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르친 시조 한 수
Daum카페/ 말로써 말이 많으니 / 무명씨(無名氏)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작자 미상,
전주와 군산 등지에서 펼쳐 놓았던 사업이 기울자 아버지는 식솔들을 앞세우고 고향에 왔다.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시천(詩川)이라는 마을이었다. 내가 여덟 살 때 일이었으니, 초등학교 취학 적령기를 이미 넘겨버린 큰아들 나이가 귀향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등졌던 고향에 다시 안기게 되었다.
시천은 마을 규모가 제법 커서 동쪽부터 차례로 시상리, 시중리, 시하리에 새터까지 거느린 단일 부락이었다. 우리가 깃든 집은 시중 쪽, 방 한 칸에 임시로 덧댄 부엌 하나가 딸린 셋방이었다. 제금 나면서 물려받은 논밭을 팔아 사업 자금을 마련했던 아버지는 아마도 낯을 들고 마을길을 나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주야장천 방 안에만 칩거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동네 모정(茅亭)에 나가 소일하는 날이 많았다
모정은 전라도 농촌 마을이라면 어디나 한두 개씩은 다 있었다. 주로 여름날 피서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정자를 모방한, 빈한한 시골 마을의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기와 아닌 볏짚이나 억새로 지붕을 얹어 모정이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주로 찾았던 모정은 서쪽 끝 시하리 모정이었다. 말 그대로 시천의 냇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모정이 있어서 깜냥에는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모정 기둥에는 누군가가 붓으로 적어놓은 저 사설시조가 있었다.
명색이 시천이라는 마을에 시를 새긴 편액 하나가 없어서 아쉬웠던 것일까? 마을에 서당 하나가 있기는 했다. 나도 한때 그 서당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서당 훈장에게 물어봐도 누가 써놓은 무슨 글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여튼 그 누군가가 그냥 나무 기둥에 또박또박 써놓은, 말장난 같은 시조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내 머리를 맴돌았다. 초장과 중장, 종장을 전체 여섯 개의 행으로 나눠 적었기에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도 짐작할 수 없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글귀였다. 말 말을까 하노라가 끝인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여기도 말, 저기도 말이어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도 했다. 짓궂은 어느 누가 장난삼아서 써놓은 낙서일까? 하지만 입안에 굴리며 읽을수록 감도는 걸로 봐서 그렇게 내칠 글도 아닌 게 분명했다.
만약 내가 그 당시에 저 시조에 대한 의문을 모두 풀 수 있었더라면 나는 끝내 시라는 것, 시조라는 것, 문학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 좀 더 자라서 내 머리 속에 자리 잡았던 시조가 다른 형태로 싹을 내밀 즈음, 그러니까 그게 시라는 걸 내가 눈치 챌 무렵, 저 시조가 나를 스스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4음보(音步)로 이루어지는 시조의 정형 운율은 어린 내 몸에 알게 모르게 율격이라는 것을 심어주었다. 시가 인간의 호흡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거의 독자적으로 익힌 셈이었다. 일상 대화에서도 내 말은 시를 읊조리는 것 같은 운율이 느껴진다고 혀를 내두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른바 언어유희로 이름 지어진, 시조 한 편에 말이 아홉 번이나 등장하는 기묘한 반복의 맛은 나에게 기교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다. 대화를 할 때든 시를 짓는 일에서든, 말 하나 시어 하나를 얼마나 신중하게 골라야 할 것인가 하는 교훈이야 따로 또 말해서 뭐하랴.
먼 후일에 시로 등단하고 난 뒤 나는 고향 시천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는 셈치고 시를 하나 짓고, 편액을 만들어 모정에 걸고 싶다는 뜻을 아버지에게 건의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 뜻을 강하게 만류했다. 동네에 말이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 말이 나다니……. 기이하게도 또 그 말이 수십 년 세월을 지나 내 귀에 들렸다. 하지만 나는 굳이 내 어린 날들과 함께 해온 고독한 경험에 대해 실토하면서 그를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으며, 시를 쓴 종이를 몰래 아궁이에 던졌다.
이래저래, 내가 어찌 저 시조를 잊을 수 있겠는가? <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 내 영혼을 뒤흔든 41편의 시(이종민 편저, 모악, 2021.)’에서 옮겨 적음. (2024. 6.11. 화룡이) >
첫댓글 본인의 시가 작자미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군요...
아버님의 뜻이 훌륭하시고
그 뜻에 순종을 하신 아드님도 아주
훌륭하십니다...
남이 쓴 시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시인 스스로 해야 할 일일 터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