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을 향한 한국 축구의 도전이 실패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남자 U-23 대표팀이 2024 AFC U-23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했다. 조별리그를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예상치 못한 좌초에 대회를 돌아보는 마음도 무겁다.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리포트 'ONSIDE'를 통해 냉정하게 짚어보려 한다.
크로스 활용한 실리축구 전략
B조 1차전 대한민국 1-0 UAE(4월 17일)
[그림 1] 한국의 크로스는 대부분 박스 바깥 사이드에서 이뤄졌다. 문전 중앙의 스트라이커를 겨냥해 빠른 속도로 전달한 것이 핵심이다.
1차전 콘셉트는 명확했다. 승점 3을 온전히 가져와야 하는 경기였다. 한국이 선택한 공격 방식은 볼을 빠르게 골문 근처로 붙이는 것이었다. 득점은 결국 골대 앞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자그마치 39개의 크로스를 시도했다. 성공 10회, 실패 29회를 기록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크로스의 성공이나 실패 여부가 아니다. 크로스를 시도한 위치다.
분석적으로 접근하면 크로스를 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Inswing(골대로 향하는 볼), outswing(골대에서 떨어진 쪽으로 향하는 볼), driven(속도와 힘으로 전달, 주로 직선 궤적), lofted(뒤쪽 포스트를 겨냥해 띄워주는 볼, 주로 고리 모양 궤적), cutback(뒤쪽 대각선 방향으로 전달, 박스 내 동료 겨냥), push(의도와 정확성을 갖고 동료에게 밀어주는 볼) 등 6가지다.
그런데 한국의 크로스는 거의 대부분 박스 바깥 사이드에서 시도됐다. 하프 스페이스도 활용하지 않았다. <그림 1>을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정확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으나 압도적 횟수라는 시도를 통해 상대를 위협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UAE 수비를 끌어내는 효과를 발휘했다. 사이드에서 계속 망설임 없이 크로스를 올리다 보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UAE가 박스 바깥으로 나왔고, 상대적으로 박스 안에서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크로스 속도가 매우 빨랐기에 UAE가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순간도 나왔다.
한국의 시도는 결실을 맺었다. 후반에 교체 출전한 이영준이 추가시간에 헤더로 골을 넣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황선홍 감독이 스트라이커 출신이어서 스트라이커의 효율을 고려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본다. 스트라이커가 좀 더 능숙하게 볼을 처리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스트라이커 자원이 침투성 움직임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면, 볼이 빠르게 그쪽으로 도달해야 그 움직임에 여유가 생긴다. 경기 템포를 죽이지 않고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지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만 수십 차례의 크로스 중 1득점에만 성공했다는 점은 아쉽다. 선제골 이후 UAE가 라인을 올렸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추가 득점까지 기대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득점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크로스 존을 좀 더 세심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느 지역까지 진입할 것인지, 어느 지역에서 어시스트를 만들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또 하나, 2022 월드컵 이후 세계적인 화두가 된 경기 체력은 이번에도 부각되고 있다. 현대축구는 더 이상 90분짜리 경기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첫 경기부터 후반 추가시간이 12분이나 적용됐다. 흔히 선수들에게 경기 끝나기 전 5분간 집중하라고 한다. 이제는 100분, 110분까지 가는 운영을 준비해야 한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힘은 체력에서 나온다. 앞으로 긴 시간 운영을 염두에 두는 체력적인 준비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첫 경기는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반드시 승리와 3점을 챙겨야 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3점승을 거둔 덕에 다가올 중국전과 일본전을 두고 계획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
디테일의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B조 2차전 중국 0-2 대한민국(4월 19일)
스코어로만 따지면 전혀 문제 없는 경기였다. 조별리그 통과라는 목적도 달성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8강 이후 전략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고 느꼈다. 토너먼트 경기 플랜에 관한 구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면에서는 중국이 더 나았다. 이 대회를 앞두고 약 한 달간 합숙하며 준비했다고 하는데, 실제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결정적인 기회 창출에서는 ‘잘 준비된’ 팀의 면모가 보였다. 중국이 앞섰다. 한국은 전반에만 세 차례 실점 위기를 맞았다. 전반 15분 수비 실책으로 중국 공격수와 골키퍼 김정훈이 일대일로 맞서는 상황이 나왔다. 김정훈의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후 5분 간격으로 두 차례 더 골에 가까운 슈팅을 허용했다. 김정훈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여지없이 골이 될 뻔한 장면들이었다.
결국 디테일 싸움으로 요약되는 경기였다. 축구는 골로 승부를 가르는 경기이고, 그 골을 만들어내는 디테일에서 중국보다 한국이 월등했다. 모든 전술의 시발점은 개인 전술이다. 개인 전술은 기본기에서 나온다. 패스, 콘트롤, 슈팅 등 볼을 다루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 선수들이 중국 선수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단적인 예로, 중국 선수들의 슈팅 장면을 보면 쫓기듯 서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스 근처에 가면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인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 선수들은 박스 근처에서 오히려 정신없이 움직였다.
반면 한국은 기회를 살렸다. 전반 34분 강상윤이 침투 패스에 수비진을 깨고 박스 안으로 들어간 이영준이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에 성공했다. 득점 직전 황재원의 스로인과 이영준-강성진을 거쳐 다시 강상윤-이영준으로 이어진 호흡은 중국의 강한 압박 속에서도 빛났다. 앞서 언급한 디테일의 차이다. 후반 24분 추가골도 스트라이커의 마무리가 돋보인 장면이었다. 역습 상황에서 박스 안으로 투입된 크로스를 이영준이 잡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상대 수비수들이 가로막는 상황에서 수비수이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는 슈팅으로 이어갔는데, 볼 터치부터 슈팅에 이르기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수행했다. 두 차례 득점으로 승부의 추는 한국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기술의 차이가 만든 스코어와 다름없었다.
결정력에서 앞섰다고 해서 불안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우선 수비 조직의 문제다. 1, 2차전 공히 드러난 문제인데 간격과 압박에서 모두 조직적인 대응이 나오지 않았다. 수비라인이 너무 내려선 상태인데다 간격이 넓었다. 상대 역습에 취약한 형태다. 후반 들어 센터백(서명관) 부상과 교체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번쯤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간격이 넓다는 것은 경기 운영 초점이 팀보다 개인 역량에 맞춰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격이 벌어지는 문제는 수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공격 전환 상황에서 ‘빠르게’ 마무리로 이어가는 움직임밖에 없었다. 측면에서 타깃맨을 겨냥하는 크로스가 주요 루트다. 스트라이커를 활용하는 마무리에 방점을 찍은 전략이다. 경기 운영의 목적을 볼 소유에 두지 않는 대신 빠른 공격으로 득점 기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에 집중한 것 같다.
이 방식은 효율적이다. 그러나 2선에서의 지원이 빈약해진다는 약점도 있다. 간격이 넓다 보니 미드필더들이 큰 박스 근처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2선에서의 쇄도나 압박도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공격이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주진 못한 이유다.
볼 소유를 중시하는 팀이라면 공격할 때 점진적으로 올라서는 형태를 만든다. 일정한 간격이 유지된다. 한국은 이런 형태의 조직적인 대응이 없었다. 예컨대 후반 두 번째 골을 얻기 직전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수비진의 백패스 미스로 상대에게 슈팅까지 허용했다. 김정훈의 선방으로 실점에 이르진 않았지만, 만약 골로 연결됐다면 경기 흐름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이런저런 아쉬움이 있지만 이 경기 승자가 한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역시 골은 만병통치약이다. 8강행을 일찍 확정한 만큼 팀 정비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미들서드 운영이 돋보인 일본
B조 3차전 일본 0-1 대한민국(4월 25일)
대한민국(빨간색), 일본(파란색)
한국과 일본 모두 8강을 확정한 상태에서 만나 큰 부담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양팀 다 로테이션 멤버를 꾸려 나왔다. 8강 이후 토너먼트 일정을 고려할 때 체력 안배 차원의 운영이 효율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선발 라인업이 달라졌지만 한국의 운영 스타일은 1, 2차전과 거의 유사했다. 낮은 지역에서 수비에 집중하면서 역습을 펼치는 전략이었다. 다분히 일본의 기술과 공격 디테일을 의식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한국은 전후반 내내 스리백, 사실상 파이브백 형태로 수비를 펼쳤다. 한국의 수비에 일본 공격 역시 답답한 흐름이었다. 한국이 의도했던 대로 틀어막은 셈이다.
후반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밀고 밀리는 공방을 주고 받다가 한국이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후반 30분 코너킥 상황에서 이태석이 올린 크로스가 김민우의 머리에 맞았다. 선제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선제골 이후 한국은 한층 유리한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잇단 교체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 한국에 위협적인 상황도 몇 차례 나왔지만, 골로 만들지는 못했다. 스코어는 바뀌지 않았다. 한국이 1-0으로 승리했다.
일본전까지 보고 나니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3경기 모두 운영 방식이 유사했다. 수비 안정을 기본으로 하고, 공격에서는 측면에서의 크로스와 원톱 스트라이커를 활용한 속공으로 결정을 내는 실리 축구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무실점 전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었으니 전략은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 성과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경기 운영 측면에서 한국보다 일본의 대응 방식이 더 눈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라인을 많이 내려 수비 조직을 구성했음에도 일본은 기술로 그 벽을 뚫었다. 한국이 생략하다시피한 미들서드(중원)에서의 운영이나 볼을 갖고 있는 능력 자체가 좋았다. 깊은 지역에서 슈팅을 시도하며 득점 기회를 만드는 움직임이 정교했다. 측면 일대일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개인 전술도 돋보였다.
골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의 축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대가 어느 팀이든 뚜렷한 색깔을 갖고 부딪치겠다는 것이다. 이런 축구는 녹아웃 스테이지, 나아가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훨씬 경쟁력을 갖는다. 일본 U-23 대표팀이 올림픽에 나간다면 메달권 도전도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한국이 조별리그 3경기에서 보여준 단조로운 운영 패턴의 성공 가능성은 복불복에 가깝다. 골이 나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 역습에 취약한 구조가 된다. 득점 확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이태석이라는 탁월한 왼발 키커, 피지컬을 활용한 세트피스 성공 패턴을 확인한 것은 적잖은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5월호 ‘ANALYSIS’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분석=최성환(KFA 지도자 강사)
정리=배진경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