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토). 7:30 ~ 18:30
욱수 성당
창조주의 어머니 Cu. 고운용<F.하비에르> 단장 외 53명
시온의 딸 Cu. 이영환<안젤로> 단장 외 59명
관광버스 4대
출발 직전, 안내 봉사자
신부님 덕담과 강복
추풍령 휴게소에서
황새바위 도착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118
예수성심상
성지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은 두 팔 벌려 맞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 성심상은 사랑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는 마음의 표현이며,
인간의 응답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원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수처형지로서의 순교성지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이다.
특히 박해시대 초기에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사학죄인들에게 해읍정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백성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고자 사학죄인들을 출신 고향에서 공개 처형한다는 의미이다.
사학죄인으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배교를 거부할 경우 사형 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제민 천변 황새바위에서 참수 처형되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의 위치는 지리학적으로 금강의 본류와 제민 천의 지류가 만나는
모래사장으로 공개 처형 지대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주지역 100여 년 순교 역사의 현장
1784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세례를 받고 고향 내포에 내려와
신앙을 전하면서부터 시작된 내포교회는 곧 박해에 부닥치게 되었고
기록상 마지막 순교자를 낸 1889년까지 100여 연간 공주는 박해의 땅이었다.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및
이국승 바오로 등 16명이 이 시기에 참수 처형되었고,
병인박해(1866년) 시기에는 약 1,000여 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공주는 천주교 4대 박해와 함께 100여 년 순교 역사의 현장이다.
한국 최대의 순교자를 기록으로 남긴 순교성지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이 처형된 곳이다.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은 감영으로 이송되었으며,
배교하기를 거부할 경우 사형 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처형을 당하였다.
지금까지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는
337명으로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성전 앞
미사 전,
황새바위 순교 성지 기도
지극히 자비하신 하느님
고통과 죽음의 자리였던 이곳을
거룩한 부활의 땅으로 축복해 주셨으니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황새바위 순교성지에 스며있는
순교자들의 거룩하고 복된 삶의 여정과
목숨을 바쳐 증거 한 신앙을 기리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 순례자들을 축복하시어
그들에게 황새바위 순교성지가
하느님을 만나고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는
은총의 배움터가 되게 하소서.
또한 순례자들과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이 사랑 안에 일치하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소중한 성지를 가꾸고 보존하게 하시어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바르게 전하며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도록
은총과 자비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미사 / 11:00
주례사제
함태후<미카엘> 성지 담임 신부님
강복
신앙교육의 현장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순교자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새로 나는 장소, 은총의 배움터이다.
돌문
돌문은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 자신을 낮추며 기도의 준비를 하고,
기도를 마치고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갈 때는 머리를 숙이는
겸손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돌문의 이름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늘귀 문이라, 또 어떤 이들은 천국의 문이라 부릅니다.
순례하시는 각자의 느낌이 바로 돌문의 이름이 될 것입니다.
풀밭에서 점심 식사
순교탑
순교탑은 순교자들이 처형당할 때 사용되었던
칼을 서로 맞대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칼이 상징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칼과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유혹을 끊을 칼입니다.
세상과 나를 향한 두 개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고 날카롭게 서 있을 때,
참된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그 속에서 하늘로 향하는 계단을 한걸음 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열두 개의 빛돌
이 돌들은 열두 사도를 상징하며 동시에 이곳에서 순교하신
337명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비석입니다.
그래서 아무 이름도 쓰여 있지 않으며 투박하고 거친 모습 그대로 서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춧돌인 열두 사도와 한국 천주교회의 주춧돌인
순교자들의 모습이 이 돌 안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투박하고 거친 돌덩어리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열두 개의 빛돌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 아버지께 조금 더 다듬어 주시기를,
단련시키며 정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무덤 경당
예수님의 돌무덤을 형상화한 무덤 경당은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공존하는 곳입니다.
돌무덤은 죽음이라는 종말과 부활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라는
성경 말씀처럼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 살아계시는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경당입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묵주기도의 길
삶과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의 외 아드님의 삶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묵상하며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기도합니다.
황새바위 십자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형상이
음각 부조의 형태로 십자가 정면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는 아담의 해골이 작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앞으로는 오상을 입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며 서 계십니다.
십자가 뒷면에는 한국교회 초기 공동체 신앙인들의 터전과 감영과 향옥,
제민 천변에서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로는 순교한 영혼들이 천사들과 함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부활 경당
부활 경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영원한 부활의 진리를 노래하는 경당입니다.
경당 안에는 4000여 점의 백자 도자기 평판 벽화 작품들이 모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저 흙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색을 입고,
색을 입은 흙이 1,250도의 뜨거운 불에 의해 재탄생되어
각각의 의미를 담으며 환희의 찬가를 부르는
순교자들과 신앙인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야외 제대(337위 호칭기도)
부활 광장에는 큰 돌 제대와 12개의 거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대 돌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서 황새바위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12개의 거석들은 12사도와 순교자들을 상징합니다.
거석 뒤에는 337위의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십자가의 길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하신 말씀으로
저희도 주님을 따라 이 길을 가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청하며
'목숨을 버림으로써 참된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는 사랑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동산
1846년 11월 2일 한국교회의 제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님과
다블뤼 안 안토니오 신부님은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작은 오두막집에서
몇 명의 신자들을 모아 ‘성모성심회’를 조직하고,
나흘 뒤 그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승리의
성모 대성당 주임 신부(성모성심회 창설자)에게 보고를 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성모성심회’라는 신심 단체가 창설되게 됩니다.
또한 1861년 당시 공주에서 사목하던 조안노(P.JOANNO, 오 베드로) 신부님은
공주 전 지역을 성모영보(예수 탄생 예고) 구역으로 선포합니다.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키운 곳이 바로 공주입니다.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성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봉헌해 드린 특별한 곳에서
어머니께 간절한 도움을 청한다면 그 모든 것을 헤아려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성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공산성
공산성으로 가는 제민천 다리에서
백제 무령왕릉 연문(百濟 武零王陵 埏門)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
공산성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4개 성문 가운데 서쪽 문루이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의 문헌 기록과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의 문루는 본래 서문이었던 자리에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은 것이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민천교 영세비(濟民川橋 永世碑)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0호
1817년 제민천이 대홍수로 범람하고 제민천교가 붕괴되자
이를 재 건립한 사실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문에는 1817년 여름 홍수로 다리와 둑이 무너지자,
다리의 복구를 8월에 마치고 하천의 둑을 고쳐 쌓은 일은
이듬해인 1818년 4월에 모두 완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업 자금의 조달 방법 및 그 과정에서 공이 있는
관리와 자금을 지원한 강신환 등 10여 명의 일반 백성 이름도 적혀 있다.
공산성에서 본 황새바위 순교 성지
공산성에서 바라본 공주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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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고운용<F.하비에르> Cu. 단장의 인사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