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향하며 곽주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 나와 제자는 길 옆에서 휴식을 하게 되었다. 멀리 보니 자전거를 탄 여자 한 분이 나를 향하여 “스님”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쫓아왔다. 나에게 절을 하며 묻기를 “스님, 방금 절하며 지나가시던데 지장보살을 염하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이상하여 기공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개의치 않고 말했다. “나는 지장보살을 염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스님을 집으로 청하여 식사를 공양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안 됩니다. 내 몸은 매우 더러우며 맨발에 살이 드러났으니… 산서(山西) 지방에는 석탄이 많아 길에서 절을 할 때 석탄재가 날려 마치 검은 밀가루를 온몸에 덮어 쓴 것 같습니다. 게다가 땀까지 흘려 정말 거지보다도 더 더럽습니다.”
그녀는 단지 절을 할 뿐 일어나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의 요청에 허락하였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였다. 보아하니 대략 삼십여 세 되어 보였다. 마침내 그녀의 과수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녀가 남편에게 삼륜차로 우리를 싣고 가게 청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며 또한 움직일 기색도 없었다.
나는 길이 그리 멀지 않으니 걸어서 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녀도 수긍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함께 마을에 들어섰다. 제법 큰 마을이었으며 그녀의 집은 마을 서쪽에 위치하였다. 우리는 동쪽으로 들어가는데 마을사람들은 여자가 매우 더러운 행색의 두 스님을 모시고 신발도 없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마치 특별히 (우리가 온다고) 알린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쑥스러워할까 두려워하면서 말했다.
“스님, 고개를 드세요.”
내가 말하였다.
“나는 여인을 보면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그녀가 나와 같이 가니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녀의 정력(定力)을 보았다. 그녀는 조금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 대단하였다. 체면을 놓은 것이다.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 여인이 심상치 않아. 내가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만 봐도 정말 공부를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어. 기공을 공부하는 분은 아니야.’ 마음속으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니 그녀는 나와 제자를 불당(佛堂)으로 들게 했다. 방 한 칸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불전에 청수를 공양하고 있었다. 이때 따라온 사람들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 여신도는 채소를 사러가고 나는 구경꾼들에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승려입니다. 이 집 여주인은 불교를 믿는 분으로 우리를 맞이하여 식사를 대접하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천천히 물러갔다. 그녀는 두 가지의 반찬을 준비하였으며 우리는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조금 후 그녀의 남편이 돌아왔다. 부엌문을 사납게 열더니 냄비를 탕, 탕 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불만이 가득 찬 것이다. 이때 나는 자세히 그녀의 무명화(無明火)를 관찰하였다. 그녀는 예상외로 무엇도 듣지 않고 보지 않은 것처럼 어떠한 반응도 표시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였다. 그녀의 정력(定力)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식사를 마친 후 염불당에 갔다. 그녀가 말하였다.
“스님, 저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불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자재로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 염불하여 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해지며, 염하여 무념(無念)이 될 때 어떻게 합니까?”
나는 말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울기를 다할 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에게 일러줄 것입니다.”
그녀는 정말로 울었다. 세탁한 옷이 마르기를 기다려 우리들은 다시 절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목마하(牧馬河) 교량에서의 큰 사고
그 날은 날씨가 매우 더웠다. 오후가 되어 목마강 큰 다리에 도착하였다.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아 절하지 않았다. 어린 제자는 탁발하러 갔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맨발로 수레를 밀면서 나아갔다. 다리 위에는 뾰족한 돌이 매우 많아 잘못 밟아서 미끄러져 내렸다. 급히 손으로 다리 난간을 잡았으나 잡히지 않아 머리가 다리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공중에서 급히 몸을 돌려 다행히 두 다리가 먼저 땅에 떨어지는 찰나 다리 밑을 보니 토석이 섞여 쌓여 있었다. 다리가 땅에 떨어질 때 두 손을 미니 몸이 공중에 날아 3m나 넘게 멀리 떨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수레도 교량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방금 떠난 토석더미로 떨어진 것이다.
아이구, 정말 위험했구나. 조금만 늦게 피했더라도 수레에 깔려 죽을 뻔했군. 잠시 그 곳에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내 몸이 어떤지 생각이 났다. 머리를 흔들어 보니 괜찮고 팔을 흔들어 보아도 괜찮았으며, 왼쪽 다리를 움직여보아도 이상이 없었으나 오른쪽 다리를 움직여보니 전혀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힘써 다리를 들어보았다. 바지를 당겨보고는 놀라 자빠졌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무릎 아래에서부터 발등까지 살이 밖으로 쩍 벌어져 나온 게 아닌가! 매우 놀랐다. 이렇게 큰 상처는 응급처치를 하여 봉합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내 몸에는 돈 한 푼 없으니…
약간 겁이 나서 손으로 지탱하며 위로 기어올라갔다. 오른쪽 다리는 이미 마비가 되어 쓸 수가 없었으며 올라갈 수가 없었다. 정말 큰일이다. 몸이 마비되면 안 되는데… . 힘써 다리 기둥까지 올라가서 기둥을 잡고 일어섰다. 이때 벌어진 살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며 순식간에 붉은 선을 이루어 발등을 따라 흘러내렸다. 빨리 지혈해야 하며 만약 피가 멎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를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무얼 가지고 지혈하지? 손으로 다리기둥을 잡고 돌아보았다. 피는 흥건히 땅에 흘러내렸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가서 인연을 구할까? 안 돼! 나는 이미 서원을 발했지 않는가! 인연을 구할 수는 없어! 하지만 만약 피가 너무 많이 흐르면 목숨이 위험해질텐데, 어떡하지? 집에 돌아갈까? 그러나 집이 어디 있지?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군, 이 젊은이야!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안 돼! 견뎌내야 해. 지혈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 두루마기를 찢어 무릎 위를 단단히 묶었다. 이러면 안 돼. 피는 그래도 통해야 돼. 이때 숨을 헐떡거렸다. 호흡이 약간 힘이 들었으며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땅에 떨어진 피가 덩어리가 질 정도였다. 지탱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문수보살님! 설마 제가 목마강 다리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어린 제자가 탁발한 후 돌아왔다. 그도 보고 매우 놀랐다. 나는 풍습지통고(風濕止痛膏)가 생각이 나 그에게 가져오게 하여 상처에 모두 네 장을 붙였다. 붙이고 난 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지각을 잃어버렸다. 마치 꿈결처럼 한 분의 자상한 노스님이 내 머리를 두드리며 말하기를 “생명은 무상하며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많구나. 돌아가거라. 가련한 아이야!”
나는 눈을 떴다. 몸에서 열이 나고 다리는 아프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천천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일어서서 다리기둥을 의지하여 몇 바퀴를 걸었다. 단지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기 어려웠다. 절을 할 수 있으면 괜찮아. 마음은 무리하게 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나는 다리를 끌면서 절을 하였다. 배향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는 것이 매우 느렸으며 그래도 절을 하려고 하였다.
다음날 고열이 났으나 그 다음날 아침까지 버텼다. 풍습고가 신통치 않음을 느끼고 한 장을 떼어내자 고약한 비린 냄새가 퍼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감염이 된 것이다. 풍습고 네 장을 모두 떼어 내니 파리들이 몰려왔다. 상처를 보니 정말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살은 밖으로 벌어져 나왔으며 흰 뼈가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죽음의 위기를 통하여 약간은 성숙되었는지라 매우 빨리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아울러 스스로 안위하며, ‘겁내지 말자. 어떤 사람은 다리가 모두 없는데 나는 단지 한쪽 다리를 다친 것 아닌가. 마땅히 만족해야지. 어떤 사람은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죽지 않는가. 나는 아직 살아 있으니 마땅히 기뻐해야지. 단지 절을 할 수 있으면 나는 오대산과 가까워질 것이다. 견뎌내자. 견뎌내자….’
높은 열은 계속되었으며 대퇴부가 마비되고 파리가 다리를 에워싸고 한 무리를 이루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이 보고는 모두 코를 비비면서 “정말 고약한 냄새군. 목욕도 하지 않으니 몸에 파리가 날아들지. 이 더러운 화상아….”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의 고통을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속으로 삼키자꾸나. 며칠 지나면 좋아질 거야. 어린 제자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시골 진료소에 가서 약을 구하려고 하였다.
“우리 스승이 다리를 다쳤는데 소염약 좀 주세요.”
의사가 말하였다.
“네 스승은 다리가 썩었어. 아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진통약이 있는데 필요하면 두 알 주지. 필요 없으면 그만 둬.”
그는 돌아와 나에게 의사의 말을 전하였다.
내가 말했다. “그만 두자. 필요 없어. 정말 한탄스럽구나.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약을 주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지…, 이것도 내가 인지(因地)에서 복을 심지 못한 과보이지.”
이때는 이미 5일이 지난 뒤였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단지 하나의 신념이 있을 뿐이었다. 한 걸음을 가면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매 한 걸음마다 이를 악물었다. ‘지탱하자. 멈출 수 없어. 신심이 있으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저녁에 휴식할 때 나는 앉을 수조차 없었다. 앉으면 못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서서 지냈다. 절을 시작하자 통증이 엄습하여 어떤 때는 감각을 잃었다. 어느 날 하루는 절하며 앞으로 가는데 어떤 사람이 뒤에서 사납게 발로 내 엉덩이를 차서 내 몸이 앞으로 3m나 넘게 비틀거리다가 까무러쳤다. 귀를 찌르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깨어났다. 상처를 보니 살은 이미 검어지고 뼈에서 누런 진물이 흘러 나왔다. 증세가 가중된 것이다.
9일째 되는 날 호흡이 힘들고 대소변도 통제를 잃었다. 나는 가망 없음을 느끼고 나의 삶이 끝장이 났음을 느꼈다. 이날은 비가 온 뒤라 날씨가 매우 추웠다. 오대현(五台縣) 경계까지 왔을 때 붉은 팻말에 ‘오대현’이라 써 있었다. 옆에 고목이 한 그루 있고 아래에는 문이 없는 수신묘(樹神廟)가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려 하였다. 나와 어린 제자는 건너편에 앉았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그에게 말하였다.
“오대산 배향은 이룰 수가 없구나. 너는 나의 의발을 가지고 오대산 배향을 마치거라. 너는 아직 어리니 장성한 후 다시 나머지 세 산의 배향을 마치거라.”
이 어린 제자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산골에서 자라 하루 배불리 먹으면 다 되었다. 무슨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일체를 관여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기에 이어서 말하였다.
“나는 출가 이후로 금전계(신도들에게 일체의 돈을 받지 않는 계)를 지키느라 모아둔 돈이 아무 것도 없으며, 단지 삼의(三衣)와 하나의 바루가 있을 뿐이니, 너는 잘 거두거라. 내 몸은 처리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탁을 마친 후 연필과 종이를 꺼내어 먼 곳에 계신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출가할 때를 회상하니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다. 본래 출가하여 불교를 위하여 무엇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이런 모습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으리오! 눈물이 흘려 내렸다.
어떻게 쓸까? 거짓말로 출국했다 하고 어찌 어찌 하다고 쓸까? 안 돼! 마음이 괴롭더라도 사실대로 말해야 돼. 나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편지를 썼다.
존경하는 부모님!
요 몇 년 동안 이 아들은 집을 떠난 뒤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잘 계신지요? 불효자 장녕은 출가 이래 줄곧 바깥에서 유랑하면서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좋은 소식이 없어 두 분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본래 출가하면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대산 배향 시 몸을 상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변변치 못한 아들은 (이 상처에) 맞설 힘이 없으며 말을 듣지 않는 이 몸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장녕은 또 한번 말 없이 영원히 떠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살아서 제가 좋아하는 불법을 위하여 일체를 행하고 진정한 자아를 깨달아 두 분의 양육의 은혜에 보답코자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저는 다시 인간 세상에 와서 저의 서원을 완성하여 당신들께 반드시 보답할 것을 자신합니다.
저는 두 분이 더욱 노후의 시간을 아끼기를 바랍니다. 두 분은 불법에 대한 신심이 깊으니 아들의 죽음 때문에 그것을 잃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 분이 반드시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몸뚱이는 어떤 사람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보배롭고 귀한 것입니다. 두 분이 만약 매일 300배의 절을 한다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를 입을 것이며 묘한 낙이 그 가운데에 있을 것입니다.
아들인 저는 두 분이 더욱 좋게 자기의 몸을 돌보아 전심으로 불법을 배우고 부처님께 예불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불효자 장녕(長寧) .
● 오대산에서 이별하면서
나는 편지를 다 쓴 후 신분증을 가사 안에 넣고 삼의와 바루를 수습하고는 수신묘에 앉았다.
“수신이여, 잠시 당신의 집을 빌려 휴가를 청합니다.”
다리를 포개고 수인(手印)을 맺으니 통증을 참을 만하였다.
구름 따라 물 따라 행각하는 승려 묘림
맨발로 네 산을 예배코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지금부터 즐거운 사바세계를 생각하지 않으리.
일체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욕망, 비정, 고통 등 모두 놓아버리자. 잠시 후 지각을 잃었다. 몽롱한 가운데 한 여신(女神)의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보니 수신(樹神)이었다. 그녀가 말하였다.
“훌륭한 묘림 스님이여. 즐거운 사바세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의 서원은 어디로 갑니까! 원력이 업력보다 크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곧 게(偈)를 고쳤다.
구름 따라 물 따라 행각하는 승려 묘림
염불하며 맨발로 네 산을 참배코자 하였으나
업도 크고 원도 크니 몸은 죽지 않을 것이니
지금부터 즐거운 사바세계를 잊지 않으리라.
말을 마치고 눈을 뜨니 먼 곳의 불빛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자 다리가 마비되었다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다시 한번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 올린 것이다.
● 문수보살이 수레 끄는 것을 도와주다
오대산 아래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지려고 하였다. 멀리서 기이한 향기가 날아오니 성스러운 곳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조금 후 두 분의 비구니스님이 라면 몇 봉지를 가져왔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우리들은 교량 옆에 앉아 비옷을 머리에 덮어썼다.
식사를 준비하는데 비옷을 높이 들어올리며 뛰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비가 많이 옵니다.”라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비가 정말로 많이 왔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좋아요. 나는 걸식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니 우리는 친척이군요. 밥은 드셨습니까?”
그는 아직 먹지 않았다고 하였다. 나는 “마침 잘 되었군요. 나에게 라면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바루에 라면을 넣고 반찬을 섞어서 함께 먹기 시작하였다. 밥을 다 먹자 비도 그쳤다. 도로변에 앉아서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가 말했다. “나는 뇌림(祺林 : 숲을 주무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는 묘림(墓林 : 묘지나 숲 속에서 지낸다는 뜻)이라 하는데, 당신은 뇌림이라 하니 우리는 ‘림’자 돌림이군요.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절하면서 문수보살께 참배하러 왔습니다.”
그에게 부처님을 믿느냐고 묻자, “믿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집에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부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부처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내일 비탈길을 올라갈 때 수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천천히 끌고 갈 거라고 하였다. 그는 “내가 당신이 수레 끄는 것을 도와주겠습니다.”라고 말하였고, 나는 승낙하였다.
그 날 저녁 우리는 함께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다음날 아침 4시경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나는 절을 하기 시작했고 ‘뇌림’이라는 사람은 수레를 끌었다. 오대산 비탈에 들어서니 길은 가파르고 두 개의 고개를 넘자 아침 7시가 되었다. 나는 바루에 오이와 라면을 섞어 셋이서 같이 먹었다. 그의 슬리퍼가 발바닥이 드러난 것을 보고 내 장화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매우 기쁘게 신고는 슬리퍼를 길가에 버렸다. 도로가 급하게 구부러지는 지점에 차량들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둥근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길은 매우 가파랐다. 어린 제자는 이렇게 큰 거울을 보고 매우 신기해하며 거울을 비춰 보았다. 뇌림은 본래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어린 제자가 거울을 비춰 보는 것을 보고 말했다.
“비춰 보긴 뭘 비춰 봐. 요사스런 거울을 비춰!”
나는 고개를 들면서 마음이 밝아졌다. 관(觀)이 있고 비춤(照)이 있으면 아상(我相)이 있고, 관이 없고 비춤이 없으면 열반(涅槃)이다. ‘요사스런 거울을 비춰 봐.’라는 것은 아주 좋은 한마디였다.
이 뇌림이라는 사람 심상치 않네
아마 문수가 와서 돕는 것인가
먹고 자고 수레를 끌며 함께 길을 가면서
거울을 비춰 요사스러운 거울을 깨니 마음도 없구나.
이미 정오가 되어 우리들은 같이 밥을 먹었다. 마지막 긴 오르막을 절하며 오르니 길이 평탄하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먼저 가야겠소. 오대산이 보이는군요.”
나는 수박이 있으니 같이 먹자고 하였다. 수박을 다 먹고 나서 그는 내 몸 뒤로 가려 하였다.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켜 그를 배웅코자 하였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곧고 곧은 대로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로 묘길상(妙吉祥 : 즉 문수보살)이었다.]
● 대회진(台懷鎭)에서 크게 토하다
대회진이라는 마을에 들어와서 첫날 저녁은 관음동(觀音洞) 아래 맞은 편의 평평한 곳에서 쉬었다. 오대산의 저녁은 매우 쌀쌀하였다. 아침에 남산사를 참배하고 저녁에는 현통사 앞 대백탑(大白塔) 뒤편의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우리는 대백탑을 참배한 후 탑 아래에서 쉬었다.
밤 열 시경 대백탑 상공에서 사자가 사자후를 하며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이때 나는 비록 오대산에 도착했을지라도 뒤편의 길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해서 마(魔)의 무리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잠시 후 사자는 흰구름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사라졌다.
아침에는 현통사(顯通寺)를 참배하며 이 절에서 오전 내내 절하였으며, 정오에는 선당(禪堂)에서 우리를 재(齋)에 초대하였다.
오후에는 탑원사(塔院寺)를 참배하였는데, 우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나는 금전계를 지키므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몰래 우리 가방 속에 넣어주곤 하였는데 나는 집어서 공중에 뿌렸다. 하늘 가득 돈이 휘날렸다. 모두들 이런 모습을 보고 다 울었다.
저녁에는 현통사 종루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앉아 있는데 대략 12시경 온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자가 부르짖어 마군(魔軍)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였다. 급히 결인(結印)을 하자 잠시 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다시 조금 있으니 몸이 마비되고 눈이 붉어지며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할까? 일어서서 종루 아래를 왔다 갔다 하였다. 몸을 움직여보아도 마음대로 잘 안 되었다. 눈은 여전히 아픈데, 갑자기 두촌(杜村)에서 겪은 일이 생각났다.
그 날 오후 차를 몰고 가는 한 분의 거사가 우리에게 두 개의 비닐 병에 담긴 물을 놓고 갔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 물병을 가졌다. 잠시 후 거지처럼 초라한 행색의 사람을 만나 물병을 주려고 하니 받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가져가세요.” 하며 권하자 그제서야 받았다. 나는 그가 신발 수선 기계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의 신발을 수선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신발을 수선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들은 건너편에 앉았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절하면서 오대산에 참배하러 간다고 하였다. 그는 걸어가는 것과 다르냐, 절하면서 가면 얼마나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서원을 발하였기 때문에 꼭 절하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같이 이렇게 의지가 굳세고 큰 사람은 만나기 어려워요. 만약 길에서 몸이 마비되고 눈이 아프고 할 경우에는 풀이나 막대기로 목구멍을 건드려 먹은 것을 토해내고, 물을 마시고 다시 토하면, 병이 빨리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때는 주의 깊게 듣지 않았는데 오늘 그 사람이 일러준 방법을 써보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었을까, 혹시 우연의 일치인가! 아, 이것은 아마 또 한번의 문수보살의 자비의 시현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종루 밑에서 보니 모든 곳이 성지(聖地)인데 어디에 대고 토해야 할지 몰라 한참동안 토할 곳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주민들의 집이 있었다. ‘저 집의 지붕 위에 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어 먹은 것을 토해냈다. 세 병의 물을 마시고 다시 토하고, 토한 후 나는 정좌하였다. 조금 지나니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문수보살은 정말로 자비로웠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계속 절하고 저녁에 다시 종루 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밤 12시가 되자 몸이 마비되고 눈이 아팠다. 나는 어제와 같이 하였다. 먹은 것을 토한 후 물을 마시고 다시 토하니 또 좋아졌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매일 장을 씻어냈다.
이 대회진이라는 곳은 정말로 넓었다. 나흘을 절했어도 반밖에 가지 못하였다. 나는 몸도 안 좋고 또 절하는 데도 없어 먼저 대라정(黛螺頂)의 오방(五方) 문수를 참배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침에 시작하여 선재동(善財洞)에 도착했을 때 길가 계단에 앉아 쉬고 있는데, 위에서 한 분의 스님이 내려왔다. 나처럼 낡아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스님이 내 옆에 앉았다. 아래에서 한 분의 여신도가 올라오면서 나와 어린 제자에게 각각 백 원씩 주었다. 그는 멍하니 ‘왜 나는 주지 않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받지 않았다. 그가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기에, 내가 말했다.
“발원한 보살은 중생의 사업을 해야 하고, 중생도 보살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절하며 위로 올라가 오방문수전에 도착하였다. 나는 다섯 개의 향을 피워 보정(寶鼎) 안에 놓고 절하면서 생각을 일으켰다.
‘큰 지혜의 문수보살님!
제자 묘림은 당신의 자비와 가호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위로로 편안해진 제자에게 하나의 청이 있습니다. 즉 오방의 문수를 세상에 내려보내 네 성지의 산에 절하며 향을 피우게 하여 말법시대 길을 잃은 고난의 중생을 위로하여 편안케 해주소서!’
이때 나는 오체투지하면서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3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더러운 개울의 물을 마셔가며, 여러 차례 참기 어려운 매를 맞고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그 때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스스로 억제하고 절을 하며 대라정을 내려갔다. 벽산사(碧山寺)를 참배하기 시작할 때 많은 스님들이 내가 대회진에서 참배한다는 것을 알고 맞이하러 나왔다. 어떤 스님은 울었고, 천왕전(天王殿)의 한 노스님은 대성통곡하면서 말하였다.
“보살이 되기가 정말로 어렵구나!”
절을 마치자 묘강(妙江) 대화상이 나를 맞이하여 묵게 해주었다. 저녁에 또 병이 발작하여 물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토한 후 돌아와 앉으니 날이 밝았다. 객실스님이 말하였다. “우리 선당(禪堂)에 계신 광심(廣深) 스님이 공부가 매우 많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만난 적이 있으나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는 내 이런 모습과 표정을 보고 매우 감복하는 것 같았다. 이 광심 스님은 이후 오대산에서 내려와 배향하는 다섯 분의 스님 중 한 분이 되었다. 동대(東台)를 참배하기 시작하였을 때 이틀을 탁발하지 못하여 전에 먹어본 적이 있는 야생초를 먹었다. 또 야생초를 찾아 먹으려고 하는데 두 분의 비구니가 밥을 가지고 왔다. 동대를 참배한 후 토하는 병도 나았다.
● 북대(北台)의 정상에서 차가운 비바람을 만나다
우리가 화북(華北)의 용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지려 하였다. 석비루 아래 앉을 곳을 찾았다. 하늘에서 가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우리들은 비덮개를 머리에 둘러썼다. 이어서 바람이 부는 게 심상치 않았다. 북대의 바람은 매우 세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더욱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하고 바람은 더욱 더 세차게 불어 일종의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조금 있으니 광풍이 불기 시작하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비덮개를 썼는데, 마치 머리 위에서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았다. 손으로 비덮개의 한 모서리를 잡고 다른 한 모서리는 발로 밟아 지탱코자 하였으나 비덮개는 깃발 마냥 공중에 휘날렸다. 사람도 지닌 물건들도 모두 물에 젖어 그 차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박으로 변한 비는 마치 돌멩이로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덮개를 잡고 왼손으로는 어린 제자를 안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손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힘을 내 흔들어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리를 오므려 보니 움직이지 않아 비로소 얼어서 손발이 곱은 것을 알았다.
나는 일찍이 오대산에서는 사람이 얼어죽을 수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온힘을 다해 어린 제자를 보호하면서 비덮개를 그의 몸에 감쌌다. 나는 아무 것도 걸친 것 없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머리에 맞으니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손을 펴니 다섯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아 공포감이 또 엄습해 왔다. ‘보아하니 내 목숨을 북대에 내려놓아야 하겠구나….’ 이때 갑자기 문수보살께 하소연하고 싶었다. ‘3분이 지나도 비가 멈추지 않으면 저는 오대산을 떠나갈 것입니다. 오대산 참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탄식하기를,
청량성지(淸凉聖地)에 비가 세차게 내리니
세상사에 마(魔)가 있고 없음을 알겠네.
화북옥 마루에서 몸이 위험을 만나니
못 다한 뜻은 뒤에 사은(四恩)에 보답해야겠네.
내가 게송을 마치자 비가 갑자기 멎었다.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하였으나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제자에게 비덮개 속에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우리가 일어서니 바지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한풍이 불자 곧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오대산에는 평평한 산이 많으니 바람을 피할 곳이 없다.
‘대회진으로 돌아갈까. 안 돼. 길이 없어.’ 위를 보니 불빛이 보였다. 한 줄기 기쁨이 일어났다. ‘의발만 챙기자. 아무 것도 필요없어.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해.’ 나는 어린 제자를 끌고 캄캄한 밤중에 짝짝 소리가 울리는 살얼음을 밟으며 위로 뛰어갔다.
위에 도착하여 급히 문을 두드리니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스님, 우리들은 북대에 참배하는 사람입니다. 큰비가 오고 하여 매우 춥습니다. 하루 밤만 머물고자 합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 남문으로 가라고 하기에 남문으로 가서 한동안 사람을 불렀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동안 문을 두드렸으나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이 문은 바람이 부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얼음사람처럼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가련한 사람이 있을까? 정말 고통스럽구나. 이것이 바로 인과인가 보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 곳을 떠나 바람이 덜 부는 동쪽 전각의 담으로 왔다. 담 모서리 안쪽에 어린 제자를 앉도록 하고 나는 밖에서 바람을 막았다. 잠시 후 제자가 졸기에 그를 자꾸 불러 잠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날이 밝아져 일어났다. 기념 합장주가 떨어졌으나 꽁꽁 언 손으로 주우려고 하니 주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줍지 않았다. 산비탈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의 물건들은 바람에 날려 산비탈 밑에 흩어져 있어 주우러 갔다가 돌아왔다. 계속하여 배향하며 수레를 맨 끈을 어린 제자 허리에 묶어 제자는 끌고 나는 절하면서 밀었다. 이렇게 얼마를 지나고 나자 땀이 났다.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정말로 위험했어!
● 붉은 얼굴의 오리도 부처님께 절하다
연못에 이르러 목욕할 때 멀리 한 마리의 오리가 나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곁으로 와서 세 바퀴를 도는 게 아닌가. 이 오리를 보니 한 번 생각이 미혹되어 오리가 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진실하게 마음으로 말하였다.
‘같이 수행하는 이여! 습기(習氣)를 제거하지 못하면 속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네. 너는 말하는 것은 좋으나 오리의 습기가 두터워 오리가 되려고 하면, 부처님도 너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
내가 한번 절하니 오리도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대웅전에 와서 내가 삼배를 하니 오리도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았다. 내가 절하고 나올 때 그도 나를 따라 절하며 나와서 나를 제법 멀리까지 배웅하였다. 내가 앉으니 그가 내 옆에 오기에 그에게 말하였다.
미혹하고 깨달음은 단지 일념간에 있으며
습기가 현전하면 평온하지 못하네.
금생에 비록 오리가 되었지만
내생에는 남자로 태어나게.
“돌아가게!” 나는 다시 절하며 나아갔다.
● 대동(大同)에서 온 신도들 소리내어 울다
서대(西台)로 가는 길에서 절하고 있는데 뒤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이 따라왔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대동시에서 참배하러 온 신도들이란다. 그들은 내가 절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울기 시작하였다. 어떤 여신도는 매우 큰 소리로 울면서 말하였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부처를 보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은 정말로 보살이 세상에 머무신다고 말하였다. 앞다투어 돈을 주는데 받지 않았다. 그러자 먹을 것을 주었다. 그들이 먹지 않은 음식을 다 나에게 주었다. 나도 울었다. 기뻐서 울었다. 예상외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살심을 발하여 밥 빌어먹는 나에게 보시하고, 자비롭게 대하고, 안타까워하니 그 때마다 매우 큰 부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찌 이것이야말로 보살의 대비(大悲) 사업이 아니란 말인가? 보아하니 나 같은 이런 밥을 비는 거지노릇이 옳은 모양이다.
● 불모동(佛母洞)을 참배하다
남대(南台)를 참배한 후 오후에 불모동을 참배하였는데, 불모동은 신통력으로 만든 것 같았다. 정말로 문수보살의 자비로 만든 것으로서 신기할 뿐이었다. 불모동으로 들어가 절하며 마음속 깊이 생각하였다.
‘존경스런 불모여! 우리 고난의 중생은 밖에서 유랑하며 실제로 고통스럽습니다. 저와 모든 중생이 다 당신의 은덕을 억념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세세생생 서로 멀리 떨어지게 하지 마소서.’
● 4년을 명리(名利)의 절을 하다
불모동을 참배하고 다시 돌아와 남아있는 몇 개의 절에 가서 참배하였다. 칠불사(七佛寺) 문 앞 도로에서 절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명(明)수좌와 대라정에서 만났던 그 스님이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절하는 것을 멈추었다.
명수좌가 말하였다.
“이분이 바로 4년을 대라정에서 절한 광(廣) 원사(圓師 : 중국의 스님 명칭)입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이 있죠.”
그들이 앉아서 내게 물었고,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였다.
“대회진에서는 모두 광 원사께서 매일 대라정을 배향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신의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당신은 생각 생각이 성불하려 하니 그 이익도 매우 큽니다. 당신은 4년간 명리의 절을 하신 것입니다.
본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시기를 중생 개개인이 모두 다 부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모두 부처인데 마음 밖에 또 무슨 부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알라고 하였으며, 부처는 본래 저절로 이루어져 있으니 수행을 빌릴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대(四大)는 본래 조화(造化)에 속하며 인연이 화합하여 아집이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였습니다.”
그가 물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말했다. “삼보일배로 보타산(普陀山)을 참배하십시오. 3년의 시간 안에 밥을 빌어먹는데 무슨 다툴 명리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