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3일 월요일, 맑음.
새벽 5시 30분에 눈이 떠진다. 조용하다. 쌀쌀하다. 날은 어둡지 않다. 누워서 벽을 보니 갈라져 어그러져 있다. 금방 허물어질 것 같다. 몽골에는 작은 지진만 일어나도 무너질 집이 많을 것 같다.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고 벽돌로 세워진 부실한 건물이 대부분이다. 아내는 아직도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일어나서 대충 세면을 하고 호텔을 나왔다. 화단의 코스모스가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동네를 돌아보니 큰 나무들이 제법 심겨져 있다. 호텔 앞쪽에는 공원이 있다. 말 탄 경찰의 동상이 있다. 경찰학교인지 군사학교인지 광장이 있고 건물도 있다. 군인들, 경찰들의 흉상도 보이고, 군데군데 씨름, 승마, 활쏘기 등의 동상도 만들어져 있다.
잔디밭도 넓다. 도로는 바둑판 모양이다. 다니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새로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은 병원인가 보다. 병원 건너편 벌판은 승마장 같다. 출발 건물이 기다랗게 하늘로 서 있다. 멀리 산, 언덕 위에는 흰색 석조물이 보인다. 제법 가로수가 많다. 참새들이 나무 울타리에 앉아 시끄럽게 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숙소로 돌아와 호텔을 보니 Хантай(Khantai hotel)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몽골 글씨를 모르겠다. 몽골사람들은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몽골어를 이제 막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아래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역시 남자들이 간편하니 빠르다. 잼과 빵으로 식사를 한다.
아하 기사, 명군, 뭉커가 빵을 썰고 잼을 발라준다. 여자들이 한 명씩 들어오더니 금방 식당 안이 시끄러워진다. 짐을 챙겨서 숙소 앞으로 모인다. 짐을 잘 정리해서 싣는다. 주변에 사는 젊은이가 와서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한국에서 5년 정도 일했단다. 인천, 수원, 의정부도 잘 안다. 출발 기념사진을 찍고 기도한 후에 차에 올랐다. 아침 8시 30분이다. 열심히 달려 오늘 안으로 목적지 투넬(Tugul)에 들어가야 한다. 주유소에 잠시 들러 연료를 보충한다. 도로는 생각보다 좋다. 불강을 벗어나자 이제 비포장이다. 초원을 그냥 달린다. 여기저기 길이 많다. 자갈길이 아니라 진흙 고운 길이다. 언덕 끝에는 나무들이 많다.
흰색 기둥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구간마다 조금씩 도로 공사를 하는 곳도 있다. 달리다가 멈추면 우리는 휴식시간이다. 모두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한다. 운전기사와 선교사님은 지도를 펴고 살핀다. 모두 벌판으로 달려가 들꽃과 더불어 사진을 찍는다. 에델바이스, 보라색 꽃, 노란 색 꽃, 패랭이 꽃 등 종류도 다양하다. 벌판 가득 피어있어 카펫 위에 선 기분이다. 참 예쁘다. 치미게 박시가 몽골 과자 간식을 꺼내준다. 몽골 비스킷은 우유가 많이 들어있어 부드럽고 맛있다. 집에 갈 때 꼭 사가지고 가야겠다. 박시는 이곳 말로 선생이라는 뜻이다.
이 박시는 선교사님, 명 박시는 명재욱 군인데 명박시라고 자꾸 부르니 우리나라 대통령이 떠오른다. 또 다시 차는 달린다. 초원에 넓게 퍼져 풀을 뜯고 있는 양들 사이로 달리면 재미있다. 게으른 양들이 한 방향으로 모두 뛰는 것이 우습다. 엉덩이를 덮은 꼬리털이 들썩들썩 거리며 뛰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고 이정표도 하나 없다. 작은 토야가 멀미가 심하다. 잠시 쉰다. 무척 힘들어하는 작은 토야를 기엽 자매가 잘 보살핀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멀리 3시 방향에 이어진 산들과 평행으로 달려간다. 저 산 밑에 강(셀렝가 강)이 흐른단다. 우리 차는 산을 향해 방향을 틀어 간다.
정말 계곡이 나오고 다리 2 개가 눈 아래 펼쳐진다. 차에서 모두 내렸다. 메뚜기가 많이 날아간다. 돌 절벽과 계곡, 깊지 않은 강물이 멋진 경치를 연출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는 기념비가 서 있다. 강구르라는 회사가 다리를 만들었고 프레파트라는 사람이 감독으로 다리를 완성했다는 내용이란다. 야생말 다섯 마리가 우리 옆으로 뛰어간다. 언덕을 내리달린다. 강물로 들어서더니 평화롭게 물을 먹는다. 우리도 언덕을 걸어 내려간다. 바위와 암석들로 이루어진 언덕이다. 바위 위에 앉아서 사진도 찍었다. 계곡에는 제법 바람이 분다. 새로 만들어진 다리 위에서니 옆에 옛날 다리가 있다.
통나무로 기둥을 해서 만든 이제는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제법 규모가 큰 다리다. 얼마전만해도 이 나무다리로 차들이 건너 다녔단다. 강물을 내려다보니 깨끗하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 미리 도착한 우리 차에 모두 탑승했다. 멋진 경치가 우리를 놀다가라고 유혹하지만 갈 길이 워낙 멀어 우리는 부지런히 달린다. 또 초원을 달려가니 멋진 호수가 나타난다. 고장 난 차를 끌고 가는 차량을 만났다. 길을 잃었단다. 아하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우리는 세 주(아이막)의 경계에 섰다. 아래는 아르한가이 왼편은 흡수골 아이막, 우리가 달려온 불강 아이막이다. 잠시 아르한가이 아이막을 달린다.
이제는 흡수골 아이막에 들어섰다. 우리가 보면 뚜렷한 경계도 특징도 없는, 그냥 모두 초원이다. 점심때가 되었다. 흡수골 아이막 초입에 있는 아하 기사의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미리 전화를 해 놓았다. 무선 전화가 유선 보다 발달될 수밖에 없는 몽골 지형이다. 그냥 넓은 초원에 겔이 2개 있는 아하의 부모님 댁이다. 점잖게 모자 쓴 할아버지와 뚱뚱하고 키 작은 할머니가 반갑게 우릴 맞아준다. 꼬마들 서너 명이 수줍은 듯 우리를 구경한다. 아하의 동생 가족들과 노부부가 함께 지내는 것 같다. 겔 안으로 들어가니 미리 준비해 둔 아롤(딱딱한 유제품)로 우리를 대접한다.
난로가 가운데 있는데 침대가 없다. 코담배도 설명해주고, 옛날 교사로 산수와 쓰기도 가르쳤다는 할아버지는 너무 편안해 보인다. 여자들은 벌판에 만들어진 화장실에 가서는 기겁을 한다. 판자 3개 겹쳐놓은 높이에 물론 천장은 없다. 알아서 볼일들을 해결한다. 겔 앞에 좀 떨어진 곳에 독수리 떼들이 모여 있다. 구경하러 서둘러 달려간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다. 고지대인 것 같다. 독수리들에게 다가가니 총총걸음으로 피하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날개가 엄청 넓다. 여러 마리가 아쉬운 듯 하늘 위로 맴돌고 서너 마리는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자로 앉아서 낯선 이방인의 특이한 행동을 구경하고 있다.
독수리들이 모여 있던 곳에는 죽은 양이 속살을 드러내고 죽어있다. 죽은 양은 볼품없지만 모여든 독수리들은 정말 멋지다. 이렇게 야생 독수리들을 가까이서 구경하기는 처음이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접근하면 독수리들은 다가간 만큼 물러선다. 먹이를 포기할 수 없어 떠나지 못하는 독수리들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겔로 돌아왔다. 뒤돌아보니 또 모여 큰 날개와 부리로 싸운다. 덩치에 비해 좀 품위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겔로 돌아오니 아이락(술)을 대접해 주는데 가볍게 거절한다. 잠시 후에 국물이 들어있는 양고기 칼국수를 한 그릇씩 주신다. 식탁도 없다.
겔 바닥에 한 그릇씩 받아 놓고 먹는데 생각보다 맛있다. 이름을 물어보니 ‘어르츠테슐’(코릴타슐)이라고 하는데 맞게 적은 것인지 모르겠다. 맛있기도 하고 먹을 만 해서 3그릇을 먹었다. 정말 든든하다. 칼국수를 끓이기 전에 넣었던 갈비들을 꺼내준다. 칼로 도려서 고기를 먹으니 맛있다. 칼은 주로 남자가 잡고 고기를 먹는 것이 이들의 풍습이란다. 영감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도 함께 식사를 했다. 몽골 사막에서 대접 받은 초이방은 정말 먹기 힘들었다. 초이방이 아니고 추이왕(몽골어: цуйван)은 몽골의 전통 음식이다. 쇠고기나 양고기와 양파, 당근, 피망 등 채소를 넣고 볶아 만든 국수 요리이다.
찐 비빔국수 종류다. 국물 없는 칼국수와 비슷하다. 국물이 있는 칼국수는 속이 든든하고 먹기가 좋다. 아들의 손님이라고 점심값도 받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겔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유난히 모자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몽골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 같다. 헤어지는 아쉬움에 또 고마운 마음에 갑자기 몽골 사람들이 좋아진다. 순박하고 손님 접대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 이들의 전통이란다. 차를 타려고 겔을 등지고 걸어간다. 참호 같이 길게 파진 웅덩이에는 송아지들이 흙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 일종의 외양간이다. 참호를 건너뛰지 못해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차는 또 달려간다.
아하가 차에서 몽골 노래를 틀었다. 초원의 맛과 어울리는 것 같다. 지도에도 없는 바르샥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고 수리한다. 오후 3시 50분이다. 판자로 울타리를 한 집들이 몇 채 보인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흙먼지가 날리니 짜증이 난다. 소들이 마을을 지나가는데 재미있게 한 줄로 간다. 소들은 자기들이 가는 길이 있단다. 거칠게 흙먼지가 날리더니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차가 달려가는데 길이 미끄럽다. 차가 다니던 길에는 물이 고여 있다. 이제 평지를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숲길을 간다. 산을 올라간다. 완만하게 달려가다가 언덕길을 치고 올라간다.
산을 넘어 갈 때는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힘들게 언덕에 올라서서 모두 내렸다. 돌무더기와 푸른 천이 있다. 어워다. 기사 아저씨는 몇 바퀴 돈다. 큰 트럭이 꼬리에 또 하나의 짐칸을 붙이고 2 대가 서 있다. 반대편에서 힘들게 올라온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불안하다. 이런 오지에서 저런 트럭을 보다니 뜻밖이다. 우리는 언덕에서 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꽃들이 경사진 언덕에 즐비하고 오래되어 죽은 나무 등걸이 을씨년스럽게 중간 중간에 서 있다. 체조도 하며 잠시 여유를 갖고 모두 탑승했다. 기사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구간이 이 언덕 내리막길이란다.
경사가 급한 숲길에 비가 온 후라 미끄러진다. 깊게 파인 곳도 있다. 차가 옆으로 미끄러져 헛바퀴를 돌때마다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공포의 순간을 대여섯 번 체험하고서 겨우 밑으로 내려왔다. 정말 겁나는 길이다. 꼭 굴러버릴 것 같은 위험한 길이다. 숲속 길을 달려가는 야생마들 10여 마리가 모여 있다. 기름이 번지르르한 건강한 말들이다. 이런 곳에도 야생마가 있다니 뜻밖의 선물이다. 앞에 가는 승용차를 한 대 만났다. 번호판이 종모드에서 온 차란다. 모두 반가워하며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다. 자갈밭을 갖고 있는 깊은 강물이 나온다. 제법 물살이 세다. 셀링게 강이란다.
군인들이 임시로 만들어 놓은 교각(다리)이 없는, 물 위에 뜬 다리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걸어서 다리를 건넌다. 강은 수량도 풍부하고 깨끗하다. 산과 어우러진 강이 멋지다. 울란바토르와 760km가 떨어져 있다. 다리는 통행료를 받고 있다. 다리를 건너와 잠시 쉬었다. 아하는 그 새 강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온다. 차에 올라타고 또 달린다. 이제는 초원도 좀 축축하다. 허슨징그르(Tosontsengel,Tsengel)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주유소가 있다. 우리나라 차 이스타나를 보니 반갑다. 더운 날씨에 부츠를 신고 몽골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신기하다. 더워 보인다.
주로 오토바이를 탄다.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출발한다. 큰 호수가 하나 나타난다. 이 호수의 왼쪽으로 가면 흡수골 주도인 므릉(Мөрөн)이고 투넬은 이 호수의 오른쪽으로 가야한단다. 투넬은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곳이란다. 다행이도 기사 가 흡수골 출신이라 찾는데 어려움은 없단다. 달려가다가 달걀 냄새가 나는 작은 호수를 또 하나 만났다. 멀리 우리의 목적지 투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늪지대가 가는 길을 막는다. 차에서 내려 차가 갈만한 길을 찾는다. 기사의 노련한 노하우로 웅덩이와 작은 냇가를 피해가며 겨우 우리의 목적지 투넬(Tugul)에 도착했다.
빨간 지붕의 예쁜 통나무 교회가 우리를 반긴다. 먼 여행이었다. 이틀을 달려왔다. 산 넘고 물건너 초원을 달려온 길들이 영상이 되어 떠오른다. 선교사님 부부를 만나서 반가웠다. 이런 오지에도 선교사님이 계시다니 모두가 궁금한 분들이다. 하나씩 알게 되겠지. 교회 옆에 하얀 겔에 우리의 짐을 옮겼다. 저녁 9시경에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정상률 선교사님(62세), 사모님은 백순이 권사님(59세)의 간단한 인사 후에 권사님이 챙겨 주시는 김치(젓갈 냄새가 너무 좋은)와 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교회는 보일러가 작동되어 따듯하다. 밤이 되니 기온이 내려가 썰렁하다. 교회 내부는 땀이난다.
몽골 교사들과 선교사님은 내일 성경학교 준비를 한다. 밤 늦게 까지 준비를 한다. 전기불이 흐렸다 밝았다 한다. 겔 안보다 교회 안이 따듯하다. 나무로 만든 긴 의자에 침낭을 놓고 속에 들어가 잔다. 의자가 높낮이가 맞지 않아 움직일 때 마다 흔들린다. 모두 긴 의자에, 교회 바닥에 침낭을 하나씩 차지하고 잠을 잔다.
아내와 두 자매는 선교사님 사택 2층 방에서 잠을 잔다. 참 멀리도 와서 잠을 잔다. 누워있는 곳을 어둠속에서 그려보니 놀랍다. 전혀 계획에도 없던 일이다. 귀한 선교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이렇게 교회에 누워서 자다니 너무 감사하다.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