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 괜찮아?? 많이 아파??"
"흑....형....나 어떡해....너무 아파...아파서...죽을 것 같아."
병원으로 가는 정혁의 차 안에서 진이는 울음을 토해내며 고통을 토로했다. 정혁은 그의 목소리에,
울음에 더욱더 급해져 엑셀을 마구 밟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나의 진이 만큼은 살아야 해....!!
급해져가고 있었다. 슬픔으로 얼룩진 진이가 갑자기 검게 보인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울음도 참는
듯 끅끅대는 소리가 더욱더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위로해줄 상황도 못된다. 지금 그를 살릴수 있는건 병원에 가는 것 뿐....
그렇지만....!!
[의료계 폐업...]
신문 머릿기사가 머리속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비극이다.
왜 하필 이런때에, 진이가 아프게 된건지...!!
빌어먹을....
"혜성아, 빨리 가자니까...!!"
민우의 재촉에 혜성은 기계적으로 계속 잠깐만을 외치고 있었다. 할 일은 없었다. 파업으로 우리가
할 일은 전혀 없었다. 정부에서 적당한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는이상..그렇지만 혜성은 달랐다. 그
는 파업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에 드는 환자들은 정신없이 치료할려고 애쓰곤 했다.
싫진 않았다. 아니, 그의 모습이 좋았다. 평소에 활짝 웃고 있는 혜성도 좋지만 일에 몰두해 있는
모습은 세계대전 당시 백의의 천사라 불리던 나이팅 게일이 살아 숨쉬고 있는것만 같은 착각을 불
러 일으킨다. 그런데도 그런 그를 막고싶은건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병원 이사장 동완 때문이었
다. 오늘도 그가 볼새라 걱정되어 민우는 그가 들고 있던 진료챠트를 빼앗아 두고 그의 하얀 가운
을 벗겨낸 다음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혜성도 민우의 행동에 졌다는 듯 그저
피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여기 기다려. 차 갖고 올테니까."
"알았어."
민우는 혜성이를 두고 부랴부랴 주차장으로 갔다. 혜성은 그런 민우의 모습을 보며 잠시 미소짓다
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탁한 하늘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별은 물론이고
달빛 마저도 보이기를 거부하는 듯 흐리게 보여왔다. 하아...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늘만 바라보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는 저 하늘에서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편
으로는 미안했다. 어쩌면 저기서 맨날 자신을 내려다 보는건지도 모르는데 그런 그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매일 환자들의 시선만 맞추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을수 있게 해주는것...그렇지만 한번
도 그를 잊어본적이 없다.
나 맨날 너 생각해...알어? 근데 넌 거기가 그렇게 좋니? 넌...가끔 내생각 하기나 하는거니...오늘도
거기서 나 바라보니? 니 눈빛 너무나 보고 싶어. 가끔씩 꿈속에서라도 나타나주면 안되는거니? 이
렇게...니가 보고 싶은데...바보야...!!
혜성은 서글픔과 그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씩 문질러 보자 눈가에 밤이슬이
닦여 나온다. 씩 떨쳐버리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밤 공기가 차다. 그렇지만 여기에 계속 머물고 싶
었다. 밤을 밝히는 은은한 조명 때문만이 아니다. 왠지 모르게 여기에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민우
가 늦다...
"진아!! 정신차려!! 다왔어, 그러니까 제발...!!"
순간 밤공기의 찬 정적을 꿰뚫고 누군가가 애절한 고통을 울부짖는다. 병원 근처에서 이런 소리가
난다는 것은 급한 환자가 실려왔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건 곧 치료를 받지 못해 병원 폐업을 입에
담으며 목숨을 살려내라고 소리칠 그들이...
혜성은 순간 다급해졌다. 자신이 의사의 신분이기 때문에? 고통에 허덕이는 영혼이 너무나 시리게
느껴졌기 때문일까...지금 자신 혼자만으로는 아무것도 해줄수 없다는걸 알지만 혜성은 무작정 그
고통이 새어나오는 응급실로 뛰기 시작했다.
"야! 신혜성! 어디가!!"
간만의 차이로 혜성을 놓쳐버린 민우는 바보가 된 듯이 혜성이 달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뒤
따라 갈까...? 하다가 관두었다. 아까 진료는 그만두었고...뭘 두고 나왔을테지, 지갑이나 뭐 그런것...
그렇게 그냥 가볍게 넘겨버리고 민우는 차에서 내려 그를 기다릴겸 담배 한 대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가 빨간 불빛을 내며 점점 타들어 가며 내는 연기가 뿌옇게 실루엣을 형성하며 왠지모
를 불안감을 형성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진아 괜찮아? 거기 아무도 없어요?? 사람이 죽어가잖아요!!"
"형...나 괜찮아. 그러니까...너무 신경쓰지마...!!"
"이 바보야!! 지금 너 이렇게 괴로워 하는데 내가 어떻게 널....흐흑...!!"
끝내 정혁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러면 안되는데..아파하는 진이를 위해서라도 그의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진이는 미안함에 고통으로 떨고 있는 손을 뻗어 그를 품에 안았다.
정혁은 한없이 미안했다. 이런 고통하나 분담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의 애인이라니...그의 인생을 책
임지려 했다니...한없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애써 울음과 고통을 집어삼키려 애쓰는 진이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했지만 그는 1분 1초를 정혁에게 집중하며
애써 미소짓고 있었다.
병원은 그야말로 침묵이었다. 정책에 대한 병원의 반발이 이렇게 심할줄은 몰랐다. 사람이 이렇게
아픈데 달려나오는 의사 하나 없고 병원은 너무 어두웠다.
"하아...하아...!!"
그때 입구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숨소리에 정혁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또 위급한 환자가 있나 싶
어서....
그곳엔 저 멀리서 급히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는 한 사내만이 흐린 시선을 다듬으며 주위를 보려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환자!!'
혜성의 예감은 적중했다. 이 어두운 밤 고통의 소리로 자신을 이렇게 이끈 장본인들이 응급실 침대
에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혜성은 잠의 유혹을 받고 점점 감기려 하는 눈을 뜨며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
-first love...2-
"혜ㅅ..."
담배 한 개비를 다 피도록 혜성이 돌아올 생각을 않자 민우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병원으로 들어
갔고 그곳엔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난 후였다.
바보같이 그 자리에 발이 붙은 듯 굳게 서 있는 혜성, 그리고 그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애써 바라보
려 하는 사람들...!!
환자였다. 아니 환자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환자에게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혜성이 문제였다. 예
상밖의 상황에 민우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하였다.
더군다나 혜성은 민우가 두려움에 떨고있는 그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홀린거야...그래 넌 홀린거야...그리고 나도...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이렇게 우리 앞에 나타날 리가 없
잖아? 그는 이미 죽었어. 3년전에 죽었다구...!!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서 꺼지
라고 내몰아내고 싶었다.
혜성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놀란 심장은 불안정한 호흡과 막 터질듯한 울음으로 불규칙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래, 하늘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자. 아직도 그를 그리워 하는지 시험하려 하는 하늘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자... 아니 더 너그럽게 축복이라고 생각하자. 그와 너무도 똑같이 생긴 그를 이렇게 내앞에...
하지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그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영 모르겠다는, 그리고
냉랭한 표정으로 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차가운 표정에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혜성이었다. 그래...그는 죽었어...죽었어...
"어디...아프세요?"
"의사입니까?"
"네."
"그럼...빨리 환자를 살려줘요!!"
그의 말에 혜성은 그가 안고 있는 진이에게로 다가갔다. 아픈배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짐작케 하는 땀과 색색거리며 겨우 내어쉬는 숨...그리고 꼭 감고 있는 눈과 꽉 다문 입술...혜성은
혹시나 하여 그의 맥박과 아픈 부위를 살펴보았다.
급성맹장염...!!
혜성은 민우에게 눈치를 보냈다. 민우도 그런 환자가 전공은 아니었지만 상황으로 봐서는 할수 있
는게 없었다.
"없어, 신혜성...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뭐,뭐야? 너희들이 그러고도 의사라는 거야!!??"
정혁은 민우의 말에 노기가 어린 듯 잠시 호흡을 고르게 하여 참으려 하다 민우의 포기한듯한 눈
빛에 다짜고짜 자신의 앞에 있는 혜성의 멱살을 잡아채었다.
"흑...!!"
"뭐하는거야!! 그거 안놔??"
"의사라면 고쳐내. 당장 나의 진이를 고.쳐.내."
"그러기 전에 혜성이 한테 손놔. 혜성이한테 손대는거 절대로 못참아!!!"
둘 사이에 거친 대화가 오가더니 결국 민우는 정혁에게 주먹을 날리고 혜성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
민우가 받아들자 그의 품에 안겼다.
정혁은 차가운 병원 바닥에 넘어져 잠시 맞은 곳에 손을 대어보다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행
동을 하나하나 탐탁지 않게 쳐다보던 민우는 그가 일어서자 혜성을 뒤로 숨기곤 정혁을 마주보았
다.
그래 잠깐의 착각이었다. 죽은 그가 되살아날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는 이렇게 살기어린 인간은 아
니었다. 그리고 그는 혜성이가 갈망하던 영혼을 담고 있지 않았다.
안과의를 전공하는 민우라 눈빛을 새겨보는건 그에게 흥미로운 취미거리였다. 눈은 영혼을 드러내
는 마음의 창이라 하였다. 여태까지 많은 눈을 보아왔다. 그렇지만 그 순수함도 일순 얼굴에 가려
져 빛을 잃는다. 순간 나도 착각할 만큼...그와 그는 엄연한 다른 존재이다. 그걸 혜성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혜성은 예전에 그를 보던 눈빛으로 정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혁의 증오에 찬
시선과 묘하게 교차되어 서로 엇갈린 현실을 나타내주고 있었지만 민우는 두려웠다. 혜성의 저 눈
빛이 정혁에게 전달될까봐...
"가자 혜성아."
"싫어..."
"신혜성!! 넌 내과의가 아냐!! 저 사람 니 실력으론 못고쳐."
"아니...고칠수 있을거야."
"웃기지마...칼들고...주사 들고 저 사람을 너 혼자서 수술할수 있다구? 어림도 없어!! 웃기지 말라구,
제발 부탁이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민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를 빠져나가버렸다. 너무나 답답해서...그리
고 벌써 혜성은 정혁에게 눈을 떠버리고 말아서....더이상 막을 재간이 없음을 알기에 돌아서는 것
이었다.
제길....그래....벌받은거야....그가 죽던날 혜성이를 더 가까이 할수 있어 기뻐하다가 드디어 벌받은거
야, 이민우....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민우의 말대로 난 내과의가 아니라 수술을 할 줄 모른다. 그리고
칼을 들고 사람 피부를 벤다는건 너무 고통스러운 시각적인 괴로움이었다.
그런 내가 칼을 든다는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기에 민우가 그냥 나에게서 지금 손을 놔버린건지도
모른다. 그래...나 그렇게 못해. 너무 약해서...피를 보면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피속에 죽어가던 내
사랑하던 사람이 생각나서 그렇게 못해...
가끔 진료 후 감기나 예방백신을 위해 어린 아기들에게 주사를 지시할때도 괴로웠다. 아기들의 천
진난만한 눈빛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살기어린 주사바늘이 여린 아기피부를 뚫고 들어간다
는건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을테니...
"죄송하지만...제가 이렇게 손 쓴다 해도 가망은 없을거예요...전 소아과 전문의라 내과일은 전혀 해
본적이 없어요..."
정혁에게 미안한 듯 말하며 진이를 침대에 눕히는 혜성의 눈가엔 눈물이 어려 있었다. 너무나도 미
안해서...급속맹장...수술을 해서 떼어내지 않으면 100% 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혜성은 그의 생존
을, 아니 죽음을 확신해두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리 마음의 준비나 하라고 할겸 그렇게 말해
두는 것이었다.
"마음의 준비...단단히 해두세요..."
"......!!!!"
-first love...3-
"신혜성 나쁜자식!!!"
눈물로 온통 범벅이 되어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민우는 분노감에 흐르는 눈물
을 그대로 둔 채 엑셀을 마구 밟으며 차를 과속으로 몰아대고 있었다.
바보같았다...그리고 내가 미웠다...
왜...!! 그가 죽은 후에도 난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갈수 없는지...
아니다. 어쩌면 오늘 나타난 그로 인해 혜성이 흔들리는 것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난 버림
받은거나 다름없다.
-끼이이이익!!!!
"후........."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형체에 민우는 그대로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고 찢어질듯한 굉음과 함께
차는 멈추었다. 의자 뒤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 되고 싶지만 너는 나를 거부하는구나...신혜성...
-띠리리리리리리~~~~~
........
-띠리리리리리리리~~~~~~
.......
-띠리리리리리리!!!
"누구야, 이 새벽에!!"
갑자기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하게 잠을 청하고 있던 선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 신경질 났다.
"여보세요?"
"선호니...?"
"누구신데요, 이밤늦게!!"
"나, 민운데...."
"어...아...!! 민우선배님!"
전화기 저쪽 너머로 들려오는 낮은 소리에 도끼눈을 하고 멍한 허공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다 순간
들려오는 그의 이름에 선호는 갑자기 친절해져 허리를 굽혀가며 굽신굽신 전화를 받았다.
레지던트인 자신을 평소에 열심히 지도해주던 민우선배였다. 선호는 오던 잠마저 다 깨이는걸 느끼
며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지금 나올수 있니?"
"지금 파업했잖아요.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니...그냥....싫음 말구..."
"아녜요. 지금 어디예요?"
그에게서 약속장소를 받아낸 후 선호는 밤 늦은 시간이지만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뭐, 병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급한 환자가 있을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야하는게 의사인것
을...지금은 비록 의사 실습과정으로 레지던트이긴 하지만 많이 겪어본 일이라 별 생소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길래..."
그런데도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어찌할수 없는일인 것 같다...
우선 그를 침대에 눕힌후 진통제를 놓았다. 산부인과에서 사용하는 거지만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느끼게 할 배려였다. 정혁도 그걸 아는듯...그리고 그를 보내야 한다는걸 아는 듯 묵묵히 혜성이 하
는대로 놓아두었다.
혜성이 주사를 놓은 후 정리하고자 약 제조실로 들어간 틈을 타 정혁은 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고
통은 주사덕분에 덜한 듯 이제 좀 안정을 취할수 있었다.
그가 살수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 바보같이 이런 그의 모습에서 살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
리고...정혁은 그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해주었다. 곧있으면 닥칠 작별, 죽음, 그리고 슬픔...그 모
든 것에 이미 각오가 되어있다는 듯한 정혁의 행동에 혜성은 그만 그들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벽 뒤에 숨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심장이 크게 뛰어오고 있었다.
동일시 하면 안된다. 그와 그를....그렇지만 지금 그를 보면 볼수록 예전에 그에게 못다했던 사랑이
자꾸 가슴을 뚫고 올라와 그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드러나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자꾸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보아하니 그와 그는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은데 곧 사랑하
는 사람을 떠나보내게 될 그에게 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물론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하는 일이
란 것을 알지만...
절대로 방해할 수 없었다. 그냥 여기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의 임
종을 맞이하는걸 지켜볼수 있게 조용히 놔두고 싶었다. 지금 가서 옆에 있으면 오히려 두 사람을
방해하는거나 다름없으니...
"에릭........"
혜성은 조용히 그리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저 둘을 보자니 그가 죽을때가 떠올랐다. 상황은
에릭이 더 심각했었다. 산소호흡기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살지 못했다...그렇게 야속하게 나만 남겨두고 저 높은 하늘로 따라오지도 못하도록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같이, 그와 함께 같이 가버리고 싶었지만...그또한 뜻대로 되지 못했다...
"민우선배..."
빨리 간다고 갔지만 도착 후에 민우는 벌써 술에 절어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일까...선호는 옆에 앉
으며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왠지 알것같다...그가 이렇게 슬퍼하는건 혜성선배와 관련있는 일
임에 틀림없다. 항상 그와 함께 다니며 느낀 것이다. 그는 언제나 틈만 나면 혜성선배를 나의 친형
이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가끔 하는 스킨쉽도...
"선호야..."
"네?"
"에릭...죽은 것 맞지...?"
"......!!!!!"
-first love...4-
아무런 대답도 하기 싫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민우선배가 이상했고 괜히 지난날의 기억을 상기
시키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민우, 좋은 선배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적인 자리에서 보자면 오
히려 적수로 따지는게 나을 듯 하다.
그가 죽을 때 차가운 미소로 혜성을 바라봤던게 기억난다. 그 이후 난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되었
는데 무슨 악연인지 그와 다시 만나게 된것이었다.
"알면서 왜 물어보세요...?"
차갑게 나오는말을 그대로 그의 귓전에 들려주었다. 그러자 신경질 내야 할 그가 오히려 미소를 짓
는다. 술에 취하긴 취했나보다...
"그런데 말야...오늘....에릭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났어..."
"...?? 혜성선배는요!!??"
"내가 물어보고 싶어...왜 에릭을 바라보던 눈빛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지..."
"그냥 두고 왔어요??"
"막을수 없었어..나...그가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어...."
순간 선호는 쥐었던 술잔을 내려놓고는 민우를 바라보았다. 이제보니 민우는 술취한게 아닌 것 같
다. 약간 젖은 것 뿐, 평소와 같은 그의 눈빛을 보니 전혀 취한 사람이 아니다. 그나저나...혜성선배
가 걱정이었다.
비밀이 있었다. 선호는 그 비밀을 혜성에게 계속 강요해왔다. 자신의 형인 에릭의 이름으로...그때마
다 혜성은 웃으며 알겠다고 했지만 이제보니 그냥 한쪽귀로 흘겨들은게 틀림없다. 괘씸했다...
에릭이 죽은 후 혜성에게 접근하는 민우선배가 미웠지만 이제보니 둘다 한통속이나 다름없었다. 둘
다 에릭에게 배신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같다.
특히 그 사람이 내 형인 에릭이 사랑했던 혜성이라면 더 이상 용납을 할수 없다.
에릭을 버리고 그 사람에게 가겠다는거야, 지금...??
"가지마..."
"혜성선..."
"가지말라구!! 니가 가서 될일도 아냐. 혜성인 이미 넘어갔어...위험수위를 넘었다구, 가봤자 어떻게
할수도 없어."
"어떻게 에릭형을 그렇게..."
"아니...그는 아직도 에릭을 사랑하는 거야...그렇게 꿈속에서 그리던 에릭과 닮은 사람이 나타나 감
격해 하고 있는거라구..."
"달라요, 에릭형은 지금 죽었어요! 그런데 환생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몰라........나도 모르겠어................!!"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혜성선배가 그 사람에게 간다면 내가 가만히 못있어요. 그를 죽여서라
도 에릭형 곁에 두게 할거라구요, 형이 얼마나 혜성형을 사랑했는데...내가 배신하게 둘 것 같아요?
어.림.도. 없어요!!"
"진아..."
"정혁형..."
"미안해...진아..."
"아냐, 내가 더 미안한데..."
갑자기 병원 복도가 둘의 대화로 분위기가 한층 더 침체되었다. 혜성은 가만히 뒤에서 잠자코 바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외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이대로 두고 나갈수도 없었다. 에릭과 닮았다는
그 이유가 지금 혜성으로 하여금 계속 병원안에서 머물게끔 발목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단단히 하라는 말....아무래도 잘한 것 같았다...
"형...나 죽거든..."
"아니, 넌 죽지 않아..."
"아냐..."
정혁은 애써 현실을 부인하려 했지만 알고 있었다. 점점 독기가 퍼져 굳어가는 진이의 몸,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말하는것조차 힘겹다는걸...그렇지만 진이는 자신을 위해 지금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막의 건조함에 피어난 한송이 백합같은...그런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형은 오래 살아야해...형 오래 안살면 내가 더 슬플거야...저 하늘에 가서도 맨날 울 것 같아...그러
니까...형은...오래 살아야 해...!!"
"진아....!!"
더 이상 무시할 현실이 못 되었다. 진이가 점점 괴로워 하고 있었다. 진통제가 워낙 강한데도 그렇
게 괴로워 한다는건 벌써 몸은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게 아닐까...
더 이상 보고 있기가 괴로워 혜성은 반대편 복도로 어두운 길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나아갔다. 그곳
엔 민우가 간 듯 차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밖은 전혀 변한게 없었다. 은은한 조명...그리고 차가운
밤공기...혜성은 벤치에 앉았다. 가운에서 아까 끈 약품 냄새가 난다. 진통제...
"흑...흐흑....!!"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강해져야지, 혜성아...응? 내가 옆에 있잖아?]
부드러운 에릭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의 말에도 쉽게 강해질수 없는건 그가 남기고간 자리
가 너무 커 혼자의 힘으로는 슬픔을 채워넣을수 없기에...
그래도 참아야 했다. 혹시나 에릭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너무 괴로웠다. 내가 저들에게 해줄수 있는건 죽음을 두고 냉정해지라는 주제에 되지도 않는 철학
자같은 말뿐이었다. 병원이 파업만 하지 않았어도 저 사람들...살수 있었을것이다...그렇기에 더 괴로
워 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날 데려가...에릭...차라리 내가 가면 니 곁에서 행복할수 있잖아, 그런데...저 사람들 저렇게
떼어놓으면 어떡하지...?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슬프지나 않게...지금 니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저 사람...니 얼굴 자꾸 떠올리게 해, 너무 닮아서...그래서 저 사람이 슬퍼하는거...못볼 것
같아. 저 사람 슬퍼하면...니가 또다른 고통에 휩싸여 죽어가는 것 같아서... ..."
혼자 괴롭게 독백을 쏟아내었다...그렇지만 아무도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런 심난한 마음을...밤공기
가 유난히 차웠다. 흘러내린 눈물은 얼어붙을 듯 식어있었고 혜성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못할
것 같았다. 미안해서...해줄수 없는 자신이 너무 미워서....
-first love...5-
[민우선배, 일어나시거든 식탁에 밥 차려놨으니 드세요. 열쇠는 경비실에 맡겨 주세요. 전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겠어요]
선호는 조심스레 메모를 민우가 잠든 침대 위에 놓아두고는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어제밤에 술 마시자고 불러낸건 민우요, 술에 절어 눈물을 흘리며 잠든것도 민우였다. 선호는 다
이해할수 있었다. 혜성선배를 사랑하고 있는 민우의 마음을...하지만 그 마음을 용납할수 없는건 혜
성선배는 이미 에릭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에릭은 죽었지만 말이다...
선호는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집을 나왔다. 해가 조금 있으면 뜰 듯이, 주위는 온통 새파란
새벽공기에 젖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타고는 막 시동을 걸려던 손을 멈
추었다. 자신의 차시동 소리에 침묵이 깨지는게 못내 미안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할일. 지금 자신이 할 일이 있기에 선호는 잠시 눈을 딱 감고 시동을
건 후에 유유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또 밤을 지새웠다. 아침에 동이 트자 하늘은 점점 밝아오고 교통량의 증가에 따라
소음도 비례로 증가해가고 있었다. 다행히 도로와는 조금 떨어져 소음정도도 낮긴 하지만 병원이
너무 조용해 저런 자동차 소음도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서서 그들을 보았다.
임종을 무사히 맞이해낸 듯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침대에 눕혀두었던 그 사람은 이미 싸
늘하게 식어 굳어있었고 그 옆엔 지쳐 울다가 잠이 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는 그가
보였다.
이제 저 시신도 치워내야 한다. 병원균이 발생하지 않게 치워야 한다. 그렇지만 그를 놓칠새라 손
을 꼭 잡고 잠들고 있는 그사람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할수 없었다. 다시금 슬픔에 잠긴 눈동자로 사
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를까봐...행동은 못내 조심스러워져 가는걸
느꼈다.
-스르르...
죽은 그의 시신 위에 깨끗한 하얀 천을 덮었다. 그러자 그 천의 감촉을 느꼈는 듯 정혁이 깨어났
다. 그리곤 무슨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혜성이 밀고가는 침대를 보더니 급히 달려왔다.
"뭐하는 거죠?? 진이를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벌써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아니예요. 죽지 않았어요, 그는 죽지 않았다구요!!"
"이러지 마세요!! 그렇게 부인한다고 죽은사람이 살아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이인가 본데 그렇게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편히 갈수 있게 놓아주세요."
혜성이 강력하게 몰아붙이며 그를 막아섰다. 그의 놀란 눈빛에 자신이 더 놀라는 혜성이었다. 자신
이 그런말을 했다니...잠시 입을 틀어막았지만 못할말 한것도 아닌 것 같아 손을 떼어내고 다시 침
대를 밀기 시작했다.
혜성의 말이 귀에 박힌 듯 그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듯 했
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혜성도 그렇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제 밤부터 계속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외쳐왔듯이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내가 죽인것도 아닌데...그런게 아닌데...그렇게
자신을 설득시켰지만 또 흘러내리는 눈물에 주체를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렇게 슬퍼하는건 이 사
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 자꾸 되살아나는 에릭의 모습이 마음아파서 인건지
도 모른다....
'정말....죽은거니...? 그렇게 아무런 소리없이...넌 그렇게 가볍게 내곁을 떠난거니.....? 진아...'
혜성이 침대를 옮겨간 후에 계속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정혁은 병원 벽에 잠시 기
대었다. 허탈한 마음에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죽음과 삶은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그걸 새삼 실
감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냉정해지려 애쓰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너무나 공허하다.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공기마저도 철근으로 만들어 낸 듯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그가 떠나버린 세상
은...그가 죽은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이 무심히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밖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그를...혼자 보낼수 없었다. 그가 죽은후에도 세상은 달라진거 하나없이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고 바
람은 불고 있으며 자동차는 예전처럼 달리고 있다. 변한건 전혀 없었다.
그러니...나 하나 너 따라간다 해서 변하는게 있겠니...? 너 혼자가는 저승길 너무 춥고 외로울거
야...!! 내가...같이 가줄게 진아...!!
정혁의 발걸음은 갑자기 바빠져 병원 밖을 향하고 있었다.
-탁...탁...탁....
복도에 구두 마찰음이 점점 더디어졌다. 더 이상 걸을 힘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내곁에서 또 한
사람의 생명을 보내고야 말았다...
혜성은 무너지듯 복도에 주저앉아버렸다. 죄책감은 그리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목숨은 하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런 목숨이 이 병원안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과연 내 전공은 아니었다. 생명을 다루는 계통...소아과에서도 심심찮게 아이의 생명이 걸린 병을
치료하곤 하지만 그것 역시 담당하기가 벅차졌다. 나로 인해 또 죽어갈까봐 너무나도 겁이 났다...
그에게 미안하다는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그의 슬픔을 덜고 자신의 죄책
감을 덜어내고 싶었다.
혜성은 고개를 들어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조용한 병원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한
예감이 온몸을 감싸돌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따라가고 싶어한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적이 있다. 그 시기는
아마도 내가 에릭을 보낸 후 위로차 방문했던 동료들에게서 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동료들은 모두
병원 의료진들이니 그말은 틀린게 없는, 현실을 살아가며 겪은 사실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안돼....제발......죽지 말아줘......!!
혜성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언제 사라졌는지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늦은것이
다...너무 늦은 것이다....!!
-first love...6-
'신혜성....배반자....'
병원으로 향하면서 선호는 계속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생각에 몰두하여 눈은 어디를
보는지 귀는 뭘 듣고 있는지 숨은 왜 쉬는지 조차도 망각한채 정신없이 차를 몰게 되었다...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난 그걸 감당해내기조차 벅찰만큼의 생각과 증오를 만들
어내고 있었다.
그런 선호는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고 발가는 데로 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환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너무나도 형과 닮은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훗....형....이제 나도 데려갈려구?? 그래...제발 나도 데려가줘.."
선호는 쓴 웃음을 지으며 그 환각을 물리치겠다는 듯 더 급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환각이라면
차에 받혀 없애버리리라....!!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에 따라 선호의 불안감은 더욱
더 가중되어 갔다. 그리고 왠지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기에....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익!!!! 퍽!!!!!!
"....!!!!!!!!!!"
저쪽에서 무언가와 차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계속 불안해 하던 혜성은 그 소리에 무언가 모를
느낌을 받고 그 소리의 방향을 향해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아니, 제발 아니길 바래...!! 제발 그가 죽지 않길 바래...!!
두려웠다....에릭이 한번더 자신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할까봐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렇게 또 죽어
간다면 자신마저 살아가기가 힘들 것 같았다. 너무나도...
혜성은 도로변으로 뛰어내려갔고 그곳엔 사람이 몇몇 모여 있었으며 낯익은 차와 한 사람이 차에
받혀 쓰러져 있었다.
"..........아,아냐...그럴 리가 없어!"
쓰러진 그가 너무나도 에릭과 닮았기에 혜성은 다시 한번 절망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사실을 부정
하며 그에게 달려갔지만 그 생각마저도 누그러듬을 느꼈다. 정혁에게 했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
다...
[이러지 마세요!! 그렇게 부인한다고 죽은사람이 살아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이인가 본데 그렇게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편히 갈수 있게 놓아주세요.]
그에겐 그런 말을 해놓고 정작 자신에게는 관대하게 그런 생각의 부정을 허락하고 있었다. 사람은
너무 자신에게는 관대하다...그렇기에 난 더욱더 슬퍼하는 것이다....!!
혜성은 울먹이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끌어안았다.
평소 두려워 하던 붉은 피가 흰 가운에 묻든지 말든지...그는 정혁을 안고 놓아줄줄을 몰랐다. 그러
자 순간 혜성의 출현에 눈이 커진 사람이 있었다.
"혜성선배...?? 정말..."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혜성은 고개를 들었다가 놀라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선호가 증오스
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선배, 그 사람 놔요."
"안돼...그럴순 없어!"
"선배...다른 사람 품에 안지 말라구요!!!"
선호의 고함소리에 사람들은 놀라 자신의 길로 흩어져 가버렸고 아침의 한적한 길엔 그 둘만 뎅그
러이 남겨졌다. 선호의 경고가 혜성의 귓가에 뚜렷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혜성은 그를 안고
떨어질줄을 몰랐다.
그가 누군지 알수 있었다. 더군다나 혜성이 저렇게 뛰어온걸로 보아, 자신이 환각을 일으켰다고 자
학하고는 부딪혀 없애려는 자신의 눈에서 그가 누군지 확실히 할수 있었다.
혜성이, 에릭을 보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던 그 자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를 안고 있다. 용납이
절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막을 자격같은게 없는건, 자신도 자신의 눈으로 그를 에릭으
로 인식해버렸다는 그 양심의 이유였다.
하지만 보고 있기엔 하늘에 홀로 남겨진 에릭이 너무 아파할 것 같았다.
"에릭형 사랑한다면 놓아주세요..."
선호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혜성이 잠깐 흠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싫다...이제 혜성에게 에릭은
누구를 쳐다볼때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선호가 내거는 조건인게 싫었다.
둘은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렇지만 그런 형과 그의 애인의 사이를, 죽은 후에 그런식으로 매듭지어
야 한다는 현실이 슬펐고 괴로웠다.
그래도 확실히 해둘건 해둬야 할 일.
이걸 형이 보면 아파할게 분명하기에 손을 써두어야 겠다.
"제가 치었으니 제가 처리하죠..."
"괜찮아. 내가....할거야!"
"선배, 제발..."
선호의 간절한 청에도 아랑곳 않고 혜성은 그를 자신의 어깨에 부축이고는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
다. 이대로 그냥 두면 어떻게 할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자신의 차에 태우고 있었다. 그의 흰색 EF 소나타에 붉은 피가 묻고 시트에도 묻는다. 그래도 그는
태우고 있었다.
그를 뒷자석에 완전히 눕힌 후 혜성은 손을 내어 맥박을 재어보았다. 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안
심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그가 다친 상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왼쪽다리에 타박상, 정신적 충격으
로 기절...그 정도는 쉽게 알아낼수 있었다. 그래도 다리는 치료해야 하기에 얼른 차문을 닫아두고
병원으로 들어가 필요한 약을 챙기기 시작했다. 붕대...소독제...진통제...두통약...등등...그가 치료중부
터 깨어난 후까지 생길만한 작은 합병증까지도 고려해서 약을 잔뜩 병원으로부터 챙겨내온 후 차
옆좌석에 실어두고 급히 그곳을 떠났다.
선호는...멍하니 그저 바라보고 있는수밖에 없었다...
민우가 왜 그를 막지 못한지 알 것 같았다...
-first love...7-
"훗...!!"
집에 도착한 후 혜성은 뒷자석에 눕혀져 있는 그를 끙끙대며 부축했다. 그런 힘겨운 상태에서 약품
들까지 다 갖고 가기란 혜성의 처지로는 불가능 하기에 우선 그를 부축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
를 잠시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놓고 혜성은 그제서야 그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
아주 많이 닮은 것 같다. 복제인간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말이다.
그를 떠나보낸지도 어언 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렇지만 그의 모습은 기억속에서 살아있는
듯 생생하고 지금 그를 보니 현실로 그가 살아난 것 같아 목이 메어왔다. 혼자서 너만 생각하며 아
주 잘 기다려 왔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와 그는 다르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혜성은 다시 그를 부축해 집에 들어갔다.
우선은 그가 다친부위를 소독해야 하기 때문에 피묻은 그의 옷부터 벗겨야 했다.
-스르륵...
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혜성의 얼굴은 가을빛의 단풍마냥 붉게 물들어갔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부끄러워 하고 주춤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의 윗도리마저도 벗긴후 욕실로 들
어갔다.
욕조 머리맡에 그를 앉힌 후 샤워기로 미온수를 튼 후 피로 얼룩진 그의 다리를 깨끗이 씻겨 나갔
다. 그리 심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교통사고 치곤...아무래도 육체적인 상처보다는 정신적인 상
처가 훨 커 보였다. 안쓰럽다...
그래도 그가 살아있다는 생각에 혜성은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닦이고 다시 그를 부축해 안방
에 있는 자신의 침대에 그를 눕혀두었다.
두사람이 자도 남을 정도의 침대...그를 눕히고서야 실감한다...죽은 그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그리
고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그와 어느 봄날 함께 찍었던 다정한 사진액자가 걸려 있었다. 너무나도
닮았다...에릭과 정혁은...
그러다 괜시리 사진속의 에릭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등을 돌리곤 차에 약품을 가지러 가기 위해
내려갔다.
자기 체중보다 무거운 사람을 부축해서 그런지 다리가 약간 떨려왔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보람을
느낀다. 그가 살수만 있다면...
"흐음..."
왠지모를 푹신함에 정혁은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떠보았다. 그러자 맨 먼저 보이는건 깔끔한 실크
벽지의 천장...병원이 아님을 깨닫고 일어날려다 다리에 생긴 싱처로 인해 밀려오는 통증에 다시 자
리에 누웠다. 기분이 이상하고 두려었다. 게다가 이불이 덮여 있긴 하지만 사각팬티 하나만 달랑
걸쳐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우선 여기가 어딘지가 궁금하기에 살펴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얗고 깨끗한 침대보와 이불
이 손에 느껴진다. 그리고 모던 스타일의 깔끔한 가구들...창가 꽃병엔 하얀 백합이 햇살에 이슬을
떨구어 내고 있었다. 은은하게 풍겨져 오는 스킨냄새...그리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방을 보니
여자의 방인 것 같았다. 남자의 손으로는 절대 이루어 낼수 없는 예쁜 분위기 이기 때문에...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혁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덜썩 누워서 눈을 살짝 감았다. 무
언가를 한아름 사갖고 온 듯 비닐의 부시럭 거리는 마찰소리가 들려오고 곧 주방으로 걸어가는 그
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제일 먼저 보이는건 가냘픈 몸과 칠흙같은 머리칼이었다. 그리고 그가 냉
장고 쪽으로 몸을 돌리자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가 보인다. 그리고 그가 살짝 뒤를 돌아 식
탁에 있는 컵에다 물을 따라 마신다. 얼굴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정혁은 아예 눈을 뜨고는 물을
마시는 그의 모습을 멍하니 감상했다. 주방의 창가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비춰오는 햇살을 받으며
밖을 내다보는 그의 모습은 햇볕과 함께 한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다웠다...
혜성은 물을 다 마신 뒤 이제 그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서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가 깨어있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놀라는 그의 눈빛도 보인다. 혜성은 그에게 안정이 우선이
기에 최대한 편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살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일어나셨어요? 몸은 어때요?"
"여긴 어디죠?"
"제 집이예요. 사고 당하셔서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제가 모셔왔어요. 저..기억하
죠?"
"아...네...!"
정혁은 잠시동안 자신을 바라보는, 미소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얼핏 슬픔이
비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계속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혜성이 먼저 얼굴을 돌리고 약을 뜯기 시작했다. 정혁은 반사
적으로 자신의 다친 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보이는, 자신의 다리에 닿아있는 그의 하얀 손
과 소독약...
치료를 할 모양인 것 같았다. 소독약이 상처에 뿌려지고 이내 힌 거품을 내는데도 정혁은 신경이
온통 그에게 쏠린채 고통따윈 느끼지 못했다.
백의 천사 나이팅게일...그녀가 환생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이 뭐예요?"
먼저 물은건 정혁이었다. 곱상한 그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자니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듣고 싶었
고 이름도 알고 싶었다. 내게 이다지도 친절하고 아름답기에...
"신혜성이라고 해요. 그쪽은요?"
"문정혁이요."
혜성이 잠깐 쳐다보자 정혁은 살짝 미소지었다. 그와 동시에 수줍게 미소짓는 혜성이었다. 의사랬
지...이 상처치료오는 별 관계없는 진료과를 전공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치료하는 그의 손길은 전
문의 만만치 않게 수준있었고 섬세했다. 집안 인테리어도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이라는 결론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푹 쉬셔야 해요. 육체적인 상처는 약으로 치유될는지 몰라도 마음의 상처는 안정과 휴식이 한몫해
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짓 하지 마세요...!"
혜성은 정혁에게 주의를 준 후 약품을 들고 방을 나섰다. 마음의 상처라...정혁은 그가 나간 자리를
멍하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모한 짓...무슨말인지 몰라 의아해 하다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
다. 진이가 죽은걸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잘 대해준 그를 바라보고 상처에만 온통 신경
쓰다보니 진이를 아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죽은 그를 뒤따르기 위해 도로에 뛰어들었
고...결국엔 그의 손에 의해 구해진 것 같다.
이렇게 돌봐주는건 고맙지만...한편으론 원망스럽다. 죽고 싶었다, 진이 뒤를 따라서...
"왜 저를 살리신거죠?"
-first love...8-
"!!!!!"
정곡을 찌르는 정혁의 말에 혜성이 들고있던 수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시 당황한 듯한 그의 모
습에 정혁도 잠시 당황했지만 자신을 살려주고 이렇게 치료까지 해준 성의의 원인을 알고 싶어 그
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는 수건을 주워들더니 머뭇거리며 정혁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당신이 등질정도로 그렇게 살기싫은 곳이 아니란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말씀은 고맙지만 당신하나가 그런다고 살고싶은 마음이 생기는거 아니니까 이러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전...제 갈길 가야겠어요."
그가 아픈다리를 이끌고 침대를 내려오자마자 그는 바닥에 쓰러졌고 혜성은 바로 달려와 그를 부
축해 다시 침대에 눕히고는 소리쳤다.
"이러지 마세요! 상처는 아직 덜 나았어요!!"
그의 말에 잠시 멍해있던 정혁은 부탁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다 나으면 보내드릴게요...그러니 이러지 마세요."
"왜 아직 안오는거지....?"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민우는 유리창너머로 분주히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귀찮
아진 듯 종업원이 상냥하게 건네는 메뉴판에도 거부를 했다. 조금 있다가 그가 오면 시키겠다고 양
해를 구한 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렇게 만나는 김에 그도 같이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선호가 아침일찍나가 조금전에 전화로 약속을 잡았고 지금 있는 위치마저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
에 민우는 궁금했다. 그리고 아까 병원엘 급히 가보았지만 기다리는건 싸늘한 침묵과 당직의사의
형식적인 인사밖에 없었다.
참...혜성이에게 연락도 아직 해보지 않았다. 그의 행방부터가 궁금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누르자 잠시 신호가 갔다. 초조한 마음이 들게 하는 반복적인 신호소
리...한 일곱 번쯤 울렸을까...상대편에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혜성이니...? 나 민우."
[어..무슨일이야?]
"너 지금 어디야? 지금 만날 수 있을까...? 할말도 있고..."
[지금 하면 안되니? 나 지금 할 일이 있어.]
"전화로는 셋이 동시통화가 안되잖아."
[무슨..말이야?]
"선호도 함께 할말이 있어."
[...여튼 지금은 안돼. 미안...]
뭐가 그리 급한지 자기 할말 다하고 사과같지도 않은 사과를 남긴 뒤 급히 전화를 끊는 혜성의 목
소리에서 민우는 긴 여운을 느꼈다. 무슨할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가 조용한걸 보니 실내는
분명했으며 심각한 일이 있는 듯 목소리는 착찹하기만 했다. 혹시...에릭을 닮은 그와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 약간의 의심을 해본다...
"선배."
"일찍도 오는군..."
민우의 상념을 깨버리는 목소리가 저쪽 현관쪽에서 들려오자 민우는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이 다가왔고 둘은 얼른
종업원을 밀어내야 겠다는 생각에 입에서 나오는대로 주문을 했다.
잠시 선호가 침묵을 지키자 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혜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어? 아까 전화로 물어보니까 안가르쳐 주던데."
"그래요...? 혜성선배...그 사람 데리고 갔어요."
"무슨...말이야? 데리고 가다니??"
"제가 병원으로 가다가 모르고 그를 차에 치었는데...혜성선배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그를 차에 태우
고 급히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근데...가도록 내버려뒀니?"
갈수록 심각해지는 말들에, 주위 분위기마저 침체됨을 느꼈다. 어차피 분위기는 조용하고 발라드만
낮게 깔리는 터라 무덤덤한 사람이라면 못 느낄테지만 이미 혜성의 일로 신경이 곤두서버린 민우
는 모든 것이 다 느껴지는 듯 했다.
선호의 저 표정마저도...
"막을수가 없었어요. 선배는...그런거 못느꼈나요?"
"...?"
"그 사람을 차로 받아버린 이유가...전...머리가 어지러운 상태라 그가 에릭형인줄 알았어요. 나를 저
승으로 데려갈려고 한다는 착각에 그를 받아버렸고...느껴지는건 사람의 찢어진 살덩이였죠.."
"그말의 의미는...?"
"혜성선배는 오죽할까요...? 그래서 전..."
"됐어!"
선호의 얘기를 주의깊게 듣던 민우는 선호가 채 얘기를 끝맺기도 전에 막아버렸다. 이야기의 접속
관계로 보아 그를 이해하겠다는 뜻이겠지...
차라리 막아서라도 듣기싫었다. 이렇게 안듣는다고 해서 사실이 거짓이 될리는 만무하지만 일단은
피하고 싶은 현실에 잠깐 이기적이어본다.
"내일 임시회의가 있어요. 선배도 나오세요."
"어....그래..."
선호는 갈생각인지 그에게 스케쥴을 건네고는 그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민우는 아무말 없었다. 투
명한 유리잔에 담긴 커피가 조금씩 그의 입술에 스며든다. 그의 내리깐 눈에서 약간의 여운이 비치
는 것 같다.
"먼저 갈게요."
"왜, 조금 더 있다 가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그래...그럼 토요일에 보자."
민우가 일어서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선호는 자신의 핸드폰과 지갑을 들고 민우에게서 등을 돌
리고 출입문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추었다. 그의 그런 뒷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민
우는 잔뜩 긴장하며 그를 계속 쳐다보았다. 예상대로, 선호는 남은 할말이 있는 듯 뒤 돌아서서 민
우에게 한마디만 하고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선배가 아무리 그래도 혜성선배는 꿈쩍도 안할거예요...제가 장담해요."
-first love...9-
"답답하죠?"
그의 점심상을 치워둔 후 혜성이 그의 상처를 돌봐주며 물어왔다. 정혁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는 혜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어본건 혜성이었지만 그는 정혁의 상처에만 몰두
하며 그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상처에 약을 다시 바른 뒤 혜성은 붕대를 감아두고서야 정혁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에게 계속 도움
을 받자니 미안하고 답답했다. 그 답답함이란, 받기만 하고 줄순 없다는 사실에 답답했고 계속 이
렇게 집에만 있자니 답답했다. 그렇다고 나갈수도 없는 노릇...혜성이 명색이 의사인 만큼 산책을
허가해줄때까지는 계속 침대에서만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정혁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혜성
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상처가 빨리 아물고 있어요. 내일쯤이면 걸어도 될듯해요."
혜성이 살짝 웃어보인다. 정혁은 계속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이런 자신도 답답하게 느껴졌
다. 누가보면 불만있어서 말을 안하는 사람처럼, 정혁은 지금 그런 모습이었다. 혜성에게 불편하게
보일까봐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 근처에 공원이 하나 있어요. 잔디가 깔려져서 호수도 있고...아침에 맨날 산책하곤
하는데 조금 일찍 나가보면 호수에 물안개가 져 있어요. 아침햇살이 그 안개를 비추면 한폭의 그림
같아요. 오후때쯤 나가면 오리가 놀고 있어요. 아주 귀여워요. 사람을 안무서워 하거든요. 먹이를
주면 잘 받아먹구...내일 같이 나가보실래요? 안보면 후회할걸요?"
"고마워요."
"...?"
"저는 아무것도 해주는게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혜성씨는 그렇게 친절하게 해주니까..."
"뭘 바라고서 이러는건 아니지만...저게 바라는게 있긴 한데...들어주실래요?"
"네?"
혜성이 수줍게 웃으면서 그에게 말해오자 정혁은 잠깐 궁금한 듯 그에게 되물어왔다. 혜성은 잠시
액자속의 에릭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정혁과 눈을 맞추어왔다. 그의 눈빛은 그가 말한 공원의
호수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비치면 그건 물안개일 것이다. 햇빛이 비치면 안개
도 점점 사그러져 가듯이, 정혁은 그에게 햇빛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저기 액자...잠깐만 봐주실래요?"
혜성이 손으로 액자를 주시하자 정혁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그의 손가
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몸의 각도도 약간 틀어 그가 가르키고 있는 액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곳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한 사람이 자신의 앞에 있는 혜성과 부드럽게 포옹을 하며 카메라를 주시하
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날의 한 장의 추억이었다. 그 사진에서 눈을 떼는 순간 혜성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가에 대해 약간의 감이 잡히는 듯 했다.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 사람이랑 정혁씨랑요...저 사람은 제 애인이예요. 3년전에
한국으로 입국하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어요...전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었죠. 죽기전에 그는 아무말
없이 내 손만 꼭 잡고 있었어요.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어 상태는 심각해 그는 말도 못했죠. 비록
그의 작은 행동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다 알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곧 제 마음이었고요...그렇게
3년이 흘렀어요. 그를 잊을때쯤 되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아있는데
당신이 나타난거예요. 그 사람을 안으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전 제 애인을 보내던 순간이 기
억나 울었어요...결국은 당신도 그 사람을 보내고 자살로 행동을 옮기셨죠. 제가 갔을 때 이미 당신
은 차에 치여 있었지만...살아있다는것에 감사했어요. 그가 또 내 앞에서 죽어간다면 저 또한 살기
힘들 것 같아서요...그래서 생각했죠. 당신을 목숨을 걸어서라도 살리겠다고...나중엔 아무일도 없었
다는 듯이 내곁을 떠날게 분명하지만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신과 같은 하늘아래 산다
면...그것또한 행복이겠죠...제가 너무 말이 길었나요?"
"아, 아니예요. 그런 일이 있었는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전 정혁씨가 살아줬으면 해요. 정혁씨와 그가 닮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하는 제가 미워보이
실수도 있겠지만...정혁씨가 죽으려 하는 오늘은...그가 너무나도 살고 싶었던 내일이니까요...! 그러
니까...꼭 살겠다고 약속해주세요."
혜성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져 오는 것 같았다. 정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혜성의 눈에 시린 안
개를 걷어내주었다. 햇빛에 혜성은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그런 혜성의 미소에 정혁은 다시한번 미소지었다.
이렇게 편한 기분...정말 오랜만이다. 진이가 죽고나면 정말 세상은 허무하고 비참할줄 알았다. 그런
데...이렇게 갑자기 혜성이가 나타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준다며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자 그
배려에 고마울 뿐이었다.
그래...세상은 혜성이 말한것처럼 그렇게 살기싫은 곳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혜성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솨아아....솨아아....
혜성이가 틀어놓은 샤워기 소리가 욕실을 울려대고 있었다. 굳게 닫힌 욕실 문과 어두운 거실 사이
는 천지차이이다. 욕실에서 새어나온 빛이 거실을 희미하게 비추어주고 있었다. 정혁은 그 조명빛
에, 창가에 내려져 있는 어두움에 깊은 밤인걸 알아차렸다. 이렇게 벌써 밤이 되다니...그와 이야기
하느라 하루종일 웃으며 그와 마주하고 있었다. 상처와 진이를 잃은 슬픔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꼈다. 그는 정말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같다.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
한 저 사람....액자속의 그는 나와 외모는 닮았지만 그가 살고간 세상과 내가 살고간 세상은 욕실과
거실처럼 천지차이이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나보다는 행복하게 살고 갔을 것이다. 혜성의 배려와
미소에 젖어...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살다 그런 그들이 부러워 하늘은 혜성의 애인을 거두어 간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혜성의 의지는 대단하다. 하늘의 뜻이지만 다시 하늘이 자신에게 그를 내려줄 것
을 믿고 그의 사랑을 지켜가며 혼자 살아온 것이다. 난 지금 이순간, 이렇게 생각한다. 하늘이 내게
서 진이를 앗아간 것은, 나를 혜성에게 보내려 하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지금 똑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만난
것이다. 그렇지만 같이 있으니 반쪽은 하나가 되어버림을 느낀다. 혜성이도 그걸 느끼고 있는건 아
닐까...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일찍 주무세요. 그래야 내일 일찍 산책을 나갈수 있어요."
어느새 샤워를 마쳤는지 혜성이 머리에 물기를 가득 머금곤 정혁의 앞에 앉아 있었다. 어설프게 걸
친 그의 윗도리 사이로 그의 영혼만큼이나 순수한 그의 피부가 보인다. 그리고 난 또 오늘밤 그의
손길에 잠이 든다...
-first love...10-
방에 불을 끈 후 혜성은 거실에 은은한 조명을 켜 두었다. 그리곤 씨디 케이스에서 발라드 앨범을
꺼낸 뒤 정혁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정도로 작은 볼륨으로 살짝 틀어두었다. 반쯤 쳐져있는 커튼 사
이로 밤하늘이 보인다.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이라 하늘과 너무나도 가깝다. 별빛도 내 머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혜성은 서랍장 문을 열어 그곳에 검은실뭉치와 덜 짜여진 옷감을 꺼낸 후 푹신한 쇼파에 앉았다.
검은색 실뭉치를 알맞게 풀어둔 뒤 덜 짜여진 옷감에 분주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뜨개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 위해 짜기 시작한 옷인데 그가 죽어 한동안
중단하고 있다가 밤마다 조금씩 짜왔다. 그를 잊기 싫어하는 혜성의 작은 작업이라 해도 될 듯...
유난히 검은 니트가 잘 어울리는 에릭이었다. 피부가 검은 편이여서 항상 검은옷은 안 어울린다고
핀잔을 주곤 했지만 흰 셔츠위에는 정말 잘 어울렸다. 그리고 따뜻하기 때문에 에릭이 자주 입고
다니곤 했었다. 그때 혜성은 느꼈다. 그가 좋아하는 니트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짜주기로...서툴지만
뜨개질도 천천히 배워 나름대로 지금까지 짜온 것이다. 이게 다 되면 지금에서야 크리스마스때 그
에게 보낼 예정이다.
To..에릭...주소 : 하늘 구름시...
늦게 보내서 미안하다고는 사과편지와 함께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랑표현도 좀 넣어서 보내면 이
쁠 것 같았다. 겨울이 되면 하늘도 분명 시릴 것이다. 하늘은 그 시린 추위를 덜기 위해 지상에 눈
을 뿌리는게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래...하늘은 추울거야. 더군다나 에릭 니가 혼자 있기엔 너무...
힘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나마...자신의 정성을 보내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뜨개질을 계속
하고 있다. 거의 완성단계였다. 조금만 더 짜면 완성될게 분명하기에 혜성은 오늘밤 이것을 꼭 완
성시키리라 마음먹었다.
피곤함따윈 싹 잊은채...사랑하는 에릭을 떠올리며...
"눈을 감으면...꿈속으로 와...잠시도 떨어지기 싫거든...아침이 오면 달려갈거야...비오는 그런 날이라
도..."
CDP에 조용히 흘러나오는 노래가사를 조금씩 따라해보았다.
무의식 중이지만 따라하는 자신을 느끼곤 놀라 잠시 멍해 있다가 다시 흥얼거리기를 반복했다. 아
름다운 내 first love...내 얘기 같다. 노래가사가...
"왜 안받지??"
선호는 몇번이고 혜성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절대 받지 않았다. 집 전화번호는 절대 가르쳐 주
지않은 혜성이라, 핸드폰으로 계속 같은 번호를 반복해 눌렀지만 전혀 받지를 않았다. 내일 아침에
회의가 있기 때문에 혜성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려야 하지만 그가 도통 받질 않으니 알릴 길이 없
었다.
그렇다고 안 알릴수도 없는 노릇...
"문자라도 넣을까...?"
선호는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꺼놓았을게 분명하니 예언가가 아닌이상 그가
켜놓을때를 기다려 전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확실하게 문자로 날리면 그가 핸드폰을 켜
는 동시에 받아보겠지....
[내일 아침 7시 병원 8층 회의실. 긴급회의 있음]
-탁...
핸드폰을 닫는 소리가 빈 공간에 너무나도 크게 들린다. 어차피 한국에서 혼자 살아왔지만 오늘따
라 너무 외로웠다.
선호는 침대에서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장식장 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를 손으로 집어들어보았
다. 에릭과 자신이 미국에서 살던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환하게 웃는 에릭의 모습...
미안할 뿐이다.
"형..."
목이 메어와 목소리마저 막히지만 그의 이름을 다시한번 불러본다.
"에릭형..."
사진속의 그는 웃고만 있을뿐 대답이 없다. 오늘따라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에릭형 아직도 혜성형 사랑해...?"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물으면 언제나 에릭은 크게 대답하겠지...사랑
한다고....
형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혜성에게도 미안하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를...혜성이 다른사람에게 눈돌리
지 못할 조건으로 내다는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래도 항상 자신에게 웃고있는 사진속의 에릭....
형의 마음이란 태평양 푸른바다에 버금갈 것이다...
너무 넓은 바다라 미국에서 건너가다 지친 비행기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죽어버린 에릭형...
"형...혜성형 말야...내가 보기엔 형과 닮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아. 나마저도 착각할 정도였어...
처음엔 막고 싶었어...혜성형은 오직 형만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했어. 한마디로...혜성형이 형 버릴까
봐 겁났어...혼자 외로울텐데...혜성형 마저도 형 버리면...우리형 어떻게 살라고...!! 그렇지만...이젠 그
사람에게 보내주자...세상에 혼자 남은 혜성형...그동안 잘 참아왔어. 형 보고싶지만 잘 참아왔어. 그
러니 이제 그 사람에게 혜성형 보내주자. 형도 혜성형 행복한걸 바랄테니까..."
혼자 말하는 선호는 더 이상 목이 메어와 말을 잇지 못했다.
액자가 떨어지고 선호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끝내 울음은 터지고야 말았다. 항상 어리다고 놀
려대는 에릭에게 다 컸다고 대들곤 하는데 아직 자신은 어린애인가보다...이렇게 우는걸 보면...!!
아직도 어린애 티를 못 벗어난 것이다...
꼭 의사가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움직일수 없을만큼 다친 에릭이 결국 아픔에 죽어간걸 보며 의학의 실태를 알았다. 아직은 많이 멀
었다는걸...다시는 에릭같이 죽는 사람이 없기를...그런 그들을 고쳐주기 위해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
었다.
그게...죽은 친형에 대한 남아있는 혈애일테니까...
-first love...11-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래소리가 잠을 깨워온다. 비록 작은 소리지만 잠이 깨어 신경이 예민한 상태
라 뚜렷이 들려왔다. 뭔지...그리고 혜성이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서 약간의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리 아프지는 않고 걷는데 지장은 없기에 서서히 발을 디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실로 나아가니 희미한 조명이 켜져있고 CDP에선 발라드가 잔잔히 흐
르고 있었다. 혜성이는...?
쇼파에 쓰러지듯 누워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혜성이었다. 잠을 자는 듯 새근새근 숨소리도 내며
뭐가 그리 중요한지 옷을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그런데...그 옷에 검은실과 뜨게바늘이 있는걸로
보아 뜨개질을 한 것 같았다. 그럼, 뜨개질을 하다가 잠든것인가...
잠시동안 넋이 나가 그가 짠 옷을 집어들어 보았다. 보기좋은 옷은 촉감까지 좋았다. 검은색 니트
였다. 깔끔하고, 손에 닿는 느낌이 따뜻했다. 마치 혜성의 체온과 정성이 전달된듯...갈수록 드러나
는 그의 아이자기한 손재주에 정혁은 놀라울 뿐이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면...완벽했을...
정혁은 그가 안고 있던 옷감과 실뭉치를 바닥에 내려두고 누워있는 그를 양팔로 안아들었다. 생각
보다 가벼운 그의 체중과 가깝게 느껴지는 그의 숨결과 향기...그리고 부드러운 피부빛...
마치 신혼부부 중 남편이 부인을 침대로 옮기는 포즈 같아 쑥스러웠지만 쇼파에 쓰러져 자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가만히 두고 볼수만은 없었다.
그를 안고 안방으로 가 그를 옆에 눕혔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옮겨진 것을 느낀건지 아님 침대의
폭신한 느낌을 받은건지 그는 잠깐 몸을 움찔한다.
정혁은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다시 거실로 가 CDP를 끄고 불고 끄고는 더듬더듬하며 안방으
로 돌아왔다. 그리곤 혜성이 누운 옆자리에, 그가 깨지 않게 살짝 눕고 그와 한이불을 덮었다. 그때
갑자기 그가 기다린 듯이 손을 뻗어 정혁을 안고는 속삭였다.
"사랑해..."
순간 들려온 부드러운 고백에 정혁은 놀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계속 자고 있었
다. 까만 속눈썹을 드리운채...
잠꼬대를 한 것 같다. 아마도...꿈에서 애인을 만나나보다.
에릭이 양팔을 벌려 자신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혜성은 그의 품에 안겨 떨어질줄 몰랐다. 오늘따
라 유난히 그의 피부감촉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살짝 미소짓는 그의 입술까지...헤어지기 싫
어, 떨어지기 싫어, 너와 함께 있을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도 혜성의 마음을 알아
챈 듯 더욱 안아온다. 행복했다...
꿈에 자주 찾아와 줬음 좋겠어. 너무도 보고 싶단 말야...
언제나 부려보던 앙탈도 오랜만에 부려보며 그의 미소를 빤히 바라본다. 그런 그의 모습 하나하나
잊지 않고 놓치지 않기 위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랑해...
밝은 빛이 눈가를 간지럽힌다. 스르르...천천히 눈을 떠본 혜성은 눈앞에 어떤 물체가 있자 놀라 눈
을 크게 떴다. 자신을 안고 있는 구리빛의 사람...
아...정혁이다....
자신을 안고 있는 게 정혁임을 안 혜성은 꿈속에서 에릭을 보던것처럼 그를 계속 멍하니 쳐다보았
다. 어쩌면 정혁이 안아줬던 감촉 덕분에 꿈에서 에릭의 감촉이 더 생생한건지도 몰라. 그런데 내
가 왜 여기서 자고 있는것일까....
분명 다리다친 정혁이 옮겨두었을리는 만무한데...잠꼬대하면서 침대에 기어들어온건가? 흑...민망하
다.
혜성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있기가 민망해 자신을 안고 있는 그의 팔을 조심스레 풀고는 침대에서
조심스레 일어났다. 그리곤 거실로 나갔다. 어제 상황과 다 다르다. 불도 꺼져 있고 음악도 꺼져있
다. 그리고..어제 밤에 짜고 있던 니트...쇼파 앞에 고이 놓여져 있었다. 혜성은 바늘을 빼내고 매듭
을 지은 후 털실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니트는 조심스럽게 개서 서랍안에 넣어두었다. 오늘 상자에
넣어서 보낼 준비를 해야겠다.
-촤아악!!
가뿐한 마음으로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밝은 아침햇살이 한가득 자신을 비춰온다. 발코니 문을 열
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은 조금 이른시간...출근길이 막힐 걸 대비하서 일찍 나서는 회사원들이
보인다.
참...나도 깜빡 잊고 있었다. 정혁과 함께 산책을 나가기로 했는데...
정혁을 깨우기 위해 안방으로 걸어가던 혜성은 방에서 나오던 정혁과 가볍게 부딪혔다.
"엇...일어나셨네요?"
"어...혜성씨...잘 주무셨어요? 어제 거실에서 자길래 제가 옮겨두었는데..."
"아...그래요? 죄송해요. 다리는 괜찮아요? 걸어도?"
"혜성씨 덕분에 많이 나았어요. 고마워요."
"훗...아니예요. 산책..나가실래요?"
"혜성이한테 연락 해봤어? 난 해보니까 안받던데??"
"저도 그래요. 혜성선배는 핸드폰만 갖고 다니잖아요..."
"어떡하지, 오늘 회의있는데..."
회의실....조금 일찍 도착한 민우와 선호는 혜성이 나타나지않자 조금 걱정스레 그를 기다리고 있었
다. 중요한 회의였다. 병원 재가동 하느냐 아니면 계속 파업을 하느냐...환자들은 이 병원 이사장이
독한 사람이라는걸 알았는지 국립병원으로 이미 이송을 마친 상태고 그래도 이 병원 문을 두드리
는 사람들이 많아 회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병원이 이대로 나간다 해서 좋을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걱정하고 있던 사이 이사장이 근엄한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서고 곧 회의는 시작되었다. 각 진료과
를 맡은 의사들은 다 모여야 하는데...
"소아과 전문의 신혜성씨는 안오셨습니까?"
"연락이...안되고 있습니다."
동완의 말에 민우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자 동완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완벽주의자라 그사람
장단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건 아니지만 그만큼 대가는 충분히 주고 환자도 완벽하게 처리할 것을
항상 당부하기에 동완을 그리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일수도 없는 노릇. 민우는 고개를 숙인채 들줄
을 몰랐다. 마치,지지 못한 책임감처럼...
"제조실에 약이 소량씩 없어진것에 대한 이유를 아십니까? 지금 병원은 파업중이라 필요한곳이 없
는데 사라지다니. 이건 내부소행일게 분명합니다. 누군지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히시죠..."
동완이 의사들의 얼굴을 싹 훑어며 말했다. 순간 선호는 찝히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 없으며, 여기 없는걸 동완이 안다면 그도 그를 의심할테지...
-first love...12-
"기분 어때요?"
공원에 도착한 후 혜성이 정혁에게 물어왔다. 상쾌한 아침바람이 주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공원도
활기가 넘쳐보였다. 산책하는 연인들...조깅하는 부부...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나온 어린아이
들...모두 자연을 느끼러 온 듯 자신의 짝과 함께 공원을 찾은 것 같았다. 혜성은 정혁이 다리 아픈
것을 생각해서 호수와 가장 가까운 벤치에 그를 안내하며 앉을 것을 권유했다.
정혁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맨날 집에만, 그것도 침대에 신세를 지고 있다가 이렇게 움직이게 되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공기도 좋으니...
"여기에 이렇게 있으니까...시조가 한수 떠오르네요."
"훗...그래요? 읊어주세요."
정혁의 말에 혜성이 살짝 웃으며 그가 읊을 시조를 기다렸다. 시도 아닌 시조라...왠지 고리타분한
면이 없잖아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시조는 한을 잘 표현한게 많으니 아무래도 자신에게 맺힌 한...그 정한을 비유하여 나타내
려는게 아닐까...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호수 물은 아이들이 던진 돌로 약간의 파동으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귀로는 정혁의 시조를 들으며 눈으로는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동감이예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내보내 마음아파한다는걸...
그런데 우린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주며 서로에게 힘이 될 수는 없는걸까요...?
벌써 정해진 이별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 혜성은 약간의 슬픔이 밀려오는걸 느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으리...
호수에 돌을 던지던 어린애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별은 이런 사소한 곳에
서도 언제나 흔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 신경을 안쓰고 살아도 무관할런지는 모르
지만 나는 다르다...
그를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거, 그를 만날때부터, 아니...그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고 할 때부터
난 그와의 이별을 각오했어야 했다. 이제 이별이 점점 앞으로 크게 다가오는걸 느끼고서야 먹는 마
음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난 그를 보내고 난 후에 내가 느낄 슬픔의 크기를 안다.
그는 어떨까...나를 떠나고 다시 예전처럼 살수 있을것인가...아니었으면 좋겠다...그도 나를 그리워
했으면 좋겠다. 퇴근길 밀리는 도로위에서 근처에 병원만 보아도 나를 생각할...꽃집에 팔려고 내놓
은 이슬을 잔뜩 머금은 백합을 보고도 나를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만남을 가졌던 것일까...
어두운 밤 하늘에 떠있는 별을 세어보며 그 별 수만큼 상대방을 그리워할수 있는...
아침 이른 시간 나간 산책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상대방을 떠올릴수 있는...
과연 우린 그런 아름다운 만남을 가졌던 것일까...
언제든지 이별은 있기 마련이다.
단지 시간차이일 뿐이다.
우린 그 시간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해놓곤 한다.
사랑은 영원할거라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사랑도 죽음과 함께 세상에 이별을 고하는 순간 사랑도 지나가는 바람결에 스치워 지
워지고 만다.
하지만 난 영원할 자신이 있다.
이미 영혼의 밑바닥부터 그를 그리워하며 오직 그를 위해 채워나가던 내 사랑이기에...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내 뼛속 깊이...결코 살처럼 썩어 없어지지 않을 정신적인 사랑에 이미 우리
의 사랑은 영원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걸을까요?"
언제 일어났는지 정혁이 혜성의 앞에 서서 그에게 따스하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런...환자에게
일으킴 당하다니...혜성은 그렇게 넋놓고 있었던 자신을 질책하며 정혁의 손을 맞잡았다. 정혁의 걸
음걸이는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저 그가 그렇게 걷는걸 그저 두고볼수만은 없어 혜성은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가
자신에게 기대 주길 바랬다.
정혁은 놀란 듯 혜성을 잠깐 쳐다보았다. 혜성은 살며시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상처가 무릎 관절쪽에 났기 때문에 자칫 잘못 걸으면 상처가 덧날
수도 있어요."
"그런가요?"
"천천히 걸어요. 누가 뒤에 쫓아오는것도 아닌데..."
"그냥....걷고 싶어요. 그동안 밖에 너무 그리웠어요. 하긴 밖에 있을땐 집이 너무도 그리웠는데...사
람은 이래서 이기적인가봐요?"
정혁이 웃으며 말했다. 혜성은 그의 발걸음 속도를 늦추게 하겠다는 듯 약간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정혁과 함께 걸었다. 정혁도 점점 발걸음을 늦추어 혜성과 함께 편안히 아침산책을 했다. 저기 건
너편에 대형 마트가 보이자 혜성이 말했다.
"배고프죠? 아직 아침도 안먹었잖아요. 참....제가 산책 일찍 끝내고 아침 먹자고 말할려고 했는데...
어떡하죠? 우리 같이 쇼핑 갈래요?"
"별로 배는 안고프지만...좋아요."
어느새 연인사이가 된듯이...애교도 떠는 혜성과 그의 마음을 이미 다 안다는 듯 박자를 맞추어 주
는 정혁의 모습은 이미 사랑에 빠진 듯 하다.
서로를 이해해 준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보며 밝게 웃을수 있다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first love...13-
"결론은 부분진료를 하자는 거죠..."
"아니죠, 차라리 병원을 다 여는게 낫겠죠. 괜히 환자들이 모르고 왔다가 헛걸음이라도 치면 파업
전과 후가 다를게 없잖습니까...?"
"아직은 단정지을 문제 같진 않군요. 소아과만 제외하고 열기로 합의합시다."
혜성이 참석하지 못한 회의는 그렇게 그를 외톨이로 만들어 버렸다. 민우는 아쉬웠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혜성은 지금 치료하고 있는 그사람 때문에 당분간의 진료를 포기할수 있는 상
황을 배제해서는 안되며, 동완도 본인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확신할수 없는 사실이라며 그렇게
결정내리고 말았다.
혜성이 알면 슬퍼할 것이다. 지금 연락도 안되고 찾아간다해도 혹시나 그를 뺏어갈까봐 상대조차
하지 않을게 분명하기에 뭐라 그에게 어떻게 전할수도 없었다.
"혜성인...애기들 치료하는걸 상당히 좋아했어..."
병원을 나서면서 민우가 말했다. 선호는 그저 옆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민우의 말 끝에 묻어나는 여운도 자신의 마음과 같기에 선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었다.
"하루는 말야...어떤 애기가 독감이 걸린거야. 주사를 상당히 자주 맞았어. 애기는 울고...그때 혜성이
도 진료가 마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그 애기와 함께 있었어. 간호사에게도 주사 안
아프게 놔라고 신신 당부하고...근데...주사는 안아프게 놓고 싶다고 안아파 지는건 아니잖아. 워낙
감정이 없는 물체라...아기는 주사를 맞고 울었어. 혜성이도 같이...울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그
렇게 아파할거면 진료 중지해라...] 그랬지만 혜성이는 해야된대. 그래도 애기들이 다 나아가지고 웃
는걸 보면 자신도 웃게 된대...그리고 그 애기가 다 나았어. 퇴원하던날 혜성이는 그 애기 볼에 뽀
뽀해줬거든. 애기는 웃었어. 혜성이도 같이 웃고...그때 느꼈어. 이 세상이 아무리 더럽다 해도 혜성
이만큼은 깨끗하다고...혜성이는...그런 사람이야...그래서...난....그를 사랑해...."
먼곳을 바라보는 민우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민우의 말은, 앞에 긴 수작을 늘어놓고 선호에게 혜성이를 사랑할 기회를 달라는 구차한 뜻같기도
하지만 선호는 그런 민우의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는 혜성의 모습보다 그의 미소와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어쩌면 혜성이 애초부터 민우를 알
았더라면 지금만큼 우울한 모습을 보는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에릭이 죽지만 않았다면...
"사랑하세요...혜성선배 사랑받아야 마땅할 사람이예요. 그에겐 버림받는다는 건 안어울려요. 사랑받
고...그 사랑에 미소지어야 진정한 혜성선배인거죠..."
"그래...?"
"하지만 끝까지 사랑할 자신 있다면...에릭형처럼...그렇게 무책임하게 혜성형 혼자 두고 떠나지만 않
는다면..."
선호의 말 끝이 울먹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그래...선호 말대로 에릭은 나쁜자식이다. 이 모든걸 다 내팽개쳐 두고 혼자 떠나버린 나쁜자식...결
코 자신을 찾아올수 없게 아주 멀리....멀리 떠나버린 나쁜자식...
"어디가...?"
갑자기 선호가 일어서자 민우가 그를 쳐다보며 물어왔다. 선호는 아무말 없이 발걸음을 병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무슨일일까...
그를 비추고 있는 햇살로 인해 만들어진 그의 검은 그림자가 너무나도 애처로워서 민우는 그에게
눈을 뗄수 없었다..
"양파...감자...당근...피망...계란...햄...맛살...옥수수!"
"케찹은?"
"집에 있어!"
어느새 쇼핑하며 친해졌는지 반말을 쓰며 둘은 웃어댔다.
뭐 만들어 먹을까라는 혜성의 제의에 정혁이 볶음밥을 먹고 싶다고 하자 재료를 사는 것이었다. 그
리고 재료를 사는사이 말을 트게 됐고 이젠 그게 편한지, 언제 존댓말을 썼냐는 듯 반말을 쓰기 시
작한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걸신들린 사람처럼 둘은 냅다 달리기 경주를 하듯 먼저 주방으로 뛰기 시작했
다. 사온 재료들을 잘 골라 낸 후 맨 나중에 조리할 계란과 통조림 처리되어있는 옥수수를 제외하
고는 모두 도마위에 올려졌다. 날카로운 식칼을 꺼내고선 혜성은 씨익 웃었다. 정혁도 따라 꺼내들
고는 껍질을 까고 썰기 시작했다.
"잘게 썰어야 해. 쌀알크기정도. 크게 썰면 그건 카레감이거든?"
"아...그래??"
정혁은 혜성의 말에 부끄러운 듯 웃더니 이내 곧 잘게 썰기 시작했다. 혜성은 숙련된 기술로 재료
를 다듬기 시작했다. 정말 많이 해본 솜씨라 속력에 맵시까지 붙어 어느새 재료는 잘게 썰어진채
그릇에 담겨졌다.
"다 썰어가?"
"응, 조금만 기다려"
야구모자를 거꾸로 쓰고 빨간 키티 앞치마를 매고 당근을 썰고 있는 그의 모습이란...! 처음 볼땐
참 무뚝뚝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그가 참 귀여워 보여 혜성은 그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가득 띄
었다.
"앗!!!"
그때 정혁의 짧은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리고 혜성은 후라이팬을 가열하다가 놀라 그에게 다가왔다.
잘 썰어지지 않는 당근에 힘을 주어 썰려고 그랬는지, 당근엔 약간의 피가 배어나 있었고 그의 엄
지 손가락이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괜찮아? 조심하지...!!!"
혜성은 놀란 듯 얼른 정혁의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정혁은 아프다고 부산을 떨다가 이내 혜성의 행동에 놀라 가만히 혜성을 지켜보았다. 그리 생소한
행동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릴적 상처가 나면 잘하던 행동을, 혜성이 대신 그의 상처를 물고 있어
잠깐 놀란 것 뿐이었다.
"기다려봐, 밴드 가져올게!"
그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혜성은 거실 장식장 문을 열고 약상자를 꺼내었다. 처음엔 밋밋한
살색 밴드를 꺼내었다가 키티 앞치마가 생각나 하얀 바탕에 키티 그림이 그려진 밴드를 꺼내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디보자..."
혜성은 능숙한 솜씨로 정혁의 엄지 손가락에 밴드를 발라주었다. 그런 그의 행동이 마치 엄마같고,
또 그의 손체온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first love...14-
-따닥 따닥...
그때 그 둘 분위기를 시샘하듯 후라이팬이 떽떽거리자 혜성은 뒤를 돌아봤고, 불이 최대한 올려진
채 가열되다 못해 식용유가 팔딱팔딱 뛰고 있는 후라이팬을 발견하고는 정혁을 쳐다보며 반 울상
이 되어 말했다.
"내정신 좀 봐~~~~"
혜성은 얼른 불부터 낮춘 후에 감자를 넣고 볶기 시작했다. 정혁은 방금 본 혜성의 표정이 너무나
도 귀여워 멍하니 그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가 혜성이 쳐다보자 놀란 듯 잠시 움찔했다.
"저기서 쉬고 있어. 다친데 더 다치면 어떡해."
"그래도 너 힘들잖아."
"괜찮아. 우선 니가 빨리 나아야해."
혜성이 또 웃는다...언제나 미소를 가지고 사는 사람같다. 다른사람을 언제나 편하게 만들어주는 저
미소...정혁은 그 미소 덕분에 식탁에 앉아 감자를 볶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행복인지 모른다..
설령 사랑하는 사이이긴 했지만 진이와는 이런 편안함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진이는 항상 1:1 동등분배를 주장해왔다. 그래서 둘은 항상 밥을 먹을때도 쉴틈없이 같이 요리를
해댔고, 그 습관이 몸에 배여 혜성과 같이 주방에 들어선것이었다. 물론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이
렇게 서툰 칼질로 다쳤을 때 진이는 얼만큼 나를 배려해주었던가...
지금 이순간 모든 것이 꿈만같다. 깰까봐 겁날 정도로...지금 나와 같이 있는건 천사 혜성이다. 아픈
나를 생각해 기다리라고 한 후 자신이 볶음밥을 만드는....그런 그의 얼굴엔 싫은 기색이 없다. 항상
미소를 띄고 있다.
저 미소...내가 갖고 싶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든 생각에 정혁은 놀라 얼굴이 잠시 벌개졌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혜성이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더워? 하긴 계속 가스렌지 불 올리고 있었으니까..."
말을 마친 후 혜성은 주방 뒷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바람이 시원하다.
"고마워..."
"응?"
"계속 나를 걱정해줘서 고마워."
"훗..."
어느새 볶음밥이 완성됐는지 혜성은 볶음 밥 위에 계란도 씌우고 케찹도 뿌린 뒤 칼로 계란 위에
♡를 그어놓은 뒤 정혁 앞에 그릇을 놓아두고는 옆에 숟가락도 놓아두었다. 그런 후 자신의 볶음
밥도 갖다 둔 뒤에 정혁에게 말했다.
"맛없다고 구박하면 안돼!!"
혜성의 말에 정혁이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다 한숟갈 떠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부드
러운 맛이 온 입안을 휘저어 놓는다.
이게 맛없는거야??
한편으론 허탈하고 한편으론 그의 애교섞인 말이 귀여워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나 귀엽다 신혜성...
"이게 뭐하는...아니, 레지던트 이선호씨..."
"이사...장..님..."
선호는 순간 나타난 동완에게 놀랐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나오는 길에 만나버렸으니...
동완은 그의 손에 들린 약품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번에 약품실 사건이 당신의 짓입니까?"
"............"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아니라고 하기엔 손에 들린 약품들이 증거로 잡혀 있었고, 전에 혜성이 빼
내가던 약품의 개수와 거의 엇비슷하게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선호가 계속 말을 안하자 동완은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 이선호군 이런 사람인줄 몰랐는데 참 실망이군요."
"이사장님!!!"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 동완과 선호, 두사람은 그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민우가 저 멀리서 달
려온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화난 동완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호
를 번갈아 보다가 선호가 들고 있는 약품에 눈이 멈추었다.
약품을 빼가다가 걸린 것 같았다...
"제가 시켰습니다."
"이민우군...?"
"선호가 얼마나 약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해 약을 지시해서 갖고오라고 시켰습니다."
"민우선배...."
"그럼 다시 돌려놓게."
동완의 말에 선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민우는 그의 행동에서 그가 어디 꼭 쓸데가 있어 가져가
는 것을 직감하고는 동완에게 말했다.
"제 월급에서 약값을 차감해주십시오..."
"민..."
"제가 시킨거니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전에도 제 짓이니 제 월급에서 차감해주십시오."
민우는 말을 마친 뒤 미쳐 선호와 동완의 말을 듣지도 않고는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나버렸다.
선호는 그가 정말로 약을 갖고 사라질까봐 겁이 나 동완에게 얼른 인사를 하고는 그를 뒷따라 갔
다. 민우는 차에 약을 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선호가 달려오고 민우는 그에게 약을 내어주
며 말했다.
"누구에게 줄건지는 알아...."
"......?"
"그동안 너에게도 에릭에게도 미안한게 많았어. 물론 이걸로 갚아지는건 아니지만...그 사람이 너와
에릭에게 크게 연관되는 사람이기에 이러는거야. 빨리 가. 그사람 기다리겠어!"
민우는 얼른 선호를 그의 차에 밀어넣었다. 선호는 계속 민우를 쳐다보고 있다가 민우가 뒤 돌아서
서 먼저 차를 몰고 사라져 버리자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미안해서....너무나도 미안해서...
그동안 싫은 기색만 했었는데....민우선배는 이렇게....
-first love...15-
-띠리리리리리리~~~~~
막 사과를 깎아서 먹으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혜성은 포크를 놓고 정혁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핸
드폰이 놓여진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꺼놨었는데...아니던가...?
아침 이른 산책으로 정신이 없었던지 핸드폰을 껐는지 켰는지조차 알고 있지 못하던 혜성은 우선
전화부터 받았다.
"여보세요...?"
[혜성선배...]
"어...선호니?"
[선배, 지금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왜...?"
[오늘 아침에 병원에 임시회의 있었는데...선배 전화 안받고 뭐하셨어요?]
"뭐? 회의? 언제? 난 몰랐어. 전화...꺼놓고 있었지...참..."
[중요한 회의였는데...여튼 선배에게 할말 많으니까 지금 나오세요. **카페로 지금 나와요. 저 지금
거기예요.]
선호는 말을 다 한후 혜성의 대답을 미쳐 듣기도 전에 끊었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 당황해서라도
나오게끔 되어 있으니까...그리고 혜성은 안나올 사람도 아니니...
혜성은 전화를 끊고 정혁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 뒤로 돌아 거실로 나왔다. 정혁이 궁금한 듯 물어
왔다.
"무슨 전화야?"
"어....정혁아. 나 잠깐 좀 나갔다 올게."
"왜?"
"중요한 약속이 잡혀서..."
"그래, 빨리 갔다와."
정혁은 웃으며 일어났다. 혜성은 그를 보며 미안한 듯 미소짓다 얼른 차키와 핸드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정혁은 그가 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중요한 일인
지 모르겠지만, 그가 나가자 텅빈 거실 한켠에서 허전함이 밀려나온다. 웃기지...그랑 알게 된지 며
칠 됐다고 그가 없는 환경에 이렇게 낯설어 하다니...
중독...된건가...? 신혜성에게...?
밖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지만 선호는 별 지루함 같은건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 해야 할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또 미안했고...
그런 것들을 다 말해주고 싶었다. 되도록 이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선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때 맞은편에 누군가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선호는 직감적으로 고개를 들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오셨네요?"
"오래 기다렸어?"
"아뇨..."
선호는 잠시 웃으며 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혜성은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렇게 불러낸건 선호
이니 그에게 말만 들으면 될 것 같은데....그가 입을 열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선호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옆에 있는 비닐봉지에 담긴 물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혜성
은 놀라 선호를 의아한 듯이 쳐다보다가 그 봉지에 손을 뻗어 안에 물건을 꺼내보았다.
붕대...소독약...치료제...밴드... .... ....
병원에서 가져온것임을 알았다. 것도 전에서 자기가 가져왔던 약품들과 다 같은것들이었다. 선호는
혜성이 그 약품들을 하나하나 다 볼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다 본 듯 자신을 쳐다보자 그제서야
말을 꺼냈다.
"병원에서 가져온거예요. 그사람 치료 잘 해주세요. 그동안 정말 죄송했어요. 선배를 정말 많이 괴
롭게 한 것 같아요. 에릭형을 핑계로 얼마나 선배에게 틀에 갖힌 삶을 강요했는지...죄송해요. 그 사
람...에릭형과 정말 많이 닮았더군요...선배도 보는 시선이 아주 다르고..."
"그런거 아냐..."
"아뇨...전 알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에릭형의 피붙이인 제가 그사람을 에릭형으로 착각했는데 선배
인들 오죽했겠어요?"
"................."
"선배...."
"응?"
"그사람...놓치지 마세요..."
-풀썩....
선호의 말에 혜성이 쥐고 있던 붕대를 떨어트렸다. 선호는 그의 그런 행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계속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고, 그의 눈에 보이는건 자신의 눈을 피하려 하는 혜성의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이었다.
너무 갑작스레 꺼낸 얘기라 혜성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상황은 혜성이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었지만 평소 그렇게 해오던 내가 갑자기
그와 잘되길 바라는 말에서 놀랐던 것일 것이다.
"니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알고싶어.."
"그렇게 물어오실줄 알았어요."
"..............?"
"에릭형도 선배가 그러길 바랄거예요. 누구보다도 선배를 사랑했던 형이예요..제 말...이해하시겠어
요?"
선호의 말에 혜성은 역시나 대답이 없다. 원래 말수도 적긴 하지만...
선호는 오렌지 주스를 한모금 마신 뒤에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생각한 듯 그에게 말을
내뱉었다.
"그사람 놓치면 선배가 후회할 것 같아요...."
-first love...16-
선호가 나간 후에도 혜성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를 보낼것이라고
아침에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그 다짐도 선호의 말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왜, 선호가 신
도 아닌데...선호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자신과 정혁이 애인사이가 될 수 있는것도 아닌데 왜 이
렇게 선호의 말대로 하고 싶은지...그리고 그가 받아줄거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드는지...이런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어쩌면...그닮은 얼굴 때문에 그를 선호의 혈육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낳은 오류인지도 모른
다...
혜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호가 그를 치료해 줘라며 건네준 약품들...많은 양들이었다. 그
는 그렇게 많이 다치지 않았는데...내일쯤이면 그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게 분명한데...보내기 싫
다...그가 단지 에릭을 닮았기 때문에 보내기 싫은게 아니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의 모습이 좋아
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야할 것을 알기에 혜성은 그를 빨리 치료해주고 날려줘야 할 것 같았다.
차 옆좌석에 약품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위는 조금 막혔다.
혜성은 차에 음악을 틀어둔 뒤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대형 쇼핑몰이 눈에 띈다. 심
리적인 요인인가...들어가서 뭔가를 사고 싶었다. 그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에...보낼 그에게 줄 선
물...?
혜성은 우선 차를 돌려 쇼핑몰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걸...사야할 것 같았다.
니트를 넣을 예쁜 상자....
"잘한거야 이민우....이제 그를 지워버려....!!"
거리를 잠시 방황하다 집에 돌아온 민우는 이제까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모든 생각을 떨쳐 버리려
는 듯이 허공에 대고 크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고 지워지는 그가 아니라서 그런지 머리는 더욱더
아파왔다. 신경성 두통같았다.
민우는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려 누웠다. 왠지 모를 서글픔과 애수, 그리고 허전함이 밀려와 온통
머리를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들어 놓았으며 그 결실로 눈물을 떨구어내기 시작했다. 울지 않는다...
언제나 울지 않을거라 했다...그렇지만 나오는 눈물은 어찌할수 없었다.
사나이 태어나면 세 번 운다는거...그 세 번을 채울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민우는 엎드려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있는 한 사람의 사진을 내려 자신의 앞
에 두었다.
그 액자 위에 하나, 둘... 눈물방울이 서서히 떨구어진다.
[넌 안약이 필요없을거야, 가끔 우는거 눈 건강에도 좋거든? 근데 넌 좀 줄여야 겠어, 신혜성...!!]
[너 닮은 애기가 있다면 그건 천사겠지...? 그치, 혜성아?]
[입원실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었어. 주사를 맞아서 우는 애기가 아니었어. 아파서 우는 애기가 아니
었어...그런 애기를 보고 울고 있는 혜성이었어...]
그와 같은 병원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그런 그의 모습에 점점 빠져들어 그에게 분홍빛 마음을
품어왔던 자신...
이제 그 마음도 끝내야 할 시기인가보다.
그와 함께 있었던 추억이 하나하나 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좋았던 기억들이다....그로인해 순수함을 알게 되었다...천사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이슬을 보았다...
... ....
"잊을수 있을까, 내가...널 그렇게 쉽게 잊을수 있을까....?"
사진속의 그는 말이 없다. 마치 죽은 이의 사진을 붙잡고 우는 것 같은 처량함마저 배어나오는 듯
하다.
"행복해야해...아니 넌 행복할거야. 니가 행복하길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늦었네?"
"어...기다렸어?"
"혼자 있으니까...왠지 허전했어."
바보같이 정혁의 말에 다시금 기대를 걸어본다. 혜성은 쇼핑몰에서 사온 상자와 한지, 그리고 포장
지를 방에 갖다 놓은 뒤 약품은 차곡차곡 약상자에 챙겨넣고는 붕대는 따로 깨끗이 넣어두었다. 정
혁은 앞 발코니에서 밑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아 방해해서는 안될 것 같았지만 그의 상처를 봐야 하기 때
문에 약상자를 들고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치료해야지?"
"어..그래."
정혁은 혜성이 이끄는대로 따라갔다.
침대...
정혁은 침대에 앉고 혜성은 그 옆에 앉아 그의 다리를 보았다.
거의 다...나아간다...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슬퍼 혜성은 묘한 미소를 날리고는 그의 다리에서 붕대를 완전히
제거한 후 소독약을 바르고 상처 치료제를 발라두었다.
"다 나은거야...이제..."
혜성이 조용히 말했다. 정혁은 생각보다 일찍 끝난 치료에 직감적으로 다 나아가는걸 느꼈고, 혜성
의 말에서 상처가 거의 다 회복된걸 알았다.
며칠 안걸렸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상처 회복은 빨랐다.
이제...서로에게 이별은 몇시간 내로 좁혀지고 있었다. 정혁도 그걸 직감한 듯 약간 서운한 한숨을
내쉬었다. 혜성은 알면서도 짐짓 모른체 하며 그에게 물어왔다.
"다 나아서 좋을텐데 왠 한숨이야...?"
"글쎄...나도 모르겠어..."
정혁은 의미 신장한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성은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하지 않으리라
고 마음먹고 약품을 챙겼다.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게...혜성이 그의 옆을 스쳐 안방을 마악 나가려
던 찰나 정혁이 그의 팔을 확 붙잡아 끌어 자신의 품에 안았다. 순간 가까이 다가온 그의 향기와
체온에 혜성은 아찔함을 느꼈다. 그의 품에 기대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할 사랑이란걸 알기에 그의
품에서 막 떨어져 나오려고 했으나 자신을 강하게 안고있는 팔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문정................."
-first love...17-
"정혁아...."
"................."
그가 혜성의 입술을 놓아주자 혜성은 놀란 듯 그의 이름을 불러왔고, 정혁은 그의 눈을 쓸쓸히 바
라보다 방을 나섰다.
멍하니...바보가 된 듯 혜성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섰다. 손에서 언제 벗어났는지 침대위에 내동
댕이쳐진 약품통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곧 정혁에게 밀려나 지워지고
말았다.
kiss....그가 갑작스레 해온 키스였다....
혜성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왔고 얼굴도 확 달아오른 듯 열이 느껴지는 듯 했다.
부드러웠다...그렇지만....그의 얼굴을 못볼 것 같다...!!
무슨 의미로 한건지 알수도 없고, 혼란스럽기에....
그리고 내일 그를 보내야 하기에...
그동안...자신을 돌봐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생각하자....그렇게...생각하자...
혜성은 조심스레 약통을 집어들고 거실로 나아갔다. 아까와 같이 밑인지 하늘인지 멍하게 밖을 바
라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잘됐다. 어차피 그의 눈을 맞출 용기조차 없었는데...혜성은 조심스레 약품통을 제자리에 갖다 놓은
후 잠시 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 무얼 위해 밖을 보는지 전혀 알길이 없고, 자신
또한 지금 해줄말이 없기에 혜성은 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자신의 생각에만 치중해서인가...혜성은 한가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니, 차라리 들어서는
안될...
"신혜성...."
애절하게 자신을 불러오는 정혁의 목소리를....!!
하루는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당황과 슬픔..설레임..사랑으로 젖었던 젊음의 하루는 그렇게 빠르
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빠르게 지나갔다고 한다면 불공평한 발언일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 시간에 누가 더 도취되어 살아가느냐에 따라 하루는 달라지는 것 같다. 혜성은 살짝 웃
으며 이제 그를 보내야 할 지금을 덤덤하게 맞이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는 혜성이 건네준, 그
가 원래 입고 있었던 옷을 갈아입은 뒤 차키와 지갑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 혜성이 쇼파에 앉아 그
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두워 보인다...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고마웠어...."
"아냐...나야말로...미안했어."
정혁이 말을 건네오자 혜성이 일어서며 그에게 대답해왔다. 정혁은 이제 그의 곁을 떠나야 하기에
점점 이별의 장소가 될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혜성은 뒤 따라 오면서 그를 보다가 그가 인사
를 하기 위해 뒤를 돌아설 때 그의 앞에 포장된 한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뭐야?"
"그냥 받아줘. 니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혜성은 그저 그에게 그렇게 대답한 뒤 그에게 상자를 안겨주었다. 정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상자를
받고는 잠시 미소지었다.
"이런저런 너에게 미안해..."
"그런거 아니니까 미안하다는 말 하지마...!!"
어느새인지..혜성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혁은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를 품에 안
았다. 그러자 기다린 듯이 눈물을 터트려 오는 혜성...
지켜주고 싶었다...그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아직 우리는 아닌 것 같다....
떠나보낸 사람을 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으니....
그렇기에 완전히 지워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확신된 사랑을 찾아야 한다...
서로 주춤해서는 안될...서로가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그런 확신된 사랑을..
우린 지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먼 훗날...죽을때가 되더라도 널 잊지 않을게...언제나 니 생각 할거야...!"
"고마워......나도...너 잊지 않을게...."
그렇게....정혁은 내곁을 떠나갔다...
내가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자 이별은 닥쳐왔고 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그가 들리지 않게 우
는수밖에 없었다...
그를 붙잡지 않으면 후회할거라 하지만...
아직 내 마음속엔 에릭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 단 하나....
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를 보낸날 밤은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왔다. 이렇게
들어오면 항상 그가 있곤 했는데....침대가 또다시 넓어 보인다...
그런 침대가 보기 싫어 혜성은 다시 거실로 나왔다. 니트를 마지막으로 짜던 날 틀었던 발라드 앨
범을 꺼내 조용히 틀었다. 곧...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니 너를 보낸 그 의미를 기억해 언제나 사랑했었던 나를 그리움에 목이 메
어 와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love song 나만의 친구아닌 사랑아...
늘 지금내곁에 변함없이 니가 있다면 그동안 숨겨왔던 그모든 고백을 할텐데 우정 아닌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예전에 그랬던 기억 속에서처럼...
나의 사랑을 잊지말고 항상 간직해 영원토록 다음 세상엔 너와 함께 늘곁에 있도록 세월이 지나
먼훗날에 내가 그리워 생각이 날 때 그땐 가끔씩 나를 기억해줘...
내 마음을 이해할수 있니 남이 아닌 한 친구로 기억해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게 이 다음에 우리
또 만나면 웃으며 지난 얘기 나누자 I love song 언제나 사랑했던 친구야...
너는 지금 내곁에 아주 멀리 떠나갔지만 우리가 꿈꾸었던 그모든 기억이 많은데...
우정 아닌 사랑을 할수있다면 예쩐에 그랬던 기억속에서처럼...
나의 사랑을 잊지말고 항상 간직해 영원토록 다음 세상엔 너와 함께 늘곁에 있도록 세월이 지나
먼훗날에 내가 그리워 생각이 날 때 그땐 가끔씩 나를 기억해줘...
그땐...가끔씩....나를 기억해줘........
-first love...18-
"승호 어디 아파서 왔니..?"
"감기인 것 같아요. 밤새도록 기침을 하구..."
몇 개월이 흘렀다...
병원은 예전처럼 돌아왔고 혜성도 자신의 본분인 소아과 의사 자리에 앉아 아기들을 치료하고 있
었다.
아기들은 언제나 예쁘다. 이렇게 아파서 우는 모습도 귀엽다.
"주사바늘이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 알았지?"
애기가 주사실로 들어가자마자 혜성은 진료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을 바라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된 것 같았다.
비는 아침부터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고 그런 비에 혜성의 마음도 울적해왔다.
이젠 진료도 끝냈으니까 뭘할까...
문을 잠깐 열고 진료실 밖을 바라보았다. 아까만 하더라도 아파서 울던 아기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애기들을 바라보는 새에 시간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나보다.
혜성은 피식 웃으며 복도로 나왔다.
신생아실에나 가볼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지....누구는 엄마아빠가
있는 집으로 가게 되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리고 몇 년후 부쩍 자라 감기가 걸려 나타나는 애기들은 가끔씩 신선한 충격과 재회의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어...민우야!"
"혜성이구나...? 진료 끝났어?"
"당연하지...너 어디가?"
"오늘 약속 잡혀서 나갈려던 참이야. 근데 너 아직도 가운을 입고 있는걸 보니까 또....신생아실에
가는구나??"
"하핫, 딩동뎅~ 너 약속 늦겠다. 어서 가봐."
"그래, 애기 보느라 또 늦게 들어가지 말구..."
"알았어!"
혜성을 그렇게 반대 방향으로 보내고 민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병원 입구까지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무엇보다도..
그에게 혜성을 양보했지만 그는 상처가 다 낫자마자 혜성을 떠나갔다 한다. 그 사람도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찾아간 듯 하다.
그렇다...만나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영원이란건 없다. 언제든지 이별이라는데서 영원은 숨을 멈
추고 만다. 그리고 그 이별은 새로운 삶을 만들어준다.
우린 모두 사랑에서의 이별을 잘 견뎌 내었다. 그렇기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도 행복
한걸까...
민우는 우산을 켜 들고 차에까지 가려는데 저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싶어 잠
시동안 쳐다본다.
"선호선배, 이건 뭐죠?? 어디에 쓰는 건데요??"
"바보자식아...여튼 레지던트들은 구제불능이라니까...!!"
"선배님~~~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 주세요!!"
"나 바쁜 몸이야. 이래뵈도 내과의라구!! 저리 안비켜??"
후훗...그렇다...깜빡 잊고 있었다. 선호가 의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내과의. 혜성이 얼마나 기겁했었
는지 그때가 떠오른다. 칼로 어떻게 사람피부를 베냐고...부산을 떨어대던 혜성이..그러는 지는 어린
애기 피부에 바늘 꽃아댄다고 반격해오던 선호...
의사된지 얼마 됐다고 벌써 후배들에게 저렇게 냉대하는지...참 사람 변하는게 무섭다는 생각도 든
다.
많이 번했어. 그리고 다 변하고 있어!!
차를 몰며 민우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다.
"조심해서 안으세요."
"네"
혜성은 신생아실에 도착한 직후부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이 찢어져서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갓
태어난 아기라 면역성이 약하기 때문에 완전 무장을 하고 들어간 신생아실엔 아직 눈도 안뜨고 우
는 애기들이 혜성의 눈에 차례차례로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방금 태어났다는 아기를 안고 혜성은
싱글벙글이었다.
손은 어쩜 이렇게 작을수 있는지...손가락 하나가 완전 쇠젓가락 굵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너무작고 귀여웠다. 간호사도 옆에서 같이 웃으며 애기를 보다가 혜성에게 말했다.
"참...산모 가족들이 저기 대기하고 있거든요? 산모 가족들에게 애기 보여드리세요."
혜성은 간호사의 말에 아기를 안고 간호사가 가리키는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곳엔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애기를 보기 위해 모여든 가족들이 있었다.
혜성은 가까이 다가가 애기를 비추어 주며 말했다.
"체중 3.2kg, 정상이구요 왕자님이세요."
혜성의 대답에 기뻐하는 애기 아버지...그리고 할머니...그런 그들의 미소에 혜성도 따라 웃었다.
세상에 빛을 보는거란 참으로 신비하고도 축복받은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때도...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했겠지...
어느새 혜성은 병원 입구에 머물러 있었다. 떨어지는 빗줄기에 손을 뻗어 비를 받아보기도 하고 뚫
어지게 바라보기도 하며 비를 즐기고 있었다.
과연 장마철다운 비다. 혜성은 우산과 밖을 번갈아 보다 결국은 밖을 택했다. 밖에 발을 조금씩 디
뎌보자 비가 기다린 듯 후두두 떨어지며 곧 혜성의 몸을 적시기 시작한다. 하지만 혜성은 아무렇지
도 않은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집까지 별로 걸리지도 않는 거리이니 걸어가기로했다.
병원을 벗어나 거리로 나가니 다정히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연인들이 혜성의 눈에 띄었다. 다정해
보인다. 행여나 사랑하는 연인이 비를 맞을까 싶어 꼭 붙어서 서로를 보고 웃으며 지나가는 연인
들...!
아름다워 보인다.
언제였더라...에릭과 함께 여길 걸었던 때가...잠시 회상에 잠기어 본다.
-first love...19-
어느새 혜성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유난히 비오는 거리를 좋아하는 에릭이었다. 언제한번 같이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걸었었는데 그때를
기억한다. 그때도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괜찮겠어?? 비 맞아도?]
[괜찮아! 그리고 잠깐 맞는건데 뭘...!]
자꾸 걱정해오는 에릭에게 난 그렇게 둘러댔고 결국엔 빗속을 오랫동안 함께 걸었다. 나의 허리를
부드럽게 안고 눈빛은 오로지 나를 맞추고 있었으며 입술로는 계속 나에게 얘기를 하던 에릭...!!
비보다 그런 에릭에게 정신이 팔려 걸었고 다음날에 난 보기좋게 독감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에릭....!! 나 또 비맞는다!!!
혜성은 하늘을 잠시 쳐다보며 에릭을 떠올리고는 보란 듯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 감기걸릴려구...?
걱정하는 듯한 에릭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아냐...이젠 안 그럴거야....너 없어도 나 잘 살아갈수 있어...! 너도 이제 그만 내걱정 해...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혀온다. 다행이 비 덕분에 그눈물도 비와 섞여 비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가 되어버렸지만 자신의 몸을 적셔오는 비는, 자신의 애심마저 씻겨내리지는 못했다.
이젠 나도 다 컷어. 누군가가 걱정 안해줘도 돼....
그렇게 할수 있어, 나....!!
스쳐가는 상점들 중에 유난히 꽃집이 눈에 띈다. 이날을 기다려온 듯 꽃들을 온통 거리에 내어놓아
보는사람들로 하여금 생동감을 맛볼수 있게 하는...
빗방울을 한껏 머금으며, 때로는 통통 튕기기도 하는 백합의 매혹에 빠져버렸다.
유혹하는 듯 붉게 물든 장미꽃도...저 장미꽃에 손을 대면 온통 붉게 물들어 버릴것만 같다...
느긋하게 걷는다고 걸었지만 어느새 아파트 마당에 들어서고 있는 자신을 보며 혜성은 잠깐 놀랐
다. 상념의 시간...빗속에서 보낸 상념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되돌아볼 계기..그리
고 아직도 저 하늘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에릭을 느꼈으니까...그걸로 된거야...
비록 옷은 젖어 축축했지만 마음만큼은 하늘을 날고 있는듯했다. 무언가를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온 마음을 가득 채워온다.
-땡~~~
엘리베이터가 혜성이 원하는 층수에 도착한 듯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혜성은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내어 현관에 다가갔다. 평소와는 다른 계단...그리고...
".........................!!!!!!!!"
"오랫만이야 신혜성..!!"
"...문...정혁???"
"어울~ 나 알아보네? 난 니가 날 못 알아보면 어떡....혜성아...."
웃으며 말을 꺼내오는데 순간 자신의 품에 와락 안겨 헤어질때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혜성을 보며
정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그를 품에 더 감싸안으니 물기가 느껴진다. 그의 젖언 머리결...그
리고 얼굴...비를 맞은듯했다.
"우산 안가져갔었어?"
"어...비 맞고 싶어서....."
혜성이 조용히 정혁의 품에 안겨 눈을 감고 말했다. 정혁도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그렇
게 그 자리에서 혜성을 품에 안았다.
갑자기 왜 찾아왔냐고...혜성은 전혀 물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는 있을 이별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일까...?
몇 달동안 난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긴 했지만 곳곳에서 그리워지는 혜성의 향기를 차마 뿌리
치지 못해 이렇게 달려온 것이었다.
이렇게 안겨오는 그도 나를 많이 그리워 한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그에게 들려줘도 될까...?
"신혜성...!"
"응...?"
"넌 내가 책임질게!"
"푸훗...!! 그래, 문정혁. 나도 너 책임질래~~~"
밖에 오는 빗소리가 하나의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평소엔 시끄럽게만 들리던 빗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는건...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 하고 있었던 건...
어쩌면 서로에게 이렇게 못다한 말이 있어서 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이별을 잘 이겨내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건...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first love...인생에 처음 겪에 되는 사랑만이 첫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그 감정이 아름답다면 그것 또한 첫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들리니 아직은 어린 조금은 서툰 내 사랑이 느껴지니 너도...
들리니 어설프지만 내맘을 전하는 나의 작은 기도소리 들리니...
내 손 끝에 내 눈 끝에 항상 널 느껴...어떤말로 이느낌을 다해 자꾸 웃는 내모습이 이상한가봐 너
도 보면 웃을거야 바보!
눈을감으면 꿈속으로 와 잠시도 떨어지기 싫거든 아침이 오면 달려갈거야 비오는 그런 날이라도...
입가에 맴돌던 내맘 다 전하지 못해 속상하게 그냥 돌아섰는데...
멀리서 날 부르던 넌 이렇게 말했어 말안해도 너의 마음 다 알아...
둘이서만 사진찍어 내 방에 붙일래 늘곁에 있게 내 전화에 너의 목소리도 담을래 놓칠수 없어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첫서랑이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