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사가 원주민들을 위해 파인애플을 처음으로 마을에 들여왔습니다.
그 묘목은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았고 3년이 지나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어 열매를 거두기 위해 선교사는 기대감을 가지고
밭으로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채 익기도 전에 다 따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파인애플을 훔쳐갔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품삯을 받고 파인애플을 심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내손으로 심었으니 내가 그것을 먹는 것은 당연하죠.”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었습니다.
파인애플 밭 절반을 주어도 도둑질은 여전했습니다. 급기야 파인애플을 다 줄 테니
뽑아가라고 해도 원주민들은 품삯을 따로 주어야 한다고 강짜를 놓았습니다.
선교사는 원주민에게 완전히 질려버렸습니다. 그들은 은혜도 선교사의
호의도 모르는 듯 했습니다.
화가 난 선교사는 스스로 파인애플 묘목을 다 뽑아버렸습니다.
새 묘목을 다시 심어도 원주민들은 예전과 다름이 없이 행동했습니다.
그 후 선교사는 안식년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한 세미나에 참석해서
특별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라 그러면 받으리라 자신만을 위해 갖고자 하면 잃게 될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려라.
하나님은 너를 풍족히 채워 주실 것이다”
선교사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내가 손해 볼 것은 없어.
아무래도 나는 먹지 못할 파인애플이니 하나님께 그 밭을 드리자.”
선교사는 파인애플 밭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저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이 파인애플 밭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제가 먹을 수 있게 하셔도 좋고
저들에게 주셔도 좋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원주민들은 여전히 파인애플을 훔쳐갔습니다.
어느 날 원주민들이 선교사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왜 화를 내지 않죠?”
“그 밭을 하나님께 드렸으니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니까 자기들이 사냥을 가도 허탕을 치고
돌아오고 아이를 못 낳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드디어 들에 나가서 파인애플을 땄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니 그렇게 고대하던 일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선교사가 변하니 원주민들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진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하면 돈을 받지 않고도 선교사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진리를 깨닫고 나서 선교사는 다른 것도 주님께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병이 들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에게 데려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바로 선교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아들을 주님께 바칩니다. 주님이 원하는 대로 하시옵소서.”
그것은 파인애플을 드리는 것보다 어려웠지만 선교사는 결단했습니다.
그날 밤 열은 내렸고 아들은 완쾌되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는 성경을 읽던 중 레위기 19:23-25을 읽게 됩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묘목을 심으면 3년 후에 열매가 맺히는데
4년째는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에 주인이 취하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깨달았습니다.
“그 율법대로 처음부터 파인애플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원주민들은
5년째 되는 해에 나에게 파인애플을 먹으라고 간정했을 것을...”
며칠 전 제가 보는 앞에서 저희 교회 A 성도님의 전화가 불이 났습니다.
A 집사님이 추석송편에 들어가는 모싯잎을 주문받아서 일을 잘하지 못하는
B집사님에게 주문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주문을 받지 못한 C 집사님이 서운하여 항의하는 전화였습니다.
나도 십일조 하는데 왜 그 사람만 일을 주냐는 것이었습니다.
항의하는 C 집사님에게는 저희 집사람이 적은 양이지만 따로 주문을 해둔
상태였습니다.
불을 꺼야겠다 싶어 저의 아내가 급히 다른 분에게 연락해서 주문을
늘렸고 A집사님이 항의한 C집사님을 찾아가서 늘어난 주문을 말하고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수요예배에서 저는 파인애플 이야기를 예화로 들어 설교했습니다.
항의한 성도님은 즐겁게 듣는 것 같았고 예배 후에는 ABC집사님 모두
즐겁게 교회 일을 의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A 집사님이 일을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제가 물건을 배달하려고 C집사님을 찾아 갔을 때 원래 주문한
양만을 받았습니다. A집사님은 찾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 집사님은 밝게 웃으면서 적은 양에도 감사해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뒤에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수요예배 이후에 C집사님은 엄청난 주문을
다른 사람에게 받았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때 일어납니다.
배운 것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커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박종철(성토모광주지부대표, 용연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