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감정과다사용자)
이 사람의 이름은 이바노프.
20세기 초, 소련의 과학자였던 그는 인공수정 분야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었음.
말과 당나귀 (노새) , 말과 얼룩말 (제브라) 같은 서로 다른 동물을 교배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 중 하나였음.
이 정도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과학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임
근데 이바노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음
인간과 침팬지를 교배해서 ‘휴먼지(humanzee)’라는 잡종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것임 ㄷㄷ
그도 그럴 게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98.8%까지 공유함.
겉으로도 비슷하고 유전자도 닮았고… 왠지 될 것 같았던 걸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음
일단 두 종이 갈라진 시점도 무려 600만 년 전. 그동안 인간은 염색체가 46개, 침팬지는 48개가 되었고, 염색체 구조도 달라짐.
유사성이 높아도 생물학적으로는 수백만 년의 거리가 존재함
(말과 당나귀, 호랑이와 사자처럼 실제 이종교배가 가능했던 동물들은
염색체 구조가 서로 비슷하고,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시점도 불과 200만 년 전쯤으로 비교적 가까움)
사실 이런 상상을 처음 한 사람이 이바노프는 아니었음
1900년대 초, 독일의 생리학자 한스 프리덴탈도 인간과 유인원의 혈액을 섞어봤음.
보통은 다른 종의 피를 섞으면 면역계가 난리가 나는데 거부 반응이 거의 없는거임
프리덴탈은 이걸 보고 ‘혹시… 교배도 가능한 거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음.
그 후에도 몇몇 과학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실험까지 간 사람은 없었음. 이바노프 이전까지는...
이바노프가 실험하던 당시 소련은 강한 반종교 분위기였고, 인간은 신이 창조한 특별한 존재라는 관념을 깨뜨리려는 움직임이 있었음.
이바노프의 실험은 인간 역시 동물의 일부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상징적인 사례였고,
볼셰비키 정권은 그런 측면에서 그의 연구를 의미 있게 보고 직접 지원하기도 했음
심지어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도 그의 실험에 연구 공간을 제공해줄 만큼 당시 과학계 분위기도 꽤 개방적이었음
(스탈린이 “슈퍼 병사”를 만들기 위해 이바노프에게 연구를 지시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건 나중에 반공주의 분위기 속에서 과장된 괴담에 가깝고 정확한 문건은 없음
어쨌든 이바노프는 스스로 휴먼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학계는 그의 단독적인 실험으로 보고 있음)
하지만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바노프는 파리로 가서 그곳에서 동료 과학자 '보로노프'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됨.
(이 보로노프라는 인물도 한 시대를 풍미한 기괴한 인물이었는데..
침팬지의 고환을 얇게 잘라 늙은 남성의 음낭에 이식하면 젊음이 돌아온다고 주장했음 ;;
“기억력, 시력, 정력까지 살아난다”는 입소문에 1920년대 유럽 상류층 남성들이 줄을 섰고,
놀랍게도 그 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있었단 얘기도 전해진다네요..)
아무튼 이 두 괴짜는 함께 인간 난소를 침팬지에게 이식하고, 인간 정액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함.
하지만 결과는 실.패.
결국 보로노프는 다시 백만장자의 fire egg를 꿰매는 고수입 일거리로 돌아갔고,
이바노프는 혼자서 실험을 계속 이어가게 됨..
1927년. 이바노프는 아프리카에서 침팬지 '바베트'와 '시베트'에게 인간 정액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비협조적인 환경과 비위생적 조건 속에 계속 실패했음.
근데 여기서도 포기를 안 함..
실망한 그는 최후의 발악으로 이번엔 방향을 아예 바꿔서 인간 여성에게 침팬지 정액을 ‘모르게’ 주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움....
건강검진처럼 위장해서 몰래 인공수정을 하자고 지방 당국에 로비를 넣었는데, 정부는 이 요청을 검토했으나 결국 거부했음.
이바노프는 이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일지에 썼음. 그가 얼마나 현실 감각이 나가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임..
(미친새끼..)
그래도 포기를 몰랐던 이바노프는 고향으로 돌아와 실험에 쓸 유인원과 유인원의 아기를 임신하겠다고 나서는 여성을 둘다 구하는데 성공함.
그러나 때마침 1930년 스탈린 정권의 정치 숙청에 휘말려 체포됐고, 유배지에서 2년 뒤 죽게 됨..
-the end-
Rest In Pepperoni 🍕
그럼 이제 궁금해짐..
이바노프의 꿈은 정말 실현 가능한 일이었을까?🤔
코넬대학교 의과학대학원 생식생물학 명예교수인 J. 마이클 베드퍼드의 대답을 들어보자
“침팬지가 긴팔원숭이보다 인간에 더 가깝다는 전제하에
침팬지의 정자가 인간의 난자와 수정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봅니다.”
그는 1970년대에 남성 피임법 개발의 일환으로 정자가 난자에 달라붙는 초기 단계를 연구하면서 인간 정자를 햄스터, 다람쥐원숭이, 긴팔원숭이 등의 난자에 직접 주입해봤다고 함
그 중 인간의 정자는 긴팔원숭이 난자에만 부착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긴팔원숭이는 유인원 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먼 친척에 해당함.
다만, 그는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수정'은 단지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함.
"우리는 침팬지와 98.4%의 DNA를 공유하지만 건강한 휴먼지 아기를 탄생시키는 건 그야말로 도박과 같죠."
"교잡종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불임일 수도 있고 배아 단계에서 바로 멈추는 경우도 흔합니다."
"결국 배아가 살아남아 출산까지 이어질지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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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과거의 일일까?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중국에선 이런 일도 보도가 된 적이 있음.
1980년대에 중국의 한 연구자가 침팬지 암컷에게 인간의 정자를 인공수정해 임신 3개월까지 진행됐으나 ,
문화대혁명 중에 실험실이 파괴되고 침팬지가 돌봄을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보도된 것임..
원문의 출처가 중국이다 보니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당시 미국 과학자들은 회의적이면서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음
그리고 2021년엔 또 다른 뉴스가 나왔음
미국·중국·스페인의 공동 연구팀이 인간 세포와 원숭이의 세포를 섞은 배아를 만들어 20일간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거였음
이른바 '원숭이 키메라 배아' 실험 ..
배아는 이후 파괴됐지만, 과학계와 윤리계엔 파장이 있었음.
연구팀은 관찰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었으며, 윤리 지침도 모두 준수 했다고 밝혔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우려도 나왔음.
사실 휴먼지를 과거의 황당한 사건으로 넘기기 쉽지만
사람과 유인원을 섞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은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음.
물론 오늘날의 이와 유사한 연구는 완전한 생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된 안전장치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음.
무분별한 실험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철저한 윤리적 심사와 통제 아래 이뤄짐.
하지만 과학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름..
현재로선 단지 ‘금기’라는 사회적 규범만이 그것의 실현을 막고 있을지도...
추가로 리처드 도킨스도 이런 상상에 대해 언급했는데, 흥미로워서 끼워 넣어 봄
🧑🦳 도킨스헴 :
인류의 모든 걸 바꿔버릴 네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겠음..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이라 부르던 존재에 대해 다시 정의해야 할 것임.
1.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같은 멸종된 고인류의 잔존 집단이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는 일
2. 인간과 침팬지의 이종교배
3. 인간-침팬지 키메라 실험
4.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을 실험실에서 되살리는 일 (누군가는 살아있는동안 보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임 ㄷㄷ)
🧑🦳: "나는 저것들이 실제로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하진 않았음.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관념들에 의문을 던져야 할 때,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고는 인정하겠음."
이바노프 얘기를 접한건 <오해의 동물원>이라는 책에서인데(글도 이걸 바탕으로 썼어)
나는 처음엔 그냥 또라이 과학자 이야기 정도로만 봤었음
분명 과학자들도 말도 안된다, 황당하다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의외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태도를 보고 신기했음
그게 가능하던 아니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란 점에서 흥미로움..
마지막으로...
우리 유전자 속엔 이미 오래전 '어떤 흔적'이 남아 있다는 연구도 있음.
하버드의대와 MIT 연구팀이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를 비교했는데,
대부분은 예상한 만큼의 유사성과 차이를 보였지만... 유독 X염색체만은 침팬지와 너무 닮아 있었음.
이걸 두고 연구진은 가장 논리적인 가설을 끌어냈음.
인간과 침팬지의 종 분화가 깔끔하지 않고 "복합적인" 과정이었다는것임.
그러니까 이 말은 걍 어느 시점까진 짝짓기를 하며 교잡종을 낳았다는 뜻임
! 물론 그때의 인간 조상은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었음.
하지만 그런 시절을 거쳐 살아남은 ‘혼종’의 후손이 지금의 인류일 수 있다는 상상은 꽤 묘함..
어쩌면 이바노프가 꿈 꿨던 휴먼지는 이미 오래전에 자연이 시도해본 실험은 아니었을까..?
끝
헉 흥미돋..
출근길에 넘 흥미롭게 읽었어!!
진짜 재밌고 흥미로워... 생각도 못해봄
와 넘 잼나. 글 잘 읽었어
대유잼
재밌다 흥미롭다
와 진짜 이런실험이 있을수도있었네 몰랐어!!!!!흥미돋ㅋㅋㅋ 쩌리랑 완전 딱맞는글인듯
잼잇더요 ㄷㄷ
아 좀 역겹다 근데...ㅠ 흥미롭긴한데 저런 실험을 생각한다는거 자체가 좀 역겨워ㅠㅠ 이유가 뭘까 난 종교인도 아닌데... 그냥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를 섞어보자라는 발상 자체가 좀 역해ㅠㅠ
와...
흥미대폭발..
너무 흥미로운데 그시절의 의료윤리 진짜 개나줬구나
흥미돋,,,,
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