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블로그/ 토이 크레인 - 조영석
사내는 소주의 목뼈를 움켜쥐고 있었다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몇 닢을
얼어터진 손바닥 위에 펼쳐보았다
녹슨 입술을 굳게 다문 구멍가게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앉은뱅이 크레인 앞에서
사내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눈꺼풀 없는 인형들이 크레인의 뱃속에서
불면의 눈알들을 치뜨고 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스름의 날들
사내는 단 한 번도 등 푸른 지폐였던 시절이
없었다 동전 속에 입김을 불어넣고
크레인의 몸속으로 몸소 들어가는 사내
허공을 향해 허깨비를 잡으려 손을 허우적거렸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것이
어디 쓸모없는 것들뿐이었겠는가
사내는 크레인 몸속으로 들어가
푹신한 인형들 속에서 잠이 들었다
크레인의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목뼈가 부러진 소주 한 병이
조용히 맑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영석, 「토이 크레인」 전문
“소주의 목뼈를 움켜쥐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몇 닢을/ 얼어터진 손바닥”에 들고 한 사내가 구멍가게 앞 토이 크레인 앞에 서 있다. 빈곤이랄지 절망이랄지 하는 말들조차 숨 쉴 만한 자들의 그럴듯한 호사 취미에 불과하리라. 몸과 마음을 붙일 그 무엇도 무너졌으리라. 집착할 그 무엇도, 집착할 힘도 다 놓쳤으리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스름의 날들”이었다고. 또는 “단 한 번도 등 푸른 지폐였던 시절이/ 없었다”고 사내의 생은 요약된다. 마침내 소주병을 엎지른 채 토이 크레인 곁에 잠든 이 사내에게 대체 생은 무엇이겠는가. 그를 ‘시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체 어떤 일이겠는가. 어떤 경로로 가능하겠는가. 어려운 공안(公案).
조영석의 시편들은 어둡다. 희망의 기척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그만큼 우울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시인의 비관이 그만큼 깊은 것인지도. 비참에 대한 시인의 탐사는 건조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계속된다. 그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그 건조함과 집요함으로 해서 미덥다. < ‘시를 어루만지다(김사인, 도서출판 b, 2017.)’에서 옮겨 적음. (2024. 6.13. 화룡이) >
첫댓글 그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그 건조함과 집요함으로 해서 미덥다.
역설이 아름답기도 하는군요....
알다가도 모를 듯한 시의 세계,
어쩌면 우린 그걸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닌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