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1864-1920)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의 바탕이 되는 이론을 전개한 사회학자이다.
문학을 하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가 문학작품에 표현됨으로
우리가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저서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그의 이론은 기독교의 신교도 윤리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함으로 서구 자본주의에 영향력이 크다. 그의 저서에는 개신파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 금욕적 칼뱅주의와 서구의 관료제도가 자본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독교는 시장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또 서구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이 두 가지는 민족국가의 부흥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관료주의는 사회가 규칙, 법률, 행정규정에 의하여 움직이도록 했다.
구성원이 계층화 함으로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다. 업무가 세분화 되어 있다. 조직 관리는
인간관계가 아닌, 조직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2. 관료주의는 비인간화가 따르므로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도록 완화할 필요가 있다.
3.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관료주의가 더욱 심하다. 그만큼 비인간화도 훨씬 심하다.
이런 이유로 공산주의는 살아남지 못하고 소멸의 길로 갔다.
관료주의에서는 개인의 욕망은 조직의 목표에 덮여버리므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만큼 개인의
자율성도 사라져 버린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함으로 저항에 밀려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
막스 베버의 이론은 공산-사회주의에 대항하고,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이론이다. 자본주의에서는 투입한 비용과 그에 따른 결과를 평가하여 삶의 방식이 이루어진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이익이 높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새 길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
-->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본주의가 살아남게 하는 이론을 제공하는 근거는
기독교의 신교 사상이라는 것이 막스 베버의 주장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관료적이다. 개인을 쇠창살이 있는 우리에 가두어 둔다. 이런 이유로 결국은 사라진다. 막스 베버는 죽었지만 공산주의가 소렬의 길을 걸으므로 막스 베버가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첫댓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정부가 나서서 모든 일을 하고, 백성들은 입 꾹 다물고 따라만 오락고 한다. 그래서 정부를 확장하고, 키운다.
자본주의(요즘은 자유주의란 말을 더 많이 쓰지만)는 백성들의 자율성에 맡기므로, 정부의 일을 줄인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정책을 지향했고, 정부가 나서서 멋대로 쭈물럭거리고, 자유라는 말에는 발작을 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앞세우고, 정부를 축소 지향하는--
공부하는 차원에서 신교도(프로테스탄트)가 어떻게 자본주의와 연결되는 지를 알아봅시다.
서양의 중세사회는 우리의 조선시대처럼 직업에 귀천이 있어서, 사농공상으로 차별화 하였습니다. 상인과 수공업자(장인들)는 하빠리 인간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운동을 펼치자. 종교개혁가 중의 한 사람인 칼뱅이(청교도가 칼뱅파이고, 청교도에 뿌리를 둔 우리나라 장로파도 칼뱅파입니다.) '직업소명론'을 들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직업을 만들 때 모두 필요해서 만들었으므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신교로 몰려들었습니다. 신교가 퍼진 지역은 돈벌이가 가치의 척도가 되어서 부르주아지가 됩니다.
막스 베버... 행정학을 배우면서...
베버의 이론을 많이 공부했었습니다. 먼 기억을 되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십오년 전 00대학교에서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을 글쓰기를 하기 위한 지정 과목으로
정했습니다. 학생들과 토론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학생들의 말문이 터이도록 유도를 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자본을 증식시키는데 사용할 것과 정직하게 자수성가한 부르주아를
본받아라는 것이 떠오릅니다. 다만 벼락부자의 과시적 허세를 증오했습니다.
동시에 같이 읽을 책으로 슘페드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도 읽히어야만 했어요.
책을 읽은 지 십오년이 넘었습니다.
공부를 하라시며
잠깐이나마 생각하게 할 기회를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