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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旅行 5박6일(2018.5.14.~5.19)
O.기간 : 2018.5.14.~5.19(5박6일)
O.여행지 : 오사카, 쿄토, 나라, 고베
O.참석자 : 6명 (촬스(신윤하)기린(김길순)흰구름(장옥기)
오뚜기(이영삼) 비한(한만희) 국화(이정자)
O.경비 : 70만원
첫째날 14일(월) 인천공항--오사카 칸사이공항)
오래오래 별러온 日本旅行
큐우슈우 후쿠오카 홋가이도 도톳리현 대마도등
가장자리 여행만 하던 우리 電光팀은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여
과거 오랜 기간 日本 古代 文化가 꽃 피웠던 곳
그래서 日本 사람들의 文化的 精神的 고향인
오사카 쿄토 나라 고베로 進擊하기로 했다
先鋒將은 역시 용감한 野蠻族 출신 촬스가 맡고
本陣은 기린 흰구름 오뚜기가 포진하고
後尾는 노련한(?)비한 국화가 맡았다
몇번의 여행으로 아끼코 미찌코상등
쟁쟁한 知人이 있어 가이드는 자신이 있단다
선봉장 촬스 가이드의 지시대로 우리는 준비를 했다
90만원의 巨金(?)을 송금하고
여행자 보험도 들고
일주일 전부터 지시에 따른 준비품을 챙기고
그리고 드디어 出征을 했다
2018.5 14(월) 10시 제1터미날 8번 게이트
밤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서둘러 도착하니 9시10분
아무도 없다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니 9시30분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선봉장 촬스다
이어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이 고개를 내민다
기린 흰구름 그리고 좀 늦게 오뚜기가 合流
說往說來속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선봉장 가이드의 지시대로 一絲不亂하게 움직인다
짐을 붙이고 첵크 게이트를 지나고
旅券을 확인받고 39번 게이트에 도착
14시 출발에 맞추어 搭乘하니 가이드가 손을 써서
자리도 제일 좋은 후미 39 A.B.C.D.E.F다
低價 航空이라 기대는 않했지만
역시 물 한컵이 다다. 冷水 먹고 정신 차리란다
이럴줄 알고 賢明한 흰구름이 준비한 피자와
不倒翁이 헐래벌래 준비한 바나나로
점심을 채웠기에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午睡를 즐겼다
즐김도 잠시 뜬지 1시간30분만에 간사이공항 到着을 알린다
여기서부터 아기돼지 5마리의 여행시작
가이드상 가는대로 시키는대로 졸졸졸
이런 생활이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이리 졸졸 저리 졸졸 그리 졸졸
왔다리 갔다리 웃다리 아래다리
이리허둥 저리허둥 이리기웃 저리기웃
우왕 좌왕 상왕 하왕
이리헛탕 저리헛탕 갈팡질팡
이런 우리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가이드상은 느긋하게 빙긋이 즐기는것 같기도 하고......
空港鐵道타고 電鐵타고 중간역 난바에서 바꾸어타고
도착지인 텐마바시(天滿橋)에 도착한 것은 5시경
처음 오는것 치고는 잘 찾아온 것 같기는 하다
묻고 물어 그리고 우왕좌왕 끝에 우리는 드디어
텐마바시역 3번출구로 나와 두리번 두리번 하다
바로옆 kaihan hotel를 발견하고는 歡呼聲을 올렸다
우리의 호프 용감한 가이드 辛상
후런트에가서 豫約을 확인하고 10%활인해준다는
문자룰 들이대고 돈깍아 달라고 하니
영문을 모르는 表情, 한창을 싱갱이하다
韓國으로 확인하니 예약금액이 할인금액이란다
총금액 150만원에 10%면 150,000원이라
割引金額 받으면 무얼사고 무얼 인심 쓰고 꿈이 컸는데
안됐다 꿈은 사라지고,.가이드상 의기소침 해지고......
1007(남학생). 1008(여학생). 1009 우리들의 아방궁(?)이란다
阿房宮의 꿈도 잠시 日本 호텔이 좁다 좁다 하지만
이건 너무 좁다 침대 2개 외는 혼자 다니기도 비좁다
그래도 자세히보니 있어야 할건 다있다 심지어 구두주걱까지
좁기는 化粧室도 마찬가지 전부해서 1평이 될까 말까다
저녁은 일본에 왔으니 日本式으로 해야 한다고
다시 전철타고 2정거장을 더가서 東梅田(히가지우메다)역에 내려
찾고 찾어 日本正食으로 거나하게(?) 저녁을 했다
저녁을 마치고는 갔다 왔다 하기를 몇번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렸다 하면서 돌아와
1007호에 모여 出征儀式을 가졌다
이름하여 31고지 점령의식 도 개 걸 윷 모로
돌격을 하고 먼저 점령자가 1등 3000원이다
나도 한번은 1등을 했고 돌아가면서 1등들을 해
끝나고 보니 모두들 일등을 한셈
그렇게해서 오사카의 첫날은 10시가 넘어서야 사요나라.....
둘째날 15일(화-스승의날)-쿄토(니조성,금각사-로쿠은지)
7시부터 제공되는 조식 부폐는 房과는 달리
푸짐하고 다양하다. 과일, 채소,고기, 빵, 떡, 각종음료, 밥,등등
설왕설래속에 조식을 마치고
8시 1층 로비에 모여 대장정을 시작했다
첫 날은 千年 古都 교토란다
그리고 對象地는 니조성
1603년 에도막부의 창시자이자 초대 쇼군인
도꾸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완성되어 이후 260년간
幕府政治의 중심지였던 니조성
1867년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니노마루 궁전 대형실에서
메이지 천황에게 정권을 반납하고 40명 藩主에게 알리면서
막부정권의 封建주의 정치에서 벗어나
메이지 정권의 근대정치가 시작된곳
二重의 垓字로 둘렀싸인 니조성은 韓國이나 中國궁궐과는
다른 군더더기 없는 實用的인 공간의 다다미방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일본의 庭園과 서양의 잔디정원이 잘 조화된 청류원
1750년 낙뇌로 소실된 6층 건물의 천수각 터
1893년 쿄토 북동쪽 가쓰라노미야 황족저택을 이축한 혼마루 궁전
1626년 고미즈노 天皇 행차를 맞아
조경가 조보리 엔슈가 개수한 니노마루 정원
33개의 방과 800개 이상의 다다미로 구성되고
소나무 호랑이 표범등 도꾸가와 가문의 위엄을 상징하는 니노마루궁전
2013년 복원공사로 복원된 곡선형태의 4개의 기둥으로 된 당문
외에 잘 정리되고 다듬어진 정원과 언제 어디서 힘센 사무라이가 나타날지 몰라 침입자를 경계하여 마당은 걸으면 바스락 소리가 날수밖에 없는 잔 자갈들이 깔려 있고 건물안 엮시 침입자의 발소리가 들리도록
마루로 되어있어 弱肉强食시대의 한면을 보는 것 같았다
수많은 방에는 한결같이 다다미가 깔려 있었는데 다다미둘레는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흰구름 왈 다다미방에는 4개의 등급이 있어 다다미테에 무늬가 있으면 특등급 단순 무늬면 1등급 무늬가 없으면 2등급 테가 없으면 3등급이란다 글쎄 다다미방에서 생활해 본 나로서 처음 듣는 학설(?)이라........
구경 구경을 하고 주성을 빠져 나와 외부로 나가는 길을 두고 설왕설래 왔다리 갔다리 하다 묻고 물어 버스정류장에 나와 금각사행 버스를 탄다 날씨는 그 이상 없을만큼 좋다. 쾌청한 하늘 시원한 공기, 우리는 버스를 타고 金閣寺로 향했다. 觀光地에서 이동하다 보면 많은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가다 보니 미LA에서 온 미국인을 만나 실없는 농담도 하고 재미난 이야기도 듣는다. 칼을 준비 했는냐고 묻기에 왜냐고 묻자 금각사는 금으로 되어 있으니 스크랫치 하면 돈을 벌수있다고 해서 그러면 같이 스크랫치 해서 돈을 벌자고 약속하고 차를 내렸다
버스를 내려 100m를 올라가 길을 건너 가기전부터 世界各地에서 온게 분명한 觀光客이 길을 메워 잠시 어리버리 하다간 일행을 잃기 딱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뚜기가 두리번 두리번 하기에 도와준다고 잠시 한 눈판사이 무심한 가이드가 어디론가 먼저 가버려 우리 둘은 迷兒 되어 사람들 틈에서 한참을 두리번 두리번 했다
觀光地에서의 일행을 잃었을 때 제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서있으라는 가이드의 嚴命(?)을 귀가 따갑게 들은지라 우리는 그대로 따라 무심히 서서 수없이 오가는 觀光客을 구경하고 있자니 가이드 辛상과 보조가이드 玉상이 나타나 핀잔주기 바쁘다 그리고 위원회에서 벌칙을 정했다며 가이드와 5m 이상 떨어지면 무조건 1000엔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며 우선 시범케이스로 오뚜기 보고 1000엔을 내라고 뜯어(?)간다
이게 社會主義 憲法(?)이란다 꼭 요즈음 누가 하는것과 똑같다
사회가 변한다고 우리도 변해야 되는 건지.....
1989년에 와보았던 金閣寺는 주위의 더 울창해진 숲과 湖水안 작은섬위에 孤高이 서있다. 3층 중 1층은 나무 건물임이 들어나는데 비해 2.,3층은 金色을 칠하여 더 貴風 스럽고 優雅하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金閣寺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라고 하며 임계종 소코쿠지파의 禪寺라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가마쿠라 시대에 “사이온지 긴츠네”의 別莊 “기타아마테이”있었는데 무로마치시대의 아사카가 3대 장군 “아사카가 요시미츠”가 아름다운 風光에 반하여 소유주인 사이온지 家門에 요청 1397년 사이온지 가문으로부터 물려 받아 “기타아마도노” 山莊으로 조성하였다고한다
킨가쿠를 중심으로 조성된 庭園과 건축물은 블교의 極樂淨土를 이세상에 표현했다고 하며 한때 “고코마치” 天皇을 초대하기도 하였다
요시미츠 사망후 遺言에 따라 “무소소세키”國師를 초대 주지로 모셨고 山莊은 요시미츠의 법호 로쿠인도노에서 두글자를 따 “로쿠온지”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1층은 寢殿 스타일이고 옻칠에 금박을 입힌 2층은 武家스타일 3층은 중국풍의 仙佛殿으로 무로마치 시대의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아름다음을 카메라에 담고 정원을 돌아 옆으로 가도 건물가까이는 갈수 없어 계획(?)했던 scraching은 물거품. LA에서 온친구는 scraching해서 돈좀 만들였으려나......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후면으로 가니 작은 폭포 와 여러 개의 기념품 판매소 所願을 비는 곳 등이 있어 어느 사찰이나 구경하고 이런 실 저런 구실을 만들어 돈을 쓰게끔 만든게 일본 사찰의 특색이다.
出口를 나와 식사집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우리나와 다른점이 너무많다. 우리나라 같으면 음식점이 끝이 없을텐데....
.하여튼 겨우 버스정거장에 딱하나 있는 우동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우리는 다음목적지인 淸水寺(기요미즈테라)로 향했다 89년에 분명 왔다 갔는데 가는 길이 낮 설다. 그때는 자동차로 이동을 했고 오늘은 도보로 찾아가다 보니 그런가 보다
동네 가운대에서 내려 내려오고 올라가는 관광객과 길가의 수많은 상점들을 기웃기웃 하면서 올라가기를 근 1시간, 아이스크림도 먹고 구경하는사이 시뻘건 사찰정문 넘어로 한참 보수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 청수사 입구에 도착했다
올라가면서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그리고 구경거리가 많다보니 일행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일행과 잠시 떨어졌다 일행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 사이 어느 틈엔가 보조 가이드가 달려와 벌금으로 1000엔을 내란다. 안내고 버터 보려니 옆에 붙어서서 恐喝脅迫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계속 쫓아 오면서 ”안내고 배기나 보자 안내고 배기나보자“ 하며 이유 설명은 필요 없고 무조건 내라니 앞으로의 보복(?)이 무서워 울며 겨자 먹기로 상납하였다 上納 받고 베시시 웃는 모습이 가이 逸品(?)이다. 앞으로 또 얼마를 뜯겨야 하나....
가만이 보니 辛가이드는 일꾼이고 實權은 보조가이드 玉상이 쥐고 있는게 共産黨 조직과 똑같다. 시대를 따라 가는건지......
淸水寺는 물이 맑은 절이라는 절로 교토가 도읍이 되기 전인 77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교토 시내의 동쪽 오토와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청수사라는 명칭은 이곳에 있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法相宗의 총본산으로 말사나 단가도 갖지않은 一宗一山一寺의 대본산이 특색이다. 창건이후 몇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에도시대 초기인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스의 명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장소로는 “십일면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본당과 절벽위에 10m나 돌출되어 축조한 거대한 목조 구조물(15m의 느티나무 기둥 149개로 지어졌고 못이 사용되지 않음)로 지어진“기요미즈”의 무대로 이곳에서는 교토시내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수 있다고 한다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가니 안은 관광객들로 와글와글. 한쪽에서는 한참 보수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 “기요미즈” 무대에서 교토시내를 감상하고는 뒤로 돌아가니 본당 앞에 “지슈진자(地主神社)라는 사랑점을 보는 돌 2개가 18m의 거리를 두고 서있는데 눈을 감고 한쪽돌에서 출발해 다른돌에 무사히 도착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와서인지 젊은 남녀들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팀의 두남녀가 시도한 것 같은데 욕심을 부릴사람이 부려야지......
淸水寺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앞의 것이 니온문(仁王門) 뒤의것이 니시문(西門)이 있는데 니온 문기둥에 귀를 기울이면 멀리 떨어진 기둥 근처에서 하는 소리도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기둥을 쓰다듬으면 귀가 좋아지고 좋은 소리만 듣는다는 傳說이 있다고 한다
기울어져 가는 해를 바라보며 내려오다 기모노 입은 아가씨들을 보고는 아끼코 상이라도 만난 듯 쫒아가 사진을 찍고 보니 대만 아가씨들이란다. 올라가며 보고 내려가며 봐도 기모노 입은 아가씨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했더니 기모노 대여 집에서 빌려 입은 사람들이었다.
올 떄와는 역으로 버스를 타고 교오토역에서 급행을 타고 텐마바시역에서 내려 다시 노리까이 해서 2정거장을 더가 요도야바시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 가보니 큰강(大川)이 흐르고 있다 제법 시원하다
퇴근 시간이라 길은 한결같이 검은 양복에 횐 샤스입은 직장인이 길을 메운다. 여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디 상가 집에 가는 복장이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더운 초 여름인데도 후쿠까지 있는 옛날 50~70년대 까지 우리가 입던 검은 상하의에 여학생들은 세라복에 긴양말까지 신었다. 1989년 우리가 文部省 초청으로 왔을때와 똑같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말도 못하게 변해 目不忍見이 되었는데....
대부분 엉덩이까지 올라간 여자들의 치마, 거기에 질세가 어린 여학생들 까지 미니 스커트에 머리 염색에 화장까지 하고 다니는 우리를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학생은 校服, 직장인은 社服으로 統一된 느낌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儉素하다. 이게 세계 2위의 경게대국 인가. 이러니 나라는 더 富强해지는게 아닌가 하여 우리의 너무 낭비적인과 비교가 되어 찹찹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근처 뒤골목 먹자골목으로 들어가 어느 집으로 갈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다 중국집으로 갔다. 일본에 와서 왠 중국집......
그러나 저러나 오늘 저녁은 특별한 저녁이 되었다. 한국 떠나몀서 계속 싱글벙글 입에 귀에 걸렸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나 싶었는데 경사중의 경사였다 흰구름의 손녀가 올해 仁川에 있는 국제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데다 미국 동부의 아이비 리그대학중 하나인 브라운 대학에 합격하였단다 그턱으로 오늘 저녁을 쏜단다. 희구름 친구왈 “아이비리그 대학과 브라운대학에 다 합격해서 좋겠다” 하고 축하 했다는데 이게 보통 경사인가.....
오늘 저녁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지. 한국 돌아가서 정식으로 축하연을 해야 되는게 아날까......
기린도 아들 황PD가 “뼈”라는 다큐를 만들었는데 보통수작이 아니어서 상영전부터 명성이 자자 하더니 일본 여행중 방영을 했는데 칭송이 보통이 아니어서 연일 입이 싱글 벙글이다. 지난번에도 히말라야 등반대의 포터의 생활을 기록한 다큐로 모든 상을 휩쓸더니 이번에도 예감이 좋단다
祝賀하고 祝賀宴을 기다리자. 祝賀宴을 기다리자 황PD 브라보!!!!!!!!
하여튼 두공주님들이 워낙 출중하신 분들이다 보니 자녀분들도 출중하고 평소 좋은 일 많이 하다 보니 福을 받는 모양이다.
돌아와 1007호에 모여 행정학 연수를 했고 오뚜기상이 우등상을 탔다
셋째날 수(5월16일)-나라(東大寺,法隆寺)
오늘은 나라(奈良)에 있는 동대사(도다이지사-東大寺)가 목적지. 약속대로 8시에 1층에 모여 텐마바스역으로 이동 지하철 타고 다음역인 다니마치규쵸메(谷町九丁目)에서 킨테스나라(近鐵奈良)선의 급행차를 타고 나라역에 도착했다
오늘 볼려는 東大寺는 743년에 건축된 세게 최대의 목조건물이고 世界最大의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 헤이안 시대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 받고 本堂인 金堂과 大門인 난다이문(南大門)등 8개의 國寶를 보유한 寺刹로 나라관광의 중심이다 특히 東大寺가 유명한 것은 大佛殿에 있는 15m의 청동불상(원래 있던 것이 소실되어 1/3로 축소 복원)이라든가 웅장한 목조건물보다는 사찰 주위에 방목되어 있는 수십마리의 꽃사슴으로 유명하다
킨데스나라역에서 내려 조금 걷자니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있는 興福寺 사찰을 잠간 들러 보고는 동대사로 향했다 10여분이 안되어 유명한 꽃사슴이 마중을 나와 인사를 한다. 꽃사슴의 숫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먹이파는 가게에 아주 붙어있다. 관광객들은 먹이를 사서 주며 사진찍느라 정신이 없고 눈이 초롱초롳한 꽃사슴은 그런 사람들을 하도 봐서 진력이 났는지 시쿤둥한 표정들로 가로 세로 앉아 있다. 진력이 나겠지 허구헌날 얄팍한 먹이로 유홋하여 쓰다듬고 안고 사진찍고 안달이니.....
싫증이 날만도 하지..우리라고 그냥 지나랴 가만히 앉아 있는놈 불러내 쓰다듬고 사진 찍고는 正門인 난다이문으로 입장하니 과거 거대한 목탑이 양쪽에 있었다는 잔디발 중앙통로를 걸어 우물가를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니 본당입구는 관광객들로 들어가기가 불편할 정도다 세계최대라는 청동 비로자나불이 있는 다이부쓰댄(大佛殿)를 좌로돌아 돌아가니 유치운 애들과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큰기둥 아래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이좁은 구멍을 통과하면 불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사람들이 열을지어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운 애들은 잘들 통과하는데 어른들이 통과하는 것은 무리같아 보이는데 우리의 용감한 오뚜기 흰구름이 기어이 통과를 했단다 앞으로 재수가 엄청 좋아 지겠지. 젊어도 지고 젊어지면 우리하고는 안놀려 들겠지........
저녁마다 행정학 연수를 하는데 아무래도 조심 해야겠다
보자기쓴 미이라도 보고 찬 우물물로 땀도 식이며 한참을 기다려서야 나온다. 구멍 통과 하는데 시간이 걸린 모양
동대사를 나와 걸어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春日大社신사를 구경하려 언덕길을 한참 걸었다. 길옆에는 신사를 위해 헌금한 사람들의 봉헌탑이 신사입구까지 늘어서 있다. 신사내부는 별것 없고 참배소가 있어 일부관광객은 참배소까지 올라가 소원을 빌고 내려 온다 우리의 辛상도 올라가던데 무얼 비셨는지....며느리 본다고 입이 귀에 걸렸던데 혼혈며느리 잘보게 해달라고 빌었겠지... 우리팀의 무사 歸國도 비셨을테고..
내려 오는길은 힘이 들어 결국 큰길에서 버스를 타고 킨데스나라역으로 갔다. 그리고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역근처 뒷골목 먹자골목을 헤메였으나 적당한 곳을 못찾아 헐수없이 근처 마트에가서 생선초밥도시락을 준비해 마트 입구의 간이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로 하고 쇼핑을 해 가지고 올라와 멱는데 의외로 가격에 비해 맜있다
하여튼 자유여행치고 알뜰하고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신가이드 때문일까 실권자인 옥상떄문일까?
점심후 열차를 타고 노리가이하고 노리가이하여 기린이 그렇게 가고 싶하는 호류지(法隆寺)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버스가 한시간에 한번이란다. 시간은 이미 4시를 넘어서 할수없이 꿈을 접고 되돌아왔다
호류지는 쇼토쿠태자의 발원으로 7세기초에 창건되어 670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7세기말에서 8세기초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는데 절은 금당과 5층목탑을 중심으로 한 西院伽藍과 유메도노(夢殿)를 중심으로 한 東院伽藍으로 구분된다 호류지에는 금당을 비롯한 55개동이 일본의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백제관음상등 국보로 지정된 불상만 650구에 이른다고 한다
1950년 法相宗에서 독립 聖德宗을 開宗하고 그 本山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호류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인 금당을 비롯해 5층목탑 불상, 불교공예품등 아스카시대(비조시대) 및 나라시대를 대표하는 다수의 불교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고대 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금당벽화는 고구려 담징의 작품이라고 한다
호류지는 고대 일본의 불교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오늘에 전하고 있는 불교 문화 유산의 보고이고 7세기 불교 문화의 번성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僧侶 및 匠人등의 渡來人이라는 점에서 고대 우리나라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도 큰도움이 될수있다는점에서
교통편 사정으로 가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돌아오면서 지하식당가에서 식사를 하고 늦어 그냥 잘만도 한데 오늘도 연수란다.
넷째날 목(5.17일)-고베(히메이지성. 有馬里 溫泉)
오늘은 고베(神戶)에 있는 히메이지성(姬路城)이 목표다
텐마바스--(케인한전철선)--요도야바시--우메다--한신우메다역--한신전차특급---산요히메지역
우메다역에서 한신특급을 타니 간만에 시원한 교외를 달린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일본 특유의 시가지가 계속된다. 도심에서는 고층건물을 볼수 있지만 교외로 나가면 특유의 불록으로된 단독 2층집들이 계속된다. 지진이 많은 나라라 우리나라 같은 아파트군은 보기 힘들고 아파트가 있어도 독립아파트다 그것도 띄엄 띄엄. 그렇다 보니 녹색보기가 힘들다. 좁은땅을 최데힌 이용하다 보니 빈땅이 거의 없다 심지어 기차길옆도 주택들로 게속 연결 되어있고 또 가장큰 툭색은 그렇게 바짝 기차길 옆에다 집들을 지었으면서도 어디에도 防音壁이 없다. 몇일을 다녔어도 防音壁을 발견할 수가 없다. 참 희안한 사람들이다
지진이 많아서인가 집들이 튼튼하게 지어졌고 어느 동네고 깨끗하다
좀더 나가자 조금씩 주택들 사이에 공터도 보이고 텃밭도 보인다. 어디든 깨끗하게 정리 되어있고 알뜰하게 이용하고 있는게 보인다.
강과 하천이 많고 그리고 수량이 풍부하다 비가 많은 나라라 그러려니 하지만 어디고 强雨 暴雨에 대비가 철저하다
중간 韓國의 장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21일 사람 사서 30000주의 묘목을 심기로 했는데 한국에 15일부터 폭우가 와서 논에 심은 묘목을 옴길수가 없어 작업이 불가능하단다. 5월에 왠 暴雨......
平地가 좁다 보니 왠만한 傾斜地에도 다 주택이 지어져 있다보니 골짜기는 물론 어지간한 언덕과 산까지 주택지로 이용되고 있어 그런면에서 우리나라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숲으로 둘러쌓인 아파트단지는 구경할 수가 없다 졸며 구경하다 보니 1시간여가 지났고 10시40분경 우리는 산요히메이역에 도착했다. 어디나 깔끔한 기차역 여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산뜻한 기분까지 든다
기차에서 내리니 이곳도 商街와 역이 같은 건물에 있다. 역을 나와 좌측 가로수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넓은 步道 따라 20여분 지나니 저 앞에 하얀 히메지성이 날아갈 듯이 다가온다
히메지성은 효고현 히메지시에 있는 40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에서 現存하는 성중에서 創建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성이고 하얀 회반죽의 우아한 모습이 날아오르는 白鷺에 비유되어 白鷺성이라고 불리우며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중심건물인 대천수는 외부5층 내부는 7층 건물로 속은 미로로 연결되어 있다. 1580한때 도요토미 히대요시가 머무르기도 했다.
오래만에 보는 푸른산 넓은 잔디밭에 눈이 시원하다. 도로를 건너 正門인 오태문을 지나자 넓은 잔디밭이 나온다 삼나무 및 시원한 의자에 앉아 준비한 간식을 즐기고 닭우는 소리 까마귀소리를 듣는다.. 표를 사고 히시노문을 통과하자 날아갈듯안 대천수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5층건물인 대천수에서 신발을 벗어 보관하고는 대천수안으로 들어가니 미로와 급경사의 계단이 층과층을 잇고 각층은 마루로 되어 있고 돌아가면서 돌수 있도록 이 城의 歷史등이 층마다 전시되어 있다
돌아가며 나있는 작은창으로 멀리 시가지가 보이고 시원한 바람은 떠나기가 싫다 지하1층까지 7층으로 되어있는 내부를 다구경하고 나니 매번 사진으로만 보고 상상했던 일본 성과 천수각 같은 건물을 다 본기분이 상쾌하다
밖으로 나오니 낮온도가 올라가 더위가 예상되니 조심하라는 우리말 안내가 나온다. 별로 더운 것 같지는 않은데.....
12시가 넘고 1시 반이 다가온다. 우리는 어제 나라 마트에서 산초밥 생각이 나서 역아래에 있는 마트로 가 도시락을 사 1층 로비에 있는 테이블로 모였다. 그런데 종류가 달라서인가 맛은 어제만 못하다
다음 行先地로는 서울서부터 벼르고 온 溫泉浴을 가기로 하고 有馬里(아리마)로 향했다 신가이치(新開地)역에서 아리마선으로 갈아타니 기차는 산골로 산골로 들어간다..江原道 산골은 양반이다. 疊疊山中이란 이런곳을 말하나 보다. 가다보면 조그만 골짜기가 나오고 거기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만들어 졌고 집들이 좁은골짜기고 가파른 언덕 아닌 산지 막론하고 階段을 만들어 덕지덕지 지어져 있다. 그리고 그마을 입구에 전철역이 있고.....
저기 사는 사람들 과거에는 무얼 먹고 살았을까. 우리 江原道 같은 경우는 老年期 地形이라 곳곳에 평평한 완경사가 이어져 있어 火田이라도 해서 살수 있었는데 일본땅은 幼年期 지형이라 대부분 급경사라 완만한 구릉지롤 거의 보기 힘들다. 과거 힘들게 살었을 民草들의 삶이 상상이 간다. 열차는 계속 골짜기를 돌고 돌아 역마다 서서는 내리고 태우는데 下行車라 그런지 타는 손님 보다는 내리는 乘客이 많다
종점이 산다(三田)인 산다선 열차는 돌구돌아 아리마구지(有馬口)에서내리니 건녀편에 아리마가는 2칸 짜리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옮겨타자 열차는 출발, 1정거장 가니 거기가 終着驛인 아리마역이다
疊疊山中인데 제법 큰 골짜기가 발달해 있고 골짜기 따라 觀光호텔등과 溫泉들이 열을 지어 있다. 벌써 4시가 넘었다 역을 나와 商街가 들비한 좁은 차도를 올라가니 水量이 제법많은 개울이 흐르고 거기에 太閤橋다리가 놓여있다. 토요토비 히데요시를 기념하여 놓은 다리인가 보다 히데요시등 역대 藩主들이 사용했다는 金의湯을 길눈밝고 찾는데는 귀신인 辛가이드가 유창한(?) 일본어로 묻고물어 太閤橋에서 머지않은 큰길에서 한집뒤 골목 언덕위에서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올렸다. 입장료가 韓國大衆湯과 비슷한 650엔, 시설도 한국과 비슷하다. 5시 입장이니 6시까지면 될 것 같은데 고집스런 우리 가이드상은 6시 30분까지란다
6시24분 기차가 있던데.....그리고 길도 멀어 돌아가면 10시가 넘을 것 같은데.....그래 이곳을 언제 또오겠는가 그리고 이곳이 일본 3대 온천중의 하나라는데.....이층으로 올라가 입장하니 名聲에 비해 손님이 많지 않다 열대 여섯명. 물이 聞慶 溫泉에서 보았던 철분 온천이라 붉다. 온탕은 42도 44도짜리 2개다 西洋人도 몇 명 보이고 辛가이드와 오뚜기가 제 세상 만났다. 어렵쑈 30분도 안되어 오뚜기가 나가 버린다 체질에 않맞나....온거리가 아까워 나와 辛가이드는 시간을 다채웠다. 6시30분이 넘어 나와서는 근처에 있는 히데요시의 애인 네네교위의 네네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좁은 개울인데도 巖盤위로 맑은 물이 꽐꽐흐르는 네네천으로 내려가 세월을 낚는다. 19시24분 열차를 타고 한정거장인 아리마구치역에 내리니 산다에서 온 열차가 건너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역으로 신카이치역에서 노리가이를 하여 오사카역에 到着 역 지하식당으로들어 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자리가 없어 나누어 앉아 식사를 하려니 옆에 앉은 男女가 연신 담배를 피어댄다 한국에서는 왠만한 식당에서는 吸煙이 안되는데. 예외다.. 할수 없이 자리를 옴겨앉아 식사를 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9시30분 생각보다 빨리 왔다
오늘은 行政學 연수 생략. 먼거리에다 온천까지 하고 와서인지 피곤하다
다섯째날 금(5.18일)-(오사카성,수상버스, 도톤버리)
오늘의 공격목표는 오사카성이다 오사카성은 호텔 나서면 바로 보이는 코앞이라 느즈막히 9시 넘어 나섰다 오늘도 쾌청하다
오사카성은
1496년 佛敎의 한종파인 정토진종 롄뇨상인(蓮如上人)이 지금의 오사카성 부근에 坊舍를 지었고 이것이 아시야마 혼간지(本願寺)라는 큰 寺院으로 발전하여 이 지역에 강대한 세력을 떨친다. 그러나 1580년 天下統一을 목표로 하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屈伏하면서 주위 市街地와 함께 소실되고 만다.그후 政治의 주도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 혼간지 절터에 오사카성을 쌓아 完成했으나 1615년 새로운 실력자 도쿠가와에게 패하면서 주인이 바뀌고 오사카성은 도쿠가와의 2대 장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에 의해 1620년부터 10년간 전면 재축되었다 1665년 낙뢰로 천수각이 燒失되었으나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막부의 서일본 지배 거점 役割을 다하였다. 1868년 幕府가 멸망하고 내전으로 많은 建物이 소실되었으며 近代에는 軍事施設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의 천수각은 1931년 오사카시민들의 獻金으로 復元되었으며 2차대전때는 폭격으로 많은 被害가 있었으나 전후 다시 復舊되어 史蹟公園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숙소에서 나와 이웃에 있는 오사카 시청 별관 앞을 지나 20여분후에 垓字에 도착했다.폭이 최대 70m나 된다는 垓字를 끼고 좌로돌아 입구인 다리를 거쳐 성안으로 들어서니 성안에는 內垓字가 鐵甕城의 城과 천수각을 둘러 싸고 있다.
성에 얽힌 역사를 膾炙하면서 좌로돌아 입구에 도착했다 2중 垓字를 통과해 남측광장에 가니 적지 않은 관광객이 제법 큰 광장에 가득하다
한국에서 온 고등학생들도 있다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나 35m 높이의 5층건물의 3층까지는 원하면 엘리베이터로 올라갈수 있다 원래는 목조건물이었으나 재건축하면서 시멘트 건물이 되었다. 3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고 4,5층은 걸어서 다양한 구경거리를 구경하면서 올라갔다 성의 역사를 인형, 동영상등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이성을 제일먼저 축성한 히데요시와 관련된 전시물이 상당히 많다. 시간상 대강 흘터보고 5층에 올라 창틈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사카 시내를 관망하는맛이 일품이다. 임진왜란을 일으켜 수많은 우리 조상을 죽이고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히데요시가 이성을 쌓았고 훌륭한 인물로 묘사해놓은걸 보니 기분은 별로다. 찹찹한 기분으로 천수각을 내려와 다시 들어왔던 뒤로 돌아가 내성벽위에서 수십길 푸른물이 넘실대는 內垓字를 바라보자니 배를 타고 이곳을 기어오르며 공격하다 않되자 거짓 평화조약을 맺고 垓字를 흙으로 메우고는 바로 공격해 성을 점령해버리고 신의를 안지킨다 나무라자 적의 말을 곶이 듣고 방어를 소홀히한 장수는 죽어 마땅하다고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화가 생각나고 그때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가슴아프다
오사카성을 나와 한참을 걸어 江가로 가 水上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수상버스 탑승객이 많지 않다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가서 강가를 걷다 우연히 수상버스라는 간판을 보고 한 말이 씨가 되어 타러 나왔는데 수상버스라고 해서 TV에 보도된 육상 수상겸용버스로 생각을 했는데 나중 타고 보니 유람선이다. 유람선에서 보는 오사카 경치가 색다르다
높은 건물군들 틈에 있는 장미원이 인상적이다 온갖 장미가 제철을 만나 한창이다 30여분을 타고 즐기는 사이 우리는 도심 지하철역 근처 하선장에서 내려졌고 내리고 보니 우리 호텔에서 가까운 덴마바시역이라 우리는 이왕이면 매일 우리가 고맙게 즐기고 있는 호텔 지하식당으로 찾아 갔다 아침식사가 하도 좋아 갔는데 점심은 그저 그렇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도톤버리(道頓堀)로 향했다
도톤버리(道頓堀)는 난카이센 난바역과 신사아바시역 중간정도에 위치한 가지각색의 음식점 기념품가게등이 밀집되어있는 관광명소로 유명하다하여 우리도 기념품도 사고 다른곳에서 살 수 없는 물건들을 사고 싶어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려 올라가니 과연 듣던대로 다양한 상가 음식점들이 사방팔방으로 밀집되어 있고 과거 물자 수송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청계천 정도의 하천은 풍부한 수량을 이용 유람선이 승객을 가득 가득테우고 오르락 내리락 한다. 마침 한국서부터 살려고 한 핸드폰을 사기위해 5층짜리 기념품가게을 들어서니 온갖상품들이 진열된게 상상을 불허한다. 종류별로 없는게 없는 것 같은데 막상 내가 살려는 상품을 찾아보니 없다. 신가이드도 친구가 부탁한 화장품을 찾는데 실패하고 흰구름 기린 우리국화씨도 물건 고르기 바쁘다 산물건은 여권보여주고 세금돌려 받고는 여기 기웃 저기 기웃대다 뒤쪽 골목으로 가니 사람이 밀려다닌다.
횐구름이 못산 몰건 사러 백화점 찾아 간다기에 우리는 마침근처에 있는 친숙한 롯데리아 상호가 눈에띄어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 시켜놓고 2층에 죽치고 앉아 오래만에 한가로이 구경을 즐겼다.
온갖 종류의 인종이 오고 가는데 한국사람등은 눈에띄게 무언가 다르다 특히 한국 아줌마는 어디가든 특색있는 옷차림 행동을 한다.
한시간이면 된다는 것이 주가이드와 보조 가이드간의 소통부족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등 이사정 저사정으로 두시간이 늦어져 5시가 넘어서 출발한다 보통 국민인 우리가 그랬으면 당장 벌금 통지서가 날라 올탠데 요즘 세태가 그렇다 보니 내로남불이다 權力이 좋긴 좋다
그런데도 그들을 稱頌하고 龍飛御天歌를 부르는 것은 權力濫用(?)은 있어도 淸廉潔白하고 分配가 公正하다. 이번 여행 경비만 하드라도 5박6일에 90만원이면 실비고 그래서 꼬셔서 여행오게 하고는 현지에서 경비 부족하다고 더내놓으라고 공갈(?)칠줄 알았는데 어렵쇼 둘째날 10만원을 돌려 주면서 사고 싶은거 있으면 사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사멱으란다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저 獨裁者들이 무언가 일을 꾸미는게 분명해. 그런데 어렵쇼 오늘 또 10만원을 준댄다 말만 그러겠지 했더니 정말 준다. 마지막 날 우리를 마늘 가게에 팔아 넘기기전 최후의 晩餐用인가???? 하여튼 기분이 나쁠리는 없지만 뭔가 찜찜하다. 워낙 수가 높은 사람들이라.....실력자는 좌파 위원회에서는 항상 정가이드가 아니고 부가이드니까 그 앞에서는 항상 조심해야지...
우리는 기분 좋게 돌아왔고 이제는 익숙한 우리들의 역 텐마바시에 도착하자 내려 지하역 상가의 식당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돌아와 우리의 우의를 다지는 연수를 가지기 위해 1008호에 모여 행정학연수를 시작했고 그간 열심히 공부한 노력의 결과 내가 장학금을 받았다 맥주를 부상으로 받았다
여섯째날 토(5.19일)-(산책, 귀국)
오늘이 마지막날 귀국하는날이다
매일 아침이면 의례 먹었던 아침 부패가 더 맜있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구르트 잼 과일 그리고 다양하고 많지는 않지만 그런데로 먹을 만한채소 소세지 생선 삶은 요리들 5~7종류의 빵과 떡 양과들 그리고 국수와 잡곡밥과 횐쌀밥등 깨끗하면서도 정갈하게 꾸며져 우리들의 사랑을 받었는데 이부패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쉽다. 과일과 커피를 들면서 우리는 그간 정들었던 테이블 의자들과 음식 차림대를 다시 한번 눈여겨 보았다. 언제 또 올수 있을까?
신가이드가 몇 달을 노력한 결과로 호텔도 위치 좋은곳으로 정했고 저렴한 가격으로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게 되어 그저 고마을 뿐이다 가끔 독재(?)를 하고 이이꼬상, 미치꼬상들을 너무 좋아하는게 탈이지만....
아침을 느긋이 마치고 오전 散步는 코앞에 보이는 오사카성을 한바퀴 둘러 보기로 하고 어제와는 달리 垓字을 만나자 오른쪽으로 돌아 오사카성 앞마당으로 향했다 느티나무 소나무등 우리와 별로 다른게 없은 나무들사이로 걷다가 垓字를 건너는 다리를 건너니 오시카서벽중 단일 돌로는 제일큰 넓적돌이 전면에서 우리를 맞는다 다다미 몇십장 넓이의 저돌을 어떻게 움겨왔을까 하고 의문을 했는데 알고 보니 얇고 넓은 돌을 앞에 세우고 뒤는 잔돌로 채웠다고 한다. 오늘도 여전히 관광객들로 소란스럽다 유난히 중국말이 많이 들이는 것을 보니 중국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성은 어제 봤기에 어제 넘어왔던 북쪽출구로 나와 해자 연결 다리를 건너 梅田으로 갔다 매실 나무를 분재하듯이 가꾼게 인상적이다. 열매는 벌써 수확을 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어제와는 역코스로 호텔로 돌아와 11시 CHECK OUT를 하고 나서니 뒤가 다시 돌아봐 진다.
헌신적인 신가이드 아니 辛가이드상 아니 가이드 윤사마 덕분에 실비로 재미있게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오사카. 쿄토 나라 고베 지역을 구경할수 있었던 것을 그저 고맙게 생각하여, 오면서 辛가이드를 辛가이드상에서 가이드윤사마로 부르기로 의결(?)했다
올때와는 코스로 다니마치큐초에서 노리가이를 하고 다시 난바에서 칸사이 急行을 타고 칸사이 空港으로 향했다. 올떄처럼 오늘도 날씨는 상쾌하고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하늘이 더없이 정겹다 이제는 눈에 익은 2층단독 주택단지와 띄엄 띄엄 군데 군데 있는 독립아파트가 있는 일본 시가지 모습이 첫날처럼 낯설지가 않다. 모두들 아쉬운 표정들이다
특히 가이드윤사마가 더 아쉽겠지. 몇 달을 준비하여 무사이 마치었으니 感懷가 남다르리라 12시가 넘어서 복작복잡하는 空港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 후에야 우리는 눈에 익은 T-way항공사 후런트에 섰다 商標가 반갑고 韓國人의 表情과 말이 반갑다 짐을 붙이고 1층으로 내려가 호텔앞 마트에서 준비해온 샌드위치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마트 샌드위치 샌드위치 노래를 하더니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마지막 까지 알뜰하게 끝마무리를 한 횐구름에게 讚辭를 보내고 싶다
14시 20분에 칸사이 空港을 出發한 비행기는 16시에 仁川空港에 사뿐이 내려 않는다 낮익은 우리 空港 깨끗하고 여유 있는 우리 仁川空港이 더한층 자랑스럽다.
入國 수속을 하고 出口을 빠져 나와 혜어짐이 아쉬워 空港1층 식당에서 여행내내 고맙게 해주신것에 감사하는 인사로 菊花씨가 쥬꾸미삼겹살로 저녁를 내어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제일 수고 한사람은 뭐니 해도 가이드윤사마고 이 마음씨만 좋았지 야물지 못한 가이드를 도와 모든일을 꺌끔하게 처리하고 틈틈이 윗트와 유모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 副가이드,겸 補助 가이드 횐구름에게 또한 공을 돌리고 싶다. 그리고 여행내내 흰구름의 날카로운 화살을 잘막아 우리를 보호해 주고 떄로는 강번치로 有口無言게 하는 항상웃는 寸鐵殺人 필살기를 가진 기린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또한 항상 여유와 웃음으로 우리를 폰근하게 해준 不倒翁 오뚜기에게도 우리 부부의 감사를 전한다 헤여지고 나면 또 아쉽겠지
또 이런 기회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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