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註] 이 글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몬시뇰께서 2005년도 첫 주부터
6회에 걸쳐 인천교구 주보(1803호-1808호)의 <빛과 소금>난에 올리신 글이다.
Ⅰ. 잘 뜨다가 추락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
금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공의회는 미증유의 격변이 일고 있는 시대 상황에 직면하여 교회가 시대의 요청에
헌신토록 하기 위해 1962년부터 3년 동안 개최되었다. 교회는 공의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형성된 교회 유산을 수직하면서도 ‘시대의 징표’에 유의하여
현대 세계 안에 도입된 새 생활 조건들과 양식에 부응하는 내적 쇄신을 도모하고
하느님 나라와 그 의의 실현을 위해 외부 세계와 우호적 자세로 대화와 협력을 도모해 오고 있다.
공의회가 끝날 무렵 한국교회는 소위 ‘제3세계’의 가난하고 미약한 전교 지역 교회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지만, 70~80년대를 거치는 동안 실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우리 교회는 여전히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이나 대만 등 이웃 지역 교회들과는
대조적으로 신자 수는 10배 가까이 증가한 500여 만에 이르고, 서방 교회의 경제 지원을 받아야 했던 가난한 처지를 탈피하여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는 교회 관련 시설물들을 무난히 건립하고 운영하는 한편, 북한 동포들과 다른 외국 교회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처지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으며,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상태를 벗어나 견고한 결속력에 정초하여 전개된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적극적 현실참여 활동에 힘입어 사회 안에서 강력한 위상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공의회 이후 역설적으로 노쇠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는 구미 교회나 침체상태를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다른 아시아 지역 교회들로부터 세계 교회 활성화를 위해 보다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 교회로 기대를 모으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9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 안에서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한 민간 정부가 수립되는 등 민주화 과정이 진척되는 가운데 국민의 관심사가 정치권으로부터 벗어나 다변화되면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기간 동안 거의 범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받았던 교회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감소되었으며, 줄을 잇다시피 이어지던 젊은 세대와 지성인 계층의 입교 행렬도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이었던 역동적 성장세가 둔화되기에 이르렀다.
새 천년 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교회는 입교자 감소, 냉담· 행방불명자 증가,
청소년 계층의 외면, 수도 성소 감소 등의 현상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한 신학자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물이 새 나가는 바가지’로 비유하면서 신자들의 이탈이
지금처럼 계속될 경우에 5년, 잘해야 10년의 기회가 주어져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잘 뜨는 것 같았던' 우리 교회가 추락 직전의 위기를 맞게 된 까닭을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Ⅱ. 공의회 이전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로의 퇴행
필자는, 평소에 교회가 천년 이상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서구 사회에서 근세 이래
주변 집단으로 서서히 밀려나게 된 결정적 원인을 당국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간과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아닌 신성 로마 제국교회의 전통 요소들을 고수하는 데 급급한 데에서 보고 있으며, 한국교회가 7,80년대에 이룩한 역동적 성장세를 90년대 이후에 지속시키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 또한 ‘시대의 징표’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지 않고 역행하는 지도자들의 안일한 자세에서 보고 있다.
그곳에서 근세 이래 진행되는 탈-교회 과정이 우리 사회 안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획기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서구 교회보다 미구에 더 참담한 처지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공의회는 교회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에 근원을 두고 있는 ‘하느님 백성’이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되는 신비체적 공동체인 ‘성사’로 규정하였다.
교회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신분을 엄격히 분리하는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를 강조하던 전통적 입장과는 구별되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취택된 ‘하느님 백성’ 개념은 교회 모든 구성원들의 존재론적
공동성과 동등성을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보다 상위에 둔다.
여기서 평신도들도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고 명백히 진술됨으로써, 모든
구성원들의 신분상 차별을 원천적으로 지양하는 복음적이고 친교적인 교회관이 개진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는 공의회 이전의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관이 오히려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교구장 주교들은 중세적 제왕처럼 지배권을 행사하고 최근 들어 구성원들의 상하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친교 공동체의 봉사적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고대 신정사회의 절대 통치자처럼 처신하고 있다.
주교들의 극소수 측근에 속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성직자들은 비인격적 관리 대상으로서 거의자의적 기준에 따라 사목 현장에 배치되어 시한부 직무를 수행하는 소외된 처지에 머물 뿐이다.
우주적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으로 질적으로 변화시켜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문명’ 건설에 이바지해야 할 중차대한 과업이 부과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서구 교회의 노쇠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고 앞으로 세계적 중요성이
한층 더 드높아질 대다수 아시아·태평양 지역 교회들의 침체 내지 위축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 상황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유일한 지역 교회로 지목 받고 있다.
아시아 대륙 교회 안에서 외형적 규모와 사회적 위상이나 재정 능력 면에서
우리 교회처럼 세계적 차원의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한
아시아 지역 교회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내적 성숙 내지 역량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입장을 천명하였으며,
다른 종교계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함축적으로 시인하고
그들 안에서 드러나는 진실하고 선하며 고귀한 가치를 긍정하고
수직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을 촉구하기까지 하였다.
공의회는 이러한 개방적 입장과 같은 맥락 안에서 비서구권 지역교회 안에서
전통적 고유 종교 문화 자산의 고귀한 부분을 교회 생활 안으로 수렴하는
신앙의 토착화 작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를 통하여
교회와 비 그리스도교적 문화가 함께 풍요하게 될 것이며,
개별 민족이나 문화의 전통이 보편적 교회의 일치 안으로 통합되면서도
고유성을 지님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풍요한 보편성에 기여하게 되는 까닭에
신앙의 토착화 작업이 장려되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교황청은 더 이상 과거의 로마 교황청이 아니다.
수장인 교황으로부터 시작하여 각 성성 장관이나 평의회 의장을 위시하여
수많은 교황청 관계자들이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각 대륙과 여러 국가 출신으로 구성되어 문화적 다양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외부 세계와 개방적 자세로 대화하고 우호적 관계를 맺으며, 인류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연대적 협력에 참여함으로써 보편적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교회는 로마나 다른 지역 교회들에 비해 공의회 이전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로마-서구적 교회를 수호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다른 그리스도교계와 종교들과의
심층 차원에서의 대화와 세계 안에서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체계적 연대활동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으며, 아시아 내지 한국 고유의 종교-문화 자산을 교회 생활 안으로 수렴하는
토착화 작업에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교회는 아직까지도 신학 사상, 전례 양식, 신심 운동, 영성 수행, 교리 교육, 건축 양식 등
교회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구 교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새 천년 기에 즈음하여 교회가 자랑스레 보급하는 소공동체 사목 모델도 서구인들에 의해
개발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공의회가 강력히 촉구한 토착화 작업은 신앙의 순수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당국자들로부터 경원 시 되면서 거의 원점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서구 사회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서구형 교회 생활양식이 한국의 젊은 세대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있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수 있도록 하는 구조상의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수도자들은 서원생활을 통하여 복음적 영성의 향기를 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정수를 드러내는 삶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이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성직자들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제자들을 섬기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겸허하게 섬기는 자로서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복음의 생활화를 통한 자기쇄신을 이룩한 기반 위에서 현실 세계 안에서
만연일로에 있는 ‘지배와 정복을 지향하는 죽음의 문화·문명’을 지양하여 ‘공존과 섬김을 지향하는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문명’을 건설하는 복음화 과업을 신실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막중하고 지난한 과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연대의 세계화’ 내지 ‘소외 없는 세계화’ 노력을 통하여 다른 그리스도교계와 종교계,
그리고 선의의 개인들과 단체들과 연대를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회 구성원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진정한 자세로 생활함으로써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실감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교구민 전체의 복음적 진정성을 강화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생활하며, 일반 성직자들도 행정
관련 업무를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신자들의 영적 갈증을 진정시켜주는 사목자로서의 삶에
전념하게 되는 구조상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본다. 아울러 평신도들도 일상 속에서
고래의 미풍양속을 존중하면서 복음의 향기를 발함으로써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앞날은 형식적 제도와 법중심적인 재래의 생활양식을 탈피하고
영적 삶 중심으로 토착화된 교회풍토의 창출 여부로 성패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
교회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시대적 요청에 상응하여 현실 초월적으로
영성적 생활을 열렬히 추구하는 한편,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 소외된 현실을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로서의 ‘사랑의 문화·문명’으로 변형시키고자 창의적 자세로 적극 투신할 때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