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5일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의 6개 돔구장(후쿠오카돔 오사카돔 나고야돔 도쿄돔 세이부돔 삿포로돔)을 6일 동안 돌아야 하는 녹록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서쪽 후쿠오카에서 동쪽 삿포로까지의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4배였다.
12일 돌아오는 비행기 안의 지갑에는 7장의 신칸센 티켓과 4장의 비행기 탑승권이 있었다. 짧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우리의 돔구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던 6일 간의 여행을 3편에 나눠 정리했다.
1편 - 도교돔에서 받은 충격
2편 - 세이부에서 길을 잃다
3편 - 삿포로에서 답을 얻다
도쿄 JR 스이도바시(水道橋) 역에서 내려 <도쿄돔 시티>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야마시타(山下) 서점이 우리를 반긴다. 베이스볼 카페(주문을 받으러 온 미모의 여종업원을 제외하면 그다지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에서 만난 '일본어판 한국 프로야구 가이드'의 저자 무로이 마사야는, 신주쿠에 있는 기노쿠니야 서점 본점보다도 많은, 도쿄에서 가장 많은 야구책을 보유한 서점이라 귀뜸했다.
이미 기노쿠니야 서점을 방문했던 터라 놀랄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야구에 관한 책이 한 벽면을 다 채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야구 책이 꽂힌 책장만 6개에 달했다. 밖에는 야구에 관한 잡지가 또 3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칸은 고교야구 잡지였다. 교보문고 종로점의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꽂혀 있는 5권 정도의 야구책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쿄돔 출입구 오른쪽에는 고라쿠엔 구장 때부터 있었던 야구전당 겸 박물관이 있다(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시간은 4시반까지. 입장료 어른 500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비롯해 금요일 오전 11시였음에도 전시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름을 세어보니 일본 야구전당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경기자표창(선수)과 특별표창을 합쳐 162명이었다. 사와무라 에이지와
오 사다하루 등의 동판도 찾을 수 있었다. '400승-4490탈삼진'
가네다 마사이치의 4가지 그립(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커브-슈트-패스트볼-포크볼)을 소개한 전시물 등 걸음을 멈추게 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전시물이 많았다.
메이저리그 코너도 상당히 풍성했다. 2006년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조 마우어, 홈런왕
라이언 하워드의 방망이뿐 아니라, 역대 홈런 1-2-3위
배리 본즈-행크 애런-베이브 루스의 방망이가 나란히 전시돼 있었으며, 베이브 루스가 '일본사람들이 내가 저렇게 못생긴 줄 알겠다'며 1934년 미일 올스타전 참가를 결정하게 만든 실제 포스터도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코너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우승을 기념하는 코너였다. '언젠가는 미국을 넘어야한다'는 쇼리키 마쓰다로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일본야구에게 WBC 우승은 엄청난 의미인 듯했다. WBC 우승반지, 와타나베-마쓰자카-이치로의 스파이크, 우에하라의 글러브, 마쓰나가의 방망이, 기타 선수들의 유니폼 등 전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바로 옆 방에는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전선수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도쿄돔에서는 2일부터 10일까지 그릇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천장을 부풀리기 위해 구장 안과 밖의 기압 차이가 0.3%(1층과 9층의 차이라고 한다)라는 것을 의식해서였는지, 회전문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귀가 약간 멍했다. 아줌마 부대 사이에서 그릇이 아니라 천장을 연신 찍어대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도 천장을 쳐다보게 만드는 '낚시질'도 했다. 구장 안에서는 마쓰이 히데키가 맞혔다는 지점(오른쪽 아디다스 광고판 아래)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1988년에 개장한 도쿄돔은 1965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애스트로돔, 1977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킹돔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지어진 야구 돔구장이다(토론토 블루제이스 스카이돔은 1989년 개장). 하지만 막연히 '미국도 있는데 우리도 있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으로 만든 구장은 결코 아니었다.
먼저 도쿄돔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니혼햄 파이터스 두 구단으로부터 받는 '경기당 1750만엔'이라는 엄청난 구장 사용료를 기대할 수 있었다. 곱하기 144경기를 하면 25억2000만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온다.
2004년 니혼햄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경기당 800만엔'의 삿포로로 이전한 것은 도쿄돔 입장에서 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크지 않았다. 도교돔은 이미 단순한 돔이 아닌 '시티'로 자리잡고 난 후였다. 필자가 받은 충격 역시 도교돔의 시설이 아니라 바로 '도쿄돔 시티'의 위력이었다.
도쿄돔, 아니 도쿄돔 시티는 스이도바시역과 고라쿠엔역을 끼고 있다. 역은 2개지만 노선은 4개다. 수많은 전철-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얽힌 도쿄에서도 접근성이 상당히 좋은 곳에 해당된다. 돔구장 옆에는 롤러코스터, 대관람차 등을 탈 수 있는 놀이시설이 있다. 극적으로 발견돼 2003년 5월에 개장한 도쿄시내 유일의 천연온천 리조트(돔시티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축복이었다) '라쿠아'에는 연간 3000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그외에도 호텔(도쿄돔 호텔) 쇼핑 아케이드, 레스토랑, 상설 전시장, 경마권 발매소, 볼링장, 대규모의 장난감 전시장 등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그 모든 시설이 돔구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번 방문을 기획하고 취재에 동행한 (주)스포츠테레카의 우수창 대표는 "최고의 인기 팀인 요미우리가 포함된 2개의 야구 팀, 엄청난 유동인구와 공연-전시장소로서의 접근성 등 모든 면에서 도쿄돔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박이었지만 실제로는 도박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다소 무리한 비교이긴 하지만, 도쿄돔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옆에 지어진 돔구장을 LG와 두산이 함께 쓰는 것과 같았다. 대도시 시내에 위치해 다양한 문화시설을 자랑하며 두 팀이 함께 사용하는 돔구장. 과연 우리는 이런 돔구장을 지을 수 있을까. 구장 사용료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돔구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입지를 갖춰야한다는 확신은 오사카돔에서 더욱 굳어졌다.
일본의 전자회사 '쿄세라 미타'에 이름 사용권을 팔아 '쿄세라 돔 오사카'로 불리는 오사카돔은 JR 오사카순환선 다이쇼(大正) 역에서 내려 오른쪽 편의점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횡단보도에 다다르면 돔이 보이기 시작하고 돔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나온다. 더 가까운 지하철 오사카돔마에 역이 있긴 하지만, 한 정거장을 가기 위해 표를 다시 사야하는 것보다는 걸어가는 편이 낫다.
일요일 오전에 방문한 오사카돔은 당일 오후 그룹 '폴리스'의 공연을 앞두고 구장내 입장이 철저히 통제됐다. 다만 구장내 기념품 숍은 이번에 방문한 6개 구장 숍 중에서 가장 다양한 상품을 자랑하고 있었다. 비매품이지만 제이크 피비의 사인 모자와 손도장 등 메이저리그 관련 전시물도 제법 많았다.
1997년 완공된 오사카돔은 천장이 높아 공연 때 소리가 퍼지는 '돔구장 공연'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연 때는 천장을 내릴 수 있는 공법을 채택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가 크지 않아 정작 만들어놓고 사용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오사카돔이 취약한 지반 위에 지어졌다는 것이었다. 공연 때 관객들이 뛰는 울림은 인근 주택지에 상당한 진동을 전달하고 있다. 이에 현재 오사카돔에서는 '관객들의 점프 금지'의 공연만 가능하다.
문제는 오사카돔이 아닌 그 주변에 있었다. 도쿄돔과 달리 오사카돔은 오사카 가스(심지어 가스 탱크도 여러개 있었다) 오사카시 교통국, 간사이 전력주식회사 등 사무용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돔구장 내에 레스토랑 등의 시설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으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제서야 오사카돔은 바로 앞 부지에 다양한 놀이시설을 만드는 공사에 들어갔다.
오사카돔의 또 하나 문제는 홈팀이었다. 과거 긴테스 버팔로스, 현재 오릭스 버팔로스는 일본 내에서 인기 구단이 아니다. 여기에 오사카역 지하통로로 연결된 한신우메다 역(한신전철)에서 고속열차로 12분 거리에 한신 타이거스가 있다는 점도 엄청난 악재였다. 한 센트럴리그 관계자는 한신의 인기가 진정으로 요미우리를 추월했다는 놀라운 얘기를 해줬다.
실제로 오사카돔은 개장 후 매년 15억엔의 적자를 내다 결국 파산했다. 무로이 기자는 오사카돔을 '지어지지 말았어야 할 돔구장'으로 평가했다. 유동인구, 홈팀의 인기 등 성공요인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사업추진 당시 일본이 경제호황기였기 때문에 '도쿄에 있으면 오사카에도 있어야 한다'는 '묻지마식 건설'을 했고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돔이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힌트는 홈팀의 인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였다. 이번에 만난 돔구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은 돔구장을 아무리 멋지게 지어놓더라도 홈팀이 인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밌는 야구, 팬에게 즐거움을 주는 야구를 하지 못하면 처음에는 신기에서 찾아오던 발길도 쉽게 끊길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증명해준 것이 바로 나고야돔이었다.
나고야돔을 처음 방문한 9일은 오사카-나고야 지방에 10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하늘에서 솜뭉치가 쏟아지는 듯한 눈에 일본에서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켄센의 15분 연착'도 일어났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다시 방문해야 했다.
나고야역에서 바로 갈 수 있는 오조네(大曾根) 역에서 내릴 경우 선택은 2가지다. 지하철로 갈아타 한 정거장을 더 가 나고야돔마에 역에서 내리는 것(추가요금 200엔)과 남쪽 출구로 15분 이상을 걸어가는 것이다. 2가지를 모두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여유가 있다면 걸어가는 편이 훨씬 낫다.
이날 방문한 나고야돔 역시 애견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었다(공사 중이었던 세이부돔을 제외한 5개 중 시설을 놀리고 있는 구장은 1개도 없었다). 다양한 종류의 개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많은 개들이 외야 펜스에 실례를 하고 있는 모습은 개보다 야구를 더 좋아하는 입장에서 편치 않았다. 혹시 지린내가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괜한 걱정도 됐다.
나고야돔 바로 옆에는 오사카돔에는 없었던 대형 쇼핑몰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시설은 없었다. 실제로 나고야돔은 도쿄돔이나 후쿠오카돔처럼 돔구장을 각종 놀이시설로 무장하는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 최소비용으로 돔구장만 짓는 것을 택했다.
그럼에도 나고야돔이 성공한 이유는 경기당 평균관중이 3만명이 넘는 홈팀 주니치 드래곤스의 엄청난 인기 덕분이었다. 돔구장은 관중을 부를 수 있지만, 돔구장만으로는 그 관중을 붙들어줄 수 없었다.
상당한 야구외 수익을 쓸어담고 있는 도쿄돔과 홈팀 주니치의 인기를 만끽하고 있는 나고야돔. 그리고 이를 모두 놓친(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오사카돔의 실패. 특히나 적자사업의 위험성이 높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과제로 보였다. 오히려 80억엔으로 지붕만 올린 세이부돔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