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강해(53)
단 지파의 잘못된 선택
본문 : 사사기 18:1-10
우리는 앞서 17장에서
“왕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
미가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섬길 제사장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하고는 자기 딴에는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일을 했다고 흐뭇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가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모른 채,
무조건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 줄로만 알고 행했던
그 시대상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18장에서는 한 지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어쩌다 한두 명이
엉망이었던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난국이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풍조가
영적 암흑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업의 땅을 구하는 단 지파>......
오늘 본문 1절에 보니 단 지파가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1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얼핏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 땅을 분배받았는데
아직 단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해서
거할 땅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중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19장에 보면
분명히 단 지파도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수19:40-48>
40절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41절 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42절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43절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44절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45절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46절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47절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48절 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땅을 나눌 때,....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이긴 다음에
자기들에게 확보된 영토를 나눈 것이 아니라
일단 제비부터 뽑았습니다.
마치 재단사가 재단을 하듯
저희들끼리 제비를 뽑아서
땅을 나눠 가졌습니다.
물론 단 지파도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에 이스라엘 지파가
제비 뽑은 땅은 무조건 말뚝만 박아서
자기 땅이라고 하면 되는 땅이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런 땅을 얻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내어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세월이 지나
점점 강성해 지면서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좇아내지는 못했어도
주인 행세를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단 지파만큼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배당된 땅에는
너무나도 강한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삿 1: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결과 단 지파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산꼭대기에서 사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머물던 곳이 바로
삼손 이야기에 나오는 ‘마하네단’
즉 ‘단의 캠프’(in the camp of Dan)
이었습니다(삿 13:25).
결국 단 지파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포기하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땅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2절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이들은 도저히 블레셋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자..,
하나님께 배정받은 땅을 포기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정탐꾼 다섯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과연 잘한 일일까요?
세상적으로 보면 이것은
아주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버틴다 해도
승산이 보이지 않는 일을 붙들고 씨름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터전에서
다시 시작하는 편이 훨씬 더
능률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같이 부도가 많이 나는 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가망성이 없는
기업을 빨리 정리하지 못하고.....
너무 오래 붙잡고 버티다가 손해가
산더미같이 늘어나서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업 뿐만이 아니라 10년이 넘게
고시를 포기하지 못하여 자신은
자신대로 폐인이 되고...
가족은 가족대로 고생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빨리 정리하고
다를 살 길을 찾는 편이 빠릅니다.
그러면 단 지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과연 잘한 일일까요?
잘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단 지파가 배정받은 땅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영원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블레셋처럼
어려운 상대를 주셨다면....,
그들을 이길 방법 또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단 지파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싸우지도 않고
그 땅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누군가 대신해서 자기들을 위하여
싸워주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땅을 빼앗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적인 가치입니다.
세상적인 가치,
즉 우리의 일상의 생활에서는
한 가지에 절대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라든지,
대학을 간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세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나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길을 내어 주십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가치,
즉 영적인 삶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내가 편한대로 조종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열매가 쉽게 맺혀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예> 종교개혁자들 -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외침.
안타깝게도 단 지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보다 손쉬운 인본주의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장은 좋아보였고,
잘 선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단 지파는 손쉽게
라이스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7절 이하).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처럼 보였습니다.
적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전했고 비옥한 토지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단 지파는 라이스로 이주한 후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서
우상숭배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가장 먼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또 불순종의과 우상숭배의 대명사인 단 지파는 .......
계시록 7장에 나오는 ....
하나님의 인 맞은 자 십사만 사천 명에서도
제외되는 불행을 맞게 됩니다(계7:4-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대가로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에서
제외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저와 성도님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려는 믿음과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자들입니다.
<고용 제사장과의 만남>....
단 지파의 정탐꾼들이
마침 에브라임의 미가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3-4절>
3절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정탐꾼들은 거기서 자기들과
친숙한 억양을 가진 한 청년의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같은 남쪽 방언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궁금했습니다.
그 청년은 바로 레위인으로서
유다 가족에 속했었다가(17:7)
살길을 찾아 돌아다니다....
거기까지 오게 되어 미가의 집에
고용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습니다.
그 레위인이 자신이 오게 된 이야기와 더불어
지금은 미가의 집에 고용된 제사장으로 있음을 밝힙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레위인이
한 개인에게 고용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이상한 일입니다.
가짜라는 것을 눈치 챘어야 합니다.
그는 직업적인 제사장일 뿐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에게 자기들의
앞일에 대하여 묻습니다. 점치듯이.
5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그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안 봐도 압니다.
고용된 제사장은 마치 고장 난 녹음기같이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6절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고용된 제사장은 주인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뿐입니다.
고용주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당장 목이 달아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잘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사전에는 ‘노’가 없습니다.
무조건 ‘예스’입니다.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
다음의 일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남 왕국 유다의
여호사밧이 연합하여 아람과의 전쟁을
일으켰던 적이 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얘기했습니다.
과연 이 전쟁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쟁인지,
선지자를 불러서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아합이 좋다고 하면서
왕궁에 있는 선지자를 불렀는데
모두 사백 명이었습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가 이구동성으로
전쟁만 하면 이긴다고 하면서
전쟁을 부추겼습니다.
여호사밧이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이들 말고 다른 선지자는 없습니까?”
그때 아합이 대답했습니다.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미가야는 항상 불길한 얘기만 하기 때문에
일부러 부르지 않았습니다.”
400명의 선지자가 있으면 뭐합니까?
그들은 왕에게 고용된 어용 선지자일 뿐입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정상적인, 바른 제사장이라면
그들을 책망했어야 합니다.
“애초에 분배받은 땅은 어떻게 하고
엉뚱한 곳에서 다른 땅을 찾고 있느냐?
당장 너희들 본래의 기업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은 결코 너희와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고 ..
따끔하게 야단쳐야 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레위인은 그처럼 정답을 얘기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한 사람 등 따습고 배부르면
만족할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처럼 옳은 소리를 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미가의 개인 제사장으로
취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직업주의 목회자가 아닌 사명을 가지고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예언자)가 있어야 합니다.
<입맛에 맞는 땅을 만나다 그러나>......
단 지파의 정탐꾼 다섯 명이.....
레위인의 말을 듣고는 자기들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땅을 만났습니다.
7절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라이스’는 갈릴리 호수 북쪽
헐몬 산 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 안전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서 이렇게 보고합니다.
<8-10절>
8절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절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절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는지라.”
자기들이 보고 온 땅이 얼마나
좋은 땅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 내용이
은근히 고약합니다.
그 땅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이 표현에는 큰 맹점이 있습니다.
그 땅이 과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라고 하면....
애초에 제비뽑아 나눈 땅에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에는
부족함이 있고.....
자기들이 찾은 땅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교회 밖을 기웃거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아무리 좋아도
예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고....
예수 말고 다른 것도
더 누리고 싶다는 뜻입니다.
<요일2:15-17>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저와 성도님들은 !
세상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에 유혹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함을 얻기를 바랍니다.
또 정탐꾼들은 그 땅에 대해 설명한 후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10)고 확신에 찬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확신을 잘못된 확신입니다.
그 이유는 미가가 고용한 제사장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영적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된 확신을 갖게 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의 이름’을 이야기한다고
무조건 ‘아멘’하면서 동의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그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단 지파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잡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려는 믿음과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며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