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 세계적인 볼거리 '그랜드 캐년"의 장관
하 --- 나이애가라 폭포 유람선...
** 고생도 지지리 했지만 평생을 잊지 못 할 여행을 해봤습니다. 다음 떠나시는 난뜰 분들을
위해서 공개코져 하오니 많은 참고가 되시길.... 감사합니다.
하나는 저작권(출판사) 보호를 위해서 스크램 허용이 안 되는 점 이해해 주시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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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Ⅰ. 여행은 왜 하는가? 1
Ⅱ. 여행 준비는 이렇게 하자 11
Ⅲ. 출발,,, 미 대륙으로! 15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경치들이여!
?이거 폭팔물 아냐? 15(2일)
?불났나 봐, 밖으로 뛰어! 25(3일)
?화장실이 어디예요? 30(4일)
?여기가 어딘가벼? 42(5일)
?아, 끝없는 죽음의 계곡 데스벨리여! 45(6일)
?연탄가게, 보신탕집 52(7일)
?샌디에고의 멋진 밤을 위하여, 건배!! 57(8일)
?태평양과 대서양도 모두 함께 삼키리. 66(9일)
◆록키산맥 언저리를 더듬다.
?그대 꿈에도 그리던 계곡이여. 72(10일)
?750원짜리 종이 쏘시개 74(11일)
?‘나바호‘족이세요? 79(12일)
◆멕시코 국경을 넘고, 서에서 동으로 횡단 또 횡단...
?마약을 취급한 적 있나요? 83(13일)
?여기서 날리면 OB샷은 없을 껄.... 89(14일)
?너희는 어떻든 우리는 안전해야 해! 85(15일)
?세계의 최 장강 미시시피여.... 100(16일)
?여기가 어딘데 호수가 이렇게 많은 거야? 104(17일)
?아무리 바빠도 사진 한 장 찍어야지 108(18일)
◆최남단 키웨스트에서 북으로 북으로
?김치 여기도 있어요 113(19일)
?동양인만 보면 일본인이냐고 묻지 말라고요 119(20일)
?미국은 골프의 천국 123(21일)
?노병은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127(22일)
?한국전에서 피를 흘린 고귀한 생명들 131(23일)
?오, 하느님! 폭탄이 아니 예요 135(24일)
◆최북단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고 다시 대서양을 향하다.
?차가 주차장에 갇혔어요 138(25일)
?온몸이 전율하니 이빨 물고 쳐다본다 140(26일)
?친구 남편은 한국전에 참가했었어요 145(27일)
?그가 실수를 했나 봐요, 제가 대신 사과 드려요 150(28일)
◆9.11 태러 비극의 현장을 가다.
?엄마, 그런데 비행기 한 대가 또 이리고 오고 있어... 154(29일)
?이렇게 기쁠 수가! 국위선양 100% 짜리 이다 164(30일)
◆Big Apple이여. 안녕! 172(10.1일)
Ⅳ. 여행을 다녀와서
Ⅴ. 부 록
?일정별 경유지
?비용 사용 내역
?여행을 위한 준비물
?연락처 및 주소
?여행중 사용이 예상되는 영어
Ⅰ. 여행은 왜 하는가?
2002년 9월 2일 12시 20분. 인천발 샌프란시스코행 UA818편 비행기는 가을에 접어든 한반도 상공을 힘차게 날아오른다. 미국행 한달 간의 자동차 여행. 오랫동안 꿈꾸어왔고 또 준비도 했었다.
이제 내 나이 50대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남이 보면 나이 쉰 넘어서 웬 자동차 여행? 그것도 한 달간이나.
미국 대륙을 종단, 횡단한다면서? 가기 전 아는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질문이다. 여하튼 일을 저질러 놓고 말았다. 이제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귀국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여행을 해 봤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디를 어떻게 무엇을 보러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그리고 사전에 파악된 지식 없이 막연히 출발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이번 미국 여행은 내가 계획한 전세계 100여 개국의 대상국 중 제일 첫 번째로 선택한 코스이므로, 사실상 내 여행 계획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20년 전, 실행 구체화는 3년 전)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직 생활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50대 중?후반에는 여행을 시작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었던 것이다.
여행은 먼저 흔히 말하는 시간, 건강, 돈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게다가 더 붙인다면 못 말리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인솔자 없는 여행 때에는 언어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시간은 각 개인에 따라서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여행 전문가라면 언제라도 계획하고 떠날 수 있지만, 직업인이나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제한을 받을 것이고, 우리처럼 공직에서 퇴직했다면 본격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시간은 절대적인 요소가 되지만 이것도 만드는 자에게는 주어질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건강도 개인차가 많겠으나, 여행을 염두에 둔다면 지속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내 직업이 강건한 체력을 요구하는 직업 군인이었으므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보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3년 전부터 일과 전후에 헬스클럽에서 매일 1시간 이상 체력 단련을 실시하였다.
또 저녁 식사 후에는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1시간 이상 걷기를 생활화했다. 걸을 때도 회화 테이프를 휴대해서 듣고 말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또한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가급적이면 걸어다녔다. 하루에 체력 단련 시간은 2시간 이상이었으므로, 지구력도 좋아지고 체중도 10kg까지 줄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핵심 사안 중의 하나가 돈일 것이다. 아무리 거지같이 다녀도 비행기표를 사야 하고 햄버거를 살 돈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능력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직업이 있을 시에 별도로 여행 목적의 적금을 부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5만원씩 부어, 3년이 되어 200여 만원이 되었다. 또다시 액수를 늘려서 15년간을 부어 기천만원의 상당한 목돈이 마련될 수 있었다. 일반저금으로 생각해서 모으는 것보다는 어떻든 여행을 가기로 작정해서 모았기에 아내에게도 손쉽게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 전기한 바와 같이, 여행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사전에 준비가 꼭 필요한 것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싶어도 확고한 계기와 의지가 없다면 머뭇거리게 되고 이 돈이면 어떻게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잡념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요소 중의 하나는 타고난 호기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취미를 물으면 ‘여행’이라고 답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여행도 종류가 많다. 시간이 무료하니 흥미 거리를 찾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계를 모으는 등의 단체로 그저 따라 다니는 여행도 있을 수 있다. ‘남들이 다 해외에 간다니까 나도 한번쯤은 가봐야지’ 하는 여행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은 못 봐서 안달 나고, ‘왜 그럴까, 어떻게 생겼을까? 나도 동참해야지’ 하는 못 말리는 호기심이 있는 자만이 참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여행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와 고통과 불안, 심지어는 위험까지도 따르므로, 막연히 떠났다가는 곧 후회하게 되고 제대로 된 경험을 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것은 있지 않나?”,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는 정도로 감흥이 없다면 여행 시작은 본격적으로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힘들게 왜 그리 다녀?”, “집에서 맛있는 것이나 먹고 놀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가끔 본다.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나로선 난감할 때가 많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여행에 대한 ‘끼’는 타고난다고 볼 수 있겠다.
본래 나는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두리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철이 들면서 미지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점점 커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졸라 멀리 떨어진 시골 장을 따라가곤 했었는데, 2시간 이상 걸어야 했으므로 늘상 뒤에 쳐져서 걸었다. 당연 어머니는 나 때문에 여러 번 쉬셔야 했다.
어떤 때는 나의 능력을 고려해서 어머니는 먼저 장에 가시려고 나 몰래 집을 나섰지만, 나는 어머니보다 먼저 집에서 나가 먼 앞동산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장터에서의 약장사 놀음, 지방 특산물, 빵 가게, 팥죽, 생선 가게 등, 그 때는 왜 그리도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는지 눈을 뗄 줄도 모르고 두리번거렸었던 것 같다. 노천장의 달콤한 팥죽은 모든 피로와 허기를 단번에 가시게 했고, 약장사의 희한한 마술과 원숭이 쇼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칙칙폭폭 석탄 기차를 만나곤 했다. 장터길이 바로 철길 아래에 인접해 있어서 수증기가 온몸을 감싸고 지나가면서 꼭 기적을 울려대므로, 나는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귀를 두 손가락으로
막고 뒤로 돌아서서 멀리 떠나가는 기차를 보곤 하였다.
“저 기차를 타면 어디로 가나요?”
“솜리(지금의 익산)도 가고 서울도 간단다.”
“더 가면 어디예요?”
“물론 때국(중국)도 가고 로스케들이 사는 곳도 갈 수 있지.”
“어머니는 거기 가 보셨어요?”
“아직 난 못 갔지. 아마 평생 못 갈지도 몰라. 너는 공부 잘해서 온 세상을 다 갈 수 있어야지, 그렇지?”
“예...”
나는 힘주어 대답하다 말끝이 흐려졌다. 어김없이 그 날 저녁은 기차를 타고 내 상상 속 미지의 세계로 가는 꿈을 꾸곤 했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7여 년이 지난 1960년대, 내 나이 열살 정도 시절이다.
우리 마을은 예전에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초등학교 큰길에서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는 버스가 마을에 들어오지 않았기에(현재는 1일 수회 운행) 어쩌다가 트럭이 한 대 들어오면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우리 시골 조무래기들은 차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휘발유 냄새도 맡고 만져보면서 신기해했다.
“저 운전사는 얼마나 좋을까.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을 테니...”
너무나도 부러웠고 으레껏 밤에는 운전사가 되어 차를 모는 꿈을 꾸었었다.
나의 호기심은 지도로 각별하게 옮아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교실 뒤편에 세계지도가 있었는데, 우리 나라 대한민국이 그것도 남북으로 나뉘어서 손톱만큼 보이는데 저으기 실망했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작은 거야? 와! 이런 나라는 엄청 크겠다.
그 지도에는 다리에 요란하게 장식한 인디언, 아프리카의 검은 사람, 머리를 흰 천으로 꽁꽁 동여맨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시간만 나면 눈에 익혔다. 사회 생활시간은 언제나 제일 재미있었고, 몇 개월도 안되어서 나는 세계 각국의 위치와 수도 이름을 모두 외워버렸다. 집에서도 늘 세계 지도부는 내 이마 맡에 있어서 막히면 나는 곧장 찾아보곤 하였다. 멕시코의 수도는 멕시코시티, 세계 3대 미항은 이태리의 나폴리,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 등등 술술 나와야 한다.
‘나는 크면 이런 나라와 도시들을 꼭 보고 말 테야. 낯선 사람과 대화도 해보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지...? 말은 어떻게 하고 위험할지 모르니 태권도도 배워야겠지. 돈도 많이 있어야 할 테고...’
꼬리를 물고 의문이 뒤따랐다.
또 하나는 언어 소통 능력이다. 여행을 다니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마 간단한 영어 몇 마디는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통상, 사용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발음이 좀 나쁘면 여러 번 반복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글로 써서 통하도록 해 보고, 그 다음은 바디 랭귀지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미리서 상황을 예측해 종이에 영어로 써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목록을 붙여 놓고 막혔을 때는 보여주는 것이다. 오지 등에서는 상황을 글씨 없이 그림으로 그려서 통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룹을 만들어서 갈 때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 사람이라도 포함시키면 더욱 좋겠다. 우리 나라도 해외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이 관광지 등에서 쓰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볼거리 장소의 입장 시에는 우리 글로 설명된 안내서를 받을 수 있었고, 간단한 우리말이 통용되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말을 내가 아는 영어보다 훨씬 못한다. 배짱을 가지고 대해보자.
많은 해외 여행을 계획한다면 실용 언어는 평소에 꾸준히 준비할 수밖에 없다. 특히 듣는 것이 급선무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상대방을 이해해야 내가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나면 항상 듣는 연습을 지속해야 한다. 차를 타거나 몰 때에도, 가능한 한 식사를 할 때에도, 걸을 때에도 말이다.
응접실과 침대에 그리고 화장실에 문장 한 구절씩 작은 비닐주머니를 만들어 걸어놓고 틈나는 대로 외워보면 어떨지. 나의 공부 방법중 하나이다. 하루면 3개, 한 달이면 90여 개, 일년이면 1,000개의 문장이 넘는다. 중요한 것은 주말 등을 이용하여 반드시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다.
눈으로만 익힌 언어는 30% 정도로 효력도 없다. 말할 수 있으려면 아무리 쉬운 문장도 입에 붙어 있어야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I'm from Korea."
라고 입에서 술술 터져 나와야 한다. 이렇게 내가 말을 해도 정작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니, 언어 공부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능성이 보이는데...
이러한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평소에 꾸준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료 는 잡지, 신문, 홍보물, 여행 서적 등 무어든 여행에 관련된다면 수집하였다. 간접 경험을 넓히기 위해서 시중에 나오는 여행 책자는 거의 모두 읽어보았다. 여행이 보편화되기 이전 60-70년대에는 해외로 여행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김찬삼 씨의 ‘세계여행기’는 나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프리카에서 생사를 걸기도 하고, 그 머나먼 여정을 홀홀 단신 헤집고 다닌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닥쳤을 어려움, 의식주를 해결하는데에 그 시절에는 많은 고통이 있었으리라.
최근에는 여행하기가 너무나 편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구를 세 바퀴 반 돌아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한비야 씨, 주부 여행가 노소남 씨, 수많은 대학생들, 자원 봉사자들, 의사, 해외 거주 교민들의 성공담, 해외 현장 르포들의 방송될 시에는 녹화를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여행자들이 수록해 온 KBS의 ‘세계는 넓다’ 프로그램은 나의 시청 단골 메뉴이다. 이들 중에서도 여행 시 유의할 사항과 특별 준비 사항은 별도 노트에 기록을 해 놓는다.
군 생활 중에도 해외 관련 사안에 관심이 늘 떠나지 않았다. 소령 시절에 도미할 기회가 생겼다. 군에서 계획한 직무와 관련된 해외 유학 코스였다. 내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 때에도 필수적으로 영어자격 시험을 치루었는데, 중?소 위 때 전방 철책 고지에서 근무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외출이 거의 없는 지역이고 자연히 책을 볼 수 있는 여유가 많았으므로 영어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70년대만 해도 영어 교육을 위한 교재라야 사전과 회화책 정도가 전부였다. 요즘처럼 풍부한 원어민 테이프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막고 품는 식의 공부였다. 그 영어 사전을 A단어부터 Z단어까지 정확한 발음밥은 잘 몰랐지만, 계속해서 써보고 외우는 것이었다. 단어 안에는 간단한 예시 문장까지 있어서 좋았다. 그 몇 년 동안 수회가 넘게 보고 또 보며 익혔다. 영어 사전을 씹어먹는 심정이었다. 자신 없는 단어는 연필로 체크를 하고 반복하여 외웠다.
그래도 꾸준한 노력한 결과,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합격이 되었고 첫 번째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 동부 지역 워싱턴 아래에 위치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의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시 옆의 미 군수학교와 병참학교.
아프리카의 리베리아, 사우디 아라비아, 터키, 필리핀, 캐나다 등 18개국 장교들이 모였다. 미국의 선진 시스템을 배우러 온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세계인들 속에 뛰어든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92년도에는 미 서북부에 위치한 시애틀 근교의 군부대에서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하여 틈틈이 미지에 대한 안목을 넓혀 나갔다. 96년도에는 국방대학원 교육생으로 재직 시절, 팀장으로서 호주와 뉴질랜드를 순람하게 되었고, 2001년에는 호주의 ‘다윈’시를 거쳐 동 티모르 주둔 한국군 상록수 부대를 시찰차 둘러보게 되었다.
이러한 여행 경험은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며 내 경험도 길렀으니 군의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단, 내 의지에 의해서 여유롭게 자유 여행을 못했을 뿐이지만.....
우리와 다른 세계 속의 사람, 환경, 문화, 언어, 습관 등이 때때로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국제적으로 세련되어야 했고, 어떻게 해서라도 실력을 길러야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언어, 특히 영어 못하면 어려워!’ 세계인과 스마트한 대면을 가지려면 겸손한 태도, 친절, 예의 등이 몸에 베어야 했다. 애국심도 자연스럽게 얻어졌고...
서양 속담에 ‘바닷가를 떠나는 자만이 신천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비록 나이는 50을 훨씬 넘어서 60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렇게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오기도 발동한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50을 넘기면 뒷전에서 구경만 했었던 기억이 난다. 들판에서 거둬들이는 볏단을 지게에, 자기 키만큼이나 높게 지고 여럿이서 줄을 맞춰 가볍게 뛰면서 지어 나르는 젊은이들을 정자 옆에서 바라보거나, 모종의 상단에서 끼리끼리 모여 동네 정사를 이야기하고 덕담을 나누던 나이가 50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2천하고도 3년이 되었다. 평균 수명이 그 때의 4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제는 나이 타령만 하고 있으려면 시간이 아깝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의지력을 먼저 앞세워 보고 가능한 요소들을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준비하면 어떨까 한다.
종로에 위치한 모 사설 어학원엘 갔다.
“중국어 초급 과정 이번 달 치 등록하려고 하는데 얼마죠?"
수강신청서를 내밀었다.
“이 분이 자녀분이세요?"
“아니, 본인인데요."
“네.....?"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또 다른 학원에서는 젊은이들만 있으니 등록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밀고 들어간다. 나이가 많다고 안 된다는 규정이나 규칙은 학원에 아직 없다. 나는 현재 5개월 째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중국 대륙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본어, 스페인어순으로 외국어를 접해 볼 생각이다.
그 나라를 좀 더 가까이서 보려면, 그 지역 원주민과 피부를 맞대어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말을 유창하게는 못해도 기본 인사법, 생활 언어 몇 마디는 무엇보다도 유용하게 쓰이고 즐거움을 더해 준다. 아프리카의 토착인이 한국 인사말을 하고 간단한 대화를 우리말로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할까?
머리맡에 중국에 관련된 책이 수북히 쌓여 있다. 지도에 동그라미를 몇 개 쳐 놓고, 비행기 표 사서 대충대충 명승지 몇 개 보는 것은 그리 의의가 크지 않다. 음식도 가지가지 먹어 보고, 재래 시장도 보고, 그들의 농촌도 본다면 더욱 더 즐거움이 있으리라. 사전 준비, 또 준비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고생은 덜하고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2-30대에는 무엇이든 덤벼들기만 하면 못 이룰 것이 없을 것처럼 여겨졌고 , 40대에 접어들면서 현실에 만족하고 조금씩 용기가 수그러 들어가며, 50대가 지나면서 양어깨도 점점 쳐지고 벌컥 겁도 난다. 내 인생이여, 얼마나 남았을까? ‘내 인생 다 간 거지? 새로 한 번만 태어날 수만 있다면 끝내 줄텐데......'
지나간 세월이 그리워지면서 아쉬움만 더해간다.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후회없이 보낼 수 있을까에 고민도 해보기 마련이다. 20-30대의 용기와 순수함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이제 와선 먼 옛날 이야기처럼 머리 속을 되 뇌일 뿐이다.
여행이 사치라고 당신에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행이 나의 인생을 최대로 살찌우고 추구하는 행복에 최선의 길 중의 하나라면 한번 투자해 볼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훗날 당신이 삶의 굴레에서 자유로워 졌을 때, 그 때 당신은 더 이상 힘이 없다고 하자. 남는 건 후회뿐 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40대를 넘긴다면 장기간 여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더군다나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여행도 아니고 차를 4-5시간씩 몰아야 하고, 사 먹기도 하지만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직접 취사도 해야하고, 낯선 땅에서 가도 가도 끝없는 황야, 어디서 잠자리를 해결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흐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50대를 넘기면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웃기는 짜장면들이야’ 하고 생각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답은 있다. 우리는 30일 동안 미국 대륙을 종단, 횡단, 그리고 또 종단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먹을 것 다 먹고, 다양한 숙소에서 잠자고, 여러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고, 구경도 실컷 하고. 한 마디로 지지고 볶고 다 해서 무사히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그것도 함박 웃음을 터뜨리고서 말이다. ‘이 다음엔 좀 더 근사한 데로 가 보자. 가족까지 데리고서 말이야!' 자신이 생긴 것이다. 50대에 한 여행임에도 충분한 여행 성과였다고 자축하는 것이다.
통상 나이가 들면 렌터카 여행 등을 떠나기를 두려워한다. 용기가 적기 때문이다. 남겨진 가족 생각, 혹시나 사고라도 나서 잘못 되면 어떻게 하고, 또 건강도 자신이 없고 임기응변 돌파력도 한물 간 것 같고. 하지만 좋은 방법이 있다. 몇 명이서 팀을 이루는 것이다. 서로가 단점을 보완하고 의지하면서 가는 여행 말이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차를 렌트해서 요세미티 국립공원→데스벨리→LA→샌디에고까지 ‘ㄱ'자 형태로 종단하였다. 다시 기수를 북동쪽으로 돌려서 라스베가스→그랜드 캐년→모나몬트 밸리→샌안토니오→멕시코후아나→뉴올리안즈를 거쳐 남부를 횡단한 후, 플로리다의 템파→키웨스트(최남단 42개의 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세계의 전천후 해변 마이애미→잭슨빌→버지니아 비취(골프 치고 휴식)→나이아가라 폭포→캐나다 월경→환상적인 핑거레이크스 호수→보스톤→뉴욕을 끝으로 인천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여행 기간은 30일이며, 15,008km(서울, 부산간 왕복 19회)였다. 원래 계획은 45일간 여정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전 미 대륙을 한바퀴 휙 돌려고 계획하였으나, 잘못 알려진 정보로 착오를 가져왔다.(여행사, 여행책자, 여행관련 국가기관 등은 9?11테러 이후 2002. 8월부터 관광 비자는 30일로 제한되었다는 내용) 실제로는 입국 시 스탬프에는 90일간 체류가 가능하였다. 아쉽지만 늦었다. 모든 준비와 여정이 한 달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쳐 캐나다로 입국한 다음, 캘거리를 지나 서부 도시 시애틀로 향한다. 그런 다음, 최초이면서 최대인 국립공원 옐로우 스톤을 거쳐서, 서부의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내려가, 최초의 출발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귀국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때는 비행기, 렌터카 비용이 상당히 절감된다. 특히 렌터카는 거의 500$나 절약(동일지역이 아닌 곳에서 견인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셋이서 팀을 이루었다. 모두가 군 동기생들이다. 눈빛만 보아도 무얼 하려고 하는지를 아는 사이이다. 모든 면에서 비슷 하였기에 더욱 유리하였다.
33년간의 군 생활, 각종 참모와 지휘관을 두루 거쳤다. 지역도 안 가 본 데가 없을 정도다. 서울, 부산, 진해, 대전, 원주, 춘천 등 이사만도 19회를 했다. 평균 2년만에 보따리를 쌌기에, 짐을 싸고 푸는 데는 이력이 난지 오래다.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적에,
“아빠! 우리 또 이사 가야지. 이번에는 어디지요? 제주도는 안 가는 거예요?”
이사 짐 차안에서 하루종일 새우잠을 자면서도 우리 네 식구는 꿋꿋이 살아왔고 집사람, 여식들은 불평 없이 따라 주었다.
“원래 아빠는 이사 다니는 것이 취미야. 새로운 고장에서 새 친구 많이많이 사귀면 나중에 얼마나 좋겠니?”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아이들은 친구도 많고 대인 관계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듯 하다.
훌훌 털어 버리고 군문을 나왔다. 나는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뛸 듯한 기분도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계 여행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었다. 10년, 아니 20년간. 어떻든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나는 ‘바닷가를 출발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천지를 찾아가 볼 심산이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여행 후에는 이와 관련된 사회 봉사를 하고자 한다. 공항의 여행자 상담이나 안내도 좋고, 해외 봉사나 국제 기구 등에서 무보수라도 좋으니 남을 위해 일하고 싶다.
우리 삼총사는 역할을 분담하였다. 나는 전반적인 여행 계획과 예산을, 또 한 사람은 그날 그날의 볼거리 계획과 안내를, 또 다른 사람은 먹고 자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는 내무장관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행에서 겪게 될 언어 소통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 중에 썼던 영어 수준은 중학교 정도면 충분한 것이었다. 차를 빌리는데 쓰는 용어는 이미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선약을 했기에, 몇 마디하고 카드로 결재하였고(차를 빌릴 때는 꼭 카드를 요구한다), 숙소 잡을 시에 몇 마디, 길 잃었을 때 간단한 회화 정도면 된다.
그리고 외국인과 만나서 대화 할 시간은 각자 만들기 전에는 문제가 없다. 유스 호스텔에서 각자 취사를 하고 음식을 교환하는데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기본 회화면 모두 충분하다.
미국은 자동차 여행에 별 무리가 없는 곳이다. 먹고 자고 타고 다니는데 편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 외에 호주, 뉴질랜드, 유럽 국가 일부와 선진국들을 여행 할 때도 공간의 자유로움을 가장 많이 만끽할 수 있는 자동차 여행이 좋을 것이다.
나는 4-50대에 여행을 하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우리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해 보고 싶어서 펜을 들게 되었다. 인생의 후반길이지만 ‘나도 훌훌 털어 버리고 나가서 시원하게 바람이나 한 번 쐬고 와야겠다.’ 는 결심을 하도록 불어넣고 싶은 것이다. 건강을 부정하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다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멋진 해외 여행이 바로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의도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연령과 시간 관념도 달라졌고, 여가 선용 시간이 대폭 개선될 전망이지 않은가!
이번 여행은 나름대로의 준비 작업을 거쳐서 이루어진 여정이고, 자신을 가지고 실행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닌 코스가 완벽하고 중요한 부분을 빠짐없이 보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단지 짧다면 짧은 기간에 우리 남한의 96배가 넘는 미국 대륙, 그것도 세계의 중심이며 강한 나라를 많지도 않은 예산으로 배짱 있게 체험하고 왔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낯선 고장에 낯선 문화를 대면했을 때, 실제로 겪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고서 더 멋진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착오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며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는 용기를 주고 싶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는 떠나라!’ 라는 광고 문구도 있지 않은가. 인생은 즐길 수만 있다면 즐겨야 한다. 그것이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그 때가 나에게는 황금 시절이었지. 나는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없어.’라고 미소지을 수 있게 말이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면 오히려 잘 풀릴 수 있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It's up to you! Here we're going!!!'
우리는 이제 간다, 아니 갈 수 있다고 외쳐 보자!!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릴 수 있는 것이다.
--------------- 계 속 ---------------
첫댓글 전 아이가 어릴때부터 나중에 여행.하려고 돈을 모았어요. 따로........여행은 꿈이였고....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생각했구요. 현재 진행중이예요.그런데 왜 영어공부를 할생각을 못했을까요? 그것에 제일 아쉬어요. 지금이라도 벳남어 쉬운거라도 외우도록 해봐야 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지금 꿈은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영어 하면 됩니다. 충분히.... 아직은 젊으셔요. 70넘으면 더 힘들어요...ㅎㅎㅎ 홧팅입니다. 언제나 힘찬 희망을 .....
정말 대단하십니다.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부러움과 함께 또한 용기도 생기네요. `하면 된다---I Can Do It.` 주문을 외야지 ~ㅎ~
별일도 아닌데 과도한 칭찬을 .... 감사드립니다. 다같이 뜻이 있는 분들은 힘을 합쳐가면 좋겠지요?
호주 여행기 감사한 마음으로 잘 보았구요 , 미국 자동차 여행기도 기대하며, 용기와 정열에 무한한 부러움 입니다.
항상 후원해 주시는 님께 감사드려요... 더 용기를 내어 여행을 하렵니다. 이것도 못 말리는 병??? ㅎㅎㅎㅎ 행복하세요...!!!
정말 대단하신분이 이 난뜰에 계셨네요.." Oh , my goodness. You are a amazing man." 존경스럽습니다요..!! 이번에 많은 자극을 받았음다..ㅋㅋㅋ 언젠가는 저도 미국내의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집니다요..!! 조은글 쓰시는 조오님께 더 많은 행운이 함께하길 바랄께요~~~!!^*^
감사드립니다. 미국은 사람이 태어나서 적어도 한 번은 봐야할 나라입니다. 어떤 형태로든가에 ... 마무리 미국에 대하여 비토하는 사람도 아마 가 보면 생각이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잘 살아 행복을 찾는 일이니까요. 여기에 해답이 많이 나옵니다. 여행을 더 해서 좋은 경험을 나누는 일도 저의 목표 중 하나이거든요. 많은 성원을 바라옵니다. 행복하시길.....
희망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주편에 이어서 미국편~ 너무나 부럽습니다 .왜 이제야 이 글을 읽게 되었는지..지금이라도 여행 후기를 접할 수 있게 되어서 참 행복합니다. 꿈이 아니라 실전에 도전 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꿈은 꼭 이루어진다고 믿어요.저도 어릴적부터 지구본을 바라보며 다른 나라들에 대한 동경을 했답니다.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왜그리 궁금했는지 모릅니다.그래서 꼭 가리라 생각했는데 지금도 계속 이루어가고 있어요.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능한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하고요.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걸 공감하며 웃음지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