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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스크랩 통영, 눈 시리도록 따가운 여름 햇살
명성레이저뜸개발자 추천 0 조회 12 11.02.27 17: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길따라|통영, 눈 시리도록 따가운 여름 햇살

 

나 낼 통영에 가.
통영 타령 꽤나 하더니만… 드디어 가는구나.
너를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였지. 임신한 뒤로 눈 밑이 기미로 그늘져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는데 너는 간만에 박속처럼 환히 웃었던 것도 같아. 기억나니? 나 그때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한참 동안 끼고 다니다가 된통 혼쭐이 났었잖아. 해일처럼 몰아닥친 기구한 운명에 울고 우는 다섯 자매의 인생살이, 그들의 다음 페이지가 하도 궁금하여 교과서 밑에 그 책을 깔아놓고 보다 그만 책과 함께 복도로 내던져졌잖아. 감히 수업 시간에 소설 나부랭이나 읽고 말이야, 당장 꺼져!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복도로 나온 넌 나보다 더 큰 눈물방울이 맺힌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게 말했지. 방학하면 네 말대로 통영에 가자. 정말? 정말 그래줄 거야?

 

그 시절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사춘기의 습한 내 감수성은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해 있다는 통영의 바다 속으로, 봄이면 핏물처럼 지천을 적신다는 동백의 꽃 이파리 속으로 쉬이 젖어들곤 했었지. 뭐가 그리 답답해서 그 먼 곳에까지 가 억지로라도 휘둘리길 원했을까. 뭐에 그리 뒤틀렸기에 그 먼 곳에까지 가 죽겠다고 다짐하듯 네게 떠들어댔던 걸까. 그 후로 난 행여 숨이 목젖까지 가빠올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네게 통영에 가자고 졸라대곤 하였지. 이번 주말에 갈까? 하고 막상 네가 지도를 펼치고 고속버스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표 시간을 물으면 화들짝 놀라서는 거기가 얼마나 먼데 하면서 딴청을 부렸던 나. 치기 어렸던 내 유년이 詩처럼 꿈꾸었던

그 땅 위에 나는 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첫발을 내딛고 있어.

 


시내 한복판에 이리도 살포시 바다를 안고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발걸음을 재촉하여 항구부터 찾고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절로 낮추어지더라. 눈 시리도록 따가운 여름 햇살은 자꾸만 놀자고 보채는데 바다는 영 귀찮다는 듯 느릿느릿 어쩌다 한번 끙 하고 일렁여주다 말아. 그래도 고집 센 저 햇살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바다의 등짝을 미끄럼 삼아 까르르 미끄러지며 웃음보를 터뜨려. 점점이 번져나가는 황금빛 웃음은 잔잔한 바다를 데우고, 졸다 깨다 어질어질한 배들을 데우고, 저 시끌벅적한 갈매기들의 주둥이를 살짝 데우더니 포구에 칸칸이 들어선 식당들의 문고리를 반짝반짝 데워놓아.

 

하지만 수조 속에서 막 건져낸 물고기들의 숨통을 끊느라 피범벅이 된 저 시퍼런 칼날들은 연신 찬물바가지 세례를 받느라 좀처럼 데워질 틈이 없는 듯해. 붉은 ‘다라이’마다 수북이 쌓여 있는 토막난 저 물고기들…. 뽈래기요, 뽈래기. 네? 배드라치요, 배드라치. 네? 졸복이요, 졸복. 아, 네….

 

가리키는 물고기마다 아줌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름을 말해주지만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거니와 주로 깨끗한 남해바다에서만 서식한다는 물고기들의 모양새 또한 영 낯설어서인지 좀처럼 내 눈에 내 입에 그네들이 착 달라붙지 않더라. 나는 복국 한 그릇을 시켜놓고 얼굴이 말갛게 비치는 사발 속으로 깊숙이 머리를 밀어 넣었어. 점이 송송한 새끼 졸복 몇 덩이가 둥둥 떠 있고, 향긋한 미나리와 싱싱한 콩나물이 수북하게 얹어져 있는 이 복국은 충무김밥과 더불어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이라지. 한 숟가락씩 국물을 떠먹던 나는 이내 사발 끝에 입을 대고 훌훌 마셔나갔지. 화하게 뜨거운 것이 내장 속을 쑥 하고 밀고 내려오는데 어찌나 시원하고 개운하던지. 그간 밀린 체증이 한순간에 풀리는 것만 같더라. 입덧으로 한창 고생인 네가 이걸 맛보면 속이 좀 가라앉을 듯도 한데.

 

밑반찬으로 나온 멸치젓이랑 장어조림이랑 시큼시큼한 미역이랑 파래무침, 게다가 산에서 갓 따온 나물까지 곁들어 맛보고 나니 요새 한창 떠들어대는 웰빙 식단이니 뭐니 그런 얘기들이 여간 무색한 게 아니더라. 이리도 풍요로운 바다로부터 살을 입고 뼈를 키우고 피를 수혈해왔으니 대대손손 이곳 사람들은 풍요로운 바다처럼 건강하고 단단하고 맑게 흘러가겠지…. 그 깊디깊은 생의 뿌리가 나는 참으로 부럽기만 하였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운 힘으로 저벅저벅 세병관(洗兵館) 안으로 들어섰어. 이순신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세병관은 삼도수군 통제영으로 쓰였던 건물로 서울의 경복궁과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그 평면적이 크고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국보라지. 현판 앞에서 힘 좋은 붓끝이 한 호흡으로 써내려간 듯한 획을 따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어보았어. 씻을 ‘洗’에 병기 ‘兵’, 병기를 씻는다는 거구나. 잠깐, 잠깐만. 나는 다시 문 밖으로 나가 세병관의 출입문이 지과문(止戈門)임을 알았어. 거둘 ‘止’에 창 ‘戈’, 창을 거둔다는 뜻이구나. 다시는, 다시는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지 않게 해주소서 하는 간절한 바람을 우리 조상들은 여기 이렇듯 2m나 되는 큰 글씨 속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었겠지. 하지만 그 바람은 여전히 바람일 뿐이구나. 전쟁을 원하는 소수에 의해 전쟁을 원하지 않는 다수가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이 딜레마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야.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전쟁은 끝도 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비뚤어지면 기합이라도 받을까 잔뜩 긴장해서는 세병관 팔작지붕을 오롯이 떠받치고 있는 굵은 나무기둥들, 깊고 깊은 산 속 오래고 오랜 세월 동안 밑동 굵게 잘 자라다가 이리 힘겹게 빛 바래려고 잘려왔겠구나 생각하니 그저 허한 한숨밖에 나오지 않더구나.


바람인가 슬쩍 뒤를 돌아보는데 충렬초등학교 담벼락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어. 그 너머로 구령대 옆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은 유난히도 푸르스름했지.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하고 칼을 노래했던 이순신. 매주 월요일 조회시간이면 아이들은 교단에서 상을 받는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내느라, 뒤이어 교장선생님의 하품 나는 훈화 말씀을 듣느라 일제히 앞을 향해 눈동자를 모으겠지. 충렬문구, 충렬분식, 충렬부동산, 충렬해물탕, 충렬노래방, 충렬미용실, 충렬정육점… 높다랗게 뻗어 있는 목욕탕의 저 긴 굴뚝에조차 충렬탕이라 적혀 있는 이 충렬의 나라, 충렬의 간판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앞으로 얼마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난 이제 남망산조각공원을 오르고 있어. 난망산? 아니 남망산. 난방산? 아니, 남쪽 바다를 바라본다 해서 남망산(南望山). 아하, 그렇구나. 그래, 남쪽 바다는 잘 보여? 네가 퇴근길이라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걸 안 나는 이내 전화를 끊었지. 나중에 이리로 수학여행 오면 좋겠네, 하는 말만 서둘러 구겨 넣은 채로.어둑어둑 날이 저물자 오후 내내 소금기 가득 무겁게 내려앉았던 바람이 그 사이 어디 가서 몸 털고 왔는지 말간 비린내를 풍기며 내 어깨에, 내 머리에 폴짝 올라타고 있어. 그러고는 저 내킬 때마다 슬슬 부채질을 해주었지. 덕분에 그리 땀내나지 않게 야트막한 동산 하나 쉬엄쉬엄 올라왔을 뿐인데 남망산 정산이 바로 나더구나. 세상에…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거인들, 거인들이잖아. 그들은 동서남북 방향을 나눌 것도 없이 군데군데 흩어져서는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지. 푸르스름했나 싶었는데 이내 거무튀튀해진 그들의 머리와 그들의 등줄기와 그들의 엉덩이는 부드럽고도 완만한 곡선으로 덧이어져 바다의 지붕이 되어주고 있었지. 바다에 빠져든다 한들 저리도 커다란 거인의 손이 한순간에 건져줄 듯한데, 혹여 바다가 심통을 부린다 한들 저리도 넉넉한 거인의 품새가 한순간에 달래줄 듯한데, 사람들이 어찌 바다를 두려워하고 또 바다는 어찌 맘껏 성깔을 부려댈 수 있었겠어. 이제야 나는 박경리 선생님이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라고 표현했던 그 글귀를 정확히 이해할 것만 같아. 일년 365일 동안 3분의 2 이상이 맑고 잠잠하다는 이 바다의 생리도 확실히 이해할 것만 같아. 완벽한 어둠으로 자연이 하나될 때, 완벽한 불빛으로 인간이 하나 되는 조화…. 그걸 몰랐으니 그 옛날 원수처럼 등지고 섰던 내 몸과 내 정신이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서러웠겠어. 이제 나는 웃는단다. 내 인생의 정신적 자양이 될 단어들을 지금 막 골라내어 완성한 참이므로. 그래, 메타포는 언제나 출항지였던 거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통영은 깃발 행복 등의 시로 이름난 청마 유치환(1908~1967)의 고향인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지금 청마문학관에 들어와 그의 흔적들을 넘겨보고 있어. 그의 흉상과 그의 연보와 그의 시를 넘어 유품으로 남겨진 편지뭉치 앞에서 나는 짐짓 멈춰 서고 말았지. 해묵어버린 누런 종이 위에서 나는 김춘수, 문덕수, 김달진, 조지훈, 허만하와 같은 낯익은 시인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려고, 서로에 대한 안녕을 빌어주려고 종종 펜촉에 잉크를 묻혔겠지. 때로는 서로의 시에 대한 격정적인 속내도 오갔을 테고 말이야. 사람보다 몇 갑절은 더 천천히 죽어 몇 갑절은 더 천천히 사람들을 잊히게 할 편지…. 어차피 버려질 사랑에 눈이 멀어 장님처럼 순간을 더듬거렸던 그때 나는 햄버거를 먹다 말고 냅킨 위에다, 코를 풀다 만 휴지 위에다, 피지를 닦아내다 말고 기름종이 위에 편지를 쓰곤 했지. 그의 이름만을 적어 보낸 적도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여러 개의 말줄임표로만 빈 칸을 채우기도 했었지. 그런 나의 대책 없음이 그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하지만 성우는 반복해서 낭송해주는구나.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문을 나서려는데 정면에 커다란 흑백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와. 청마가 통영문화협회 소속 예술인들과 함께 미륵도에서 찍은 사진이네. 그러고 보니 전혁림, 김춘수, 윤이상, 박재성, 배종혁 등 이름난 예술인들이 다 이곳 사람들이구나. 누군가 이 모임을 들어 통영 앞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와 같다고 했는데 이는 참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어. 어떻게 이 고장은 이리도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할 수 있던 걸까. 일찍이 청마는 “그러나 그렇게 자각 없고 방향 없는 생활 가운데서도 한 시인으로 잡아 키워준 것은 부지불식중에서라도 또 하나 고향의 맑고 고운 자연의 풍치가 아니던가 곰곰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그가 선 자리에 따라 몸매가 절로 갖추어지듯이.”(『靑馬풍경』, 허만하, 솔출판사)라고 말씀하셨다는데 문학관을 나서는 길에 방명록을 넘겨보다가 나는 이에 화답할 만한 어느 방문객의 글을 읽게 되었어. “21세기는 문화가 지배한다는데 청마와 같은 위대한 시인을 낳고 기억하는 통영이 부럽고 고맙습니다.” 어때? 시공간을 초월한 멋진 편지의 나눔을 맛본 것 같지 않니?

 



 

통영에서 배로 두 시간 남짓이면 닿는다는 천상의 섬 소매물도, 그곳을 향해 나는 지금 바다 위를 달려가고 있어. 그간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던 내 안의 숨구멍들이 우우 함성을 지르며 입을 열며 폐를 벌리며 스펀지처럼 청량한 바람을 맘껏 빨아들여서인지 나는 풍선처럼 붕 떠 있어. 가벼이, 가벼이 바다 위로 제 몸을 꽃꽂이 하는 빗줄기 위에 올라타서는 그게 몇 개나 될까 한 꽃 두 꽃 세고 있을 뿐이었는데 눈앞에 연둣빛 페인트를 머리끝부터 뒤집어쓴 거인 하나가 떡 하니 웃고 있어.


채 스무 가구도 안 되는 이곳 주민들은 울긋불긋 버섯처럼 거인의 몸에 집을 틀었어. 대부분 민박을 치거나 밭일을 하거나 여자들이 물질을 해 먹고 산다지. 갓 잡은 해삼이랑 우렁쉥이랑 전복을 그 자리에서 칼로 뚝뚝 썰어 먹는 맛이라니…. 물큰한 비린내가 달디 단 단내라고 하면 넌 믿을까. 밤 12시, 전기가 끊기고 나면 종일토록 제 몸을 칭칭 휘감고 있던 쇠사슬을 풀고 그제야 참았던 숨을 거칠게 내몰아 쉬는 거인. 거인은 나에게 뭍에서 온 두 명의 여인을 친구로 보내주었지. 처음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바다와 거인이 번갈아 뿜어내는 우렁찬 숨소리를 안주 삼아 기분 좋게 취해갈 수 있었어. 누가 볼 세라, 누가 들을 세라 조심조심 소리 죽여 누던 오줌도 있는 힘껏 쏴아 누어가면서 우리는 술과 노래와 바다와 거인과 그렇게 밤과 함께 오래오래 깊어갈 수 있었어.


다음 날 나는 작은 배를 빌려 타고 거인의 친구인 용바위, 암수바위, 남매바위, 촛대바위, 기암절벽 등과 두루 인사를 나눴어. 배를 모는 아저씨가 뭐라 뭐라 이네들이 살아온 내력을 말해주는데 나는 그 수려한 외모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 뭐야. 어떤 위대한 손이 꼭 집었다 놓은 것처럼 뾰족한 콧날의 두 바위, 그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파도와 함께 내질러 가는데 일순 귀가 먹은 것처럼 막막한 것이 아… 감탄과 경탄이 숙연함으로 고개가 무거워져 나는 결국 거인에게 눈인사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어.


통영으로 돌아오는 매물도페리호 안에서 나는 다시 선장님을 만났지. 말씀하실 때나 웃으실 때는 참 좋은 우리 아빠 같았는데 유독 조타기에 손을 얹고 바다를 향하실 때는 눈매가 아주 맵더라. 바다… 그래도 무서우세요? 암, 무섭지 왜 안 무서워. 근데 이십 년 넘은 내 지기라서 괜찮아. 믿으니까.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이곳에서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씻겨나가면 어쩌나, 너와 나누고픈 조바심으로 나는 그저 갈증이 일 뿐인데, 흔들릴 때마다 한 모금씩 토해놓고 함께 냄새 맡으며 조금만 더 건강해지자, 다만 그 얘기가 너무나 하고플 뿐인데, 그런데 이미 나는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너와 마주친 듯도 한데….

 




  글 - 김민정 | 인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몇 군데의 잡지사를 다니다 지금은 첫시집 낼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 이영균 | 경기 광명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두어 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중이다.


 

 

 

 

 


 

통영만큼 이름난 문화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고장을 보지 못했다.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등의 시인과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우리의 문화 예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곳이 바로 통영이다. 도대체 통영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대형’ 예술인들을 길러낼 수 있던 걸까. 통영항에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와 오밀조밀 섬들이 수를 놓은 한려수도의 한 조각…. 6·25 때 이곳으로 피난을 와 잠깐 머문 적이 있던 화가 이중섭이 그림으로 남겨 놓은 충무 시가지의 정경을 보면 그 비밀의 일단을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통영의 별미 음식 가운데 전국적으로 이름난 음식은 단연 충무깁밥이다. 충무김밥은 통영읍이 충무시이던 시절에 얻은 이름으로 지금은 작고한 ‘뚱보 할매’ 어두이 씨가 처음 생각해낸 음식이라 한다. 1945년부터 충무 부두에 닿는 배에 올라 김밥 행상을 하던 어 씨는 여름이면 속에 든 고명 때문에 김밥이 쉽게 쉬어 팔 수가 없자 김밥에서 소를 빼내면 더디 쉰다는 것을 궁리 끝에 알게 됐다. 그때부터 기다란 대꼬챙이에 김에 싼 밥과 주꾸미, 홍합, 무김치 등을 순서대로 꽂아 팔았다. 별난 김밥을 맛나고 재미있게 빼먹은 시장한 뱃손들이 충무에 올 적마다 그 김밥을 다시 찾게 되었고 차츰 지역의 명물 음식이 되었다. 시내 중앙동 부둣가에는 어두이 할머니의 며느리가 하고 있는 ‘뚱보할매깁밥집’ 외에도 통영 토박이들이 더 꼽는다는 한일김밥 등 ‘원조’ ‘할매’ ‘60년’이라는 간판을 내건 ‘충무김밥’집이 10여 곳이나 연달아 있다. 하지만 간이 음식이라고 할 이 김밥이 객지 사람들에게 충무의 고유 음식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통영 사람들도 많다.


한산도나 비진도, 매물도 등 여행을 위해 통영여객선 터미널을 이용하게 될 경우엔 터미널 맞은편 서호시장 양 옆으로 늘어선 복요리 식당들을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새벽 서호시장에서 구해온 싱싱한 복어를 콩나물에 넣고 끓여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 중에서도 분소식당은 외지인들보다 지역 주민들이 즐겨찾는 40년 전통의 복국 전문식당이다(055-644-0495).



통영에서 뱃길로 약 1시간 40분, 남쪽 바다 끝에 위치한 매물도(每勿島)는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썰물 때면 소매물도와 뭍으로 이어지는 등대섬으로 이뤄졌다. 특히 소매물도에는 작년 여름과 올 여름 SBS TV의 「동물농장」과 아동도서 『섬과 개』를 통해 그곳에 살고 있는 강아지들이 소개된 이후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기암절벽, 비단처럼 부드럽게 섬을 휘감는 해무(海霧), 깎아지른 해벽을 배경으로 외로이 서 있는 하얀 등대… 면적 0.9평방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섬을 수식하는 이런 미사여구 외에도 이 섬을 찾을 이유는 더 있어 보인다.

 

소매물도에는 10여 가구에 주로 노인들과 부녀자들뿐인 20여 명의 주민들이 육지에서 오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여 살고 있다. 통영에서 오전 7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오면 당일로도 가능하나 제대로 섬엘 다녀오고자 한다면 하룻밤 묵어야 할 것이다. 통영에서 소매물도까지는 오전 7시와 오후 2시, 정기 여객선인 매물도페리호가 하루 두 번 출발한다(통영 여객선터미널 055-642-0116). 소매물도에서의 숙식은 민박집을 이용해야 한다. 식사는 민박집에 부탁하는 방법도 있으나 직접 해 먹는 게 좋다. 하얀산장(055-642-8515), 다솔산장(055-641-6734, SBS TV 「동물농장」에 나오는 바로 그 집), 김충근(055-642-9888), 김연화(055-643-7911) 등 대부분의 가구가 민박을 하고 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의 비경을 해상에서 보려면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배를 타야 한다. 한 바퀴 돌아오는데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다솔산장 주인 정남극 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somaemuldo.com)에서 소매물도 여행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출처;tong.nate 네이트 우수 블로그 왕관이예요just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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