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블론 Romblon으로.
설사는 없었다.
다만, 다리가 여전히 쑤시고 따끔거린다.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상처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11시 배를 타기전 시간이 남는다.
롬블론 시장에가 아침을 먹었다.
지방마다 특별한 음식이 있으면 맛보고 싶었는데,
대부분 비슷비슷한 음식을 판다.
가격이 저렴한게 그나마 마음에 든다.
교회에 돌아오니 주디 목사님이 타블라스에 있는 동료 목사에게 연락을 해두었다고 했다.
오늘 밤은 그곳에 머물 수 있다.
내 처지에 숙박을 예약 다 한다.
감사한 일이다.
이러다가 교회만 찾아다니게 되는건 아닌지.
타블라스 오죵안 Odiongan 행 배를 타러 항구로 갔다.
버스와 트럭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마닐라에서부터 민도로, 파나이의 일로일로 Iloilo 까지 화물을 싣고 간다.
배로 한번에 이동하는 것보다 바다를 두 번 건너더라도 민도로를 이용해 가는 것이 저렴하다고 한다.
항구에서 수속을 마치고 항만에 들어섰다.
멀리 까띠끌란으로 가는 카훼리가 보이고, 그 옆으로 펌프보트가 정박해 있다.
펌프보트.
사람하나 간신히 넘나드는 발판이 걸쳐져있다.
오토바이를 싣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은 나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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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표를 살 때 오토바이를 실을 수 있다했다.
승선요금도 사람보다 비싸다.
그런데, 불안하다.
너울에 배가 흔들린다.
사람도 자칫 중심을 잃으며 바다로 떨어질 판이다.
선원에게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란다.
어떻게 방법이 있겠지하면서도,
자꾸 까띠끌란으로 가는 카훼리에 눈길이 간다.
그냥, 파나이로 갈까.
이미 표를 끊었다.
환불하고, 다시 카훼리를 탈까 고민하는 사이.
모든 짐을 옮긴 선원들이 천둥이에게 다가왔다.
걱정이 되어 다시 물었다.
배에 실을 수 있다고 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리에 그려졌다.
검푸른 바다 속으로 천둥이가 수장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뒷 짐을 풀어내리고, 사람들이 천둥이를 옮긴다.
역시, 그들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
모습을 지켜보니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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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배안으로 천둥이를 옮기더니, 다시 지붕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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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들은 종종 한국인의 눈에는 불가능 해 보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낸다.
트라이시클 한대에 10명의 사람이 타는 것도 그렇지만, 배 지붕위로 오토바이를 올릴 줄이야.
지난번 천둥이를 끌고 2km 넘게 산을 넘어온 것도 그렇다.
대단한 일 해냈다는 내색도 없다.
아무렇지 않은 그들의 표정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곧 네 시간의 항해가 시작된다.
바다는 잔잔하다.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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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전에 잠시 빨래를 말렸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지 몰라 그냥 눈치보면서 널었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배가 떠나는데 말도 안해줘서, 부랴부랴 걷었다.
한 20여분 말렸는데, 그럭저럭 잘 말랐다.
드디어 출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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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민도로.
바탕가스를 떠날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짧은 시간동안 정이 들었다.
만나고,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을 되새겼다.
그들을 남겨두고 나만 떠나는 듯한 기분.
이 바다를 건너면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삶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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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 동안 뭘 할지 걱정이다.
사람들이 촘촘히 앉아 잠 잘 자세를 취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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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조타석은 맨 앞자리에 있다.
나침반이 하나 달린 것 말고는 다른 계기는 없다.
시계항해만 가능하다.
답답해서 좌현 통로에 나왔다.
시원하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지만, 퉁퉁 부어오른 발을 내밀어 열기를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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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잔잔한 바다는 처음이다.
파도가 전혀 없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배는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
배의 속력은 8-9 knot (14km/h).
마라톤 선수가 2시간에 40km를 달리니, 그보다 느린 속력이다.
그래서 고작 55km 거리를 가는데 네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이다.
롬블론에는 세 개의 큰 섬이 있다.
제일 큰 타블라스, 가운데 송편처럼 생긴 작은 섬 롬블론, 그 옆으로 시부얀 Sibuyan 섬이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타블라스의 오죵안에 있는 또 다른 감리 교회.
서서히 타블라스가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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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라스는 어떤 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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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가 점점 가까워 왔다.
지루한 여행에 지친 승객들이 마음부터 앞서 미리 짐을 챙긴다.
나는 어차피 천둥이를 내려야 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항구에 배를 대자마자, 짐꾼들이 밀어닥친다.
짐을 날라주고 작은 팁을 받는 사람들이다.
먼저 고객을 확보하는 사람이 임자다.
누가 짐을 맡길지 모른다.
10명도 넘는 짐꾼들이 잽싸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고객을 찾는다.
내 앞에 나이든 짐꾼이 내 큰 배낭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직접 메고 내리면 되는데.
이 남자는 오늘 사람을 잘못 골랐다.
이미 다른 짐꾼들은 가방이며 봇짐을 한 두개씩 확보한 상태.
나 때문에 허탕친 이 남자가 괜히 안돼 보였다.
마음이 약해진다.
결국 배낭을 맡겼다.
이 남자가 일부러 동정심 유발작전을 썼던 것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짐꾼을 앞세우고 배를 내리니, 얼굴이 검게 그을린 남자가 나를 불러세운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로하스의 주디 목사님은 오죵안에 가면 윌리 Willy 목사를 찾으라 했다.
이 분이 그 목사님인가 싶었는데, 자기는 윌리 목사의 동료라 했다.
아무튼 이 떠돌이 여행자를 배웅나와주는 사람도 있고, 여행이 점점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한 짐꾼 무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천둥이를 항구에 내려줄테니 돈을 달라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실을때도 돈을 안냈는데, 내리면서 돈을 달라니.
그것도 거금 200페소를 이야기 한다.
배에 다시 올라 선원에게 물으니 짐꾼에게 부탁하라고 한다.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우나 싶어 마중나온 동료 목사님에게 물어보니, 돈을 내는 것이 맞다고 한다.
도움이 안되는 분이다.
다시 짐꾼과 흥정했다.
로하스에서는 돈을 안내고 실었다.
왜, 이곳에서는 돈을 받느냐.
로하스는 로하스고, 오죵안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목사님도 옆에서 고개를 끄떡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네 시간을 이동해온 천둥이의 배삯이 350페소인데,
고작 10여 미터 움직여주고 200페소를 달라는 것이다.
짐꾼은 최소한 네 명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한 사람앞에 50페소씩 계산한 것이다.
200페소면, 밥 네끼를 해결 할 수 있는 돈이다.
잠시 생각했다.
나 혼자 천둥이를 옮겨볼까.
그러면, 목사님하고, 안면있는 선원들이 도와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다 잘못되서 천둥이가 물에 빠지면.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짐꾼에게 맡기는 게 옳을 듯 싶었다.
200페소에 천둥이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비싸다.
절반 가격을 불렀다.
짐꾼이 고개를 젓는다.
시간이 많은 쪽이 유리한 법이다.
이미 다른 승객과 짐은 모두 내려진 상태.
선원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내가 불리하다.
이때, 짐꾼 리더가 150페소에 하자고 얘기한다.
목사님도 옆에서 그 정도면 되었다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천둥이는 짐꾼에 의해서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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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배낭을 옮겨준 나이든 짐꾼이다.
20페소를 달란다.
150페소가 아니었다면 기분좋게 건넸을 텐데,
다시 지갑에서 20페소를 꺼내는데 억장이 무너진다.
배웅을 나와준 목사님을 따라 항구를 나섰다.
경비원이 표검사를 한다.
로하스에서 항구 이용료를 낸 영수증을 말하는 것 같다.
로하스 항에서 받은 쪽지가 필요하다.
분명히 뒷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없다.
표가 없으면 항구를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사무실에 가서 60페소를 내라고 했다.
오죵안에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돈달라는 사람이 많아 하루 여비를 날릴 판이다.
마닐라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슬그머니 지폐한장을 말아쥐고 건넸다.
경비원은 손을 저으며 사무실에 가라고 한다.
억울하다.
혹시 몰라 다시 지갑속, 탱크백, 주머니를 샅샅히 뒤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경비원이 정말 영수증을 잃어버렸냐고 묻는다.
분명히 받은 기억이 있는데, 어디다 흘렸는지 모르겠다.
경비원은 로하스에서 돈을 낸 것이 맞다면 그냥 가라고 했다.
고맙다.
정직한 아저씨다.
로하스 항을 빠져나와 오죵안 시내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렸다.
교회를 어떻게 찾아가나 했는데, 앞서서 인도해준 동료 목사님 덕분에 쉽게 왔다.
교회에 들어서니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윌리 목사님이 반갑게 맞는다.
여기도 교회안에 사택이 있고 그 옆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목사님의 안내를 받아 교회를 둘러봤다.
뒤쪽에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이 있어 그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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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어놓고 천둥이와 함께 시내 구경을 나섰다.
해변이 있고 작은 시내가 있다.
돈을 찾을 곳이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ATM을 갖춘 은행이 세곳이나 있다.
돈을 여유있게 뽑고 옆에 약국에 들렀다.
상처를 보여주니 소독약을 내민다.
뭔가 다른 약이 없나 물으니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인가.
약국사람이 가르쳐준대로 공원 옆의 병원에 들렀다.
마침 담당 의사가 외진을 나갔다.
병원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치과의사 한명 뿐이다.
또다른 병원이 있는 곳을 물어 다시 길을 나섰다.
언덕위에 위치한 오죵안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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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병원치고는 한산하다.
간호사에게 치료는 필요없으니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차례를 기다리라고 했다.
옆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꽤 나이든 할아버지가 진료를 받고 있다.
겨드랑이에 간호사가 체온계를 끼워줘었는데, 힘이 없는지 체온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lh5.ggpht.com%2F_ONGQb1dkrWI%2FSR0cVdSKFDI%2FAAAAAAAAAcU%2FIvvtLTjFRcc%2Fs400%2FPhoto0259.jpg)
내 차례가 되었다.
남자 의사가 진료를 했다.
상처부위를 보여주고 사고 상황을 설명하니 처방전을 써준다.
간호사 아주머니가 나를 침대위에 앉혔다.
간단하게 소독을 해주고 거즈를 대 주었다.
끝.
그냥 가란다.
돈을 내지 않았다.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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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병원이 모두 무료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비바 필리핀이다.
병원 앞에서 약을 샀다.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죽을 파는 곳이 있었다.
맛있어 보인다.
고토와 비슷한데, 고토가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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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맛있게 먹고, 룸피아 몇 개를 사모님에게 사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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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거즈를 떼어내니 발등이 많이 눈에띄게 부어오른게 보인다.
졸지에 절름발이가 되었다.
똑바로 걸을 수 가 없다.
왼쪽발등은 기어를 올리고 내릴 때 레버에 닿는 부위다.
다친 상태로 계속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천둥이를 잠시 멀리해야겠다.
그리고 하루정도 쉬어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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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44B3D434DE5F8D030)
첫댓글 현지에 진정으로 다가가는 정말 멋진 여행인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도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
팬입니다...
여기 팬 추가요
아우 멋지시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멋있네요..
ㅎㅎ 섬나라라 이동하는게 만만치 않군요^^; 같은 나라 비슷한 곳도 모두모두 다르니....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굿..,
그래도 병원다녀오셔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섬은 외지여행객들 손이많이탄것같네요...
다음편을 무지 기대하며.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