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기 야외학습 9강 탄소흡수원 현장탐방
지리산 국립공원 노고단 문수골 화엄사
2024 5. 18
지리산 이야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태백산맥으로 배웠던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흘러내려 2,000m 의 수많은 고봉을 지나 남으로 내려오고 소백산과 남덕유산을 거쳐 한반도 남한 최고봉 지리산에 와 닿는다.
실제거리 남한측 측정치 1,400km (북한측 측정치 1,600km) 조선시대 오악의 하나였고 지금도 화엄사 입구의 남악사가 있어 국태민안의 제를 올리는 신성시 하는 산이었다.
1915 m 최고봉인 천왕봉과 1732m의 반야봉
그리고 노고 할미의 삼신사상이 긷들여있는 노고단등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있고 둘레길 22개 코스와 282km에 이르는 메머드 산이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3개의 국립공원중 두번째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려 두류산이라 불리고, 어리석은 자가 들어갔다 나오면 지혜롭게 변하여 나온다하여 지리산 크고 방대하다 어른스러운 산이다 하여 방장산이라 불리는 산입니다.
우리나라 수많은 산중 종주산행 코스 1위인 산
그 대표적인 화엄사 대원사 코스인 화대종주
인월에서 산청덕산까지 태극종주.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52km를 왕복하는 왕복종주등 수많은 코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종주코스는 백두대간 종주코스입니다.
산이 높고 골이 깊다보니 계곡도 많습니다
계곡길이 14km의 뱀사골 계곡을 위시하여
백무동계곡 칠선계곡 대원사계곡 중산리계곡 피아골 계곡 연곡사 계곡 구룡계곡 한신계곡등
유사이래 물이 마르지 않은 삶의 터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골이 깊고 물이 많으니 사람들의 터전으로 사랑받게되고, 봄에는 연두색 향연 여름에는 초록의 향연 가을에는 황금빛 단풍 겨울에는 빙화등의 꽃길이 있고 연화선경 길이라는 꽃길이 지금 피크에 있습니다 (세석에서 산장에서 장터목산장까지)
무등산 트러스트공원에서 봤던 한 그루 연달래 군락지 길을 지날수 있습니다.
또한 천상화원 주위에는 청학연못이 있어 년중 평균 수위를자랑하고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청학이 목마름을 해결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
지리산에 대한 기록은 산 크기만큼이나 많습니다.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위시하여 김일손의 속두류록등 많은 기록이 있으나 이 자리에서는 간단한 시조 한편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목은 지리산 양단수 입니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보니
도화핀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저자는 남명 조식선생이시고, 남명학의 시조이십니다
수많은 산객들이 지리산 계곡에 숨어들어 터진을 삶고 살아가고 있는것입니다
퇴계 이황과 동시대 사람으로 실천성리학의 대가인데 벼슬을하지않고 토론과 실천을 중시한 학자였고 제자인 곽재우 장군은 홍의장군 반 호남사람으로 영암에서 2년간의 유배생활을 하였던 장군입니다.
또한 남명과 이황은 같은해 태어나 서신교환으로 학문적 교류를 하였고 한번도 만나지 않은채 생을 마감하셨지요
개인의 일대기를 연구하는 학파가 세개 있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을 연구하는 남명학 연구소 충무궁 이순신 장군 연구소, 대우 김우중의 세계경영연구소등이 있었으나 세계경영연구소는 없어지고 지금은 충무궁연구소와 남명학연구소에 있고 남명학 연구소는 진주경상대학교에 있고 지금도 후학들이 남명학파로 불리며 실행 실천주의 학문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도 지리산에 있는데 지리산 아래 법계사 (1450m)가 있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어서 적멸보궁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 초고의 높이에 위치한 암자가 있는데 이곳은 반야봉아래 묘향대(1480m)입니다.
호림스님이 20여년째 홀로 수행중인데 자연의 선물은 햇빛과 석간수 그리고 두평의 채마밭이 있습니다.
또한 지리산에는 묘향대를 비롯하여 지리 십대가 있는데 천왕봉 5대와 노고단 5대가 있고 묘향대도 그중 한곳이며 현재 스님이 거쳐하고 있는곳은 10곳중 두곳이다.
지리십경도 있는데 그중 다른곳에서 볼 수 없는것이 노고운해라하여 구름이 산을타고 넘어가는 장엄하고도 스펙터클한 광경입니다.
산이 높고 골이 깊다보니 인물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신라 최고의 석학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 지리산 청학동에 숨어 들었다는 설이 있으며 들어간곳은 쌍계사 불일암에서 삼신봉 자락입니다.
이곳은 생노병사중 생노사 아픔과 고통없이 살기를 원하는 이상향 파라다이스의 세상을 꿈꾸는 청학의 세상이기도 하였습니다.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는데 계곡뿐아니라 등산로길 마루금에도 물구하기가 쉬어 직장인들은 연휴에 학생들은 방학에 종주길에 3~4일간의 종주산행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산지가 이곳 지리산입니다
명산의 조건은 높이가 높아야가 아니라 물이 많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승주 출신 스님의 아들인 태백산맥의 조정래
진주 출신 이병주의 지리산
하동 출신 토지의 박경리
남원 출신 혼불의 최명희등 지리산은 대하소설의 산실입니다.
자연을 좋아하고, 가꾸는 우리 선생님들이 물고프고, 심신이 지칠때 이곳 지리산에도 올라 천왕봉 주능선도 바라보고, 남쪽끝 무등산도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시는 시간을 갇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시 한수 옮겨 드리겠습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 시에는 지리십경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중년 여성분들의 세가지 로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째 샌티아고 순례길을 걷는거
둘째 커피솝하나 운영하는거
셋째 세컨하우스 같는거
이 모든 조건이 이곳 지리산에 있습니다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이라 하여 홀로이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통하여 인간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고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통하여 다녀가셧을 소풍이라는 찾집이 이곳에 있습니다.
셋째 세컨하우스 우리들이 살다 도회지로 떠난 빈집들 사지않고 지자체에서 소개하여 드립니다
사는것이 중요하지 않고 공유하며 살아가고 머무는 자가 주인인 실체의 삶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무등산에 장불이 있다면
지리산에는 불무장등이 있습니다
불교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는
너무나도 많이 닮은 산입니다
오르며 내리머 노고할미의 복 많이 받으시고 안전한 소풍되시기를 바랍니다"
글을 마무리하고 버스를 탓는데 오늘 518이라고 버스 요금이 무료랍니다.
민주화 운동에 돌아가시고 상처받으신 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었다는 걸 잊을뻔 했습니다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리산 문수골
문수보살는 불교에서 석가여래를 왼쪽에서 지혜를 보좌하는 보살을 칭하며 문수골은 토지면 문수리에 있는 지리산 계곡중의 한 곳입니다.
또한 지리산 둘레길 282Km 22코스중 17코스가 통과하는 지점입니다.
좌측으로는 화엄사 계곡이 있고 우측으로는 피아골이 자리잡고 있으며 위로 올라가게 되면 반야봉삼거리와 노루목을 만날 수 있읍니다.
지리산에 한반도 십승지 중에 한곳이 남원 운봉에 있고 남한 3대 길지라 불리우는 곳이 운조루인데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쌀 뒤주로 유명한 곳이지요.
남는 쌀 퍼가게 하는것이 아니라 누구나 기근과 흉작에 배골치 않고 살게 한 배려의 정신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기근(飢饉은 굶주리고 굶주리다 죽는 상황)이 오면 세상인심은 황폐해지고 불신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운조루는 유이주라는 분이 지은것인데 경상북도출신으로 구례에 수령으로 왔다가 이곳에 정착하여 지금껏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원래는 100칸 대궐이었으나 현재는 63칸이 남아있고, 개방을 중시하는 호남의 한옥과 높이를 중시하는 영남의 한옥이 혼합된 형태의 혼합이다. 입구 솟을 대문위에는 호랑이 뼈가 걸려있는데 무인출신이기도 하였지만 힘이 장사였던걸로 전해져 옵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시에 말 그대로 "돌아가노라" 라는 글중에 雲無心以出峀(운무심이출수),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에서 나오고, 날다가 지친 새는 돌아올 줄을 아네")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 운조루 입니다.
늙을 말년에 자연으로 돌아가서 느끼는 로맨티스트적 사고를 갖게 하는 시입니다.
직장이고 직위고 다 팽개치고 살고자 했던 초 자연인의 삶이 귀거래사 인데 도연명이라는 분은 귀거래사 도연명기 등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는 시인 입니다.
또한 노고단에는 지리산 10대중 오대가 노고단에 있는데 이는 노고단의 문수대(文殊臺). 종석대(鐘石臺). 묘향대(妙香臺). 서산대(西山臺)
무착대(無着臺)가 있고, 천왕봉의 향운대(香雲臺). 문창대(文昌臺). 영신대(靈神臺). 향적대(香積臺). 금강대(金剛臺)를 지리산 10대(十臺)라고합니다.
또한 묘향대와 문수대 광석대에는 스님이 수도생활을 하고 게신곳이기도 합니다.
노고단 바로 아래에는 문수대
반야봉 아래에는 묘향대
종석대 아래에는 우번암이 있습니다
산행기로는 유서석록(1572)보다 100년 빠르게
1472년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비롯하여 남명조식의 유두류록등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문수골에는 아픈 추억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1948년 10·19여순항쟁 때 문수골은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봉기군의 이동 길이었죠.
토벌군과 봉기군과의 싸움이 계속되었고,
목숨을 내건 전투가 오랫동안 벌어져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해야 했던 문수골 사람들은 빨치산에 당하고, 국군에 당했다. 목숨이 수십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고 합니다
"1948년 10월 19일, 동족상잔을 불러올 제주 출동을 거부한 여수 14연대 군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봉기군은 여수경찰을 무력화시키고, 열차를 이용해 순천으로 향한다. 이튿날 토벌전투사령부가 창설되고, 순천 학구에서 봉기군과 토벌군이 마주한다.
토벌군에 쫓긴 봉기군이 장기전을 위해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문수골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능선으로 둘러싸인 골은 숨어들기에도 제격이었다"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참조.
경찰 자료에 따르면, 문수골을 통해 지리산으로 들어간 봉기군과 좌익세력이 2000여 명에 달했고, 봉기군은 문수분교에 모여 대열을 가다듬었다 하니 밤의 주인은 봉기군이고 낮의 주인은 토벌군이었다.
국립공원 지리산 사무소 야생생물보존원의 시설이 문수골에 있습니다.
지리주능선
쥐오줌풀
천남성
복주머니난
첫댓글 소중한 해설과 멋진 사진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해설과 사진 기대합니다
국잠님께서 행사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무슨 고생을요 ㅎㅎ
같이 자연과 호흡하니 좋을 뿐이지요
다시 새겨보는 지리입니다**
보고 살아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죠 ㅎㅎ
자주뵈요
@한병인(53-5기) 네, 말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넵 ㅎㅎ
가야할 곳이 있으니 열심히 준비하시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선생님들께서 더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