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시,수필)
[동유럽여행기] 8일차(독일/로젠베르크) ... 8/20, 월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청명한 하늘에 낮최고 27도 정도의 기온이다. 그러고 보니 도착한 첫날만 구름이 두텁게 꼈을뿐 여행기간 내내 맑고 쾌청한 날들이었다. 가이드조차 유럽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내내 좋은 날씨를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며 축복받은 팀이란다. 덕분에 여행은 8일 내내 충분히 즐긴 듯하다.
이른 아침을 먹고 7시반에 중세도시 로젠베르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라 일정이 바쁘다. 차는 바로 아우토반에 오른다. 창밖은 여전히 옥수수밭과 채소밭, 과수원, 나무숲들이 주류를 이룰뿐, 산은 보이지 않는다. 내륙으로 옮겨 갈수록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 시설들이 눈에 많이 띈다. 얼마 전 독일이 국민투표에서 후손들을 위해 더 이상 원자력발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가 기억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태를 보며 비씬 전기료를 감수하기로 한 것이리라..
두 시간 정도 달리니 왼쪽에 긴 벽이 연이어 있는 거리에 차가 멈춰선다. 로젠베르크 성이다. 로젠베르크는 로만틱 가도(로마인들이 건설한 도로)에 있는, 인구 1만2천명 정도의 중소도시지만 연간 300만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란다. 이곳은 13~14C경에 구축된 성곽(1000* 700m) 도시로, 종교전쟁(1618~1648) 때도 2차 세계대전 때도 폭격을 면한 행운의 도시다. 덕분에 성곽 내 시가지가 7~800년전 중세 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성곽 안으로 향한다. 성곽 밖에 공원 정원수로 심어놓은 사과나무에 사과들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성곽 내부의 도로는 모두 화강암 블럭들로,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듯 윤이 번지르하다. 중앙로를 따라 로젠부르크의 중심지인 마르크트 광장으로 향한다. 붉은색 지붕의 중세 건물들과 이색적인 외관들, 글을 못읽는 사람들을 배려한 그림 간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르네상스 양식의 구시청사 건물과 고딕양식의 건물로 190여년에 걸쳐 완공되었다는 성야콥 교회, 종교전쟁 때 3.25L의 와인을 단숨에 마셔 마을을 폭격의 위기에서 구한 시장과 필리장군의 에피소드를 묘사한 건물, 주말시장터, X-Mas 상설가계 등을 돌아보고 이제 프랑크푸르크 공항으로 향한다.
어느 새 8일간의 동유럽 여행의 마무리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 돌아본 국가는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루아티아, 슬로베니아, 독일 등 동유럽 여섯 개국, 수박 겉핥기식으로 돌아본 것이긴 하지만 오랜기간 공산권이었던 동유럽을 대략적으로 나마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선 지형적으로 이들 국가들은 알프스 산악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지가 많고 밭농사와 낙농업을 주로 한다. 작물은 사료용 옥수수가 제일 많고 해바라기와 홉, 포도, 사과, 양배추 등도 많이 재배한다. 석회암 지대가 많아 수질은 별로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몸안에 쌓인 석회질을 씻어내기 위해 맥주를 많이 마신다. 어느 나라나 고유의 맥주 브랜드가 있고 원료인 홉 재배를 많이 한다. 종교적으로는 대부분의 국가가 가톨릭을 국교로 택하고 있어 어느 도시를 가나 오래된 성당들이 있고, 종교가 시민들의 생활 속에 깊게 파고들어 있다, 사회, 문화적으로도 가톨릭과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작곡가와 화가 같은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성당과 궁궐 등 상류층으로 갈수록 높은 수준의 예술성이 요구되며, 유명 작곡가와 화가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인구밀도는 낮은 편이고, 민족적으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게르만족, 헝가리는 훈족, 나머지 국가들은 슬라브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민족간 많은 전쟁을 치른 국가들이기도 하다. 주요 도시마다 트램(전차)이 다니고 주택가 창가에 벌레 퇴치 목적의 제라늄을 심는 것도 공통적인 듯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는 국민소득이 8천에서 2만불이 채 안되는 개발도상국 수준, 산업은 낙농업과 관광산업이 주를 이루고, 국가별로 체코의 유리공예나 헝가리의 의료산업 같은 특수산업이 발달해 있다. 전반적으로 구소련이나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지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각국 나름의 노력으로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은 기회의 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5~10년 후에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나라들이 더 이상 이민족들로부터 수난을 당하지 않고 평화로운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