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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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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천산[天山]은 주몽[朱蒙]의 도읍지[都邑地] 흘골산[紇骨山]을 굽어보고
환국고려 추천 2 조회 1,109 15.12.27 17:50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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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2.29 23:17

    첫댓글 성천은 주몽이 엄리대수를 건너 도읍한 곳이라 했는데, 성천의 위치가 어디든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성천)에 도읍을 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엄리대수를 건널 때 고기와 자라가 떠 올라 그를 다리삼아 건너 졸본(성천)에 이르렀다는 것과 또한 성천에는 흘골산이 있는데 무산 십이봉이라 한다...했습니다. 그런데 무산열두봉중에 ‘취병(翠屛)’이 있는데 연행록의 취병산과는 기존의 설(說)로는 전여 상관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추측에는 연행록의 취병산과 성천의 취병산(峰?)은 같은 산입니다.

  • 15.12.29 23:20

    주몽이 부여에서 엄리대수를 건널 때 물고기들이 떠 올라 다리를 놓았다 했는데 연행록에 어양(漁陽)이란 동네의 명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물고기가 떠 올라 햇빛을 밭았으니 한자로 어양(漁와魚를 같이 볼 때)일 것입니다. 즉 주몽이 어양(물고기가 떠 올라 다리를 만든 곳)을 지나 성천(졸본 ; 취병산이 있는곳)에 도읍을 한 것이죠....연행록에서는 취병산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어양(漁陽)이 나오는데 주몽과 반대방향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 15.12.29 23:22

    또한 구룡산 위에 박연(博淵)이 있는데 가물 때 범의 머리를 넣으면 감응이 있다 했으니 이는 기우제를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계산기정에 ; 반룡산(盤龍山)은 곧 반산(盤山)인데, 계주성(薊州城) 25리 지점에 있다. 산 북쪽에 여러 개의 봉우리가 반룡에 와서 끊어졌는데 상ㆍ중ㆍ하 3반(盤)이라 일컫는다. 그 정수리에 큰 돌이 있는데 흔들면 문득 움직인다. 산 위에는 육룡담(六龍潭)이 있는데 비를 빌면 영검이 많고, 아래에는 조정(潮井) 및 용발천(龍鉢泉)이 있다.
    라 하여

  • 15.12.29 23:23

    구룡산이 아닌 반룡산으로 되어 있지만 그 산위에 육룡담이 있고 비를 빌면 영검이 많다 하여 구룡산 위의 박연의 기우제 풍속과 유사합니다.
    반도사관으로 보면 전여 별개의 장소와 별개의 사건이지만 그 내용의 유사함은 이렇듯 숨어 있습니다.

  • 15.12.29 23:26

    오래 전부터 ‘어양(漁陽)’ 이란 말의 뜻이 독특하여 궁금해 했었는데 주몽의 일화와 연결하여 생각하니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황하의 잉어가 용문폭을 뛰어 올라 용이 된다는 전설로 과거급제후 입신양명의 의미에서 ‘어양(漁陽)’ 이란 말이 생긴 것이 아닐까도 했읍니다만, 전후좌우의 상황으로 보아 주몽의 설화가 더 적절한 듯 싶습니다.

  • 15.12.29 23:28

    주몽의 도읍지에 대한 역사 기록은 요동과 평안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물론 맞는 말입니다만 졸본부여가 현도땅(한사군)이라 한 것과 유주의 요동, 요서, 낙랑, 현도, 상곡, 어양, 우북평등의 여러 군과 역시 같은 지역으로 유주의 땅과 고구려의 역사 강역은 불가분의 관계로 같은 곳임을 부인할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연행사들이 같던 북경(연경)도 고구려의 역사적 장소(아마도 부여의 도읍? 이나 혹은 중요 지역?)일 것이란 생각입니다.

  • 15.12.29 23:34

    연원직지에 ; 어양교에서 또 5리쯤 가면 작은 다리에 이른다. 그 곁에 별로 높지도 크지도 않은 취병산이 있는데, 《수호전(水滸傳)》에서 이른바, 양웅(揚雄)이 반교운(潘巧雲)을 살해했다는 곳이다. 산 아래에 돌로 만든 사람 둘이 있는데 이는 양웅과 석수(石秀)의 상이라 하며, 새긴 기법이 매우 소박했다. 다만 지금은 상의 면목(面目)에 마멸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산기슭은 비탈지고 그 위로 나 있는 길이 수 리쯤 된다. 옛날 듣기로는 여기에는 송림(松林)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없다.
    라 하여 '송림(松林)'이 나오는데 이곳이 송막기문의 '천리송림'이 아닐까요....

  • 작성자 15.12.31 05:26

    천리송림은, 지금의 자이산호 서북 지역에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지금도 수 백리에 걸쳐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흉노의 용성이 있던 지역으로, 근세까지의 역사 기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맑은 영혼님께 감사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하여, 댁내에 두루 평안 하시며 건강과 만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15.12.30 15:30

    "위(魏)"나라의 "조조"가 백룡퇴를 지나 "오환"을 공격했다는 것은 환국고려님 말씀대로라면 고구려(高佉麗)의 한복판을 지나갔다는이야기인데 과연 가능한걸까요? 연남생의 묘지석은 낙양에서 발굴되었는데 보장왕의 무덤과 비석이 돌궐의 마지막 칸 힐리가한의 옆에 있다는 기록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항상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 15.12.31 06:15

    고구려와 관계된 중국사를 살피다 보면, 앞뒤가 맞지않는 기록들이 수 없이 많은데, 조조가 백룡퇴를 지나 오환을 공격했다는 이러한 기록 들 입니다. 오환이나 오손, 연, 이러한 나라들은 모두 고구려의 일원 일 뿐입니다. 고구려의 본 모습을 우리가 알 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러한 기록들 때문인데, 고구려의 일원들을 모두 각 나라의 종족으로 분리시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는 지금의 인도 북부까지 강역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고구려의 미천왕을 통전에서는 서융편에 단 몇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5.12.31 06:15

    삼국지에 나오는 삼국이라는 나라들은, 오십년을 전후하여 모두 망한 나라 들입니다. 그리고 조선왕조 대군들의 별장이 지금의 낙양에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記]도 버젓이 있는데, 연남생의 묘지석이 낙양에서 발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중국 당국의 역사에 대한 왜곡의 망발일 뿐 입니다.
    고구려는 제국 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호태왕의 비가 옮겨졋는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기록들은 모두 역사의 사실 입니다.
    그 유명한 백룡퇴는 설산이 내려다보는 곳에 있었으며, 이 지역은 유주의 경내이며, 유주는 요동과 인접한 지역 입니다.

  • 작성자 15.12.31 06:14

    연행록에 나오는 백룡퇴는 노룡 사막과 같이 거론되고 있는데, 원사[元史]에서 이 지역의 위치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대부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댁내에 두루 평안과 건강과 만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15.12.31 19:12

    2015년!
    오늘,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날입니다. 그만큼 소중한 하루 하루라는 뜻입니다. 내일은 2016년 병신년의 첫 날입니다만, 우리는 편칠 않습니다. 사회 전 분야에서 침울하고, 암울한 이야기만 들리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인내도, 더 이상의 기대도 모두 접는다는 것은, 포기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걱정허고, 정부를 걱정해 주는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를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친일과 친미에 목이 매여, 자국민의 아픈 곳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정권도, 이 나라의 정권일까? 더불어 왜곡되고 조작된 역사는 기필코 찾아야한다는 각오를 해봅니다.

  • 15.12.31 19:22

    항상 조선사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노력하시는 "환국고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새해! 엔 '환국고려'님 가정에 행복과 건강히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늘 건강과 함께 하시길..........!

  • 작성자 15.12.31 22:36

    주위의 열강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는데, 한국의 모습은 초라하고 처참하며 부끄러운 일들만이 천지 사이에 가득 합니다.
    말장남으로 정도를 흐리고, 국민을 우롱하는 자들은, 그 들 스스로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대도를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를 우러러 볼줄은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역사의 진리와 순리는 준엄한 것입니다.
    문무 선생님께 항상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문무 선생님의 댁내에, 두루 평안과 만복이 함께 하시며, 항상 강건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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