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고통과 슬픔에 찬 주인공들의 반생을 더듬어본 독자들은 마지막으로 깨닫게 된다. 보잘 것 없는 사소한 평온이, 미풍이 불기만 해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행복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소중한 것을. 곤경에 처한 인간의 마음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작가가 던진 추상같은 메시지, 그 밑바닥에 숨 쉬고 있는 따스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접함으로써 우리는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다.
--- 오토카와 유자부로(乙川優三郞)의『살다』, 이길진의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산행일시 : 2007년 6월 2일(토), 맑음, 거의 염천
▶ 산행인원 : 11명(대장직무대행 한메, 이박사, 산진이, 안트공, 산정무한, 메아리, 영희언니, 백미, 산아, 신가이버, 하늘재)
▶ 산행시간 : 12시간 45분(휴식과 점심식사시간 모두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약 16㎞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35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4 : 05 ~ 04 : 55 - 정선군 임계면 낙천리 사을기(樂川里 寺乙基)마을, 산행시작
05 : 40 - ×827m봉
06 : 35 - 십자안부
07 : 10 - ×841m봉
07 : 30 - 십자안부
07 : 40 - △863.0m봉
08 : 50 - 자후산(自後山, ×904m)
09 : 25 - ×1,068m봉
10 : 45 ~ 11 : 30 - 하일동(下日洞), 점심식사(45분 소요)
12 : 15 - 능선 분기봉 진입
12 : 30 - 850m봉
12 : 50 - △903.9m봉
14 : 07 - 배재(梨峙)
15 : 30 - 고양산(高陽山, △1,152.4m)
15 : 55 - ×1,054m봉
17 : 00 - ×812m봉
17 : 12 - ├자 분기봉
17 : 40 - 정선군 임계면 고양리 고양교, 산행종료
22 : 20 - 동서울 강변역 도착
▶ 자후산(自後山, ×904m)
호박잎만한 곰취는 어떻게 먹는가? 곰취 잎 뒷면에는 울근불근한 잎맥(葉脈)이 산맥처럼 무수히 뻗어있다. 산행에서는 흔히 내려올 때 길을 잘못 드는 수가 많고, 오를 때에는 지능선은 주능선으로 주능선은 정상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길을 좀처럼 잘못 들기 어렵다. 그저 위로만 오르면 된다. 즉, 큰 곰취는 엽신(葉身)을 잎자루에서부터 찢는 것이 아니라 거치상(鋸齒狀)인 잎 가장자리에서 엽신을 조절하여 잎맥을 따라 잎자루 쪽으로 찢어나가면 원하는 크기만큼 쉽게 얻을 수 있다.
사을기(寺乙基) 가는 길, 대장직무대행 한메님이 버스 조수석에 앉아 불침번 근무하는 덕으로 곤히 잔다. 삽당령(揷唐嶺)을 넘어 대처인 임계에서 송원동으로 방향 틀고 교통표지 따라 구미동 옆 사을기교를 건넌다. 가로등도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골지천(骨只川) 지류를 거슬러 오르다 산기슭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멈춘다.
우리가 명색이 사다리인데 가랭이산(574m)에서 시작하여 단봉산(670m)을 넘어오자는 주장이 강력했지만(특히 신가이버님), ‘낙천리’ 글자에 가린 ×827m봉의 등고선이 워낙 촘촘하다는 이유를 들어 어렵게 물리고 사을기 마을 위의 느슨한 능선을 택한다. 구미정(九美亭)를 지척에 두고도 이를 탐미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구미란 이곳의 9가지 뛰어난 풍치, 곧 어량(漁梁), 전주(田疇), 반서(盤嶼), 층대(層臺), 석지(石池), 평암(平岩), 등담(燈潭), 취벽(翠壁), 열수(列峀) 등을 말한다고 한다.
산기슭 아래 도로 한편에서 간단히 취사하고는 갓 심은 옥수수 밭두렁을 줄지어 지난다. 비탈진 참취 밭을 가로지르고 잡목 무성한 사면을 오른다. 주능선 근처에는 산짐승의 내습을 막고자 그물을 길게 쳤다. 그물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여 넘는다. 능선에 들어도 인적이 드물다. 가시덤불과 잡목을 헤쳐 나아간다. 간벌하여 아무렇게나 버려둔 나뭇가지는 풀숲의 덫으로 있어 열 걸음이 멀다하고 걸려 넘어질 뻔 한다.
안개 속에 묻히고 경사 급한 사면을 뻐꾸기 울음소리 장단에 발맞춰가며 오른다. 새벽을 도와 산을 오르는 뜻은 만학천봉의 장려한 이른 아침을 엿보자는 것인데 이렇듯 사방이 나무숲에 가리고 넘어지지나 않을까 내 발밑 일에만 치중하게 되니 평소 적덕(積德)이 부족해서일 게다. 안개를 뚫고 머리 내밀자 골지천 가득 메운 운해가 그나마 맛보기다. 취벽(翠壁), 열수(列峀)를 본다.
임계천(臨溪川)은 어떠할까. 맘 조급하여 잰걸음으로 ×827m봉을 오른다. 웬걸, 울창한 적송이 하늘까지 가린다. 산불감시초소가 정상에 자리잡고 있지만 조망이 막혀 제 역할할지 의문이다. 내내 그런 길이다. 자후산에 얼른 가서 곰취나 뜯자하고 쭉쭉 나아간다. ×850m봉, ×846m봉을 한달음으로 넘고, 미락재 지나 △884.9m봉을 왼쪽 산허리 길게 돌아 넘는다.
△884.9m봉을 내린 십자안부에서 인원점검하고 자후산의 너른 북사면 훑어낼 모의한다. 그러고는 선점할 욕심으로 스틱 휘어져라 멀리 짚으며 잔산등성이 부리나케 넘는다. 사계청소(射界淸掃)한 것처럼 나무숲 밀어낸 △863.0m봉이다. 삼각점(77.6 건설부, 406 재설)을 확인하고, 비로소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자후산으로 향한다.
성급했다. 미리 사면으로 빠졌다. 작정한 걸음, 골(谷)을 겁내랴. 곰취 찾는다고 지계곡 건너고 너덜 질러 사면을 훑다가 자후산 전위봉에서 북쪽으로 뻗어가는 지능선으로 잘못 간다. 갑자기 주위 소연(蕭然)하고 적막감이 들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트래버스 하기에는 너무 가파르다. 헉헉대며 산등성이 오르고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곰취도 해걸이를 하는가보다. 작년 이맘때는 주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오늘은 겨우 체면치레한다. 관중(貫中), 박새를 철(徹)한 눈길에 애먼 더덕이 횡액을 당한다. 자후산을 크게 돌아 ×1,068m봉 직전 안부에서 모두 모인다. 하늘재님과 신가이버님은 한 움큼씩 곰취 들고 나타난다. 큰 잎은 호박잎만하다. 모자로 머리에 써본다. 대두(大頭) 다 덮는다.
한메님은 방향 없이 튀는 일행을 부르고 쫓아 교통정리 하느라 바쁘다. 이박사님은 백미님에게 풀숲에서 더덕을 가려내는 요령을 가르쳐주었으나 정작 본인은 잊은 모양이다. 출어람인가. 이박사님이 어쩌다 찾아냈어도 도로 심어 놓아야할 을 새끼이거나 하필이면 돌 틈이나 나무뿌리 틈에 끼어있어 번번이 도로(徒勞)다.
▶ 고양산(高陽山, △1,152.4m)
×1,068m봉은 ┣자 능선 분기봉이다. 직진은 문래산(文來山, 1,081.5m), 우리는 사면을 대각선으로 쭈욱 그어 오른쪽 능선에 붙고 Y자 분기봉인 ×959m봉에서는 왼쪽 사면을 뚫어 자연스레 하일동을 향한다. 모처럼 손맛 본다. 곰취가 하나같이 크다. 하일동 즈음한 산기슭은 헤쳐 나가기 버거운 울창한 솔밭이다. 그러나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떨어진다.
즐거운 식사시간이다. 조팝나무는 가지마다 꽃 무게 못 이겨 늘어지고 나무그늘 드리운 도로변에 둘러앉는다. 복분자주 반주 곁들인 곰취쌈에 양 볼이 미어진다. 아, 내 생각의 짧음이어! 잠깐의 춘흥을 즐기고자 길고 긴 시간의 고역을 담보했다. 도리뱅뱅이 노는 계류 내려다보고 알탕 그리며 소라골 입구까지 도로 따라 걷는 것은 좋았다. 농가 옆 배추밭을 지나서 맥 놓은 능선에 붙는다.
인적 끊긴지 오래다. 앞뒤 안전거리 유지하면서 엎드리거나 고개 숙이고 오른다. 달작 지근하던 복분자주를 욕심부려 마신 탓에 다리 힘 풀려 게걸음을 걷는다. 어느덧 성하(盛夏)다. 땀을 비 오듯 흘린다. 굵은 잡석 깔린 된비알이 나타난다. 잡을 데가 마땅치 않다. 낙석! 외침과 돌 구르는 소리에 긴장한다.
소라골로 뻗어 내린 능선 분기봉에 이르자 가파름이 다소 수그러든다. 의외로 혼겁했다며 퍼질러 앉아 얼음물로 목 추긴다. 봉봉(峰峰) 내림은 짧고 오름은 길다. 850m봉에서 바라보는 △903.9m봉이 돌올하다. 그 기세에 그만 움찔한다. 고개 푹 숙이고 간다. 덤불 무성한 △903.9m봉에는 방향표시만 남은 삼각점과 인식표가 있다.
당분간 평탄하게 진행한다. 솔솔 바람 맞으며 광활한 초원을 지나기도 한다. ×826m봉, ×870m봉을 주저없이 넘고, 그야말로 하늘이 보이지 않고 볕뉘조차 들지 않는 울울한 숲길을 간다. 여태 뜸하던 인적은 배재(梨峙)가 가까워지자 뻔질 난다. 고개인데도 오른다. ┬자 능선 갈림길이 배재다. 주위 나무들을 베어내서 조망이 좋다. 왼쪽 길은 문래산으로 간다. 그에 이르느라 거친 파고로 출렁대는 연릉이 장쾌하다.
주등로는 산허리 왼쪽으로 휘어드는데 우리는 일직선으로 오른다. 꽤 가파르다. 고도계로 1,050m쯤 된다고 한다. 자유산행이 시작된다. 벼르던 산나물 찾아 맘대로 가는 것이다. 고양산 정상 지나 ×1,054m봉 직전 안부에서 모이자고 한다. 흩어진다. 나는 안트공님 따라 북동쪽 사면을 훑는다. 몇 걸음 해보면 됨새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곰취는 없다. 누군가 먼저 뜯어간 것이 아니라 원래 없다.
사세가 불리한 것을 깨달았으면 바로 되돌아서 곱게 가는 것이 온당한데도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하게 막 간다.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는 속담이 내게는 무디다. 거의 한 시간을 괜히 헤맨다. 큰앵초, 졸방제비꽃, 홀아비꽃대, 관중, 떡취는 저리도 많은데 도대체 곰취는 없다.
암벽 밑을 돌고 너덜 다래넝쿨을 뚫는다. 협곡을 기어올라 고양산 정상 지난 헬기장으로 솟았다가 다시 남쪽 사면을 누빈다. 더 해볼 만한 데가 없어 돌 던진다. 졌다. 약속장소인 ×1,054m봉 직전 안부에 간다. 모두 빈손이다. 그렇다고 산마저 잃을 순 없다. 이제부터라도 산에 가자고 늦부지런 떤다.
▶ 하산, 임계면 고양리 고양교
길 좋다. ×1,054m봉을 넘고 뚝 떨어지는 내림 길, 탁 트인 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찍느라 잠시 주춤하는 사이 다 서둘러 가고 뒤처졌는데 듣던 중 반가운 옥음(玉音)이 들려온다. 직대님이 다급하다. 빼애~액! 길을 잘못 들었다. 반론산, 염장봉 가는 길로 들었다. 사진 찍는다고 언제나 늦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선두 된다. ×1,054m봉에 다시 올라 자세히 살피니 오른쪽으로 얕은 능선이 암릉 뒤에 숨어있다.
길 없는 길, 우리 길이다. 억센 잡목 젖히자 절벽이 드러난다. 연이은 절벽이다. 층층바위에서는 엉덩이 밀치다가 좁은 테라스에서는 돌아서서 바위 모서리 잡고 내린다. 안부에 이를 때까지 잔재미 본다. 왼쪽 사면은 단애. 회양목(黃楊)이 밀생한 암봉이다. 회양목이 자생하는 것으로 보아 험준한 지세다. 단애 위에 선다. 반론산이 웅장하다. 재작년 여름날 저기를 올랐다는 것이 큰 자랑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2시간이 넘어선다. 당초 계획했던 면계(面界) 따라 골지천 닿은 삼거리식당으로 하산하기는 무리. ×812m봉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자 분기봉에서 오른쪽 지능선으로 꺾는다.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반갑다. 지계곡 건너고 개망초 무성한 묵밭을 지나 마을에 다다른다.
마침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마을 이름을 물었더니 임계면 고양리라고 한다. 저 고양산 넘어서 북면에도 고양리가 있다고 덧붙인다. 약간 부은 듯 뭉툭한 강원도 토박이 억양을 쉽게 알아듣지 못하여 거듭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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