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은 골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경영인이었다. 모든 중요한 결재를 사장들에게 맡긴 말년에도 안양 컨트리클럽 회원가입 결재만은 본인이 직접 챙겼다. “골프만은 내 마음대로 안 된단 말이야”라는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골프계의 금언처럼 되어있다.
골프 치는 사람 중에 공이 잘 안맞고 게임이 부진하면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 “골프채를 부러트리고 싶다”고 말하는가 하면 심지어 “속이 너무 상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추어도 이 정도일진대 골프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골퍼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그 우울증이 어느 정도일까. 죽고 싶다는 말은 이들에게 농담이 아니다. 대학시절 올 아메리칸 골퍼였던 USC 출신 마이클 크리스티는 슬럼프에 빠져 다시 퀄리파잉 스쿨과정을 거치게 되자 권총 자살했고 LPGA의 미녀 골퍼 에리카 브라스버그는 3년 전 계속 성적이 부진하자 목을 매 자살했다.
지난주 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셔널에서 연장전 끝에 크리스티나 김이 우승하자 주최자인 로레나 오초아와 미셸 위 등 프로골퍼들이 그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은 바로 크리스티나 김이 성적부진으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프로골퍼였기 때문이다. 지난 9년 동안 200여회의 토너먼트에 출전해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크리스티나 김은 누구인가. 크리스티나(30)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11세부터 골프를 시작했고 프로가 된 후에도 3년 동안 아버지가 코치 겸 캐디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가 않았다. 삼성이 박세리를 픽업하여 연간 3억원을 지원해주며 올랜도의 레드베터 골프스쿨에 입학시켜 주어 무명의 루키에서 두 달만에 단숨에 LPGA의 수퍼 스타로 떠오르게 한 케이스와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크리스티나는 베레모를 쓰고 플레이를 하는데다 유머가 있고 쾌활해 LPGA의 인기스타였으며 후일 멕시코의 전설로 등장한 로레나 오초아와 퀄리파잉 스쿨을 함께 졸업한 동기생이다. 2002년 프로로 전향한 후 2개의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한때는 승승장구 했었다.
특히 그녀의 장타는 LPGA의 화제였으며 유럽과 미국 여자프로 국가대결 경기인 솔하임 컵에 3차례나 선발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의 장기인 장타가 고장나면서 비거리가 점점 줄어들어 벙커에 빠지는 경우가 잦아지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토너먼트에서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하는 예가 허다했다. 마침내 퀄리파잉 스쿨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LPGA의 조치가 이루어지자 우울증은 극에 달했다. 투어프로에게 퀄리파잉 스쿨을 다시 거친다는 것은 대학생에게 고3에 입학하여 다시 대학입시 시험을 치르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수모다.
2011년 4월 - 스페인 알리칸테 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올리자 그녀는 바다에 투신자살하려고 15분간 눈을 감고 절벽에 섰으나 “내가 죽으면 부모님들이 살고 있는 집값은 누가 페이먼트를 할 것인가”가 마음에 걸려 자살을 포기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크리스티나 김의 이번 우승이 드라마틱한 것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9년만의 컴백인데다 그것도 연장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가진 그녀의 기자회견은 매우 감동적이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내일 아침에는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금언을 기억하라면서 나를 격려해주던 어머니의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20대에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죠. 30대인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지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기쁩니다.”- 절망을 딛고 희망의 세계 진입을 시범적으로 보여준 그녀는 자랑스런 이민 2세다.
미주 한국일보 2014-11-19 (수) 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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