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또는 일상의 생활을 제대로 꾸려가기도 힘드는데 취미생활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커플댄스 중 가장 어려운 춤이라고 알려져 있는 탱고보다는 살사나 스윙 등을 배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탱고를 배우다가도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것 같아서' 다른 춤으로 전향했다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밀롱가에서 평범한 복장으로 탱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느리고 여유있는 이 춤이 특별히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무대공연용으로 안무된 탱고에는 고난도의 기교들이 등장하지만, 일반 댄스 바에서는 그런 기교를 거의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다른 어떤 춤보다 탱고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내 댄스 동아리·인터넷 동호회·문화센터 등에서 탱고를 가르쳐온 강응구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살사 같은 라틴 댄스에서는 두 사람이 각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공간적 여유를 갖는데 비해, 탱고에서는 두 사람이 홀드해서 몸을 맞댄 채 움직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제약하게 됩니다. 결국 나 혼자 잘해서는 의미가 없고, 파트너와의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때문에 다른 춤보다 탱고를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남성쪽에서는 리드를 잘 하려면 음악을 잘 이해하고 박자감각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또 리드하면서 여성을 최대한 배려하고 여성의 반응을 기다려야 하죠. 여성쪽에서는 리드하는 남성을 믿고 자신을 맡기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탱고 레슨을 하면서 가르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를 익히게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춤을 추고 있는 두 사람이 다음 동작으로 함께 넘어가기 위해서는, 남성이 힘의 신호를 통해 스텝의 진행방향 또는 동작의 방향을 적절한 순간에 전달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여성의 역할도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성은 그 신호를 제대로 이해하고 움직이면서도 그저 남성의 힘에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항력을 상대에게 전달해 파트너간의 텐션을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춤에 비해 힘을 전달하는 방향이 다양하다는 것도 탱고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다. '탱고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영화 '탱고 레슨'의 감독 샐리 포터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탱고를 배우면서 우리는 상대를 리드해야 하는 순간과 상대방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순간,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법과 잠시 멈춰 기다리는 법, 힘을 줘야 할 때와 힘을 빼야 할 때를 판단하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탱고를 배운, 필자의 지인 안겔리카는 이렇게 말한다. "탱고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춤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들을 진정한 탱고 교사로 인정하게 되죠. 제게 탱고를 가르친 아미라 선생님은 그저 탱고 스텝만 가르쳐 준 게 아니었어요. 아미라는 학생들이 각자의 개성과 성격적인 특성들을 스스로 깨닫게 해 주었지요."
이어지는 그의 설명. "자기 몸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언짢은 날은 춤이 잘 안 되잖아요? 그럴 때면 그 책임을 항상 파트너에게 떠넘기며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 경우에 아미라는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지요." 그런 이유로 유럽에서 탱고는 최근 들어 '명상' 또는 '자아수련'의 다른 이름이 됐다.
유럽의 탱고 애호가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추는 탱고만이 진짜 탱고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탱고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꼭 한 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보세요.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걸음걸이, 혹은 그저 느슨하게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자세까지도 모두 탱고 자체니까요."
저자 소개 : 1962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귄터 그라스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고, 음악학도 공부했다. 귀국 후 이화여대 독문과 강사를 지냈으며 「오디오와 레코드」, 「해피데이스」에 음악 칼럼을 썼다. 오페라 에세이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를 출간했고, 독일 단편선 <나는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이 보인다 클래식이 들린다>, <섹스북>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마르셀 바이어의 소설 <박쥐> 로 제6회 한독문학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번역가와 음악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이 내용은 2004년에 펴낸 책 "춤에 빠져들다 (탱고에서 살사까지 재미있는 춤 이야기)"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