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사람은 얼마나 잠을 자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기네스북에 따르면 공식적인 세계 기록은 1964년 미국의 랜디 가드너(당시 17살)가 세운 264시간1분(11일 1분)입니다. 가드너의 1위 달성 이후 기네스북의 ‘잠 안 자고 깨어있기’ 도전 부문은 신체를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폐지됐습니다. 이후 1965년 한 핀란드 사람이 277시간(11일 12시간)을 기록하며 세계 기록을 넘어 1위에 올랐지만, 한 해 앞서 이 부문이 폐지됐기 때문에 비공식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이 도전 기간 동안 기록을 보면 잠을 자지 않은지 2일이 되면서 눈에 초점이 없어졌고, 촉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3일째는 큰 사물을 보고 사람으로 착각을 하는 환각 증세를 나타났다고 합니다. 4일째는 자신이 고등학생이지만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생각했고, 짜증과 예민해졌다고 합니다. 5일째 환각, 정신분열증상이 보이며 자신을 누가 잡으러 온다고 했다고 합니다. 6일째 근육 제어가 어려웠고 단기 기억상실증상을 보였습니다. 7일째 기억력이 확실히 떨어졌고 운동이 어렵고,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11일이 지나면서 정신을 잃어 더 이상은 진행이 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14시간을 조금 넘게 수면한 후에 1주일 후 수면 리듬을 다시 찾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의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쥐를 가지고 잠을 재우지 않고 실험을 한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쥐를 2주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자 피부에 종양이 생기고 체온이 낮아졌으며, 먹이를 먹어도 몸이 말라갔습니다. 그리고 4주 동안 잠을 자지 못하자 면역 기능이 낮아져 감염증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파괴한 것입니다.
그만큼 잠을 자지 못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잠은 안녕하십니까?
100세까지 건강하게 잘 살려면 내 몸이 꼭 해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 먹고, 잘 싸고, 마지막이 잘 자는 것입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잘먹어도 체하게 됩니다. 변비가 찾아옵니다. 수면 장애가 옵니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결국은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잠을 잘 자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구나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합니다. 꿀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깊은 잠을 자게 해 주시고 그 잠을 자고 다시 새로운 하루를 활력 있게 살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은 불안하고 초조해서 더 많이 수고를 하는 인생을 모두가 살아갑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며 삽니다. 남들에게 뒤처지면 따라잡지 못하고 그다음에는 불행한 인생의 시간표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삽니다.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아등바등하며 살아갑니다.
아직 자신의 삶이 불안정한 사람은 안정적 삶을 위해 아등바등합니다. 이미 안정적인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합니다. 그러니 우리네 삶이 언제나 불안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부자는 록펠러입니다. 그분은 상상할 수 없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가졌던 일부만 있으면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많이 있어도 그것을 지키고 또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로 자신을 에워싸게 합니다. 그래서 불면의 밤을 보냅니다. 없으면 없어서 걱정하느냐 불면의 밤을 보냅니다.
하나, 어떤 왕의 잠 못 이루는 밤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인생의 즐거움의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여 찾아냈습니다. 그 하나가 사업을 크게 하여 다른 모든 사람보다 일등을 하면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업을 해서 주변의 여러 왕들보다 또 어떤 부자보다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즐거움은 잠깐이고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각종 보석과 진귀한 것들을 재료로 하고 주변 나라에서 좋은 목재를 수입하여 집을 짓고 웅장하게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얼마가지 않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각종 과목을 심고 수목을 가꾸고 포도원을 일구고 연못을 만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몄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스러운 마음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왕은 여인들을 많이 두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잘 산 왕이 될 것이라 여겨 닥치는 대로 아내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걸로도 만족함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가 한탄하며 인생들에게 교훈을 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가 솔로몬 왕입니다.
전 2: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 밤들로 자신의 삶을 채웠던 모양입니다.
시편 저자는 오늘 말하길 수고로움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은 헛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추구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높은 산을 올라가서 깃발을 꽂고 자신이 그곳을 밟았다는 것을 기념하고 세상에 알립니다. 세계의 높은 봉우리와 북극점과 남극점을 목숨을 걸고 찾아가 국가의 국기를 꽂습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입니다. 다시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고 웁니다. 그렇게 수고하고 애를 써서 꽂은 그 꼭대기의 점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정상이었지만 바로 바뀌게 됩니다. 허무합니다. 목숨까지 걸고 그걸 이루었는데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답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을 맺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는 허무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끝나는 인생은 평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가난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오히려 병을 걸리고 그와 같은 병을 걸린 이들을 치료하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 예수님의 잠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공생애 생활을 하시면 평안의 잠을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그 예로 성경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눅 8: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8: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우리가 생각할 수 있지만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니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신으로서의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 예수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이나 예수님의 상황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자들 가운데 어부가 직업이었던 그들이 훨씬 이 상황에서는 더 올바른 판단과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죽음을 생각하며 위태로운 상황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잠을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관련 있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위해 나아가면서 허무하거나, 헛되다고 생각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그 고통의 골고다 언덕을 위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깊은 잠을 주무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평안을 늘 소유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 길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하는 그 순간에 그 마지막을 위해 잠과 싸우며 기도하셨지만, 모든 날들은 잠을 청하시고 그 잠은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 베드로의 잠
베드로의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 보면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믿음의 큰 그릇이 되었을 때 지금 눈앞에 있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 취하여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 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헤롯이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너무 기뻐하며 헤롯에게 협조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자 헤롯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 첫 번째인 베드로를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붙잡아 죽이려고 재판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베드로가 혹시나 도망을 갈까 봐, 감옥에 군인 네 명씩 네 패에게 맡아 지키게 했습니다. 더구나 두 군인 사이에 사슬을 묶어 놨습니다. 문 앞에 군인이 지켰습니다. 그만큼 베드로가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면 만일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떨까요. 잠이 올까요.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천사가 와서 깨워도 안되어서 옆구리를 쳐서 깨웠다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깊이 잠이 들어서 일어나긴 했는데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베드로에게 이런 담대함이 생겼을까요. 계집 종이 말하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였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을 따라가며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려고 하던 그였습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함 속에 있던 그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잠을 푹 잘 수 있었을까요.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일에 집착하고 자신을 위한 것들을 지키고 쌓아두기 위해 하루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루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였기에 그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녁이 되면 지극히 당연하게 잠을 청하였습니다. 옆에 자신을 지키는 이들이 있든지, 말든지 그들이 베드로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에는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 하나님의 사랑
인생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것은 번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노력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인생의 광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것들은 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적인 평안을 위해 달려갑니다. 노력하고 애를 쓰고 매달립니다. 남들이 말하는 그것을 얻으면 진정한 평안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해도 오히려 슬픔과 고통뿐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또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다시 수고를 더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은 배가 되고 매일 수고를 하지만 얻는 것은 허무함 뿐인 게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고 시편 기자가 말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사랑을 정확하게 알고 그 사랑에 반응하는 인생은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 사랑의 말씀을 내가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삶에서의 행동이 결정이 됩니다. 만일 진심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거나 걱정이 짓눌러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선하고 주의 일을 엄청나게 해야 그 분량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심을 하게 합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금이 가게 합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다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삶에 따라서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광풍이 일어나자, 금방까지 옆에서 의지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음식을 같이 먹었던 예수님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이 예수님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맞는 믿음의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는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순간에 찾아낼 때가 많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평소에 우리가 그 사랑을 알고 반응하길 원하실 것입니다. 두려움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헛된 것을 쫓아 수고와 슬픔과 고통으로 삶의 시간들을 채우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그것을 쫓을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추구했던 그것을 얻고자 애를 쓸 것입니다. 록펠러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불면증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죄 된 인간의 특징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알고 그 사랑에 사랑으로 반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고 그 안에서 평안을 선물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절대시 하는 것을 따르며 매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 걸음을 기뻐할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달콤한 밤을 기다리고 그 밤을 기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와 같은 죄인을 사랑한다는 그 말을 흔들림 없이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처럼 광풍 속에서도 평안의 쉼을 얻습니다. 베드로처럼 병사가 좌우에서 지키고 쇠고랑으로 채운다고 해도 평안의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과 걱정과 염려가 있다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짐 다 맡기는 믿음을 갖기를 축원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오늘도 불안의 늪에서 나와 평안의 숲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요약
솔로몬 왕의 인생의 즐거움
100세까지 건강하게 잘 살려면 잘 먹고 잘 싸고 마지막에 잘 자는 것임
잠을 잘 자야 함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함
솔로몬 왕은 인생의 즐거움을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하고 답을 얻음
예수님의 잠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풍랑 속에서도 깊은 잠을 주무실 수 있었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순간에 그 마지막을 위해 잠과 싸우며 기도하셨지만, 모든 날들은 잠을 청하시고 그 잠은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을 것임
베드로의 잠
베드로가 잠을 푹 잘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부활에 대한 확신 때문임
무엇보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선하고 주의 일을 엄청나게 해야 그 불량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함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압도하기 때문에 두렵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금이 가게 함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알고 그 사랑으로 반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고 그 안에서 평안을 선물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