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이야기(1)
아 듀 ! 2 0 1 3 !
이 집은 해안에서 약간 한라산 쪽으로 떨어져 있는데 눈을 들어보면 옛 선인들이 대한10경의 하나로 일컬어 온 신비스런 한라산의 정상과 능선이 아스라이 올려다 보이고, 내려다보면 저만치에 영원을 속삭이는 검푸른 태평양바다가 조망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에게 제주도는 나름대로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내가 4반세기 전(1988-1990)에 약 2년간 내 인생의 황금기를 제주대학교 총무과장으로 근무했던 추억의 땅이며, 나의 선조이신 나주김씨17세 총제 김정준 (金廷雋)공이 제9대 제주 목사(都按撫使兼判牧使 도안무사겸판목사, 1410년~1412년)를 지내셨으며, 25세 김흥운(金興運) 공이 138대 목사(節制使 절제사, 1672년~1675년)로 봉직하시면서 보국안민(輔國安民)하는 목민관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한 곳이며, 나주김씨 14세 김인충(金仁忠공)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종친들이 탯줄을 내리고 터전을 마련하고 번성하여 제주의 명문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이라 마음이 포근하고 아늑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요즘 들어 제주는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고,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으로 지정되었고, 이에 부응한 일련의 대대적인 각종 개발정비사업과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사업이 확충 신설되고 있어 한라산과 바다를 제외한 도시와 농어촌의 옛날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개벽(開闢)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한마디로 제주는 정물화 같은 정적인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역동적인 세계인 명승관광지로 바뀌고 있었다. 제주는 이제 제주도민만의 제주가 아니고, 한국인만의 제주도는 더욱 아니고, 글로벌시대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승지 보물섬으로 거듭 나고 있었다.
탐라로 떠나올 때는 내심 앞만 보고 허둥지둥 살아온 70평생을 조용히 회고해 보고 성찰하며, 앞으로의 여생을 어떻게 보람 있고 알차고 후회 없이 살아 갈수 있는 방안을 차분히 구상해 보고 충전하는 시간을 갖자고 다짐하며 떠나 왔었다. 막상 와서 보니 내 마음 속에 내재하고 있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정신, 그리고 질주 본능까지 더하여 제주의 달라진 모습을 일단 숙지하고자 제주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틈틈이 렌트한 승용차로, 때로는 버스로 동분서주하며 제주도를 일주하기도하고 한라산을 종횡으로 관통하기도 헸다. 제주도는 수도권보다는 기온이 8도 정도 높았지만 바닷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었다. 그러나 바람이 조금 잔잔해지고 바람에 조금씩 적응이 되면서 주마간산 격이지만 우선 제주도 일주를 시작으로 한 달 간의 제주도 생활에 들어서게 되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바다는 마치 맹수가 포효하듯 거대한 파도가 밀어 닥쳤다 물러나고 또다시 산더미 같은 파도가 휜 옷을 입은 거인이 달려들 듯 요란했다. 이런 광경은 육지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라 이들을 감상하며 우리가족은 해안 따라 파도 따라 감탄하며 달려갔다. 달리는 길마다 특색 있는 비경이 전개되었는데 하귀리와 애월 구간은 작은 언덕을 구비치는 길이 매우 아름답고, 애월을 지날 무렵에는 바람이 점점 약해지고, 파랑(波浪)이 조금씩 숙으러드는 덧 하면서 저 멀리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에 언뜻 언뜻 파란 조각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협재해수욕장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바닷가 검은 현무암과 방파제등에 강풍과 높은 파도에 지친 갈매기 등 수많은 바닷새들이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광경은 다시 보기 어려운 장관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협재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곱기가 쌀가루처럼 희고 부드러웠으며, 해수욕장 앞에 펼쳐진 바다에서 골과 이랑을 이루며 흰 포말과 검푸른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그 뒤로 기러기 한 쌍이 날아오르려는 모습을 한 비안도가 다소곳이 정좌하고 있는 풍경은 마치 품격 높고 고아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수월봉은 일정상 그냥 지나치면서 그 지질학적 가치와 중요성을 음미하며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방문할 때는 수월봉 앞 지호지간 바다에 있는 차귀도까지도 둘러보기로 하고 고산 평야를 지나 대정을 지나 송악산을 빗겨가고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 사이를 지나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에 잠시 거닐었는데, 이때는 바람이 잦아들어 바다도 잠잠해졌고 하늘은 파란 얼굴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귀포 방면으로 계속 달리면서 겨울철인데도 푸른 감귤나무에 노란 귤이 제법 많이 달려있는 것을 신기하게 보기도하고, 차량이 진행하는 전방에 언뜻
이튿날엔 어제 제주를 일주 한답시고 스쳐 지나온 동쪽 해안으로 방향을 잡아 해안도로를 따라 화북과 조천, 김녕, 구좌, 성산을 경유하여 표선민속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하고 씨앤하우스를 나섰다. 숙소를 나설 때는 몰랐었는데 조천바닷가에 이르러보니 바다의 풍랑이 매우 거칠어 보였다, 화북 조천을 지나고 김녕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가 방파제와 정자가 있는 해안에 이르러보니 방파제 입구 왼 켠에 자연석 형태의 비석이 하나 저만치 떨어져있어서 그 비문을 읽어보니 ‘재돌이의 꿈은 바다였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난을 떨면서 10억원 정도의 시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서울대공원에서 재롱을 떨던 돌고래 재돌이를 바다로 돌려 보내려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재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장소였다.
김녕을 출발하여 성산일출봉을 저만치 바라보며 지나쳐 약20분을 달려 표선민속촌에 입장하고 약 2시간여에 걸쳐 관내를 거닐며 이곳저곳을 관람했다. 박물관 부지면적이 14만평에 이르는 넓은 곳이라 전체를 둘러보기는 어려웠지만 제주의 옛날 생활 모습과 정취를 엿볼 수 있게 생활용품이나 농기구 가구 등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놓았다. 이곳은 너무나도 유명했던 사극 ‘대장금’의
숙소로 귀환시는 남원을 지나 516도로를 이용 한라산을 횡단하였는데 한라산에는 전날에 내린 눈이 곳에 따라 한길이상 쌓인 곳도 있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온 세상은 하얀 은빛세상이다.
우리가 성판악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경이었는데, 성판악에는 눈 쌓인 한라산의 설경을 완상하려는 사람과 등산하려고 몰려든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기 때문에 성판악 주차장에는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는 ‘화산이 낳은 땅, 제주’의 한라산을 비롯한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만장굴 등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센터역할을 하기위하여 설립했는데 이 센터에는 제주의 신비, 숨결,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아 제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삼성혈에서 숙소로 가는 도중에 제주공항 근처 용담동에 있는 용두암을 방문했을 때는 겨울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고 있을 때인데 용두암은 예나 제나 의연한 모습으로 너른 바다로 비상할 꿈을 꾸고 있는 듯 보였다. 황혼 무렵이지만 이곳 용두암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영겁을 이어온 이 기암괴석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것 같다. 18시에 제주공항으로 이동하여 큰며느리와 손딸 수현을 픽업하여 숙소로 오면서 숙소 인근에 있는 식당‘장독대와 어머니’에서 정식과 보리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귀환하여 휴식을 취했다.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고 무심하며 무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계사년이 시작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3년 12월 마지막 날이 되어 오늘 하루만 지나면 2013년 계사년도 영원한 역사속의 하나의 물결로 사라지게 되었다. 아무런 이룬 것도 없는데 속절없이 한해가 또 간다고 하니 마음이 암연히 수수롭다.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산책하려고 밖으로 나와 한라산을 조망했더니 정상부분은 엷은 운무에 쌓여 있어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산자락과 산 밑둥엔 연무조차도 보이지 않아 오늘의 날씨는 비교적 맑을 것 같아 보였다. 산책코스는 해안가를 따라 조성한 산책로를 따라 이호해수욕장 쪽으로 걷다가 해미안(海美安) 해수탕 뒤편 데코에서 방향을 바꾸어 외도초등학교 옆 하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외도부영아파트단지를 싸고돌아 백제약품 제주지점 앞을 지나 씨 앤 하우스로 귀환하고 있을 때 내가 충북도 부교육감으로 있을 적에 교육감으로 모셨던 정인영 교육감께서 연말연시 인사 전화를 하셨다. 송구영신하라고 하시면서 금년도 마무리를 잘하라고 당부하신다. 연세가 높으시고 건강이 안 좋으신 편인데 내가 전화 드리기 전에 전화를 먼저 하셔서 송구하기 이를 데가 없다. 나도 정인영 교육감님께 송구영신(送舊迎新) 근하신년(謹賀新年) 연말연시 인사를 드리고 백년복로(百年福老)를 축원하는 말씀을 올렸다.
아침식사 후 가족들과 더불어 조천읍에 있는 세계자연유산인 만장굴을 탐방하기 위하여 숙소를 나섰다. 집을 나설 때는 날씨가 쾌청해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태양은 밝고 따뜻하게 비추어 마치 봄 날씨 같았다. 만장굴에는 내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엔 여러 번 방문했었지만 근래 약10여 년 동안은 온 적이 없다. 그런데 서영과 수현은 제주에 몇 번 왔었지만 만장굴에는 아직 못 가봤다고 했고, 나도 만장굴이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된 후에는 방문한 적이 없어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만장굴을 방문하기로 했다. 만장굴을 방문하면서 가족들에게 만장굴은 지질학적 가치와 규모가 세계적으로 뛰어나 제주도가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고, 유네스코가 지질공원으로 지정하는데 크게 참고가 됐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만장굴에 도착했다. 만장굴은 예전에 왔을 때와는 천양지차로 변화가 있었다, 세계7대 경관과 세계지질공원에 걸맞게 만장굴내부는 물론, 홍보관 편의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어 놓아 몇해전 왔을 때와는 다른 처음 방문한 곳이 아닌가 할 정도로 격세지감,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서영과 수현 둘은 마냥 좋다하며 연신 열심히 카메라 버튼을 누르며 좋아하는 것이 대견스럽고 흐뭇하다. 만장굴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는 12시가 넘어 점심시간이었다. 만장굴 가까이에는 고운 모래사장과 수박으로 유명한 함덕
모래에 써놓은 글씨는 곧 바로 지워지겠지만 함덕 해안의 빼어난 풍광 속에 서 잠시지만 우리가족이 거닐며 보낸 시간은 영원히 가족들 마음에 서로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배려하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함덕 해변의 소요(逍遙)는 의도한 것도 아닌데 아주 멋지고 뜻 깊은 가족 만남이었다. 다음 일정은 아침식사 때 가족들과 상의된 ‘제주돌문화공원’을 가려고 함덕의 바다를 뒤로 하고 한라산 중(中)산간으로 이동했다. 약20여분을 달려 갔더니 한라산 자락 너른 평지에 제주돌문화공원이 제법 위용을 자랑하며 자리 잡고 있다. 이 돌문화공원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제주도가 ‘삼다도’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돌이 많은 특성을 살리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인데 제주 전역에 숱하게 널려있는 검은 현무암을 비롯하여 제주도가 태초부터 생성되는 과정, 제주의 돌, 수석, 돌로 만든 하루방과 연자매 등 생활도구를 많이 모아놓고 있는데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계획대로 제대로 보완하여 내실을 다진다면 제주의 특색을 살린 돌 문화공원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돌 문화공원은 한나절 이상은 보아야 그런대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인데 시간이 모자라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만들어 방문하기로 하고 총총히 떠났다. 6시경 숙소인 sea&house(바다, 그리고...집)로 귀환했다. 2013년12월31일 계사년이 영원한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리는 날 제주도 해안에서 해넘이를 가족들과 함께 보려고 했지만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보지 못한 채 아쉬움 속에 서서히 또 한해가 가버리고 있다. 스산한 마음 달랠 길 없어 12시 자정까지 기다렸다가 tv화면을 통해 울려나오는 33번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희망찬 대망의 2014년 갑오년 새해는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든 일을 성취하고 항상 수복강녕하기를 기원해 봤다.
2014년 1월초 제주외도 숙소에서
지상 김 근 학
첫댓글 제주에 장ㅅ간 머무시면서 자세히 묘사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주는 지금 중국투자로 난개발에 엉망이 되어가고있고, 중국에 투자유치헤서 국토를 팔아먹는 도백은 절대 표를 주지 말라고 지인들과 종친들에게 당부하고있답니다.
저도 제주정보대학 앞에 목장지 50만평이 제가 들기회원으로 매년 총회에 참석해서 개발게획을 주장해도 1세대 노인회원들이 매도해서 살아생전에 돈좀 만져보려는 욕심뿐이라 말이 먹히지 않아서 답답하답니다.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건강하세요. 저도 함덕에 750평 밀감밭에 콘테이너 별장이 있답니다. 좋은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광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