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아직까지도 선생님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지 않으셨 어요. 제가 여느 아이들보다 특이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하셨어요? 존재에 대한 치밀하고도 심오한 질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셨던 모양이군요. 제가 우습게 보이던가요? 한낱 터무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정말 진지 했습니 다. 그만큼 힘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선생님을 탓하진 않겠습니다. 선생님도 한낱 인간 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그러나…, 한 떨기 여린 삶의 차양막이 되어줄 생각은 안 하셨나 요? 짧은 격려의 한 마디라도 제가 건네 주셨다면 황폐해진 제 시간은 조금이나마 보상받
을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쉽네요. 고통을 견디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외부적인 아 픔은 실재적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인 공 포는 참을 수 없었어요. 무서웠단 말입니다. 서늘한 눈빛은 저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보 이지 않는 그물 같은 날카로운 선들이 저를 옥죄어 왔어요. 살이 찢기고, 혈관이 잘려나 가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단 말입니다. 저는 매일 매일 어둠속에서 절규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심연의 어두운 바닥에 침잠해 들리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경멸과 식 어버린 증오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절 보호해 주셨어야 했어요. 여섯 달 전, 이미 죽었어야 할 육신이 살아 돌아왔을 때,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졸업이니 그 냥 용서하느냐, 아니면 예정대로 제 소신껏 움직이느냐, 많이 고민을 했지요. 하지만 결론 은 제 마음껏 움직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저들이 사회에 나간다 해도 전체를 위한 개체로 살아갈 뿐, 어떠한 의미도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죠. 오늘은 이렇게 혀만 가져가지만 이 시간 이후로 절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만약 저를 만난다면 다음엔 심장을 도려 낼 거니까요…. 오늘은 졸업식이니 아이들에게 축사 한 마디쯤 건네고 싶으 시겠지만, 부탁인데 그냥 돌아가십시오. 오늘 여기 있는 반 아이들, 모두 제 손에 죽습니 다. 그게 모두를 위한 정의니까요."
남자의 입가는 붉게 젖은 채 헝겊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입 속에선 벌건 핏물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남자의 머리칼은 땀과 핏물로 진득하게 엉켜 있었다. 양 볼이 미세하게 떨리며 공중에 뜬 남자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간을 찌푸린 아이의 눈자위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이가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자 공중에 떠 있던 남자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입에 묶여 있던 헝겊이 스르르 풀린다. 입속에서 침과 함께 고였던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헝겊을 남자의 입속 깊숙이 집어 넣는다.
"빨리 병원에 가세요. 출혈이 심해요."
아이는 체육관 뒤편 창고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멀어지는 발소리에 남자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 녀석, 어떻게 살아난 거지?'
남자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담배연기처럼 폴폴 피어난다. 아이의 담임이었던 남자는 다리가 후들거려 똑바로 설 수가 없었다. 1미터도 못가 다시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공허한 입속에 손을 가져간다. 물고 있던 흰 헝겊은 이미 붉게 젖어 있었다. 혀가 없어졌다. 남자는 아픔보다 앞으로 말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기분에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온다.
암흑, 동굴, 축축한 외벽으로 이루어진 네모진 공간, 겹겹이 쌓인 시간의 정체는 뜨거운 더위로 가득 차 있었다. 입속에 스며든 조갈증에 목이 타들어갔다. 검은 유리에 빽빽이 적힌 언어와 숫자의 나열들은 정신과 육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지럽게 나뒹구는 시간과 공간의 복잡한 구조 속에 몸이 비틀어지고 구겨지는 느낌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공간의 틀 속에 갇혀 똑같은 체계와 형상으로 변해버린 밀랍인형들 속에 함몰된 의미 없는 존재, 과연 진실은 퇴색된 것인가? 공간의 구조는 규칙과 도덕을 만들어내며 끊임없는 갈등을 조장해왔다. 차라리 동굴 속에 몸을 숨겨라. 그리고 그곳에서 순결의 기준을 다시 세워라. 그것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의 숨결이 되리라.
아이는 수업시간에 자신이 써놓은 일기를 펼쳐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다. 아직 단 한 명도 교실에 들어서지 않았다. 공명처럼 은은하게 들리는 교회 종소리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온다. 아이는 창밖으로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한다. 어둠의 끝자락에서 아이는 꿈을 꾼다. 동이 트는 꿈을…. 규칙적으로 나열된 책상과 의자를 하나하나 바라본다. 책상위에 어지럽게 긁힌 자국과 낙서들이 아이의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무수히 지나갔을 개체들…. 하지만 오늘만큼 쉽게 지나가지 못하리라. 네 면으로 단단히 둘러쳐진 콘크리트 벽에 시선을 집중한다. 굳어버린 페인트칠이 상흔의 딱지가 되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페인트가 벗겨지자 암울한 회색빛의 콘크리트가 생채기처럼 나타난다. 아이는 벗겨진 콘크리트 벽으로 손을 가져간다. 거친 콘크리트 주름들이 손끝으로 느껴진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자신의 몸이 벽과 하나가 됨을 느낀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회색으로 변하는 몸이 벽으로 스며든다. 차가운 외벽의 느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아이는 참아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손등을 타고 입, 그리고 혓바닥을 지나 심장까지 딱딱하게 굳어진다. 서늘하고 냉랭하게, 철저히 차가워져야 한다고 아이는 다짐한다. 고대 동굴 속 벽에 그려진 하나의 벽화가 되고 싶어 하던 아이는 이제야 그 꿈을 이룬 듯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는 눈을 감는다. 갑자기 눈물이 솟는 기분에 아이는 당황스러워진다. 눈물이 흐르면 콘크리트의 딱딱한 질감이 흐물흐물하게 변할 것이다. 아이는 입술을 감쳐물며 눈을 치켜뜬다. 애써 눈물을 참는다. 아이는 놀라웠다. 아직도 흘러내릴 눈물이 있다니…. 냉소적이고 적의적인 눈빛 속에 침잠한 심연의 깊은 어둠, 아이는 그 속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쏟고 또 쏟아냈다. 이유는 없었다. 반 아이들은 차갑게 벽을 만들었다. 냉기어린 말소리가 살얼음처럼 아이 옆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핑크플로이드의 '벽'처럼….
그때 교실 문이 열린다. 아이의 매서운 눈빛이 교실 앞문 쪽으로 향한다. 희찬이다. 아이의 유일한 친구, 아이는 한숨을 쉰다. 아이도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죽음이라는 것과는 조금 동떨어진 나이, 아직은 죽음과 삶을 이해하기엔 너무도 아득한 곳에 서 있는 아이, 살짝 고개를 흔들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희찬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의자다리가 앙칼진 소리를 내며 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공간은 둥글고 물렁한 소리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소리밖엔 들리지 않았다. 분필 끝이 내지르는 날선 비걱거림과 책상과 의자 다리에서 뿜어내는 성마른 비명, 이 모든 것이 아이의 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에서 솟아나는 알 수 없는 문자의 불규칙적인 화음들, 뭐였을까? 아이는 아직도 그 소리에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기분이다. 공명은 아이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처절한 기분은 서서히 내면의 지각(知覺)을 파괴해갔다. 반 아이들의 야유 섞인 몰정한 시선이 아이의 목을 슬며시 조여 왔다.
"너 거기 있는 거 알아. 빨리 나와 봐, 얘기 좀 하자."
한숨이 긴 서글픔으로 변한 희찬의 말에 아이는 살짝 몸이 떨려온다. 공허한 교실의 고요함을 미세하게 떨리게 한 희찬의 목소리에 아이는 갈등한다. 갑자기 아이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든다. 위로받지 못한 존재의 비소(悲嘯)라고 할까. 비정한 웃음은 비참하다. 아니 비참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처절함의 끝엔 절망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가. 절망을 지겨울 정도로 맞본 아이의 눈엔 더 이상 쥐어짜도 따뜻한 눈물은 나오기 힘들었다. 동공에 스며든 사막의 조갈증이 황량한 모래와 함께 가득 들어차 있을 뿐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져 내릴 미련한 희망…, 언제부턴가 아이에게 있어 희망은 너무도 멀리 떠나버린 연인처럼 아득하고 애틋했다.
"돌아가라. 더러운 꼴 보기 싫으면…."
아이의 목소리는 시커먼 동굴에서 들리는 암흑의 울림처럼 둔중하고 무거웠다. 희찬은 여전히 아이가 어디 있는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선생님을 그렇게 만든 것도 너냐?"
"봤냐? 이젠 어떠한 말도 나불거리지 못할 거야.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거지. 아니, 더 큰 벌을 주고 싶었지만, 사제지간으로서 최대한 예우를 갖춘 거야."
"너 정말…."
희찬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은 교실의 공기를 뚫고 파르르 떨린다.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채 깊게 한 숨을 내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너, 이렇듯 잔인한 놈이었냐? 넌 정말 착하고 순진한 녀석이었는데, 정말 네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찬 모양이구나."
"듣기 싫어!"
아이의 굉음 같은 외침에 실낱같은 금이 유리창에 번져나간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다.
"순진? 착함? 그런 단어에 대한 보상은 외로움, 고통, 분노였어. 난 이제 이데아의 본질이 되었어. 모두 죽일 거야. 그래야만 참된 의미를 깨우칠 수 있어. 그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세상이 모두 알아야 할 의무야."
"넌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어….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희찬의 말에 고요한 적막만이 텅 빈 교실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디선가 서늘한 아침바람이 귀신 머리칼처럼 휘날린다.
"그래, 어쩌면 난 그때 죽었어야 됐어. 하지만 살아났지. 불사신처럼 말이야. 하지만 단순 히 살아난 게 아니야. 근원이 된 거지. 사물에 대한 본질…. 의식을 잃었을 때 난 신을 만났어. 아이데스의 신을 말아야. 그는 내게 새로운 자각의 힘을 주었어. 그리고 바로 깨어났지. 난 선택된 거야. 어쩌면 난 살아난 게 아니야. 그에 의해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지. 그가 이러한 일들이 모두 운명이라고 했어. 보이는 것에 대한 관념은 이제 내 눈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거지. 난 진정한 근본의 원천이 된 거야."
"너에게 이데아의 힘이 생긴 건 인정하마. 하지만 점점 어둠의 그늘 속에 사라지는 너의 근원적 대답이 자꾸 내 눈에 밟혀. 이건 아닌 것 같아. 제발, 이러지마. 이런다고 달라지 는 건 없어. 그럴수록 너는 점점 네 자신을 잃어가는 거야! 그만 정신 차려!"
"오늘 모두 내 손에 죽는다. 이건 선택된 거야. 그들의 운명은 내 손에 있는 게 아니지. 아이데스의 명령에 의한 거라고. 보이지 않는 것은 육안으로 뚜렷한 붉은 핏물로 보상받아 야 한다고 했어. 그게 바로 오늘이야."
"좋아, 좋다고. 하지만 오늘은 졸업식이야…, 하루 정도는 늦출 수 있잖아…."
"그러니까 더욱 더 결행해야 한다는 거다. 의미 있는 하루의 시작이잖아. 물론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질 테니 존재할 수조차 없을지도 모르지만…."
"복수냐?"
"복수는 아니야. 언젠가 누군가는 이 더러운 고리는 끊어야 해…."
그때 교실로 들어서는 왁자한 목소리에 공허한 교실 안이 술렁인다. 항상 교실 맨 뒷자리에 앉는 미친개와 그 일당들이었다. 껄렁껄렁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들이 희찬을 보자 피식하고 웃는다. 무스로 떡칠을 한 머릿결이 교실 형광등 불빛에 닿자 번쩍번쩍 윤이 난다. 희찬은 그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면 고개를 돌린다. 일당들은 앙칼지게 웃어재끼며 서로에게 장난을 친다. 미친개의 눈빛이 희찬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듯 억세게 희찬을 쏘아본다. 아이와 희찬은 항상 그들의 밥그릇이었다. 눌러 붙은 밥풀이 덕지덕지 묻은 추레한 밥그릇…. 고깃점이 드문드문 달라붙은 뼈다귀처럼 그들은 아이와 희찬을 발라먹고는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돈은 매일매일 상납되어야 했다. 돈을 가져오지 않는 날은 방과 후, 부서진 책상과 걸상을 쌓아두는 옥상 창고에서 밤하늘에 별이 반짝 반짝 빛날 때까지 주구장창 얻어맞아야 했다. 아이와 희찬은 그들에게 한낱 노리개에 불과했다. 벽에 스며든 아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텁텁한 먼지 냄새가 향처럼 피어오르던 지하 창고의 모습을 떠올리자 숨이 끊어질듯 아이의 심장은 강하게 자맥질하기 시작한다. 녀석들의 야유 섞인 웃음과 비열한 목소리, 인분(人糞)의 퀴퀴한 향이 콧속을 지나 머릿속을 어지럽게 헝클어 놓았다. 먹어, 다 먹어. 못 먹으면 죽는다, 미친개의 날선 어조에 아이와 희찬은 인분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인분에서 배어나온 질퍽한 액체가 신문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희찬과 아이는 눈을 찔끔 감았다.
"이 새끼 빨리도 왔네. 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깐 홀가분하냐?"
녀석 중 한 놈이 희찬에게 다가가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희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벽면만 힐끗거린다.
"개새끼가 이젠 대꾸도 안하네. 미쳤냐? 오늘 날이 날이니만큼 거국적으로다 죽도록 맞 아 볼래!? 그 새끼는 어디 갔어? 같이 안 왔어?"
희찬은 다시 벽면을 열별하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똘아이 새끼 자살하려고 했다며…, 미친 새끼, 근데 왜 뒈지지 않았다디?"
희찬은 고개를 들며 조용히 입을 뗀다.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안 되겠냐?"
녀석들은 희찬의 말에 입이 딱 벌어진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 신기해하면서도 할 말을 잃어버린, 한편으로 어이를 상실한 경직된 안면 근육들…. 반격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군인의 억울한 절규가 금세 터져 나올 듯, 분함으로 뒤섞인 분노가 녀석들 얼굴에 가득하다.
"이런 개새끼가! 이거 완전히 미친거 아냐!?"
그때 미친개가 슬그머니 희찬 곁으로 다가온다. 눈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길고 곧게 뻗은 주먹이 희찬의 얼굴에 그대로 내다꽂힌다. 책상과 의자가 희찬의 기우뚱한 몸과 함께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교실 바닥의 차가운 한기가 희찬의 얼굴에 훅 끼친다. 서늘함은 어느새 얼굴뿐만 아니라 온 전신을 휘감는다. 미친개의 검은 주머니에서 날선 이빨이 드러난다. 승냥이의 이빨 같은 매서운 칼날이 희찬의 목을 겨냥한다. 금방이라도 목줄기를 그을 듯 맹렬함이 날 끝에 묻어있다.
"졸업하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지? 응? 이 호모 새끼야…"
희찬의 시선이 점점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이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이상 너희 둘, 내 먹이다. 알겠냐?"
한동안 무르익은 겨울의 냉기에 젖은 채 벽속에 숨은 아이는 녀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희찬은 느낄 수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시선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본질을 잃지 않는 순수한 분노의 열망이 고스란히 희찬의 가슴에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이데아로 거듭 태어난 것인가? 희찬은 인식의 본질을 습득한 아이가 순간 두려워졌다. 고통의 실체는 시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이는 고통의 끝에서 실체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트 옥상에서 끝없이 추락한 아이는 결국 이데아가 되었다. 검게 그을린 저주의 형체가 암흑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이데스의 영원불멸한 원초적 근원으로….
교실 벽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듯 그어지는 균열들이 유리창을 산산조각 낸다. 녀석들은 흠칫 놀라며 부서진 유리파편을 바라본다. 이젠, 빛을 내며 반짝이는 유리조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아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아래 눈부실 정도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왜 저 빛나는 편린의 한 부분일수 없는가? 아니, 한 부분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기운의 한 자락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아이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들었다. 미친개는 내일까지 오십 만원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가져오지 않으면 퀴퀴한 창고에서 코끝이 촉촉하게 집무를 때까지 얻어맞아야 할 것이다.
살갗을 파고드는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친개의 동요에 술렁이는 반 아이들의 눈빛이 무서웠다. 모두들 미친개를 두둔하며 아이를 몰아세웠다. 싫은데 이유가 있냐? 하긴 그렇지. 싫어하는데 이유는 없지. 지금 나이 때에는…. 희찬이에게 미안했다. 희찬이는 괜히 덤으로 미친개의 표독스런 눈빛에 사로잡혔다. 아이는 그래서 일부러 희찬이를 멀리했다. 짜증도 내보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희찬은 아이에게 말했다. 좋은데 이유가 있냐? 그렇지, 우리 나이엔 이유가 없지…. 아이는 희찬의 손을 꼭 잡았다. 미친개의 똘마니들이 발길질로 아이와 희찬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찬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는 희찬의 붉게 부어오른 눈 두 덩이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날 밤, 아이는 결심했다. 내가 없어지면 나뿐만 아니라, 희찬이도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아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15층 옥상 난간 끝에 올라섰다. 밤바람이 무척이나 차디찼다. 아이는 몸서리쳐지는 몸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발끝을 지나 멀리 바닥에 보이는 차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어김없이 무너지는…, 끊임없이 쓰러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도미노. 아이는 마치 도미노 조각의 한 부분이 된 것처럼 몸을 어슷하게 기울였다.
'부서지리라. 이젠…, 빛을 내며 반짝이는 유리조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아이는 희찬이가 작문 시간에 썼던 시(詩) 한 구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이의 몸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미친개가 유심히 바라본다. 매섭게 찌푸린 미간 사이로 나타난 주름이 벽면에 균열이 진 것처럼 흉물스럽다.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을 유심히 살피던 미친개는 교실 벽을 둘러본다. 시선이 벽 곳곳에 닿을 때마다 그의 눈빛이 무섭게 빛나기 시작한다.
"왜 그래?"
녀석 중 한 놈이 미친개에게 묻는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다.
"야, 가서 담배나 피우자."
녀석들은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며 장난스럽게 교실문을 빠져나간다. 희찬은 입가에 터져 나온 핏물을 닦으며 일어선다. 미친개는 자신의 얼굴을 희찬의 얼굴 가까이 가져간다. 냄새를 맡듯 그의 코끝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 놈 어디 있냐?"
희찬은 아까와는 다른 서늘한 표정으로 미친개를 바라본다. 실핏줄이 도드라진 희찬의 눈빛을 보자 미친개는 살짝 당황하는 얼굴이다.
"이제야 네 눈빛이 마음에 든다…."
희찬의 곁을 지나가는 미친개의 숨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깨와 어깨가 스치자 숨이 멈추는 기분에 희찬은 입을 벌리며 호흡을 크게 가다듬는다. 두려움도 아닌, 수치심도 아닌 그 무엇의 감정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경계통의 둔중한 압박. 귀밑까지 흘러내린 식어버린 땀에 희찬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바닥에 빛나고 있는 유리 조각 하나를 집어 든다. 파괴는 이토록 비참한 것인가. 갈가리 찢긴 살결의 조각처럼…. 이젠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미친개에게 당한 치욕스런 기억보다 아이의 눈에서 불타오르는 적개심에 더 허탈한 마음이 든다. 희찬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든다. 벽속에 스며든 아이의 눈이 희찬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그만 둘 순 없는 거니…."
흐느끼듯 입에서 흘러나온 희찬의 목소리에 아이의 동공이 가늘게 떨린다.
"널 되찾고 싶어…. 널 잃고 싶지 않다."
목소리는 이내 촉촉이 젖어든 눈물로 바뀐다. 하지만 아이는 결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어, 이젠…, 어쩔 수 없어…."
아이는 마음속으로 거듭 되뇐다.
아이는 벽을 통해 천천히 화장실 쪽으로 향한다. 텁텁한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화장실에 가까워질수록 아이의 한쪽 뇌가 지끈거린다. 무겁게 짓누르는 둔중한 느낌,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다. 하지만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넌 실체의 한 부분으로 전락할 것이다. 영원히 사물의 근본이 되어 살아가야 한단 말이다. 그래도 복수를 꿈꾸겠는가? 암흑 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아이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네, 어차피 숨을 쉬며 살아간다 해도 절망적일 겁니다.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살아보지도 않고 극단적으로 말하는구나. 크게 실망할 텐데…. 숨을 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고통이긴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고통 속에서 호흡의 의미를 알게 될 날이 분명 있을 텐데…, 그래도 복수를 하겠는가? 네. 아이는 고개를 끄떡이며 확고하게 말했다. 눈을 뜨자, 붉은 혈흔이 묻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아이 주위를 허겁지겁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소리쳤다. 의식이 돌아왔어! 이건 기적이야! 세상에 이럴 수가….
텁텁한 담배연기가 화장실 안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이는 애써 기침을 참아가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선다. 고장 난 환풍기 때문에 미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는 공기를 한층 더 퀴퀴하게 만들어놓았다. 녀석들은 히죽거리며 연신 입으로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다. 그런데 미친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잠시 멈칫한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화장실 안쪽으로 옮긴다. 어차피 미친개는 녀석들 다음차례가 될 것이다. 죽음에 순서를 정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아이는 코끝을 자극하는 담배연기가 죽을 만큼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항상 화장실에서 느껴지던, 희찬과 함께 피범벅이 될 때까지 맞아가며 맡아오던 그 담배연기만을 증오할 뿐이었다. 아이의 눈이 환풍기 쪽을 향한다. 그러자 뽀얀 먼지로 뒤덮인 환풍기 날개가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그러자 녀석들은 조금 당황한 듯 환풍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야, 저거 원래 고장 난 거 아니었냐?"
"그러게…, 뭔 일이래?"
"어? 야, 봐봐, 저 새끼…!"
녀석들 중 한 놈이 아이가 서 있는 화장실 입구 쪽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살아있었네? 마지막이라 서운해서 찾아왔나?"
아이 주위로 녀석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몰려든다.
"심심한 차에 잘 됐다, 담임 오기 전에 딱 열 대만 맞자."
아이의 눈빛은 여전히 녀석들에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개새끼가 눈 안 깔아!? 이게 미쳤나? 마지막이라고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했어."
아이가 슬며시 고개를 숙인다. 심연 속으로 침잠하듯 스러지는 빛처럼 도드라진 동공의 윤곽이 희미해진다.
"새끼…, 쫄기는…. 어…? 허헉…."
녀석들은 자신들의 목이 서서히 죄어오는 기분에 호흡이 가빠진다. 비틀거리며 화장실 벽 쪽으로 녀석들이 물러서자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 고개를 살짝 기운 채 녀석들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아늑해 보인다. 입을 벌리고 헐떡이는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아이는 슬쩍 화장실 안 변기를 바라본다. 빨리 안 쳐 먹어!? 아이의 눈가는 눈물로 얼룩져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반 아이들과 반장의 얼굴이 슬쩍 녀석들의 어깨너머 나타났다 사라졌다. 조용히 고통을 방조하는 듯한 침묵의 속삭임, 반 아이들 중 몇몇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야, 저 새끼 고개 쳐 넣어! 더러운 호모새끼!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물줄기 같은 목소리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아이의 뇌리를 향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거세고 세찼다. 너무나도 세차 아이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끈적한 인분의 느낌이 얼굴을 지나 온몸에 느껴졌다. 아이의 손톱은 변기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발은 버둥거리며 변기를 둘러싼 사면의 벽을 두드려댔지만 고요한 정적이 되어 되돌아왔다. 섬뜩할 정도의 정막이 되어…. 아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검은 실루엣으로 둘러싸인 장막에 아이는 갑자기 밝은 교정으로 휩싸인 온화한 교실이 그리워졌다.
"너희도 먹어야지, 내게 쳐먹였던 것처럼…. 난 똥 보다 더 더러운 것을 먹여줄게…."
녀석들이 숨을 헐떡이며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나이프를 꺼낸다. 스스로의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닌 외부의 힘에 이끌린 행동이었다. 손은 이미 나이프를 꺼내 서로를 향해 있었다. 녀석들은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수록 목은 더 세게 조여 왔다.
"자, 이제부터 서로를 먹는 거야. 더러운 너희에 육체를 말이다. 먹으면서 느껴라. 고통과 괴로움을, 그리고 슬픔을 넘어선 절규를 말이야."
아이는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던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을 가슴으로 되새긴다. 녀석들이 목에 그어놓은 나이프 자국, 자신의 손가락이 목을 스치고 지나가자 온 몸이 파르르 떨린다.
"서로가 서로를 먹을 때까지 정신은 깨어있을 거야. 서로의 육체를 파먹으며 잘 생각해봐. 너희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 고통을 자각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보란 말이야. 썩은 육체는 아름다운 실체로 거듭 태어날 거야. 꽃으로, 풀로, 이름 모를 식물로 말이야. 걱정하지 마. 학교 뒤뜰에 잘 묻어줄 테니…. 보이는 실체보다 더 아름 다운 것은 없으니까…. 그 동안 너희는 본질이 없었던 거야. 이제 그 본질이 실체로 다시 태어날 거다. 이게 내가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다. 그럼, 시작 해볼까."
환풍기는 역한 피비린내를 밖으로 토해내지만 역부족이었다. 바닥으로 흥건한 붉은 혈흔은 강줄기처럼 굽이굽이 배수구를 향해 뻗어 있었다. 아이는 흐르는 핏물의 경로를 따라간다. 차가운 핏물의 진한 끈적임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에 아이는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붉은 진흙처럼 뒤엉켜 사람인지 고깃덩이인지 모를 형체가 아이의 눈에 들어온다. 살점이 하나하나 벗겨질 때마다 팽창하던 혈관과 곤두서는 예민한 신경들이 환각에 취한 듯 꿈틀거렸다. 녀석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서로의 살점을 파먹었다. 육체는 곧 붉은 덩어리로 변해갔다.
환풍기 옆으로 스며드는 빛줄기가 따스하게 아이를 비추고 있다. 손가락을 펴 빛의 따스함을 느낀다. 만지고 싶지만 만질 수 없는 아쉬움, 빛을 손에 쥐려는 듯 아이는 연신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반복한다. 하지만 바닥에 나타나는 건 검게 그을린 손가락 모양의 그림자뿐, 아이는 불끈 주먹을 쥔다.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화장실 입구에 인기척이 들린다.
"으…, 어…,"
두려움과 공포로 일그러진 목소리가 아이의 어깨를 타고 들려온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자 희찬이 서 있었다. 바람에 인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희찬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희찬 가까이 다가가 팔을 벌리며 다가온다. 하지만 희찬은 아이의 팔을 뿌리친다. 사납게 일그러진 희찬의 눈과 아이의 눈이 마주친다. 불꽃에 덴 듯 번쩍이는 눈빛의 충돌, 둘은 한걸음씩 물러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미친 짓이야…. 이럴 수는 없는 거야…."
희찬은 울먹이며 뒷걸음질 치며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아이는 사납게 희찬의 어깨를 밀치며 벽으로 몰아세운다.
"똑바로 봐. 응분의 대가야. 너하고 나, 저 새끼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기억 안 나?"
희찬은 그로기 상태에 빠진 듯 고개를 흔들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희찬의 떨림에 아이의 몸도 가늘게 요동친다. 순간 매섭던 아이의 눈이 온화하게 바뀐다.
"이제 빚은 없는 거야."
"빚이 없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희찬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사그라진 흥분 뒤에 공허함만이 동공 속에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아이는 돌아서서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결국 이 짓을 하려고 그런 능력을 허비한 거야? 예전에 내가 알 던 넌 정말 어디로 간 거지? 오히려 옛날에 네 모습이 더 좋았어. 옛날에 넌…, 미약하지만 아름다움이 있는 녀석이었어. 그런 무구한 눈빛이 좋았다고…. 순수했던 넌 어디로 간거야…? 넌 대체 누구야!?"
돌아서던 아이는 다시 거세게 희찬의 등을 떠밀며 벽에 몰아세운다.
"옛날에 김경수는 죽었다. 그 멍청하고 바보 같았던 녀석은 죽었다고…. 정말 한심한 놈이었지. 이젠 새로운 이데아로 태어난 김 경수만이 여기에 존재하지. 저걸 봐. 육체를 핏빛으로 뒤덮을 수 있는 본질적 근원을…. 스스로 근원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자만이 여기에 존재해. 알아!"
아이는 거칠게 희찬을 화장실 밖으로 떠민다.
"가라. 너도 죽기 싫으면…. 오늘 졸업식은 그리 즐겁지 않을 거야…."
아이는 시뻘겋게 변해버린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손으로 핏물을 묻힌 뒤 얼굴에 바른다. 아이의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붉은 빛으로 물든다. 아이는 자신이 썼던 시(詩)의 한 부분을 천천히 떠올린다. 녀석들에게 억눌려왔던 분노를 떠올리며 썼던 시….
붉은 피는 분노를 부른다. 스스럼없는 순수한 분노를 말이다. 절망을 뒤집어쓰고, 절규를 부르짖는다. 끝없이 타오르는 태양 빛은 붉은 피와 함께 어둠속을 향해 타들어가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끝자락엔 복수의 칼날이 자라날 것이니, 그 속에서 나는 홀로 노래하리라. 고통으로 일그러진 광기의 슬픔을….
‘부서지리라. 이젠, 빛을 내며 반짝이는 유리조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역시 시는 자신보다 희찬이 더 잘 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의 몸은 이미 붉은 노을빛으로 변해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아직 노을이 지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하겠지만…. 아이는 어서 빨리 태양이 사라지길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어차피 어둠도 만들면 되지….'
오늘은 한 명도 결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천천히 붉게 물든 녀석들의 육체 덩어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안개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다 이내 재로 변해버린다. 마침 청소 도구를 넣는 소도구함에 들어 있는 비닐을 집어 들어 재를 담는다. 결국 이렇게 한 줌의 재가 될 것을…, 아이는 손으로 재를 쓸어 담으며 생각한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사물 중에 가장 헛되고 하찮은 것이리라. 그런데 정말 죽음이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근원일까? 정말, 아이데스의 말이 맞는 것인가…?'
아이는 순간의 희찬의 얼굴에서 떠오른 슬픔에 묘한 의구심이 들었다.
바람에 흩뿌려지는 가루를 아이는 멍하니 바라본다. 손끝에서 사라지는 작은 알갱이들의 미세한 감촉을 느끼며 사방으로 재를 뿌린다. 바람에 미쳐 날려가지 못한 재들은 땅 밑으로 떨어진다. 그래, 이렇게 하늘로, 땅으로 사라지는 거다, 미련 없이…. 아이는 눈을 감고 여전히 뇌리에 간직된 희찬의 얼굴을 떠올린다. 빚이 없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희찬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희미하게 들려온다. 아이는 고개를 흔든다.
"새로운 기회를 주는 거야…. 새로운 기회를…."
아이는 마치 주문처럼 되뇐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진정시키려 팔 전체를 흔들어보지만 소용없다. 떨리는 손가락을 움켜쥐며 주먹을 만들어 거칠게 허공을 향해 내지른다.
"빌어먹을…!"
아이는 가루가 담긴 검은 봉지를 바닥에 패대기친다.
"후…."
길게 한 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본다. 햇살은 여전히 아이의 얼굴을 싱그럽게 비추고 있었다.
"후회하는 거야?"
아이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들짝 놀란 아이는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긴 생머리가 햇살에 닿자 반짝 빛을 낸다. 처음엔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실체가 나타났다. 그녀가 아닌, 그….
"아…, 아이데스…. 여긴 어떻게 온 거죠?"
"음, 역시 실체가 된다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야. 내게 맞지도 않고 말이지…."
그는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몸 구석구석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이봐, 뭘 그리 망설여?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자네가 말한 대로 어서 실행에 옮겨야지. 난 그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야…."
그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귀에 대고 살며시 속삭인다.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멀뚱히 서 있기만 한다.
"제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말에 그는 의아한 얼굴로 말문이 막힌 듯 양 팔을 벌리며 서 있다.
"무슨 소리야? 자네가 선택했잖아. 지금 장난해? 내가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했지, 그런데 고집을 피운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 내가 괜히 이런 장난질이나 하라고 능력을 준 같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빨리 실행하도록 하라고, 남김없이 분출하라니까. 뭐하고 있어!? 복수의 핏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게 폭발시켜! 어서!"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아이는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는다. 그러자 그의 상기됐던 표정이 여유로운 듯 느긋해진다. 그도 아이와 함께 무릎을 굽히며 어깨를 감싼다.
"이봐! 어차피 실행해야할 일 아닌가, 그동안 저놈들이 자네에게 했었던 일을 떠올려봐. 지금 이건 그들을 죽이는 게 아니야, 다시 세상에 환원하는 거룩한 의식이라고. 더럽혀진 영혼들을 다시 정화시키는 고귀한 행위야. 괜한 사심에 흔들리지 말게. 신념을 확고히 하라고. 이 복수는 순수한 거야…. 자네가 한 말이 맞는 거야, 알겠나? 자, 당당히 일어서서 이데아가 되어 본질을 꿰뚫어 보게. 어서!"
아이는 천천히 무릎을 펴고는 몸을 바로 세운다. 눈빛이 다시 붉게 변해간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 정도로 자맥질하기 시작한다. 붉게 젖어든 동공이 교실을 노려보고 있다. 아이의 등 뒤에서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린다. 은폐된 검은 미소….
아이는 다시 벽속으로 스며들어 교실로 향한다. 희찬은 서서히 벽속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아이와 희찬의 눈빛이 마주친다. 서로에게 향해 있지만 엇갈려버린 갈등은 깊은 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너무나 깊어 보이지 않는 우물이 되어, 이젠 결코 서로를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잡으려하지만 잡히지 않는 서글픔만이 밀려든다. 희찬의 입에서 깊은 한 숨이 탄식이 되어 터져 나온다. 차갑게 변해버린 아이는 더 이상 희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순백색의 천진한 모습이 아니었다. 희찬은 교실을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희찬 옆으로 화장실에 들어선 아이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희찬의 입 주위로 엷은 미소가 번져나간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무덤덤한 웃음이 입가에 엷게 번져나간다.
교실은 이미 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고 있다. 아이는 벽속에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입술을 슬며시 감쳐문다. 저들도 녀석들의 동조에 휩쓸려 나와 희찬을 경멸했어, 그래 분명 그에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호모새끼들! 죽여 버려…, 재수 없어, 밥맛 떨어져….'
귓가에 맴도는 반 아이들의 앙칼진 목소리가 비수가 되어 폐부 깊숙이 찔러온다. 아이는 왼쪽 가슴에 손을 가져간다. 저릿한 고통이 이내 아픔으로 다가온다. 심장이 갈가리 찢겨지는 기분에 아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주먹이 떨린다. 어서 끝내야겠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벽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에게로 향한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아이를 보자, 교실 안은 파도처럼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들 사이에서 미친개의 모습도 얼핏 보인다. 냉소적이지만 어딘가 한껏 두려움에 일그러진 표정, 공포감에 젖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자 아이는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불길한 예감을 감지한 반 아이들이 서둘러 출입구를 향해 달려가지만 문은 굳게 닫히며 움직이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에 올라 뛰어 넘어보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려 쉽지 않다. 바닥에 널린 유리조각들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너희의 눈과 입에서 광기어린 슬픔을 느끼게 해주지. 잘못을 했으면 혼이 나야겠지…?"
유리 조각이 빠르게 반 아이들의 입과 눈을 향해 날아간다. 교실 안은 이내 붉게 물들어간다. 사방으로 튀는 핏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식도를 타고 들어간 유리조각은 심장을 간통한 뒤, 다시 눈 밖으로 튀어 나온다. 희찬의 눈에 비친 붉은 피가 거센 물결처럼 일렁인다. 희찬은 자신의 발아래 떨어진 유리조각을 집어 든다. 광기어린 슬픔에 젖은 아이의 얼굴을 본 희찬은 눈을 감는다.
"깨진 유리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
희찬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소리는 멀리 교내를 휘감는 바람과 함께 하늘로 흩뿌려진다. 붉은 선혈이 희찬의 목 줄기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하얀 교실 벽이 시뻘겋게 젖어갔다. 반 아이들이 흘린 핏물을 온몸으로 흠뻑 맞은 아이는 두 눈을 감는다. 천천히 눈을 뜨며 바닥에 쓰러진 반 아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교실 출입문 밖에 쓰러져 있는 희찬을 발견한다.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낀 아이는 온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어…, 희…, 찬아."
여전히 희찬의 목줄기에선 붉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애써 멈춰 보려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희찬의 피는 차갑게 식어버린 뒤였다.
"짝짝짝…."
등 뒤로 박수소리가 들린다. 음습하고 고요하게, 그리고 황폐한 사막에서 불어오는 텁텁한 바람처럼 척박하게…. 아이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였다.
"자, 이제 됐군. 어서 가지…."
"이건…, 이, 이러려고 한건 아닌데…."
"모든 건 끝났어. 후회해도 소용없어."
"이대로 갈 순 없어요. 희찬이만은 살려줘요…."
"복수는 항상 희생을 동반하지. 자, 시간이 없어. 어서 가자."
아이의 몸이 조금씩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사지가 서서히 벽과 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을 아이는 느낀다. "모든 게 끝났다."
하나를 위한 전체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 전체가 되라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다. 회색빛 외벽은 아이들의 목을 죄어오고, 고통은 점점 속박으로 변해가는 이 네모진 공간에 누구를 위한 전체, 누구를 위한 하나가 되라하는가? 전체에 길들여지길 원하는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가? 세상은 네모진 틀 속에 밀어 넣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몇몇 하나를 위해 고귀한 번호를 붙여가는 세상아! 너는 1이 되고, 나는 2가 된다. 단 하나를 위해 뭉쳐진 의미 없는 나열들….
어쩌면, 그 아이도 하나가 되기 위해 어둠속 이데아의 동굴에 숨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밝게 드러나는 하나가 되기보단, 전체를 위한 정의를 세운 것인지도…. 그러나 그 아이도 결국 벽속에 갇힌 이데아일 수밖에 없다. 하나가 될 수 없었다. 이데아는 또 하나의 이데아로 거듭 태어날 뿐이다. 그 아이 역시 축축한 외벽 속에 침식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오늘 난, 아이를 설득할 작정이다. 어쩌면 나까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막을 것이다. 실체가 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하나는 결코 실체가 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데아 역시 하나일 수 없다. 죽음이 내 가슴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해도 나는 아이를 막아야 한다. 내가 아이를 사랑했던 것만큼 아이 역시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따뜻함을 숨겨놓았겠지…. 나는 그 따사로운 실체만을 믿을 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 희찬의 일기 중에서
- THE END -
첫댓글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세상 어디에도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서 주제를 잘 표현한 것 같네요.
퇴고를 안하신 글인가 봅니다. 띄어쓰기가 맞질 않네요.
아. 정말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소설입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가슴속에 있는 울분이 그대로 엎질러져 버린 핏물 같았던 글입니다. 묘사력이 보통을 뛰어넘으시는 것 같군요. 어려운 문장임에도 워낙 문체가 깔끔해서 잘 읽혔습니다. (아 근데 한 부분 아직 퇴고가 덜되어 의미가 불분명 했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을 대체적으로 두 종류였습니다.
사건을 위주로 하는 대사소설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인공의 내면으로 몰입되어 그만의 철학을 풀어내는 소설. 이 글은 주인공이 저 혼자 하는 혼잣말(철학)이 꽤 인상 깊더군요. 또한 가볍지 않은 주제와 생각을 요하는 문단들이 꽤 흥미롭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도 되었고요. 근데 저는 크리스탈님과는 좀 의견이 다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과 동굴 이야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글을 읽는 도중에 독자들이 알아서 자진 포기해 버릴 것 같습니다. 그건 이 글이 못나서가 아니라 대중적인 성격보다는 매니아적인 느낌이 더 강한 글이라서 그럴 것 같습니다. 모든 글이 모든 대중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요. 또한 아이가 이렇게 망가져 버린 것에는 충분한 타당근거가 있다고 보여 지네요.
다만. 저는 이렇게 독하게 변해버린 아이가 마지막 복수의 순간 갑자기 어설픈 고민을 하는지 그게 좀 이해가 안 되더군요. 마지막에 어떻게 더 잔인하게 복수를 할까 기대하고 있던 찰나 맥이 풀려버리더군요. “아이가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숨겨둔 따뜻함의 실체 때문일까요?” 그리고 마지막 희찬이가 하는 독백은 마지막 여운을 남기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제가 깔끔하게 정리는 되어 이해하기에는 좋았지만 이 글의 해석본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깨진 유리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 라는 말이 자꾸 되뇌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생과 사의 순간 지녔던 다양한 이데아는 마친 깨진 유리와 같았습니다. 희찬이의 말대로 주인공이 따사로운 실체를 되찾게 된다면 깨진 유리가 아닌 아름다운 유리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자게에 쓰신 글을 보고도 다섯 번을 읽지 못해습니다;;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만한 평을 단 거 아닌지 걱정되지만 그저 독자의 맘과 시선으로 써보았습니다. 언제나 건필하십시오.
잘 읽었습니다. "이데아의 아이들"을 읽기 전에 저는 왠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란 곡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이데아와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과 교실이라는 단어들이 모종의 연상 작용을 일으킨 것 아닌가 싶더군요.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다른 댓글들을 보면서 역시 작품이란 수용자(독자)의 감각기(경험, 관점,선택)에 따라 여러모로 받아들여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이 작가의 손을 벗어난 작품(텍스트로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닌다는 말에 다름 아닌가 싶더군요. 자유게시판에 님의 글을 읽고 바로 와서 댓글을 다는 제 경망함도 어느 정도 작용할 것이나, 소통을 위한 시도로서 님께
제 부족한 감상평을 짧게나마 올려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작가이신 님의 직접적인 댓글을 통한 답변을 좀 주신다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데아의 아이들'에서 '폭력'이라는 문제를 봤습니다. 누군가 플라톤의 동굴을 운운하던데 저는 이 소설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으로 삼을 수 없더라구요. 이 '폭력'은 구체적인 사건으로는 '아이'와 '희찬'의 동성애적 문제를 발판으로 이른바 학교폭력으로 드러나고 이는 '아이'의 자살시도(자살)로 플롯이 짜여져 있습니다. 동시에 학교라는 집단은 '하나의 전체'를 향한 정치 사회적 폭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회색빛 콘크리트, 사각, 동굴 등) 그래서 그 폭력의 희생
양은 전반적인 학생(아이들)들이면서 동시에 그 학생들 속에서도 중층적인 폭력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데아로 시작된 제목과 소설의 시작 "삶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시작 되었을까,란 질문을 해 봤습니다. 또한 작중 몇 차례 본질과 실체에 관한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폭력성을 인간 본성의 하나로 보고 있는 작가의도로 읽었으며, 동시에 이 글을 통하여 작가의 폭력에 피해자로서 그 아픔을 보았습니다. 그 아픔은 아직 작가 개인적으로도 승화되거나 해결을 하지 않은 상태로 응어리져 있다고 또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데아란 "실재"가 작중에선 "개인의 개성(차이의 존중)"이
물리적 폭력과,몰개성이란 이름의 정체성에 대한 폭력성으로, 하나의 집단을 통제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표상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 폭력의 끔직함은 피해자의 깨진 유리뿐만아니라, 가해자의 잔혹성과 복수자의 복수의 칼날 앞에서 또한 반복의 고리를 지닌 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느낀 의문은 '실체'와 '이데아'의 경계가 따사로움(평화)과 폭력으로(무폭력으로) 자리하는 데 있어 어두운 답안만이 자리 하는 것은 왜 일까,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체념으로 갈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더군요. 그렇기에 '아이'는 희찬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대응적 폭력)이며 동시에 우리가 체념으로 습득한 폭력의 발로로
읽을 수 있는것 아닌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데아의 아이들'에게 있어, '이데아'는 어디이고 무엇일까에 대한 회의적 의중을 읽었습니다. (혹시 '사랑'인가요?) / 제가 초점으로 보는 '폭력'이 맞다면 좀더 많은 이야기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기에 여기서 멈춥니다. 잘 읽었습니다.
내용과 부합하는 제목이긴 하지만, 다소 제목이 진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