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미술행정-전주문화재단 이사장 장명수 인터뷰
인터뷰│김명숙 편집팀장(미술사)
Q. 전주문화재단이 정치와 영향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A. 그런 것은 전혀 없는데 기사에 나온 것에 의하면 전주문화재단이 생기기 전에 기금을 얼마를 모았냐하는 것에 기사를 썼다고 해요. 행정가들이 말하는 것에 말들이 많았답니다. 재단을 발족한 다음부터는 일단 그런 지적들은 없어졌어요. 이 문화재단의 출발이 문화재 진흥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전주시에서 투자했던 많은 문화시설들, 예총 문화원 등이 방만해 있는 것을 효율적으로 운영을 하기 위해 꼭지 점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문화재단이야기가 거론되었었는데 각 시설들에서 자극이 되어서 자기들은 밥자리가 없어 진다하는 위기의식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민예총이 반대를 하기 시작해서 마치 정치적이 것처럼 되어 보았죠. 정치적인 영향은 거의 받지 않습니다.
Q. 전주문화로 대내외적으로 내 놓을 수 있는 독특한 부분 특히 미술 분야에 있어서는 굉장히 취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가지고 전주문화를 발전을 꾀할 생각이지요?
A. 사실은 말이죠,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과 같이 발표 지면을 가져야 할 것, 공연적인 무대를 가져야 할 것들 등의 발표장이 없었죠. 전주만이 아니고 각 지방의 공통적인 문제겠죠. 서울만 다이렉트로 올라가고 있는 바람에 문학계에선 시인 안동현, 권영택, 미술계에선 유휴열씨와 대학에 있는 몇 사람 빼놓고는 완전한 황무지이지요. 가령 판소리 같은 경우는 과거의 기생문화가 있을 땐 이어갔었는데 이것이 이제 고귀한 문화가 되려니 모두 떠났죠.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으로 보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돼요.
문화재단이 굉장한 돈이 많아서 창작, 발전에 지원을 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재원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처음 발족하면서부터 조직과 기관을 운영하고 약간의 행사비 외에는 전혀 없거든요. 원래 시설을 맡기려고 했던 시행정가들과 문화진흥을 생각을 했던 시장사이에서의 엇박자로 출발한데다가 창작지원이라든가 또는 기타 문화 지원을 할 생각을 가졌었는데 의회에서 반대를 한 거예요. 예총에서 계속 반대를 하니 위에서 결정을 못 내린 것이죠. 의회에서는 어떤 트집을 잡기 시작했냐하면 방만한 기구가 많고 행사가 많으니 신규를 하지 말자 했는데 무슨 문화재단을 새로 만드느냐 라고 한 거죠. 담당국장이 시장에게 말을 해서 단칼에 베어버린 거예요. 즉 문화재단까지 나눌 재원이 없다. 그래서 국장이 못하겠다고 한 거예요. 내가 준비 위원장으로 있을 때 의장이 마침 제 말을 듣는 후배라 문화재단을 만들자고 설득했죠. 그래서 설립하게 된 거죠. 문화재단이 가져가면 예산이 삭감될 것이 아니냐는 다른 기관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인해서 기금을 반으로 자른 것이고 문화예술분야에 지원금이 없어진 거죠. 그래서 상황은 힘들게 된 것이고 명분도 약해진 거죠. 공청회 하는데 막 왕왕거려서 수천 명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450명이 왔어요. 그러니 그러한 의견이 전체적인 의견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단지 일부의 의견이었다는 거죠.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니깐 어떤 미술인이 나는 미술을 하는데 밥도 못 먹고 사는데 지원을 해달라고 하지만 저희는 해주고 싶지만 그런 지원을 할 수 있는 예산이 없다는 거예요. 직접 지원을 불가능해요.
Q. 미술에 대한 직접 지원이 없다면 간접 지원 차원으로, 예를 들어서 도립미술관, 전주전북소리 예술 전당 등 좋은 공간들이 많은데 공간을 활용한 전북 미술인들을 위한 다른 정책이 있습니까?
A. 국립중앙전주박물관, 소리문화의 전당과는 대략적인 이야기는 했어요. 좋은 기획전이 있으면 장소는 공동기획을 같이 할 수 있어요. 아직 결정은 안 났는데 소리문화전당 같은 경우는 전반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후반기는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전주박물관도 마찬가지죠. 9월 달에 소리축제를 합니다. 그때 (강감찬)씨와 (최용관)관장님과 상의해서 소리축제에 미술전시도 포함시켜 서울미술인과 전주미술인을 같이 참여시킬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초기에는 정부지원금이나 시예산으로 재단을 운영하다가 나중에 자체적으로 위탁사업으로 기금을 축적해가면 재단을 운영하는 재단 많은데 전주문화재단은 어떻게?
A. 시나 문광부 등의 위탁사업을 한두 개 하고 있거든요. 차후 그런 곳에서 무슨 투자가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고 있고 내년도 예산에서도 조금은 큰 프로젝트를 하고자 하고 있어요. 그리고 독지가나 기획자의 기금을 받고자 합니다. 그 풍토가 열악해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저희가 참여를 못했지만 내년은 금년에 설립이 되어 참여가능하기 때문에 시, 도에서도 받아보고 중앙정책에서도 받아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몇 개의 행사를 맡았어요. 다른 이들이 왜 꼭 문화재단에서 해야 하느냐는 논란에 제가 답변을 하지 않고 추진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도 못한 독창적인 행사를 몇 가지하려고 해요. 그중의 하나가 판소리 현대 인데, 그것은 심혈을 기울여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퓨전 판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아직 정착되진 못했거든요. 과거의 우리는 전통무용에서 현대무용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죠. 마찬가지로 판소리의 전통적인 것에서 세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독창적으로 발견해내는 거죠. 아주 어려운 과제인데 만약 이것이 가능해 진다면 전주음악만이 아니라 한국적인 승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타 지역에선 하기 어려운 것이고 여기만의 차별화된 독창적으로 행사를 한 거예요. 차별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판소리 현대화를 금년 가을쯤 계획하고 있어요.
Q. ‘아시아 문화중심이 되겠습니다’란 캐치프레이 처럼 전주가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 되려면 독특한 전주만의 것이 있어야 하는데 ?
A. 우리는 소리문화에 있어서 판소리와 음식문화에 있어서 비빔밥, 이 두 가지와 또 그다음으로 한지를 꼽을 수 있지요. 소리, 음식, 한지, 이 세 분야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위를 점유하고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는 일본 관광객이 많이 오고 있고 교류가 되고 있어요. 현재는 일본만과 교류하고 있지만 그것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와 했을 때 더욱 우월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아시아를 공략하고 지금 희망사항입니다만 내년도에는 음식, 한지 패션과 한지 공예 등의 몇 가지는 파리나 뉴욕에 가서 깃발을 올려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자원을 충분히 있는데 그걸 만들고 작품을 만들어서 거기 가서 전시를 할 때까지의 비용은 만만치 않거든요.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시에서도 받아보려고 하고 있고 문광부에서도 받아보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원주의 한지패션은 파리를 다녀왔거든요. 한지부분에서 전주가 전통이 크고 문화재가 많이 있습니다. 작품성으로 봐서 충분히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를 짚고 그다음에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주에서 한지 패션협회에서 몇 번 했어요. 금년에도 5월 달에 있습니다. 저희는 패션이라는 의류제작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내서 문화적 시너지 효과를 늘리려 하는 거죠. 그래서 우선 이름도 한지 패션 하니까 대개 한지 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지패션이 개최되면 분명히 그런 기운이 가득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닥나무로 섬유를 만듭시다하여 여기서도 익산의 한 기관에서 특허를 냈고 전주대학교 교수도 특허를 하나 냈어요. 닥나무씨를 빻아서 섬유를 만든 거죠. 이것이 한지가 아니라 닥지인데 우리는 한지를 섬유로 해서 한섬유로 승부를 걸어야지요. 전주에 한지공예 외에도 몇 안 되는 칠공예, 발전이 아직 안된 목공예가 있는데 반해 한지공예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요. 두 개를 묶어서 하나는 패션소하고 다른 하나는 전시를 하는 방향으로 하여 아시아를 발판으로 하여 세계로 나아가 보자는 거예요.
Q. 한지공예 관련 타문화재단과의 교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A. 그것도 해야지요. 서울 한두 분이 했을 때 전주의 한두 분과 교류전을 했지요. 그 후에 우후죽순처럼 한지 공예가 보급이 됐다고 했더라도 그런 것은 전주가 더 빠른 편이죠. 원주등지에서 한지축제를 열면 결국 거기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이 다 전주분들 이에요. 이 종이쪽에서는 전주 쪽이지요. 원주에서는 정책적으로 한지축제를 끌고 나가는 것이고 그 알맹이인 콘텐츠를 꾸며주는 것은 전주인 들인 것이지요.
Q. 전주문화재단이라고 하면 제한되는 것이 많이 있을 텐데 왜 ?
A. 전라북도의 문화중심은 전주라서 전주문화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출연된 것이지만 전주시의 문화재단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도의 것을 관여하거나 견제할 방법은 없어요. 그러나 내부적으로, 실질적으로는 전북의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가 역량을 키워나간다면요. 예를 들어서 소리축제는 실제적으로 저희와 연관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시, 도라는 것을 떠나서 그런 부분들이 충분히 콘셉트가 맞고 네트워크가 잘 된다면 소외되어 있는 미술부문을 활성화 하려해요. 직접지원을 많이는 하지 못해요. 작은 것으로 올해 우리가 공모지원금은 있지는 하지만 (액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공연분야, 시각분야 세부분정도 해서 전부 500 만 원 정도가 배분되어 있어요. 직접 지원은 그런 것이고 올해는 출범한 해이기 때문에 당면 급한 것들을 중점으로 하고 있어요. 미술 같은 경우는 전반적인 것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작가들, 우수 예술단체 같은 것은 문광부에서 공모하는 것이 있는데 작가들이 그런 정보들을 모르니까 작가들을 끌어들여서 이런 것이 있으니 참여를 해라라고 하는 것이죠. 저희가 재단이름으로 작가를 추천하거나 좋은 기획전을 추천하여 서류를 작성할 때 개인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단의 이름을 써서 추천형식을 취하는 거예요. 자금이 모자른다고 하여 미술인들을 그냥 둘 수는 없으므로 우선은 이러한 간접사업들에 많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Q. 전주문화재단을 이끌어 가는 구조는?
A. 원래는 이사장님 계시고 1국 1실 3팀 체제예요. 작년에 예산이 예정대로 나오지 않아서 지금 현재 10 명이 티오거든요. 그런데 예산이 반절밖에 안 나왔기 때문에 현재는 1국 1실 1팀이예요. 국장1명, (청장)1명, 팀장1명 그리고 직원 3 명이예요. 올해의 사업은 이미 다 이사회에 통과 됐기 때문에 어떤 사업을 하는 지는 나와 예산사업, 비예산사업 등으로 18 개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타이틀을 보시면 재단이 올해 이런 사업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하실 수 있죠. 일단 내년에 나머지 직원을 충당할 예정 이예요. 현재 사업은 당면사업인데도 한사람이 4-5개의 사업을 맡고 있어요. 지금 이 인원가지고 부족하죠. 문광부 프로젝트든 어떤 큰 공모사업을 따가지고 올 수 있으면 재단의 직원이 참여할 수 있으면 하고 외부 인력을 더 활용하는 방법, 연계사업도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문광부 아시아명인명장은 코디네이터를 채용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홍콩, 일본,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서 국가로부터 명인명장 칭호를 받은 사람 혹은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 같은 경우는 국가단체에서 추천을 받은 분들 목공예, 금속공예, 전통공예, 판화 네 분이 들어왔어요. 그런 부분 같은 것들은 문광부 예산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Q. 전주 미술인, 문화인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사실은 지금부터 10년 전 또는 20년 전의 문화 환경을 본다면 현재는 엄청나게 향상 된 거죠. 제가 처음에 전주에 내려 올 때가 본 60년대인데 그때의 전주예술은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었죠. 거기에 비교해서 전시장과 무대들이 엄청난 발전을 하여왔어요. 그런데 문화예술인들이 활동과 그림 등 창작세계가 얼마나 확대 재생산 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같이 발전을 해야 되는데 하드웨어는 눈에 보이게 발전을 했는데 소프트웨어는 중앙이라는 일급에 밀려서 위탁된 전시라든가 일종을 표상된 전시들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물안 개구리처럼 여기서 회원이나 도차원에서 교류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우선 그것이 국내의 교류가 좀 더 활발하고 아시아 쪽과의 교류가 더 활발하면 좋다는 거죠. 미술은 이미 중국미술이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일본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창작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느냐는 거죠. 문제는 이 땅의 있는 미술인들이 좀 더 시야를 넓히고 문화재단이 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의 일로 생각하고 참여하고 보조를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