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 박희진
무슨 흙으로 빚었기에
어느 여인의 살결이 이처럼 고울 수 있으랴
얇은 하늘빛 어리인 바탕에
그려진 것은 이슬 머금은 닭이풀인가
만지면 스러질 듯 아련히 묻어오는
차단한 기운이여
네가 놓이는 자리는
아무데고 끝인 동시에
시작이 되는 너는 그런 하나의 중심이어라
모든 것은 잠잠할 때에도
너는 끊임없이 숨쉬며 있는
오 항아리!
너 그지없이 둥근것이여
소리없는 가락의 동결이여
물 위에 뜬
연꽃보다 가벼우면서 모든 바위보다
오히려 무겁게 가라앉는 것
네 살결 밖을 감돌다 사라지는
세월은 한갓 보이지 않는 물무늬인가
항아리 만든 손은 티끌로 돌아가도
불멸의 윤곽을 지니인 너 항시 우러른
그 안은 아무도 헤아릴 길이 없다
......................
Crazy Vagabond / 박희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천상병千祥炳
1
해가 떠서 지는 사이
따스함과 차가움 사이
이 집에서 밥 한 술 얻어먹고
저 집에서 새우잠 자는 사이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
저녁 담배꽁초와 새벽의 해장 사이
공중변소와 원고지 사이
한 송이 들국화와 술에서 깬 눈동자 사이
감옥의 평화와 허위의 세상 사이
누추한 내의와 맨살 사이
영감과 광기 사이
부산의 부둣가와 서울역 사이
오늘의 막걸리와 내일의 바람 사이
영혼과 육체 사이
시와 산문 사이
빛과 어둠 사이
2
그대는 돌았거니
평생을 한결같이
“부산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빤쓰 바람으로
자전거 타고 왔지”
그것이 그대가 친구들에게 남긴
마지막 발언
oh, you poor
crazy vagabond!
3
불신의 시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으려 아니 하는
사람들 양심은
뒷시궁창의 쥐새끼 모양
까맣게 반들반들
닳고 닳았것다
모두 돈에 환장을 했기 때문
천상병 씨의 간肝만은 주독으로
퉁퉁 부었건만
다른 이들의 그것들은 돈독으로
누렇게 부어 있지
그래도 모자라서
서울서 제일 높은
빌딩의 높이를
부러워하는 처지
그러다가 까맣게
대연각처럼
타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욕심 없고
책임을 지기 싫은 천상병 씨는
평생을 단신單身으로 게으름뱅이
타고난 의지박약
하지만 오직
술과 담배와 시밖엔 몰랐다는
그 점에서는 지독한 고집파
천사처럼 순수하였기에
악마처럼 가열했던 사나이
“이백 원만 주소”
“백 원만 주소”
그것도 없다면
“버스표라도 주소”
하고 그대는 만나는 사람마다
구걸을 해 갔었다
시치미 뚝 떼고
절박한 표정으로
돈을 받아 쥐면
언제 내가 그랬더냐는 듯이
태연히 앉아 코딱지를 후비거나
키들키들거릴 따름
어쩌면 그것은 희한한 재주였다
하늘이 주신 재주(?)
대개는 그것도 무력한 문우들
착하디착한 심정을 쿡쿡 찔러
그들의 호주머니 털어 봐야 부스러기
삼백 원 이백 원의 가난한 깨끗한
푼돈에서 푼돈으로
여리게 아슬아슬
이어지는 한 줄기 목숨의 줄을
늘
용하게
잘도
타던
그대는 곡예사
아냐
그건 너무도 야박한 해석이고
타락한 시대와
세속에 항거하는
그것이 그대의 삶의 방식
4
그대의 가난이 그대의 자본
유일하고도 탕진될 길이 없던
가난은 살을 더럽힐 수는 있다
그러나 영혼은 가난으로 씻긴다
검은 거미가 은실을 뽑아내듯
검은 그대가 토해 놓은 시의 구슬
그 영롱한 구슬의 빛남이여
그 고귀한 영혼의 결정이여
그대의 가난은 하늘이 주었기에
마침내 하늘이 거둬 간 것이라
5
“부산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빤쓰 바람으로
자전거 타고 왔지”
암 우리의 천상병 씨라면야
그럴 수도 있고말고
그러나 그것은 지난여름의 일
여름이 사라지자
그대는 아주 깨끗이 잠적했다
6
어디서인지
새가 한 마리 날아왔다가
가지에 앉았다가
잠시 나뭇잎과 바람과 노닐다가
어디로인지 사라지면 그만이듯
그대도 영영 꺼지고 말았는가?
나타나라 나타나라 나타나라 나타나라
그대의 독특한 웃음소리만이라도
한 번만 더 들려 줄 순 없겠는지?
무쇳내 풍기던
킬킬 키득키득
웃음소리만이라도
............................
- 제4시집 『빛과 어둠의 사이』(조광출판사, 1976)에서 / 박희진 전집Ⅰ 『초기시집』(시와 진실, 2004)의 표기를 따랐으나 2와 5에 나오는 인용문(천상병 시인의 말)은 최초 시집의 표기대로 적었음.
*천상병千祥炳(1930. 1. ∼ 1993. 4.) ;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가족을 따라 귀국해 마산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 졸업하고 195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수료함. 중학 시절부터 조숙한 문학 천재의 모습을 보인 그는 같은 학교 국어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1949년 『문예』지에 「강물」을 발표하고 1952년 「갈매기」로 추천 완료돼 문단에 나옴. 1953년 『문예』지에 평론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와 「사실의 한계-허윤석 론」을, 1955년 『현대문학』지에 「한국의 현역 대가」를 발표하는 등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비평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함. 1956년에는 『현대문학』지 월평月評을 집필하고 외국 서적을 번역하기도 함. 그의 비평은 명석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크게 주목 받았음.
1967년 소위 ‘동백림 사건’ 연루 혐의로 수사 기관에 끌려가 6개월간 전기 고문을 비롯한 극심한 고신과 일상으로 이어진 구타에 시달린 끝에 몸과 마음이 크게 망가짐으로써 이후 지식인으로서는 물론 일반 생활인으로서도 작고할 때까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함. 고문 후유증과 심한 음주, 영양실조로 심신이 황폐해진 그는 1971년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서 쓰러졌다가 행려병자로 오인돼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됐는데, 몇 개월 간이나 행방불명 상태가 지속되자 노숙자로 떠돌던 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어디선가 횡사했으리라 여긴 문우들이 흩어져 있던 그의 ‘유고(?)’들을 모아 첫 시집 『새』를 간행함. 무연고자로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는 동안 그를 알아본 평생의 구원자 목순옥을 만나 1972년 다시 세상에 나옴.

<약 력>
시인 박희진朴喜璡은
1931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보성중학교 6년제를 거쳐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 《문학예술》지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1961~67년 시동인지 《六十年代詞華集》을 주재하였으며
1975년에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창작계획> 과정을 수료하였다.
1979년 4월부터 ‘공간시낭독회’ 상임시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시낭독 운동의 선두주자로서
현재는 ‘차나무시낭송회’ 상임도 겸하고 있다.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한국시협상, 보관문화훈장, 상화시인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다.
<저서>
시집 :
「실내악」(1960) 「청동시대」(1965) 「아이오와에서 꿈에」(1985)
「북한산 진달래」(1990) ) 「4행시 3백수」(1991) 「몰운대의 소나무」(1995)
「문화재, 아아 우리 문화재!」(1997) 「박희진 세계기행시집」(2001)
「1행시 960수와 17자시 730수ㆍ기타」(2003) 「소나무 만다라」(2005)
「섬들은 외롭지 않다」(2006) 「중국 터키 시편」(2007) 등 31권 상재
수필집 :
「투명한 기쁨」(1990) 「서울의 로빈슨 쿠루소」(1991)
2015년 지병으로 별세
첫댓글 박희진 시인의
천싱병 시인을 이야기 한 시
크레이지 바가몬도를
오래 전
양주지역 독서모임인 솔바람독서회가
발행한 솔바람이란 문학지에서 박희진 시인의 초대글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독서회가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네요 지부장 할 때 초대 글을 주었던
기억도 있네요
기회가 되면 여기에 올려 보겠습니다
크레이지 베가본드 올렸어요~
덕분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이현이 시인님
감사드립니다~
뜻 깊은 애송시 감상하며
풍성한 릴레이시 방, 의미를 되찾는 시간입니다.
시인으로 삶을 시작하고 마치는 분들을 동경하면서
이따금 아쉬움에 휩싸일 때도
다시금 명시를 만나고
여기 마음의 장소, 참 좋습니다~
#임동혁 시인님 , 한 주간 후에 받아주세요 ~
와우!!
이런 장르의 시도 있구나~~
시원 통쾌한 문장에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