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가을 기다렸다 꼭 가보는 미술 전시회가 있다. 5월과 10월 딱 2주간만 하는
성북동 간송미술관 전시회이다. 간송 전형필이 모은 우리 문화재를 개인 미술관인 보화각에서
무료로 전시한다. 보화각이란 간송미술관의 원래 이름이다.
올 가을은 화훼영모화를 주제로 한다. ‘화훼영모’란 꽃과 풀, 그리고 새와 짐승을 뜻한다.
겸재 정선의 ‘추일한묘(국화가 핀 뜰에서 검은 고양이가 방아깨비를 바라보는 그림)’나
단원 김홍도의 ‘모구양자(어미개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새끼들을 바라보는 그림)’ 등 100여 점이 나왔다.
공민왕의 ‘이양도(양 두마리 그림)’는 1300년대 중반 그림으로 전시품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견(絹) 500, 지(紙) 1000년 이라고 옛 그림을 보면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은 보존상태가
좋을 경우 이 정도의 기간이 최고라 한다. 그리고 매번 주제별로 100여 점을 전시하는데
얼마나 많으면 주제별로 100 여점이 가능할까 궁금하면서 그 문화재적 가치는 또 얼마나 클까 가늠이 안된다.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처럼 익숙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렇게 가슴떨림을 진정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그림들이 모아진 내력을 알아서다.
우리 미술사에 만약 간송이 없었다면... 미술계에선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는데 나 또한 가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하늘이 내린 재산(현재 강남 최고급 아파트로 예상해서 2000채 정도, 1년 소출은 200채 정도)을
물려받은 간송은 위창 오세창을 만나 우리 문화재에 눈을 떠가면서 일제시대 일본으로 반출되는
소중한 문화재를 사 들였다. 서화, 도자기, 불상, 석조물, 서적 등 가치가 있는 것은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여서 이 땅에 남겼으며, 그 중 국보로 12점, 보물로 10점이 지정되었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고려자기를 사들이는 데는 그때 가격 2만원
현재가치로 강남 최고급 아파트 20 여채 정도 된다하고, 또 다른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은 1만원을 지불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구입하기까지 과정 또한 아슬아슬 가슴을 졸인다.
그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우리 문화재 사모으는데 거의 다 썼으니 가히 하늘이 내린
인재임이 틀림없다. 후에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교육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다시 매물로 나왔었는데
간송이 그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알고도 구입을 못했다 한다.
지금은 일본 천리대학 소장으로 작년 가을 한국 나들이를 했는데,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거의 3시간을 기다리다 보게 된 진본 몽유도원도는 오래되어서인지 흐릿해져 뚜렷하게
잘 보이지는 않아 처음엔 약간 실망했었다. 1400년대 중반 비단에 그려진 그림이니
지금까지 볼 수 있는 것만해도 다행이지 싶었다.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도저히 여유있게 볼 수가 없어서 건너편 2층 전시실에 모사본을
전시했다 해서 그쪽으로 가봤다. 진품이 아니라고 사람은 없어서 덕분에 차분히 세세히 볼 수가 있었는데
명품이 달리 명품이겠는가 눈은 모사본을 보지만 마음은 진본에 가 있어
가슴 두근 거리는 감동을 어쩌지 못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작품의 한국전시가 마지막이라 하는데, 우리 것을 일본이 소장하고
그걸 보겠다고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우리신세가 참 그랬다. 그때는 간송말고는
누구도 살 안목과 여력이 없었으므로 아쉬움이 너무 크다.
처음에는 보화각이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곧 깨달았다. 백색의 아담한 2층 건물로
지금이야 좀 누추해 보여도 외관이 전부는 아닐터, 건물이 품고있는 의미와 세월이
얼마나 크겠는가. 서슬퍼런 일제시대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코자 지어진 것이고,
또한 그 시대의 건물을 지금 그대로 볼 수가 있어서 전시된 작품도 문화재요, 미술관 건물
자체도 문화재며, 그 터 또한 문화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전시회중 신윤복의 미인도를 볼 때이다. 2층에 올라갔는데 익숙한 그림이 꽤 크게 걸려 있었다.
그림 감상도 들어가기 전에 “와 크네” 했었다. 길이 한1.5미터 정도 됐던듯.
그 옆 진열장에 전시된 풍속화첩 속의 ‘단오풍정’ 등은 “애게 얘들은 또 왜이리 작아” 하면서
코박고 열심히 보았는데 A4 용지보다 좀 큰 듯 그때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림이 살아서 “나 여기있어” 하고 말을 거는거 같았으니 말이다.
실제 진본을 보고 있다는 약간의 희열도 있었다.
이번 전시가 79회로 매년 2회 거의 40여 년을 무료로 개방을 했지만, 실제로 간송미술관은
일반에게 잘 안 알려져 있어서 가면 잠깐 밖에서 기다리다 보곤 했었는데,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될 때 단원과 혜원 그림위주로 전시를 해서인지 도로까지 길게 사람들이
기다리곤 했었고 그때 많이 알려진 듯 하다. 그 열풍에 나도 끼어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보러 용인에 있는 호암 미술관에 갔었는데 리움으로 보냈는지,
전시를 안 해 못보고 왔다. 그 외 겸재의 진경산수화나 정조의 힘있는 필체의 한글편지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든 전시물들이 하나하나 소중해서 사실 보는 거 자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한사람이라도 더 보아주고 찾아주어야 간송의 뜻을 기릴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아가고 주위에도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바로 옆 성북초등학교에 주차를 할 수 있는 일요일에 찾아간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보화각 안의 전시물과 밖의 석물들, 꾸미지 않은 정원을 보면서,
나라에서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 그냥 이대로가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후손에게 알리는 최상의 방법인 듯 해서 그냥 그대로 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궁금하다. 일본은 도대체 왜 우리 문화재에 그리 관심이 많았는지.
결국 부의 차이로 설명이 될 듯하다.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미국에 의해 개항을 하고,
19세기 초 파리 만국박람회때 일본 미술이 유럽에 소개가 될 정도였는데,
인상파의 고흐, 모네, 마네와 클림트 등이 그 시대 일본 미술의 추종자란다.
우리보다 앞서서 일본은 예술을 즐기며 미의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 우리네 부엌에서 막사발로 쓰였던 ‘다완’도 일본에서는 찻그릇으로 쓰였고,
그 중 20여 점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 정도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는 ‘수월관음도’ 같은 고려불화가 전세계에 총 160여 점 되는데
그 중 130점이 일본에 20점이 그 외 나라, 우리나라는 단 10여 점 밖에 없단다.
억울하지만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 때문에 그 많은 불화가 우리나라를 떠나게 된 것이고,
우리문화재의 가치를 우리만 몰랐다는 것이다.
조만간 용산에도 갈 예정이다. ‘700년 만의 해후’ 쉽지 않은 전시라지 않은가
고향을 방문한 그들을 반겨줘야 할 일이다.
간송미술관엘 가는 날이면 마음이 좀 묵지근 하다.
눈은 한껏 호사를 하지만
그 작품들이 거기에 전시되기까지의 고단한 여정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나와 기분을 전환시켜 본다. 그 옆 길상사에 들러 시인 백석과 대원각 안주인 김영한 여사의
러브스토리와 법정스님께 시주하게 된 사연, 마침 점심때면 공짜 절밥도 얻어먹곤 했다.
부자들이 산다는 성북동 부티나는 집들도 구경한다 대부분 대사관저지만.
북악스카이웨이 길을 따라 팔각정에 올라 북한산자락 아래 나른하게 엎드려 있는
또 다른 부촌 평창동을 내려다보고, 반대편 치열한 삶의 현장 서울시내 빌딩들도 바라본다.
산모퉁이 까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부암동쪽으로 내려오거나,
삼청동쪽으로 내려와 이쁜 가게들을 지나 청와대 앞길을 일부러 지나오곤 한다.
그런 날이면 서울에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단 느낌이 든다.
이 가을 우리 옛것이 주는 푸근함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간송미술관에 발걸음 해보길 권한다.
첫댓글 참고로, 간송미술관의 가을전시는 매년 10만명 이상 관람객이 몰린답니다. 가보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일년에 두번 그리고 짧은 전시기간을 한다고합니다..,
사진도 찍어왔으면, 좋을텐네.., 한번 저도 꼭
내부 사진은 없고, 외부 전경만 찍기는 했는데 올리기는 좀 미흡해서요.
아이들이랑 직접 가 보시면 좋을듯...
꽃과 풀? 나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우리 부분회장님(재무님) 좋은글 올려주셔서 아주 감사해요
간송미술관..... 많이 들어봐서 친숙한 느낌이데 한 번도 못 가봤군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취미를 가지셨군요 고미술품을 대하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글솜씨도 훌륭해서 글을 읽는것만으로도 이미 간송미술관앞에 줄을 서 있는 기분입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너무나도 훌륭한 설명으로 직접안내를 받은기분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고려불화 '물방울수월관음도'는 일본 센소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대여를 안해주려다 존재만이라도 확인하자 해서 보여주는데, 중앙박물관장하고 직원이
그 불화를 보자마자 큰절을 해서 대여를 해주게 되었다고 하네요.
유홍준교수도 평생 못볼줄 알았다고 하는 귀한 보물이니 빨리가서 보고 싶네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재밌게 봤었는데 그때 마침 간송미술관 얘기가 신문에 나오더군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못 가봤었는데 차은하님의 글을 읽어보니 이번엔 꼭 가 보고 싶어지네요.
길상사도 가보고 싶고, 북악 스카이웨이도 올라가 보고 싶고... 마음만으로도 벌써 부자된 느낌입니다.
조금은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보세요.
간송미술관을 알게 되면 매년 봄,가을을 기다리게 될겁니다.
누난 일도 안하시고 놀러만 다녀요?-친구 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