파송 선교사는 111명이다. 그 밖에 직영 신학원으로 대한신학교와 대신대학원이 있으며, 인준 신학원인 안양대학교·안양신학대학원에서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다. 총회 본부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신촌동 1073번지에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韓國基督敎長老會,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분립, 김재준(金在俊)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1953년에 형성된 교단.
구분 한국 장로교 교단
설립연도 1953년 6월
소재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136-56 한국기독교연합회관 1501호(총회 본부)
주요활동 국내 선교, 해외 선교, 교회일치운동 전개, 북한 선교 및 사회 민주화, 목회자 양성
규모 노회 24개, 교회 1,509개, 교인수 32만 2465명(2000년 12월)
예수교장로회(약칭 예장)와 그 뿌리는 같다. 그러나 1947년 제33회 총회 이후 김재준 등이 주축이 되어 세운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의 전신) 문제를 둘러싸고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분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어 1952년 4월 제37회 총회에서 당시 한국신학대학 졸업생에 대한 목회자격 박탈, 김재준 목사의 교수직 파면과 아울러 소속 경기노회에서 목사직 박탈이 의결되면서 이듬해 6월 완전한 분립이 이루어졌다.
조선신학교는 17세기 정통주의 신학과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중간노선인 신정통주의 입장을 취했으나,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신봉하는 박형룡(朴亨龍) 목사를 주축으로 한 보수진영에서 성서문자의 무오(無誤)를 주장하여 기독교장로교측을 극단적 자유주의로 혹평함으로써 완전 결별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54년 6월 10일 제39회 총회에서 '대한기독교장로회'로 개칭하고, 세계장로교회의 주류를 좇아 에큐머니컬운동(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섰다. 같은 해 목포노회의 동참을 필두로, 이듬해 전남·경남 두 노회가 가담한 데 이어 캐나다 연합교회가 예장과 결별을 선언하고, 선교사 21명을 파송해 줌으로써 활기를 띠어갔다.
1956년 제41회 총회에서는 한국교회사상 최초로 부목사·여자장로제 등을 채택하고, 이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해 국내교회 연합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1960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도 가입하였다. 1961년 18개 노회를 9개 노회로 통합하고, 교단명을 '한국기독교장로회'로 개칭하면서 새로운 도약기를 맞았다.
1969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유지재단 설립인가를 받고, 1971년 사회선언지침을 채택해 도시산업선교·반독재 투쟁에 가톨릭 지도자 등과 보조를 맞추어 사회참여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1974년 여목사 제도를 채택하였고, 1979년에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실행위원회 및 신학협의회를 예장 측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1993년 통일헌법특별연구위원회를 설치한 뒤, 1997년에는 북한선교복지회관 설립 추진운동을 결의하였다.
2000년 12월 현재 교회는 1,509개, 목사는 2,090명, 교인은 32만 2465명이다. 또 2002년 현재 전국에 24개의 노회가 있고, 총회 기관으로는 한신대학교와 영생고등학교를 비롯해 14개의 장애인 선교기관, 8개의 사회복지법인, 6개의 특수 선교기관이 있다. 총회본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136-56번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1501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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