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역사의 탁란, 경주의 핫플레이스, 황리단길-전통의 새로운 부활/ 이 령
최근 경주 문화의 핫 플레이스를 꽂는다면 단연코 황리단길이다. 서울의 경리단길과 비견된다. 대릉원 돌담길 너머 유려한 능선과 닿아 미끄러지듯 펼쳐지는 관광객들의 도란소란으로 경주는 지금 탁란 중이다.
지금까지 경주의 역사 문화적 인프라는 세계적인데 반해 관광 산업화 실용방안은 다소 미비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대 왕국의 더께를 밀어내고 새로운 문화태동의 싹이 발아되고 있으니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보여 주기식의 역사기행, 관광에 그치지 않고 방문객들과 직접 소통하고 더불어 고도의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참여적 관광으로 접목,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최근 황리단길의 생동하는 풍광은 노후 된 역사도시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 품격을 더 높이리라 기대가 크다.
황리단길은 신구의 문화가 융합되어 그것을 즐기고 향유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급속하게 알려지고 있다. 과거 퇴락한 술집과 점집들이 즐비하던 남루의 골목이 오늘날과 같이 생동감 넘치는 장소로 변모한 것은 경주 시민은 물론 행정기관의 우리문화에 대한 사실과 해석으로서의 역사인식을 조화롭게 융합하고 신라천년 고도의 전통미와 젊은 창작자들의 감각이 어우러져 현대적 미가 공존하는 장소로 기획, 발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화부활의 기저는 단순히 기존의 전통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기품위에 현대적 새로움을 접목시켰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황리단길은 온고지신의 고마운 비약이 일렁이고 있다. 고여 있는 물에선 생명이 숨 쉴 수 없으나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여울물에선 기대와 다짐이 돋을 새겨지는 법이다.
종합 작품 판매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각양각색의 상점들과 대릉원 돌담길을 따라 속속 들어선 진기한 먹거리 볼거리 가게들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황리단길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주를 찾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주중은 물론 특히 주말이면 이곳에 위치한 상점 곳곳에 젊은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그간 관광특구 고도제한에 묶여 개발이 제한되었기에 생산요소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단층의 전통구옥들이 지금은 신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춰 유니크하게 리모델링되면서 유행하는 소위 편집숍화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계층별 입맛을 겨냥한 식당들이 기존 상식의 틀을 깨고 벽을 헐어 손님을 직접 맞이하고 경주 느낌이 물씬 나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의 면면이 새로운 문화의 상시전시장을 방불케 하면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이다.
관광객들의 표정에서 흥겨움이 그득하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며 줄 서 기다리는 모습은 다채롭고 싱그럽다. 대나무 간판을 세우고 늘어서 있던 점집들과 낡고 초라하던 주점들은 거의 사라지고 추억을 소환하는 흑백사진관이며 아기자기한 소품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살아있는 관광 신풍속도를 자아내고 있다. 바야흐로 새로운 문화의 태동이 일고 있는 것이다. 유려한 능선과 이어지는 진기한 가게들, 그 안의 풍경을 수놓는 관광객들의 다채로운 표정과 이야기 소리로 시간을 말아 쥐고 침잠했던 신라천년의 고분군이 들썩이고 있다. 고분 안에 잠들어 있던 역사유적의 힘이 황리단길의 젊은 생기와 닿아 태동하고 있다.
황리단길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도로이다. 경주의 황남동과 서울의 경리단길이 합성되면서 만들어진 신도로명이다. 경주고속버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봉황대 프리마켓거리를 지나 내남네거리로 이어지는 골목이다. 일대는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 반월성등 주요사적지와 인접해있어 높이 10m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고도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단층의 건물들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다. 대릉원을 왼쪽으로 끼고 황남파출소를 지나 황남초등학교 네거리까지 편도 1차선이 메인도로다. 최근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부상되면서 대릉원 돌담길에서 황남 한옥마을 안길까지 상가들이 봄날 들불 번지듯 확산되고 있다.
황남빵, 우리밀 빵가게, 카페, 아이스크림가게, 한복 대여점, 사진관, 서점, 기념품가게, 퓨전요리점등이 다채롭게 들어서 있어 마치 하나의 문화 아이시(전자회로 소자의 결합체) 같다. 따라서 경주의 문화를 느끼고 향유하고자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주문화전시장의 전율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또한 상점들이 오픈숍의 형태를 하고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고 대부분의 가게들이 줄서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쉼터 여유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 그야말로 경주역사지의 전파가 집결된 나들목이라 할 만하다.
기대와 흥겨움을 품고 골목골목 벼름벼름 들어가 본다. 먼저 다양한 먹거리 가게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데 원조와 퓨전의 조화가 일면 생경하기도 하거니와 일면 신선하다. 원조의 기준이 무엇인가? 퓨전은 보기엔 좋지만 이도저도 아닌 맛은 아닌가? 나와 타인이 어울렁 더울렁 사는 동안 나를 주입하고 너를 받아들이면서 과연 서로의 맛과 멋을 얼마나 조화롭게 부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너도나도 원조를 자청하는 ‘황남빵’가게들을 지나면 전통가옥의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인테리어로 눈길을 끄는 브런치카페 ‘노르딕’을 필두로 신세대들의 입맛을 겨냥한 커피전문점, 아이스크림가게 ‘사시스세소’ ‘987피자’ ‘시즈닝’ ‘첨성대김밥’ ‘별봉’, ‘도넛베이커리’, ‘대화맥주’, ‘버거D’, ‘훌림목’ 등의 먹거리 가게들과 매 주 메뉴를 바꾸는 가정식 퓨전한식당 ‘홍앤리식탁’까지가 이 골목의 초입으로 황리단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먹거리 가게를 지나면 ‘공주마마’ ‘한복나드리’ ‘한복판’ ‘마실’등의 한복대여점들이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복대여시 머리핀, 장신구, 신발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특히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전통한복의 단점을 보완한 개량한복이 주로 대여된다. 일부에서 전통한복의 미를 왜곡,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전통의 맥은 지키되 편의성을 보완함으로써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반길 일이 아닌가?
한복대여점을 돌아 나오면 이색간판을 건 서점들이 위치해있다. ‘어서어서’는 ‘어디에서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이라는 기치아래 독립출판물을 취급한다. 책을 구매하면 <읽는 약>이라고 쓰여 있는 약 봉투에 책을 포장해준다. 과연 책은 영혼의 양식을 채워주는 약인 것은 분명하니 주인장의 책을 대하는 장인정신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점 ‘지나가다’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가수의 초청음악회 이벤트를 열고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서점의 본질을 상회하는 경영으로 새로운 편집숍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실천정신은 말 그대로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것이겠다.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와 시도로 서점이 먹거리 볼거리 전시장의 주요한 장소로 부각된다는 것은 문화전시장으로써의 의미가 크다 생각한다.
한복을 입고 서점에서 ‘읽는 약’을 처방 받은 방문객들은 이 순간, 추억을 저장할 곳이 필요하다. 바로 ‘인생네컷’ ‘대릉원흑백사진관’ ‘그때 그 사진관’등 저마다의 특색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들이 위치 해 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던가?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표정에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가 박재된 장소를 배경으로 현재를 지극하게 살아가는 시간의 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이쯤에선 먹거리로만 배가 부른 것은 아니어서 저마다의 추억곳간을 나오는 방문객들의 표정은 여지없이 넉넉해진다.
배도 부르고 머릿속도 그득 찼으니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No Words 카페’에서 분주하던 발걸음을 잠시 접고 깊은 커피 맛에 빠져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상호 명처럼 말이 필요 없는 이곳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의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면 말 너머의 말과 역사 너머의 역사에 취하게 된다.
수제 핫도그를 파는 ‘알로핫’ 디저트카페 ‘시노레몬’ 직접 만든 소스와 키운 닭의 유정란을 사용하는 ‘에그센드위치’ 양식집 ‘리한’ 시원한 호프와 다양한 안주를 선보이는 ‘창고1069’ 양식점 ‘엉클레빗’ 퓨전 한정식집 ‘또바기’ ‘로스터리 동경’ ‘미실’ ‘아덴’ 등 어느 곳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시간 여행지답게 지금 황리단길의 많은 상점들은 이처럼 신구의 조화가 간판에서부터 메뉴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신선하다.
이곳의 감흥을 혼자만 가슴에 담고 가기엔 아쉬우리라 두고 온 인연들에게 이곳만의 정서가 담긴 작은 선물을 하고 싶어진다. 경주를 닮고, 경주를 담은 기념품을 판매하는 ‘배리삼릉공원’으로 발길이 닿는다. 엽서와 소품, 경주 느낌이 물씬 나는 기념품과 와펜, 첨성대와 학, 동궁과 월지, 거북이 등 익숙하지만 독특한 이곳의 상품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인기가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보고 있자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메인도로를 지나 옆길에 발길이 닿는다.
대릉원돌담길과 주변 역사유적지
황리단길의 동쪽은 대릉원 담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다채롭지만 시끌벅적한 메인도로에서 벗어나 다소 소담스러움과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동쪽 길을 권한다. 아직은 예전 황리당길의 고풍스러움이 많이 남아 있어 추억을 소환하기엔 더없이 좋은 길이다. 이곳에 들면 아무나가 누구나가 될 것 같은 정겨움이 있고 담장에 낀 솔이끼며 우산이끼, 지붕에 핀 와송도 반갑게 수인사를 건넨다. 한옥 처마에 걸터앉은 구름이 신라의 미소로 눈인사를 건넨다. 이 길을 스치는 인연끼리 고분의 둥근 능선과 닿은 눈빛을 교환하다보면 누구라도 친구가 되는 길이다. 오래전부터 경주출신 예인들의 아지트였던 한정식집 ‘도솔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이 식당의 주인장 이상복씨는 수입의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지역인 들의 귀감이기도 하다. 도솔마을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금슬채’ ‘황남관’ ‘소설재’ 등의 이름을 내건 고급펜션과 민박집들이 들어서있다. 관광객들에게 신개념의 숙소로 각인되고 있는 곳이다.
‘마실(마시고 놀자)’ ‘황남상회’ 등의 간판도 눈길을 끈다. 천냥으로 토정비결운세를 점쳐주는 ‘도깨비명당’은 황리단 길을 찾는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라던가? 하지만 젊은 연인들의 미래는 늘 긍정적인 가정을 하고 긍정적 미래를 꿈꿀 터이니 단돈 천원으로 그 긍정의 미래를 확신하게 된다면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을 얻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대릉원을 비롯한 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박물관, 교동 한옥마을 등의 많은 유적지가 있다. 황리당 길에서 신구 문화의 접목을 체험한 후 주변에 있는 역사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은 경주를 찾는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라고 하겠다. 역사를 알아야 현재를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황리단길의 발전과 수반되는 문제점
황리단길의 확산은 주변 땅값의 수직상승을 불러왔다. 임대료 또한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로인해 원 거주민들은 대부분 이주를 하고 거대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점집들이 사라진 곳에는 한집 건너 한집 꼴로 변신 중이다. 옛 고도의 모습을 걷어내고 새로운 변화에 박자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 축하화환이 늘어서있다.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옛것의 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다소 서운함 마저 든다. 그러나 변화는 발전을 수반하기 마련 아닌가? 번화가가 되어가는 메인도로와 변화의 조짐이 주변 골목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만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림자마저 그림이 되어 완성작이듯 빛과 그림자의 명암이 서민들의 아픔을 키우는 일로 확산되지 않도록 행정기관의 세심한 관리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업성에 밀려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전통의 미가 가볍게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땅값의 수직상승과 임대료의 부담은 주변 상가의 상품가격의 상승을 부른다. 이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부담으로 직결 된다. 일회성의 방문에 거치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경주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은 민간뿐만 아니라 국가적 홍보를 적극적인 해야 될 것이다. 더불어 그 변화의 중심에는 반드시 전통의 미에 바탕을 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이 동반되어야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으레 신구의 교차점에선 다소 이질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질성은 새롭다는 것이고 새롭다는 것은 신선함과 조금의 불편함을 내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의 형식만을 고수할 때 새로움은 불편을 초래한다. 기존의 형식에 기반을 두고 고착화된 틀을 깰 때 새로움이 생겨난다. 이때 새로움이란 기존의 형식을 단순하게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형식에 도전이라는 발전촉진제가 첨가된 문화의 고마운 비약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발생되는 다소 불편함의 기저에는 ‘문제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수반되는 인지부조화 현상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현상이든 새로움과 불편함은 더 나은 문화발전을 위한 발화점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새로움을 수용하는 정신이 문화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단 전통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황리단길에 있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향과 방문객들의 표정에 취하다 보면 멀리 보이는 능선과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천마가 능을 깨고 나와 질주할 것만 같은 환영이 든다. 경주가 더 이상 슬로우시티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느린 배경을 뚫고 격동하는 도시의 태동을 느끼는 것이다. 중국 상해의 타이캉루나 베트남 호치민 데탐 여행자 거리,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와 같이 황리당길에 더 많은 여행객들로 북적이기를 바란다. 변화의 시작이 화려하지만 그 변화를 지속시키고 참다운 문화발전을 이루는 것이 남은 숙제일 것이다. 열정과 옳은 의지와 실행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기를 바라며 골목을 나왔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