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맥 신인상 -시-뽑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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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시적 진실의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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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작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사물을 응시하면서 통찰(洞察)하는 사유(思惟)의 지향점이다. 이는 그 시인의 정서에서 발현되는 진실이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느냐 하는 관점에서 살펴보게 된다.
그러나 탁월한 발상과 동기가 부여되었더라도 언어의 조탁(彫琢)이 없으면 시적 진실의 형상화가 부족한 점을 감내해야 한다. 시적언어의 적절한 구사는 그 작품의 형태에서부터 주제의 창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경애 님의 응모작 「황태덕장에서」외 9편은 모두가 이와 같은 사물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그의 시심을 예견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오랜기간의 습작이 그 결실을 보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한다.
그 중에서 「황태덕장에서」,「겹동백」,「폭한」,「부석사에서」,「섬」등 5편을당선작으로 선한다. 강경애 님은 그동안 수필가로서 다양한 사물과의 접맥을 통한 문학적인 진실 탐구에 매진해온 재원이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해서 창조하는 시적 지향점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구현하려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향방을 ‘나’와 ‘너’라는 시적 화자의 어조를 통해서 인생 희로애락의 다변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발상과 동기에 수반하는 의미적인 요소 즉 주제는 바로 우리 인생의 애환이 형상화하는 진실이다. 이 진실이 언어라는 미학적인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는 시학적인 요체가 바로 시적인 진실 탐색에 명징(明澄)한 의미의 공감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언어의 궁핍을 해소하는 좋은 시를 창작할 것을 당부하면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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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김송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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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등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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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덕장에서 외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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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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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황량한 들판이 보인다
거진항 할복장에서 늙은 여인네의 칼 사위에
뱃속 강탈당하고
애 [腸]를 태우는 그을음이
항구의 곳곳으로 검게 스며들 때
인제 용대리 덕장으로 끌려왔다, 마구 구겨진 채로
생은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수초사이를 헤엄치며
지느러미로 꼬리칠 때 진즉 알아야했다
삶의 형태는 내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칼바람 견디며 온 날들이 얼마인가
통통하던 사지 팅팅 불어 얼어터지고
속속들이 황달 좀먹어
몸은 푸석해져만 간다
명태였을 때의 아름다웠던 꼬리, 눈빛에
저녁노을이 걷어 채간 어둠이 내리고
죽고 살기를 반복하던 나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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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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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그날따라
흔들거리는 이삿짐에 치여서
볼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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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입술 꼭꼭 오무린 지 서너 날
그녀는 하고픈 말 쟁여놓고
가슴 열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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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리던 그녀
겹겹이 열꽃 피우고 입 열어
쉼 없이 한 맺힌 말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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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 그녀에게서는
오동도 바다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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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한(暴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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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폭한 하나 키우고 있다
마음이 조금만 언짢아도
심장을 조이고
온 몸 뒤틀리게 만드는
작지만 난폭한 그
어떤 아나키스트도 일체 용납하지 않는 그는,
내게 파견된 테러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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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을 위한 방어엔 속수무책인 채
늘 임시변통으로 알약만 삼키며
그를 잠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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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슴속 급소에 웅크리고 있는 그를
맑은 물을 끼얹어 씻어 버릴 수 있다면
무정부주의자들도 제 길을 찾아갈 텐데,
통증이 가속될 때마다
나는 죽기 살기를 반복한다
생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한 근도 안 되는 이 명치에
내 목숨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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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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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기둥삼아서 옹이처럼 박힌
봉황산 중턱에 한 폭의 절집 찾아
늙어 사지가 불거진 사과나무 길을 지난다
여기가 극락으로 올라가는 길이던가
구곡계단을
어렵사리 올라가 대웅전에 이르니,
굽이굽이 연이은 파도들이
간단없이 밀려오는 바다위에
멍텅구리 배 한 척 비척대며 떠 있다
이곳이 도피안의 절정이련가
애써 외면하는 그를
두 손 벌려 감싸 안으니
마음은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내릴 생각하지 않는다
곳곳마다
그대 향한 이 진심 배 불룩한
배흘림기둥에 깊숙이 숨어 있으니
너는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사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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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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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물속에 하반신을 담근 너는
조상(彫像)처럼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슬픔을 머금은 너의 모습은
알듯 모를 듯,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요한 모리츠가 되기도 하고
서귀포 도로 한가운데에
생뚱맞게 서 있는 돌하르방처럼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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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통도 침묵으로 대신하는
너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 푸르디푸른
바다에 빠져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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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의 반가움 아직 내 안에 그득한데
두고 온 너,
내가 나를 버린 듯, 등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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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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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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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삶으로 다시 쓰는 인생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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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마음과 행적을 풀어헤치며 직유의 삶만 살아왔다. 이젠 마음을 풀어헤치기보다는 안으로 감아올리면서 좀 더 의미가 깊은 은유의 삶으로도 발길을 내디디려고 한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그 시도를 해오고 있긴 하지만 이젠 발걸음이 더 잦아지겠다.
인생은 생각대로 펼쳐지진 않지만 정열과 의욕만 있으면 언제라도 원하는 지점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전에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정열이 나의 사후까지 남아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렵다.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앙드레 지드의 이 말을 늘 가슴 속에 품고서 살고 있다.
내 인생의 이정표를 다시 쓰게 해 주신 김송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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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강경애(姜敬愛))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 1992년 <시와 비평>으로 문단에 나옴
.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가톨릭문인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 수필집:『바람은 바람을 일으킨다』『그래 우리 진정 사랑 한다면』『삭제하시겠습니까』
. 2015년 현재 동서문화사 편집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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