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과 맞닿은 거금도 적대봉
○ 일자 : 2017.12.11. - 12.12.
○ 장소 : 고흥 팔영산, 고금도 적대봉
○ 날씨 : 간혹 흐리다 맑음
○ 일행 : 도봉산악회 섬산행 동행(석훈,서정,선희,원규,준영,미숙,현남,영신,영식,기봉)
도봉산악회 백패킹에 두 번째 참석했다. 11일 오전 10시 30분 경에 출발장소인 도봉컨벤션센터 앞에 닿자 약속시간보다 모두 일찍 나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화색이 도는데 산행대장인 원규 대장만 유독 안색이 좋지 않다. 이유인 즉, 소 키는 일도 아니면서 여기저기 매일매일 봉사산행과 찍사 봉사를 해서라고 한다. 오늘도 8인승 구형 카니발을 몰고 와서 연신 엔진에 물을 붓고 있다. 물을 붓자마자 다시 다 새어나온다. 완전 고물차다. 경매로 새 차를 구입하였으나 번호가 나오질 않아 어쩔 수 없이 먼저 타던 고물 카니발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구동성 저 차로 도저히 갈 수 없다 원성이 잦았다. 그러니까 원규 대장은 저 몰골로 저 고물차에 우리를 태우고 그 먼 고흥까지 손수 운전하여 가겠다는 거다. 그건 아니다 싶어 일행들은 일단 저 차로는 갈 수가 없다고 했고 나는 차도 안 되지만 원규 대장도 오늘은 쉬고 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하여 일행의 차를 차출하여 베라크루즈 2대와 베엠베 1대 등 3대에 분승키로 했는데 쉰다던 원규 대장을 어디서 다시 나타났는지 기어기 가겠다고 한다. 3대에 나누어 탄 우리는 고고....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 차에 탄 원규 대장은 그 짖굳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무전기를 들고 장난질을 치고 있다. 저 몰골에 저런 장난이 나오다니 정말 순진무구 그 자체다. 우리 1호차 베라크루즈는 막내 영식씨가 도착할 때까지 운전을 계속했고, 2호차 베엠베는 새로 온 막내 기봉씨가 운전했고, 3호차 베라크루즈는 선희 회장님과 준규 세르파님이 교대 운전했다. 세 대의 차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눈발이 날리고 산이 하얗게 탈색되기도 했다. 더 남쪽으로 내려오자 눈도 그치고 산에 눈이 온 흔적이 전혀 없다. 작은 나라에도 지역에 따라 이렇게 편차가 크다.
우리의 목적지인 팔영산휴양림은 팔영산 6부 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다. 오후 4시 30분쯤 휴양림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숙소는 방 하나와 거실 하나를 갖추고 있다. 여지 없이 저녁은 성찬이었다. 쇠고기, 돼지고기가 각종 야채와 더불어 나왔고 이를 모두 여성팀에서 준비하고 요리했다. 야외로 나오면 여성들은 쉬고 남성들이 음식을 해야할 것 같은 미안함이 드는데 뭔가 좀 도우려 해도 그냥 앉아있으란다. 앞으로는 이런 걸 좀 고치든가 다 먹고 상 치우고 설거지 정도는 남성들이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식사 후 술 한 잔 하면서 정담과 덕담이 오갔다. 새롭게 막내가 된 기봉씨는 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된 듯 어리둥절 거동이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 이제 막 막내를 벗어난 영식씨의 짖굳은 장난에 아직 적응이 덜 된 탓일 게다. 그러나 앞으로 한 번만 더 참가하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대충 파악하고 안심하지 않을까 한다. 폼 잡을 일도 없고 내숭 떨 일도 없고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된다. 9시쯤 나는 밖에 텐트를 치고 나왔다. 애초에 나는 텐트에 잘 거라 예고한 터였다. 예상보다 춥고 바람도 불어서 방에서 잘까 했으나 아무래도 까마귀의 전령을 받으려면 텐트에 혼자 있는 게 좋을 성 싶었다. 여성들 3명도 나와서 텐트를 쳤다. 대단한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방에서 자고 여성들이 밖에서 자다니 뭔가 순서가 맞지 않는 듯하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침낭에 몸을 폭 파묻으니 따듯한 온기가 침낭 안에 감돌았다. 이어폰을 꼽고 까마귀의 전령을 접수했다. 이쪽이쪽.... 저쪽저쪽....이쪽저쪽....저쪽이쪽.... 개똥지빠귀와 소쩍새가 쉼 없이 울어재끼는데 텐트 안에는 온통 새들의 지저귐으로 꽉 들어찼다. 1시간쯤 새들의 지저귐을 듣자 세차던 바람이 언제 그랬다는 듯 잦아들어 사위가 조용했다. 그때였다. 산쪽에서 짐승의 소리가 꺼이꺼이 들리는 것이었다. 새 소리를 한참 들었다 싶었더니 이제는 웬 짐승소리다. 짐승소리는 점점 더 내 텐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내 텐트를 두드리기까지 한다. 나는 머리털이 쭈빗 솟아 안에서 텐트를 치며 워워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이제는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던가. 그러니까 누군가 소피를 보러 저만치 갔다가 장난끼가 발동하여 짐승 소리를 내며 내 텐트 옆으로 왔는데 나는 진짠 줄 알고 놀라자빠진 것이다. 그나저나 대단한 짐승소리다. 내가 양구에서 듣던 짐승 소리와 너무나 비슷했다.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은 정해져 있다. 막내 영식씨 아니면 원규 대장 둘 중에 한 사람이다. 아침에 물어 본다고 하고 잊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눈을 떳다. 침낭에서 나오지 못하고 밍기적거리고 있는데 방 안에서는 벌써 사람들이 일어났는지 소리가 들려왔다. 텐트를 대충 정리하고 들어가자 일행들은 이미 산행준비 완료다. 아침은 다녀와서 먹기로 하고 우선 팔영산 깃대봉 인증 산행을 시작했다. 팔영산은 다도해국립공원 팔영산지구에 속해 있다. 그러니까 팔영산도 국립공원이라는 뜻이다. 고흥 10경 중 으뜸이고 정상에서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고 대마도도 보인다고 한다. 산행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400여미터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니 600여미터의 팔영산을 200여미터만 오르면 된다. 날씨가 다소 쌀쌀한 탓에 옷을 껴입고 산행을 하니 금새 땀이 나기 시작했다. 겉옷을 벗었다. 정상인 깃대봉에 오르자 바람이 세차고 볼이 차겁다. 손도 시렵다. 깃대봉에서는 팔영산의 팔봉이 우뚝우뚝 솟아난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바다에는 손에 잡힐 듯 섬들이 떠 있는데 안개 때문에 먼 곳 대마도쪽은 보이지를 않는다. 깃대봉에는 한문으로 旗臺峰으로 정상석에 써 있다. 깃대를 달았던 봉우리라는 뜻인 것 같은데 무슨 깃대를 달았던지는 모르겠다. 생각 같아서는 저기 팔봉을 모두 오르고 싶었지만 바람도 불고 날씨도 춥고하여 모두들 생략했다. 만약 나 혼자 왔더라면 하루 더 묵더라도 저 곳을 모두 넘나들었을 것이다.
산에 다녀와 먹는 아침 식사는 별난 맛이다. 모두들 허겁지겁 아침 식사를 했다. 특히 고등어 찜은 짜지도 않으면서 맛이 담백했다. 이제 적대봉으로 간다. 소록대교를 건너 소록도를 지나 다시 거금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원규 대장의 즉석 아재 개그가 발동한 것은 이 시점에서였다. 원규 대장은 무전기를 들더니 이런다. “우리는 지금 거금대교를 건너고 있다. 거금대교를 건설하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하라 오바.” 그러나 2호차 3호차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원규 대장 답을 말한다. “거금대교를 짓는데는 거금이 들었다 오바.” 그러자 저쪽 2호차 미숙 아짐의 짜증 섞인 소리가 무전기로 들려온다. “아! 진짜.”
거금대교를 건너 적대봉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12시쯤 되었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산행을 시작했다. 막내 기봉씨의 거동이 좀 수상하다. 맨 마지막에서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아마도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캠핑한다고 왔는데 웬 산을 오전에 2개씩이나 오르냐 이런 말이다. 캠핑에 처음 온대다 막내이니 반항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착하기가 그지 없다. 게다가 총각 아닌가. 어딘가 참한 노처녀 있으면 소개해 주고 싶다. 적대봉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고 길은 오솔길 수준이다. 처음 시작할 때 약간의 경사를 오르면 완만히 오르는 평지 능선을 걸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이 능선이 바로 장관이다. 지난 번 굴업도에 갔을 때의 억새만발한 길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름하여 억새만발길이다. 억새 한들거리는 오솔길에 우리 일행이 걷고 있는 모습은 천상 그림이었다. 억새만발길은 조금씩 조금씩 올라 적대봉에서 천상에 닿아있었다. 그렇다, 천상이었다. 저기 다도해와 육지 쪽으로 바라보아도 이곳보다 높은 곳은 없었다. 모두가 저 아래 떠 있거나 누워있다. 남서쪽 바다에는 금당도, 신도, 충도, 평일도 등이 손에 잡힐 듯 떠있고 북쪽으로는 소록대교와 거금대교가 섬과 섬을 이어주는 모습이 아련히 보인다. 녹동항이 오밀조밀 보이고 바다에 접한 평지가 누런 색을 띠며 펼쳐보인다. 천상에서 보는 지상의 모습들이다. 이것이 섬 산의 매력이다. 모든 섬의 산들은 천상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섬에 가서 산을 오르지 않고 돌아오는 것처럼 바보스런 일은 없다. 섬에 가거든 산에 오르자. 이번 섬 여행의 깨달음이다. 적대봉에 가자라고 추천해 주신 석훈 형님께 감사드린다. 적대봉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하산했다. 녹동항에서 게장과 갈치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알찬 캠핑 여행이었다.
솔에게 엽서를 썻다.
까마귀야, 이 엽서 물고 어여 솔에게 달려가렴. 내가 성급히 달려가면 너를 따라잡을지도 모르니 너는 빛의 속도로 달려가 소식 전하렴. 1박 하고도 2일 동안 너와 떨어져 있는 이 거리가 저 우주정거장을 왕복하고도 남을 만큼 먼 거리였다는 걸.
첫댓글 세심한 글솜씨와 멋진 사진솜씨에 제가 그곳을 다녀온듯한 착각이 드네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 ~~ 음
금영씨 칭찬을 들으니 좀더 잘 써볼 걸...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그러면 풍광을 금영씨 눈에 넣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음
감칠맛이란게 뭔지 알겠습니다~
완전 달달합니다^^
석훈 형님, 여기 사탕 2개 더 드립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