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시대 전환을 상징하는 스릴러의 비디오와 그의 문워크.」- 최민우 음악평론가 (네이버 뮤직 매거진, 'TIME의 ALL TIME 100 앨범')
「마이클은 MTV 시대 총아로 '보는 음악' 트렌드를 만들어낸 신화적 인물,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은 그의 신화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탄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MK 뉴스 인터뷰, 'Thriller, 하늘나라로 문워킹')
「1970년대만 하더라도 어떤 밴드를 좋아한대 해도 얼굴도 모르고, 밴드의 리더가 누군지도 몰랐다. 지금은 가수 얼굴도 모르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고문이다. 이와 같은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연출하고 주도한 사람이 바로 마이클이다. 마이클 덕분에 마돈나, 컬쳐 클럽도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음악의 주요 매체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MTV로 확 바뀌게 된다.. 지금은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뮤직비디오가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졌나를 통해서 음악을 접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다매체 시대다. 이런 것들이 전부 마이클이 처음 시도하여 대중적으로 흐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저서 '젊음의 코드, 록')
「MTV와 뮤직비디오 발전의 1등 공헌자.. 마이클이 이룩한 업적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MTV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가져온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클이 내놓은 싱글들은 대부분 뮤직비디오를 동반했고, 그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놀라운 영상 미학을 구현했다. 마이클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수많은 음악 팬들을 MTV 앞으로 이끌었다. 그의 뮤직비디오는 단순히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쇼트 필름이라 말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의 작은 영화다. 쟁쟁한 영화 감독들을 초빙해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특수효과를 갖춰 웬만한 영화 못지않은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다. 신호탄이 잘 알려진 'Thriller'다. 마이클의 강박관념이 반영된 이 뮤직비디오에는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와 늑대 인간으로 변해 공포와 노이로제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13분이 넘는 대작인 그 쇼트 필름은 공포영화의 대가인 존 랜디스가 연출을 맡았다. 뉴욕의 뒷골목과 지하철 거리를 배경으로 찍은 20분 짜리 쇼트 필름 'Bad'의 감독도 그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였다. 마이클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선보이는 기술은 점점 향상되었고, 특히 1991년에 발표된 앨범 [Dangerous]에 이르러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 사람의 얼굴이 바뀌는 'Black Or White', 이집트 파라오의 신비가 등장 'Remember The Time' 등에서는 영화 [터미네이터 2]에 쓰인 모핑 기술이 도입되었다.. 이처럼 마이클은 자신의 인기를 높이는 동시에 MTV와 뮤직비디오의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으나 MTV가 처음에는 마이클의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고영탁 음악평론가 (오이뮤직 2003년 3월호)
「1981년 8월 1일, MTV가 개국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 초기에 MTV는 그저 그런 케이블 채널이었다. 10대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넓히고 있었지만 음악을 영상과 함께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MTV가 대중적으로 막강한 파급력을 가지게 된 건 1983년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수많은 기록을 세운 이 곡의 오리지널 비디오는 13분짜리 단편영화의 컨셉트를 차용해 제작된 최초의 뮤직비디오였고 MTV를 비로소 대중적인 채널이자 광고 효과가 높은 채널로 자리 잡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 (네이버 뮤직 매거진, '뮤직비디오, 보는 음악으로의 시대를 열다')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와 혁신적 안무를 비롯해, 들리는 것만큼 보이는 요소들에도 자본과 아이디어를 투자하면서 뮤직 비지니스가 가진 표현의 영역을 넓혀놓았다. 특히 'Billie Jean'의 공연 현장에서 펼쳐진 문워크의 경우 쇼 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국면으로 도달해낸 순간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이 분야의 모든 규격을 완성시켜냈다.」- 소니뮤직 (벅스뮤직 추천앨범 리뷰, Thriller)
「마이클은 이날(1983년 모타운 창립 25주념 기념 공연) 빌리진을 부르며 문워킹을 선보였다. 그가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문워킹을 춘 시간은 10초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10초는 1980년대의 첫 번째 비주얼 쇼크가 됐다.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육체를 구현한 듯한 이 춤은 텔레비전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퍼졌다. 마이클은 음악을 ‘듣는 매체’에서 ‘보는 매체’로 전환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MTV가 처음 개국했을 때 뮤직비디오는 가사를 그대로 드라마처럼 옮기거나 콘서트를 스튜디오에서 재현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보며 음악을 듣기 위해 MTV를 틀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좀비들과 함께 춤을 추는 ‘스릴러’를 10분이 훌쩍 넘는 단편 영화로 제작해 뮤직비디오의 개념을 바꿨다.」- 김작가 음악평론가 (시사IN 기고문, '모든 것을 초월한 음악을 남기고')
「물론 가벼운 댄스팝을 앞세운 수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빛을 보게 된 것도 이 앨범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지만 스릴러의 가장 큰 의미는 역시 팝이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개념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빌리진에서 선보인 문워크는 미국 팝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 중 하나이며, 스릴러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 역사에서 영원한 고전으로 통한다.」- 장호연 음악평론가 (웹진 Weiv, 스릴러 앨범 리뷰)
「빌리진의 아이콘적 위상은 전방위의 자취를 남겼다. 미니멀하게 축소시킨 다양한 사운드 요소들의 중첩을 통해 알앤비의 미래를 연 파격은 말할 것도 없고, 흑인 뮤지션의 곡으로는 최초로 MTV의 집중 방송을 끌어낸 비디오의 파괴력 또한 거대했다. 문워크를 처음 선보인 1983년 3월 25일의 ‘모타운 레이블 창립 25주년 기념 콘서트’는 TV로 방영되어 5000만명의 시청자를 사로잡기도 했는데, 비평가 앤서니 디커티스는 “그날 이후, 더 낫게든 혹은 더 나쁘게든, 모든 것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고 평했을 정도다.」- 박은석 음악평론가 (한겨례 기고문, '팝 황제의 위대한 유산')
「마이클 잭슨은 음악계의 가장 위대한 혁신가이자 사랑받는 퍼포머, 그리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아마도 그 어떤 뮤지션도 음악 산업에 마이클 잭슨보다 커다란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을 것이다.. 그의 쇼트필름 '스릴러'에서 보이듯이 그의 획기적인 시각 효과와, 스토리라인, 그리고 복잡한 춤 동작들은 뮤직비디오를 예술 형식으로 바꿔 놓았다. 마이클의 독창적인 쇼트 필름의 충격은 뮤직비디오의 예술성을 대중문화 속에 집어넣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는 뮤직비디오를 음반 산업 깊이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만들어 주었다. 활동기간 동안 마이클은 로봇춤과 문워크 같은 복잡한 춤 테크닉 여러가지를 유행시켰으며, 심지어 반중력 동작을 해내기 위해 특수 신발을 제작하여 특허를 내기도 했다. 그의 쇼트 필름에서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와 무대효과 연출을 통해 잭슨은 라이브 무대 퍼포먼스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힙합, 컨템포러리 R&B, 팝, 로큰롤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야의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빌보드 (2014년 5월, 'Michael Jackson to Make Television History on the BBMAs')
「1983년 처음으로 TV에서 마이클 잭슨이 '빌리진'을 부르며 유연하게 뒷걸음질 댄스를 했을 때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추는 거지?" 마치 달 위를 걷는 것 같다고 해서 ‘문워크’라고 불린 그 춤은 순식간에 전세계 젊은이의 모방 본능을 자극했다. 필자도 방에서 몰래 문워크를 흉내내다가 뒤로 넘어져 다치는 봉변을 겪었다. 아마도 그 시대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긴 전설적인 춤의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가 '경이적 춤꾼'이라고 격찬한 사람의 동작을 어찌 쉽게 재현할 수 있겠는가. 여배우 제인 폰다는 "마이클의 음악에 맞춰 춤출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섹스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을 듣고 가만있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이클과 함께 음악의 중심은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이동했다. '비주얼 댄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마이클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1980년대 중·후반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의 댄스가수가 속출했다. 서태지도 어릴 적에 마이클을 동경하면서 댄스음악의 무한 파괴력을 가슴속에 담아뒀을 것이다.. 한국도 이전엔 댄스음악, 댄스가수라는 수식이 없다가 마이클 잭슨 시대를 맞아 일반화됐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Weekly 공감 기고문, '팝의 제왕, 전설이 되다')
「댄스가 스킬이 아닌 예술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댄서 잭슨의 성적은 A+ 학점을 주어도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 수많은 댄서들이 살다 갔지만 그 중에 자신만의 시그니쳐 무브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누구나 춤은 기억하지만 댄서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잭슨은 우선 저 유명한 '문워킹'이라는 시그니쳐 댄스를 남겼다. 빌 베일리의 탭 댄스에 제임스 브라운의 그루브를 자연스레 접목시킨, 이를테면 재활용 댄스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파워풀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잭슨의 동작은 선배들과는 전혀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다. 그는 테크니컬한 관점에서도 훌륭한 댄서였다. 굉장히 안정적인 자세에서 가볍고도 강렬하게 이루어지는 라킹이나 파핑 등 그가 공연에서 즐겨 추는 브레이킹 무브들은 춤에 어느정도 통달한 사람들만이 자연스레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한편 그는 최신 댄스 팝을 50년대 이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과 결합시키면서 새로운 경향을 창조해 내기도 했다. 프레드 아스테어나 진 켈리가 보여준 뮤지컬 특유의 낭만적인 몸짓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길거리 흑인 음악의 정수인 그루브함과 역동성을 부여해 그 이전 시대의 팝 아티스트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안무들로 승화시킨 것은 중요한 성과다. 그가 최고의 춤꾼들과 함께 고안해낸 'Thriller', 'Smooth Criminal', 'Dangerous'의 흥미로운 군무와 그 짜여진 동작 하나하나들의 디테일은 결국 팝 음악에서 안무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팝이 낳은 가장 위대한 댄서의 반열에 오를 MJ. 그가 무대 위를, 아니 달 위를 걸었던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은 앞으로 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한 계속 회상되고 이야기 되고, 감탄사를 자아낼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잭슨은 동작을 동작 그 자체를 위해 사용하는 무용의 달인, 잭슨은 아방가르드 무용가다. 그의 댄스는 추상적이며,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머스 커닝햄처럼 그는 우리에게 동작이 동작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의 팝 스타들과는 달리, 잭슨은 딱딱 짜여진 대로 춤을 추지 않는다. 특정할 수 없는, 즉흥적인 춤을 춘다.. 잭슨은 위대한 일루셔니스트이며 진정한 마임가이다.」- 뉴욕타임즈 (1988년 3월, Stage: The Dancing Feet Of Michael Jackson)
「마이클은 춤과 안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아이콘을 넘어 춤과 안무의 아버지를 잃었어요.」- 댄서 카리나 스미르노프 (2009년 'Dancing With The Stars' 인터뷰)
「마이클은 저의 댄스 커리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어요. 아마 전문 댄서들 대부분은 저와 똑같이 말할 겁니다.」- 댄서 셰릴 버크 (2009년 'Dancing With The Stars' 인터뷰)
「(마이클의 춤이 본인에게 미친 영향?) 마이클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작과 음악성이 잠재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마이클의 습관이 베였던 것 같아요.. 저에겐 스승이었고 음악이나 춤, 우상이나 마찬가지였죠.」- 가수 박남정 (2009년 KBS 인터뷰, '전설이 된 잭슨, 그의 음악과 인생')
「마이클은 나의 정신적 스승이었고, 앞으로도 나를 비롯해 전세계 모든 댄스가수들의 교과서로 남게 될 것이다.」- 가수 비 (2009년 마카오 패션쇼 인터뷰)
「현대화된 댄스 팝을 거론할 때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 걸쳐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케이팝의 경우 무대 구성이 매우 중요한데, 노래와 안무 등을 통해 얼마나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느냐에 있어서는 마이클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랩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보잉을 해야 하는 게 케이팝의 특성.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때부터 그랬는데 이들이 아크로바틱한 댄스를 한 것도 마이클의 영향이 크다. 이후에 나온 유승준, 비 등 솔로 남자가수들도 마찬가지다.」- 김성환 음악평론가 (텐아시아 뉴스 인터뷰, '또 다시 마이클 잭슨 세상')
「스릴러 앨범이 팝 음악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면 확실히 댄저러스 투어는 팝 공연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90년대 이후에 볼 수 있었던 대형 공연들의 특수효과 및 안무들은 바로 이 투어의 기술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해도 크게 과장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상철 음악평론가 (인터파크, 댄저러스 투어 Live In Bucharest 리뷰)
「그의 공연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최고급의 수준이다. 엄청난 규모의 최신 음향장비가 동원되는 그의 환상적인 무대는 '팝의 황제'라는 명성에 조금도 미흡하지 않았다.. 세계화를 노리는 우리 음악계의 시야 확대와 수준 향상을 위해서도 그의 내한 공연은 필요하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1996년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을 앞두고 쓴 칼럼, '불꽃튀는 논쟁 끝에 마침내 찾아오는 팝의 황제')
첫댓글 마이클을 알고나서야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걸 알게되었어요. 마이클은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고 폭넓은 세계를 먼저 보고 생각하는 천제성을 갖고 있었던것 같아요. 마이클 음악은 우리에게 선물이라는것을 깨닫습니다. 정말 감사하죠~~^^
그래서 영화역사 쪽에서도 의미있는 마이클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