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머무는 자리
네이버블로그/ 026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다
③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다
4·19 학생 의거가 있었던 해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던 최문환 교수, 고려대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던 조승순 교수와 같이 춘천을 방문하였다. 강연회의 연사로 초청을 받았던 것이다.
강연회를 끝내고 강당 출입문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약간 연세가 높아 보이는 한 장년이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물어왔다.
“제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선생께서 오래전 숭실학교 재학 시절에 평남 영유군 덕지리에 오셔서 여러 날 동안 강연을 해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예, 그랬습니다. 옛날 일인데 잘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틀림없군요. 사실은 오늘 제가 선생님 강연을 들으면서, 언젠가 저분의 강연을 들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덕지리 교회의 집회가 기억에 떠올랐습니다. 확인할 길은 없어도 그 당시에 치아가 몹시 특이하게 보여서, 이나 좀 곱게 생겼으면 좋겠다고 몇이서 얘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뒤따라오면서 살펴보니까 그때 보이던 치아와 같아 여쭤보았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오늘 강연해주신 내용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는 만족한 모습으로 군중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못생긴 이도 내 인상을 살려주는 것이라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 뒤 2~3년이 지났다. 나는 왼쪽 앞니 두 개가 썩어 치료를 받아야 했다. 위 치아였기 때문에 뽑으면 볼썽사납기도 할 것 같아 여름방학을 기다렸다가 적십자병원 치과를 찾았다. 내 후배가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던 때였다.
몇 차례에 걸쳐 치료를 끝낸 후배가 말했다.
“형님, 제가 치료를 해드렸는데 보철을 해 넣는 일은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특이한 케이스여서 말입니다. 형님 같은 비정상적인 치아만 취급하는 특수 치과가 있습니다. 화신백화점 뒷골목에 가면 대원치과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저보다 경험도 많은 선배인데 보철이 어려운 환자들만 돌봐줍니다. 죄송하지만 그것이 형님께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을 달리하면 쫓겨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못생긴 치아는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원치과의 의사는 퍽 친절했다. 몇 차례 살피고 나더니, 특수 공법을 써서라도 치아를 살려보자는 언질을 주었다. 여러 차례 치료를 거쳐 힘들게 공정을 끝낸 의사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마 30년쯤은 쓸 수 있을 겁니다. 사고를 일으키거나 크게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이가 썩어서 못쓰게 되면 선생님 제가 치료해 드릴 테니, 안심하십시오.”
거울을 들여다보니 치료를 받기 전보다 훨씬 보기에 좋았다. 걱정하던 가족들도 이전보다도 미남자가 되었다면서 반기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 옛날 모습은 잊게 마련이다. 그 치아를 가지고 40년을 살았다. 자연치가 아닌 의치였기 때문에 색깔이 많이 달라져 흉하기는 했어도 긴 세월을 지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러던 치아가 못쓰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봉직하고 있던 세브란스 치과대학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부터 내 치아를 보아주던 이 교수가 말했다.
“결국 다시 빼고 새로 해 넣어야겠는데, 이번에는 옆의 치아와 같은 색의 의치를 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보기는 좋아지겠지만 저희들이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선생님의 이미지와 좀 달라지겠는데요? 서운하셔도 예뻐지시는 편이 좋지요?”
옆에 있던 젊은 의사도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연세는 많으셔도 예뻐지셔야지요.”
정말 예뻐지는 것인지 아니면 작업하기 쉬은 편이니까 다짐해보는 것일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늙었어도 흉한 것보다는 예뻐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이 교수는 젊은 의사들에게 “옛날에는 지금 같은 재료나 기술이 없어서 이렇게 금속물을 치아 안으로 첨부시켜 보존하는 공법을 사용한 일이 있었다”면서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역사적인 자료로 남겨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봄 늦게 시작한 치료와 보철 작업은 여름에 접어들어서도 계속되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어금니나 숨겨진 위치의 치아가 아니라 입만 열면 드러나는 왼쪽 앞니였기 때문에 두 달 남짓 임시로 만든 틀니를 달고 다녀야 했다. 말을 하거나 강연을 할 때는 거북스럽기도 했고 혼자 집에 있는 동안에는 보기에 흉하고 바보스럽기는 해도 없는 편이 편해서 빼놓고 지내기도 했다. 여름이 되어서야 잇몸이 굳었고 옆의 치아들과 균형도 잡혀 공사가 끝났다.
공사라는 말이 과장되기는 해도, 치과에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기술적인 치료와 보철보다는 공사라는 개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들겨 맞추기도 하고 땜질도 해야 한다. 임시로 만들었던 의치의 쇠고리를 새로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공사가 끝난 뒤 이 교수는 옆의 간호사에게 거울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의자에 누워 있는 나에게 물었다.
“전보다 보기에 어떠세요?”
나는 외형이 어떠냐보다는 얼마나 오래 말썽 없이 쓸 수 있느냐가 관심의 전부였는데, 보철 전문 의사들은 환자의 전보다 보기 좋아졌다고 흡족해하는 편을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는 조심만 하면 10년은 더 사용해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그럼요! 이전 것처럼 색깔도 변하지 않고, 혀가 닿는 안쪽도 쇠붙이가 아니기 때문에 부드럽고 편해집니다. 얼마 동안은 살아 있는 치아가 아니기 때문에 촉감이 좀 이상해도, 오래 지나면 살아 있는 이들과 차이가 없어집니다. 보기는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지요? 양쪽 송곳니가 워낙 덧니여서 그 이상은 더 예뻐지지 못합니다. 의심스러우시면 이전에 찍었던 웃는 사진하고 한번 비교해보시지요!”
내가 보아도 남만은 못하지만 이전보다 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미남자까지는 못되지만…….
이 교수와 수고해준 몇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이 교수가 한마디 덧붙인다.
“사모님이 계셨으면 기뻐하셨을 텐데…….”
나는 돌아서서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렇네요. 예쁘다고 관심 있게 보아줄 사람도 없고……. 그래도 평생 고민했던 부담을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교수는 ‘한평생 흉하게 생긴 치아만 보고 살다가 예뻐진 남편의 치아를 보면 기뻐하셨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 양치질을 하고 치아를 거울에 비춰보니, 훨씬 예뻐지기는 했으나 나 같지 않아 보였다. 세월이 지나면 옛날 모습을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고마운 세상이다. 얼마의 비용이 들기는 했으나 수십 년 동안에 여러 분이 정성스레 치아를 보아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치아들을 보전하고 사용할 수 있지 않았는가.
치아만이 아니다. 요사이 다 희어지고 가늘어진 머리카락이 보기 흉하게 자라면 이용소 아저씨가 몇 푼 안 되는 대가를 받고 정성 들여 손질을 해준다. 이발사들이 몇 푼 수입 때문에 이런 일은 안 하겠다고 문을 닫는다면 누가 내 머리를 손질해줄 것인가.
나는 또 안경을 쓰기 때문에 안과와 안경점에 가야한다. 얼마의 돈만 지불하면 최선의 서비스와 도수가 맞는 안경을 구할 수가 있다. 어떤 때는 안경알은 독일에서, 안경테는 이탈리아에서 주문해온다고 들었다. 한 번도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를 손쉽게 받는 셈이다. 안경점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입는 옷이며 신는 구두 모두 세계 여러 지역에서 양을 치고 소를 키워 제공받은 것들이다. 수많은 기술자의 땀과 정성이 쌓여 천과 양복이 되고 구두가 되어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을 위해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수고해준 것이다. 정말 고마운 마음씨과 사람들이다.
물건만이 아니다. 내 지식과 생각도 나를 사랑해준 스승들, 친구들, 때로는 옛날 학자들과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내 노력과 수고의 몇백 배 몇천 배가 되는 정성과 업적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하기야 내 육체와 생명, 건강은 물론 삶 자체도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혜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내게 주어진 한 가지 일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고마운 노릇인가. 그 한 가지 일도 열심히 하자면 모두가 감사하다며 칭찬해준다.
인간은 모두 한 가지 일로 아흔아홉 가지 은혜에 보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다 보답하면서 살 수 있을까!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김형석, 열림원,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6.13. 화룡이) >
첫댓글 인간은 모두 한 가지 일로
아흔아홉 가지 은혜에 보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베푸는 고마움은
내가 받는 고마움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것임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