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있다.
청년 시절의 나에게는 이 <관용>이라는 단어에 얽힌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다.
1971년 10월에 월남파병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3년간을 복무했던 해병대를 제대해서 군 입대 전에 다니던 인하대학교 공과대학에 복학을 하고 1973년에 3학년에 진학하여 재학 중이던 어느날 신학기가 시작된지 조금 지나서 어느 학우가 복학을 하여 같이 공부를 하며 다니게 됬는데 그 학우는 보기에 몸이 상당히 허약해 보이고 얼굴도 창백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평소에 말이 거의 없고 학우도 사귀지 않고 혼자서 다니는 타입이라 나도 그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고 지내던 중에 어느날 그가 나에게 닥아 와서 당시 배우던 어떤 과목의 과제였던 레포트를 베낄 수 있도록 내것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지금 기억에도 그 레포트가 작성하기에 좀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때였는데 나로써는 내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학생 의 것을 빌려서 해결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었고 동시에 내 것을 다른 학생들에게 빌려준다는 생각도 못할 때였으니 무심코 안된다고 거절했다. 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없이 돌아섰는데 그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으나 나는 나의 그 같은 대응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치 않았다.
(내가 다니던 인하대학교 전경 / 이 대학을 다니던 중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참된 종 D 윌호잇을 만났으니 많은 대학 중에 이 대학을 다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 일 이후에 그 학우가 한동안 학교에 나오질 않는다. 좀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저 내 할일이 나 열심히 하자며 생활하던 중 어느날 갑자기 놀랄만한 소식이 우리 학우들에게 날아들었는데 그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응???!!!~ 아니 뭐라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곧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 아 .... 이럴 수가 ... 이럴줄 알았더라면 얼마전 그가 나에게 레포트 좀 빌려달라고 할 때 빌려줄껄..' 나는 정말 후회스러웠고 남들이 모르는 큰 고민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가 무슨 병인지는 모르나 그렇게 젊은 나이에 무슨 지병이 있었고 그로 인해 병원신세를 종종 지다가 휴학도 하고 복학도 했 다가 다시 휴학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내가 해병대로 3 년간을 군복무 하는 동안 그는 병치레를 하는 생활을 하였고 죽게 된 그 때에 병이 다시 도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사에 지시에 따라 단식을 하던 중에 죽었다는 것인데 나는 그가 그런 투병생활 을 하고 있었슴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1973년도 그 당시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모두 그 죽은 사람의 집에서 치루는 시대인지라 학우들과 함께 그의 시신이 누워있는 그의 집에 문상을 갔다. 단체로 문상을 온 우리 학우들을 보니 그의 어머니가 더욱 땅을 치시며 몸부림을 치시며 목청 높여 우시기 시작하신다.
"아이고 내 아들, 내 아들아, 왜 내 아들은 네 친구들 처럼 잘 살지 못하고 갔느냐" 하시며 땅에 딩굴며 애처롭게 우시니 그가 죽기 전에 나에게 부탁했던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 남들이 모르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가 마치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 죄책감에 어찌할 줄을 모르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는 다른 학생에게 레포트를 빌려달라고 자존심 상하는 부탁을 하기 전에 이 부탁을 누구에게 할까 생각하였으리라. 그는 다른 동료 학생들 보다 내가 장학금을 받으며 성적이 우수한 학우이기 때문이였기 보다는 저 친구에게 부탁하면 그래도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에게 부탁을 했을 것인데 나는 그의 타는 속도 모르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여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 소원을 거절한 자가 되었으니 이런 나쁜 친구가 어디 있나 ...
관용이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너그러운 마음인데 때로 인간은 이것을 남에게 베풀기가 아까워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 이같이 나중에 크게 후회 할만한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그 뒤에 그 충격으로 인함인지 대학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시험때가 되면 나에게 와서 어려운 과목들을 가르쳐 달라 고 하는 친구들의 부탁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주게 되었으니 시험 때마다 내 방에는 같은 과의 학우들 몇명이 함께 날을 새며 공부 하는 생활을 하곤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관용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처음 본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 후 울산의 대기업 H 중공업에 근 무한지 만 2 년이 조금 넘은 시기로써 퇴근 후 회사 숙소인 독신자 숙소에서 성경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읽을 때였으니 그 때가 1977년 초의 겨울이었고 이 때는 내가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가기로 갓 결심을 했을 때였다.
(왼쪽이 내가 1973년 말 겨울에 고향 인천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나게 된 하나님의 종 D 윌호잇 선교사 / 오른쪽이 내가 1974년 11월 초에 울산에 내려와 1976년 여름에 다시금 복음을 듣기 시작했을 때 1977년 초에 부족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택하도록 결심을 도와주신 D 오웬 선교사 - 1998년 작고하심 / 이 두분은 내게 복음의 아버지요 생명의 은인들이시다 / D 윌호잇 선교사는 현재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그 당시의 나는 울산에 취업이 되어 내려오기 전, 3년 간의 해병대 군 복무와 2년 간의 파월근무를 마치고 1971년 10월 초에 인천의 고향 집으로 돌아와서 대학에 복학하여 다니며 월남전선에서 <살아 돌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을 믿겠다> 고 서원을 드린대로 하나님을 믿고자 하여 2년 간 조용히 성경을 읽던 중 만났던 하나님의 참된 종 D 윌호잇 선교사와 한국인 K 선교사가 전해주셨던 복음을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들으며 이 분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분들인것을 알았기에 고향을 떠나 1974년 11월 초에 울산의 H 중공업에 신입사원으로 취업이 되어 근무한지 1 년 반 정도 지나 1976년 다시금 그 분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D 오웬 선교사와 한국인 K 선교사로 부터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여 부산으로 일요일 아침 사귐모임을 다니기 시작하였던 때로써 그 즈음에 회사 숙소에서 성경을 매일 읽던 어느날 성경 안에 기록된 이 <관용>이라는 단어가 내 눈 에 띄이게 된 것이다.
(1977년도 초 겨울에 부산 양정동에 위치한 하나님의 종들 숙소에서 가지던 일요일 아침 사귐모임을 다닐 때의 부산교회의 모습 - 하나님의 종들과 믿음 안의 형제들 / 이 사진은 내가 처음으로 참석했던 일요일 아침 사귐모임 후 그 주의 수요일 저녁공부모임을 가진 후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다 나는 울산에 있기에 멀어서 참석을 못하였다 / 이 사진은 앞에서 두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 째에 계신 A 선교사께서 하나님의 여종으로 출발하시게 되어 기념사진으로 찍은 것으로 알고있다 / 이 때로 부터 세월이 33년이나 흘렀으니 흐르는 세월은 참으로 무심하다 / 이 사진은 미국인 형제 <실라> 씨의 남편이신 <프리얀타>씨가 찍었다 / 이제 부산 교회는 일요일 아침 믿음의 형제 집에서 사귐모임(예배모임)을 갖는 교회 수가 9개 정도로 늘어났다)
이 당시 나는 영한성경을 주로 읽었는데 영한성경도 종류가 많아 그 때 어느 영어 성경에서 이 귀절을 읽었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 다. 아뭏튼 이 관용이라는 단어는 빌리보서 4장 5절에 <너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와 같이 기록 이 되어있고 당시 읽었던 영어성경에는 <Let your moderation be known to all. The Lord is at hand> 와 같이 기록이 되어 있었 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있다.
그런데 이 당시 영한 성경을 읽으며 접하게 된 관용(Moderation)이라는 단어가 아주 내 마음에 들게되었으니 그러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위에 언급한 학창시절의 이야기대로 관용을 학우에게 베풀지 못하여 그가 쓰라린 마음을 안고 죽게된 나의 큰 잘못 을 반성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뭏튼 나는 남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좋은 마음의 상태를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 기에 H 중공업의 선체설계부의 선각설계과에서 선체 구조설계 기사로 한창 근무하던 당시 설계의 결과를 확인차 현장에 나갈 때 머리에 쓰는 내 소유의 알미늄 안전모 헬멧 앞에 아래 그림과 같이 검정 매직펜으로 "Moderation" 이라고 크게 써 놓았다.
그리고는 이 안전모를 쓰고 내가 설계하고 관리하는 배에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 현장에 나갈 때 마다 쓰고 다녔는데 사고가 난 그날도 선박건조현장에서 무엇인가 내가 설계한 배에 문제점이 있어 연락이 오니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이 안전모를 쓰고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사원에게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당시 나는 회사 안에 있는 사원 숙소로 옮겨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자전거가 필요 없기에 구입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원들은 숙소와 회사가 멀어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원들이 있어 그런 사원 중의 하나에게서 자전거를 빌린 것이며 이것이 사고의 화근이 되었다.
설계실을 걸어나와 설계실 건물 아래 거치되어 있던 그의 자전거에 올라탄 후 나는 그 안전모 헬멧을 쓰고 문제점이 생긴 설계 부분의 해당 도면을 소지하고 현장을 향해 쏜살 같이 달려나갔다. 그런데 내가 막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간 도로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로 경사면이 나 있는 경사도로이며 나가자 마자 곧 90 도로 급회전하는 도로였고 이어 그 도로를 타고 현장으로 직진 하는 도로였는 바 사고가 나려하니 그랬는지 90 도의 급회전을 하여 현장으로 향하는 직진 도로에 나서니 저 앞쪽에서 25톤 대형 트럭이 나 보다 빠르게 굉음을 내며 질풍 같이 내게로 달려온다. 그 트럭은 회사 정문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앗 !~ 큰일 났다 싶어 급히 손에 잡고 있던 자전거 핸들에 부착된 브레이크를 꽉!~ 잡았는데 ... 앗!~ 이게 왠일 ???!!!~~~
브레이크가 전혀 말을 안듣는다!!!~~~ 정지는 커녕 감속도 전혀 안되고 언덕을 쏜살같이 내려와 가속이 붙은 그 속도 그대로 맞은편 도로에서 내게 질풍같이 달려오는 대형트럭을 향해 내가 무대뽀로 달려가게 되었으니 이게 왠일인가???!!!~~~
오!~ 노!~~~~
달려오는 그 대형트럭과 충돌을 면할 길이 없는 그 상황에서 폭풍 처럼 달려오던 그 대형트럭과 부딪혔으나 충돌사고 후 다행 히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내가 빌려탄 그 자전거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수리도 안하고 타고 다니던 자전거였고 그 자전거의 주인인 동료 사원이 내게 그런 말을 안해주어 나는 브레이크가 전혀 작동이 안되는 줄을 모르고 탄 것 이며 그 트럭 운전사는 그 사고 당일 전날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정문을 향해 가는 주 도로 우측에 경사로가 있어서 그 우측 도로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 또는 차량이 튀어 나올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과속으로 달려 왔다고 한다.
그러니 서로가 금방 일어날 사태를 모르고 서로를 마주 향해 전력질주들을 한 셈인데 이 경우 누가 손해를 보겠는가?!~
조그만 자전거를 탄 나는 마치 작은 청솔모 정도였고 마주 달려오는 트럭은 마치 달려오는 성난 대형 코끼리 같은 상태였으니 그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이제 그 대형트럭과 정면으로 막 부딪히려는 순간 .... 내 눈 앞에 대형화면 처럼 순간적으로 닥아온 대형 트럭과 마주치기 직전의 그 순간, 나는 대형트럭에 내 온 몸이 빨려들어감을 느끼며 이제 틀림없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너덧살 되는 시절 동무들과 4 - 5 메터 높이의 축대로 쌓인 공터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뎌 밑으로 추락한 적이 있었다.
그 축대 밑에는 가정집에 있었고 내가 떨어진 위치는 간장,된장 등의 장 음식들을 담은 항아리들이 즐비한 장독대로 떨어진 것인 데 나는 마침 그 장 항아리들 사이에 빈 항아리 속으로 떨어져 거꾸로 쳐박혀 들어가 버렸다. 같이 놀던 어린 동무들은 이 광경에 너무 놀라 모두 도망가고 나 혼자 빈 항아리에 거꾸로 쳐박혀서 기절한채 한참을 있었는데 그 때 마침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계셨 던 그 집의 안주인 되시는 분이 무언가 꽝!~ 소리를 내며 장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나니 '저 축대 위에서 동네 애들이 놀다가 돌을 떨어뜨려 또 장 항아리를 깼구나' 하시며 속으로 생각하시고 머리를 다 빗고 한참 시간을 보내시고 천천히 나와보니 장 속에 쫴끄 만 남자 아이가 거꾸로 쳐박혀 있는지라 ... 그 때 만일에 그 빈항아리 옆에 즐비했던 간장이나 된장 속으로 거꾸로 쳐박혀 기절 했더라면 장 속에서 질식사를 했을텐데 아뭏튼 머리가 좀 깨져서 그렇지 살긴 살았기에 지금까지 숨을 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때 그래도 죽지않고 살았던 이유는 아마도 거꾸로 떨어지며 머리가 장독 항아리 뚜껑을 깨고 들어갔기에 다소나마 충격이 완화 되어 살았지 않나 싶은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늘이 나의 생명을 아직도 허락하셨기 때문이리라.
여기 블로그에 올린 글(전후 이야기 : 10. 진리의 길 안에서 # 004 : 운명을 가른 작은 돌바위의 교훈/2009.12.11) 대로 중학교 시절, 어른들도 갈 수 없는 썰물의 급류 해역에 뛰어들어 소라를 잡아오겠다며 저 멀리 등대를 향하여 헤엄쳐 가다가 썰물 에 휩쓸려 바다 한 가운데로 떠내려 가게 되니 힘도 다 빠지고 이젠 죽는다 하는 상태에서 다행히 저 멀리 돌섬 하나를 발견하여 생명을 건진적도 있었다.
그 후 젊은이로 성장하여 조국을 위한 전쟁터에 대한의 남아로써 저 대단한 전쟁터에 출전하겠다며 해병대로 지원하여 청룡부대 원으로 파월하여 적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며 전사의 위기를 넘긴 것이 그 몇번이던가...
월남전선에 도착한지 3 일만에 전투경험 한번 없는 월남전 신병으로 작전에 참가하여 정글에서 야간매복을 실시하던 중 3 보 앞 에 닥아온 무장한 적 베트콩과 격돌하여 생사를 갈랐고 이어 미해병대 건쉽의 오폭 위기, 월맹군의 구정공세를 차단키 위해 야간 매복을 실시하던 중 월남군의 80 밀리 박격포 4 문으로 부터 십여분간 소나기 같은 오폭을 받았던 위기, 야간매복 중 전방에서 벌 어진 야간전투에서 날아온 스나이핑이 누웠던 자리를 옮기자 마자 내가 방금 누웠던 자리에 꽂히던 위기, 기타 주간 작전을 위해 기동 중에 수차례나 적의 기습을 받아 날아오는 스나이핑을 마주하여 질풍 같이 달려가 M-60 경기관총을 적들에게 퍼붓던 순간 들은 나에게 죽음이 바로 한걸음 옆에서 동행하고 있었던 순간들이었으니 이 외에도 생사를 오갔던 모든 경험들을 이제 여기에 일 일이 다 기술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번엔 꼼작없이 걸렸다. 월남전선의 그 험난했던 전투 생활 중에서도, 수차례의 생사기로에서도 무사히 살아 돌아왔던 내가 이번엔 정말 사망의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내 눈 앞에 폭풍 처럼 닥아왔고 이를 피할 길은 없고 이젠 오직 죽는 일만 남았다.
'이제 죽는다 !!!~~~~~~~~~~~' 하는 순간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내 자전거는 드디어 나 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굉음을 내며 마주 달려오던 대형트럭과 " 꽝!!!~~~" 소리를 내며 부딪혔고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자전거와 함께 공중에 솟구치는것을 느끼며 이내 기절을 했고 힘차게 달려오던 트럭의 앞바퀴 밑으로 쿵!~ 떨어져 버렸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이 되었는데 누가 나를 흔든다. 나는 엎드려져 기절을 해 있었고 트럭 운전자가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며 나를 깨우고 있었는데 내 주위에는 두 물건들이 겁도 없이 서로 마주 달려가다가 와당탕 !~ 부딪히는 이 사고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을 한 회사 정문 경비들이 두어 명 달려와 트럭 운전자와 함께 나를 깨우고 있었다.
트럭 운전자 역시 나 처럼 질풍 같이 정문을 향해 달리다가 갑자기 우측에서 무언가가 번개 같이 나와 자기에게로 달려오니 순간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도 못하고 아앗!!!~~~ 하며 나와 충돌을 하였고 그 순간 젖먹던 힘까지 발휘하며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이미 나를 충돌하였고 자전거를 탄 내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트럭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퀴에 깔리니 그는 내가 사람 하나를 오늘 깔아 죽였다는 생각에 트럭에서 곧 내리지도 못하며 바들바들 떨었다고 한다.
또한 정문에서 이를 처음 부터 지켜보던 정문 경비원들도 아앗!~ 저 친구 트럭에 부딪치고 공중에 솟았다가 떨어져 트럭 앞 바퀴 밑으로 들어가 깔렸으니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며 모두가 놀라서 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내가 그 대형트럭에 부딪쳐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지며 트럭 앞바퀴에 깔리게 된 순간을 아래 그림에 그려보인다. 트럭 운전사는 트럭 옆의 문을 열고 보니 내가 트럭 앞바퀴에 깔렸으니 그는 내가 처참하게 죽었다고 생각이 되어 오금이 저려 내리지도 못하다가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내려왔는데 나중에 병원까지 함께 따라온 그는 계속 손,발,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말도 더듬으며 "정말 괜찮습니까?", "정말 미안합니다" 하고 백배 사죄를 하였는데 잘못은 나도 한셈이니 괜찮다며 계속 떨고 있는 그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트럭의 앞바퀴에 깔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게되었는가?...
그 당시는 내가 기절을 하였기에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쓰고 다니던 강화 알미늄 재질의 그 안전모가 떨어지면서 트럭의 앞바퀴와 땅에 떨어져 엎드려진 내 머리 사이에 끼이게 되어 급브레이크를 밟아 땅을 엄청 태우며 막 정지되는 트럭의 앞바퀴에 장해물인 스토퍼(Stopper) 역활을 해준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 안전 헬멧이 트럭 앞바퀴에 깔리며 찌그려졌으니 만일에 그 안전 모가 내 머리 앞에 정확히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간발의 차이로 내 머리가 트럭 앞바퀴에 깔려 죽었으리라 ...
안전모의 윗부분이 둥근 형상이니 만일에 안전모가 공중에서 떨어질 때 윗부분이 먼저 떨어졌더라면 내 머리 앞에 떨어졌더라도 튕겨서 다른 곳으로 멀리 튀어 갔을텐데 하필이면 내 머리 앞에 얌전히 아래부분이 먼저 떨어져 안착하게 되니 달려오다 급정거를 하던 트럭의 앞바퀴의 장애물이 되어 안전모 헬멧이 트럭 앞 바퀴에 눌려 찌그러지면서 간발의 차이로 안전모 바로 뒤에 있는 내 머리를 보호해 주었다.
주위 사람들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희미하게 정신을 차리면서 나는 살았슴을 느꼈고 살았으니 현장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 다. 소지하고 있었던 도면을 찾으니 여기 있다고 누군가가 챙겨 준다. 이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앰불런스가 닥아왔고 나는 들것에 실려 나의 희망대로 문제가 생긴 선박 건조 현장으로 실려 간것이 아니고 강제로 회사 앞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온 전신 X 레이 촬영 결과 크게 다친데가 없다 한다. 그 엑스레이 결과가 나올 때 까지 트럭 운전사는 계속 부들부들 떨며 말도 더듬으며 사고 시의 충격과 공포를 가누지를 못한다. 그는 내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도 내가 정말 살아있는 것인지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몇번이나 내게 미안하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나는 브레이크도 없는 자전거를 탄데다가 그러기에 90 도로 꺾어지는 경사로 코너를 감속 없이 신나게 달려 사고를 냈으니 나에게도 잘못이 있는지라 병상에 누운 채로 너무 염려말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타박상은 여러군데 있었으나 다행히 크게 다친데가 없으니 병원을 나와 회사로 다시 향했고 내가 소지했던 헬멧과 자전거가 보관 된 회사 정문으로 찾아가 경비원들에게 달라하여 찾았더니 자전거는 트럭과 충돌하며 받은 충격에 " ㅅ " 자 형태로 꺾여져서 앞바 퀴와 뒷바퀴가 다정히 겹쳐진 상태로 한자리에 붙어 있는데 앞바퀴는 부딪힌 충격에 크게 찌그러져 있었고 내가 썼던 안전모 헬멧 은 트럭 앞바퀴에 깔려 찌그러진 채로 주인인 내게 돌아왔다. 자전거는 수리가 가능하여 수리점에 맡겨 수리를 하였고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았으니 내 돈으로 브레이크를 수리하여 그에게 돌려주었다.
세월이 지나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며 트럭의 앞바퀴와 내 머리 사이에 끼어 나를 보호했던 그 찌그러진 안전모 헬멧을 생각한다.
사실은 그 헬멧 보다는 그 헬멧에 아무것도 모르고 철부지 처럼 <관용 - Moderation> 이라는 단어가 좋아서 "관용"이라는 단어를 헬멧에 검정 매직펜으로 크게 써놓고 다녔던 그 일을 생각한다.
생각컨데 그 안전모 헬멧이 나를 살린 것이 아니고 그 <관용> 이라는 단어가 나를 살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얼 마전 부터 이 관용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성경에서 말하는 이 관용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과연 무었인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1973년 대학생 시절에 겪었던 죽음을 앞둔 학우가 레포트를 좀 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여 그에게 <관용> 을 베풀지 못한 고로 죄의식 속에서 고민하였던 경험이 있기에, 또한 <관용>이라는 단어를 영어성경에서 읽은 대로 <Moderation> 이라고 안전모 헬멧에 크게 쓴채로 현장을 다니다가 달려오는 트럭과 충돌했으나 그 안전모가 내 머리를 보호하여 살았기에 이 관용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으나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신 관용은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다시금 다른 영어성경을 최근에 읽어보게 되었다.
우리말 번역에는 서두에서 밝혔듯이 <너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써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의 번역이 <Let your gentle spirit be known to all men. The Lord is near> 이라고 되어 있으며 King James Version 에서는 <Let your noble spirit be known to all men. The Lord is near> 이라고 되어 있으니 서두에서 이미 밝힌대로 관용이라는 단어를 moderation 으로 알고 있었던 번역보다는 좀더 깊은 뜻이 보이는 번역들이었다.
Gentle spirit 또는 Noble spirit 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고상한 영(靈)> 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 "고상(高尙)하다" 라는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품위나 몸가짐이 속되지 아니하고 훌륭하다> 라는 뜻으로 나온다. 이 세상에 속한 것 처럼 속되지 아니한 고상한 영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 이는 바로 우리 인간들을 자신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생명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의 영이 아닌가!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마태 11:29> 하신 예수님 의 영이야말로 가장 고상한 영이 아닌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자기를 죽이는 죄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 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 누가 23:34> 하시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주시는 간구를 올리셨으니 이 얼 마나 아름답고 고상한 영인가!
예수님의 고상한 이 영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 용서, 관대함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의 이기적이고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것이 나를 위하여도 굉장히 중대한 문제임을 요사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신 생명의 창조자가 되시며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 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the flesh profits nothing; the words that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are life : 요한 6:63) 하셨으니 나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죽고 썩어 없어질 내 육신이 아니고 성령인 것이며 이 성령을 받으려면 영으로 전달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고 순종해야할 것이다.
그런 순종의 마음이 있는 자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이 함께 할 것이니 (요한 14:23) 그런 사람에게 주 예수님의 영이 나타나며 그런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랑과 친절, 용서, 관대함 등을 주위에 자연적으로 나타내리라.
이기적이고도 각박한 세상에서 이러한 하늘에 속한 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나에게 육신적으로 해를 가져올지 모르나 이것이 야말로 나에게는 하늘에 보화를 쌓으며 동시에 내 영혼을 구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인 것을 요사이 많이 생각하고 있다.
요사이 읽은 누가복음서의 12장 33절에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 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 Sell your possesons and give to charity ... > 하셨으니 소유를 팔아 구제함이란 내 재산을 팔아 도덕적으로 구제활동을 하라 는 뜻이 아니고(만일 그런 뜻이라면 돈 많고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의 생활을 아니하고도 돈에 의지하여 가장 편안하게 하늘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내 인간의 본성에 속한 고집이나 생각, 이기적인 욕심 등을 버리고 하늘에 속한 사랑(charity)을 배워 그 사랑을 나타내라는 뜻이니 하늘에 속한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야말로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영을 나타내는 일이며 이것이 내 영혼을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인 바, 내 호흡이 그치고 내 영혼이 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때 내가 살아생전에 하늘에 쌓아두었던 그 보물이 내게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나를 도울 것이니 내 어찌 생명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의 영 을 나타내도록 힘쓰지 아니하리요!
사도 요한께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 요한복음 1:17>고 하셨는데 진리는 변치않는 강한 것이요 진리 앞에 모든 인간이 죄인이나 은혜는 부드러운 것이며 은혜 앞에서 누구라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소망이 있으니 이 고상한 영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와 은혜의 영이 아닌가 한다.
1973년도 대학 3 학년 시절의 나는 너무 강한 생각으로 죽어가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당시 관용치 못했슴을 지금껏 후회하고 있고 또한 관용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써서 쓰고 다니던 헬멧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기에 과연 관용이라는 의미가 무었 인지 깊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됨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세상적인, 또는 사회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도덕적인 관용>을 베푸는 삶을 산다면 세상적으로 고상한 사람이 되어 뭇 사람의 칭송을 받을지 모르나 이것이 자기 영혼의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
H 중공업에 근무하던 철모르던 젊은 시절, 위에서 이미 말한대로 성경에서 말하는 <관용, 즉 고상한 영> 을 사모하여 그 글씨를 안전모 헬멧에 크게 써놓고 다니다가 트럭을 충돌한 그 사고 시에 그 헬멧이 나를 살렸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헬멧이 나를 살린 것이 아니고 그 사고 당시 그 안전모 헬멧의 날아가는 방향을 주관하신 하나님 께서 그 둥근 모양의 헬멧으로 하여금 땅에 떨어질 때 뒹굴지 않도록 헬멧의 아래 부분이 먼저 땅에 떨어지도록 하시고 또한 그 떨어진 위치가 트럭의 앞바퀴와 내 머리 사이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떨어지게 하시므로 헬멧이 바퀴에 눌려 찌그러지며 나를 살리셨으니 하나님께서 그 같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상황에서 나를 살리신 이유가 있으실 것이다.
그렇다! ...
그 안전모 헬멧 앞에 내가 별로 깊이 생각치 못하고 그저 그 단어가 좋아서 써 놓았던 Moderation (관용) 즉 Noble spirit (고상한 영)을 깊이 생각하고 이를 잘 간직하고 또한 잘 나타내며 살라고 하신 뜻이 아닌가!~
그렇다!~
고상한 영 즉, 예수님의 영 이야말로 나를 살려주시는 영이다. 생명의 구주가 되시고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참되게 사랑하여 그의 겸손하고 온유한 영을 모시고 함께 동행하고자 할 때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로 하여금 예수 님의 영을 이 세상에서 나타나도록 도와주시며 이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게되어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러한 고상한 영이 다른 사람 보다도 충만하기에 남을 가르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는 이런 면에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나 스스로 알기에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만나게되어 그들이 전해 준 하나님의 참된 길을 부족할지라도 정직하고 충성되이 행하므로써 예수님의 고상한 영 가운데서 살기만을 원할 뿐이다. 진정으로 그렇게 하기 를 원하고 간구한다면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우시리라.
그리하여 예수님의 귀한 생명과 성품, 그 사랑을 이 어두운 세상에 나타내어 빛이 되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므로써 예수님 께서 나와 가까이 하시고 동행하는 생활을 잘 이루어 이로 말미암아 하늘이 내게 은혜로 주신 나의 직분을 잘 이루고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내 영혼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나의 최선과 충성을 다하고자 한다.
♬BGM : 김성은 - 바이올린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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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월남전선에 도착한지 3일만에 전투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신병으로 작전중에 정글에서
야간매복중에 3보앞의 무장한 베트콩과 맏닥트렸던일.
미 해병대 건쉽헬기의 오폭 위기를 넘겼고, 월맹군의 구정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매복중에 월남군의 80m/m박격포 세레를 피하게 되었던 일,
야간 매복중에 전방에서 벌어진 야간전투에서 날아든 스나이핑을 피할수 있었던일.
어렸을 무렵에는 남의집 장독에 거꾸로 떨어졌는데도 커다란 상처가 없었던일,
또,바닷가에서 썰물에 떠밀려 가다가 작은 바위섬을 만나게 되었던일.
현대 중공업에 근무중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트럭과 부딧쳐서도 <관용>이라 쓰여진
안전모로 하여금 →아래로 갑니다
살아날수 있었던 무수한 일들이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의 넓으신 은혜와 사랑이
없었다면지금의 뭇별님이 존재 했으리오?
무수한 사건 사고들이 하나님에 말씀에 비유가 되고,
이해 할수 있는 뭇별님이 되셨으니.. 뭇별님은 곧 하나님의 종 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 할수 있는 능력을 보유 하셨다고 인정이 됩니다.
앞으로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들도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좋은길로 인도 하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선배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런 모진 경험들 가운데서도 살수 있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덕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종이라 일컬음 받기에 합당하겠습니까. 참으로 그런 사람은 못되며 선배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생활을 잘 할 수 잇기만을 바랍니다. 저에게 내려주신 하늘의 은혜와 축복이 느티나무 선배님 가정에도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학기는 종료되었으나 아직은 할일로 인하여 저의 블로그에 다음 글을 못올리고 있는데 완성되는대로 곧 올리겠습니다. 선배님께서 계속 저의 글을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과 함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시간이없셔서 댓글을봐 김교수님의 일생이 기구하군요....그래 하나님이라도 믿고 살아가시는 님에 신념이대단합니다..
나야 ..그져그렇게 종교와별개로살지만...우리뭇별 후배님은 종교관이 확실한게 대단합니다....
본문은 다음에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