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깨닫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롬7:7-14/ 유기성 목사
2016-08-25 15:55:36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몸의 건강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아가고 약을 먹습니다.
몸이 병들어 죽게 되는 것은 대단히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육신 보다 더 중요한 영혼에 대하여는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사랑했던 가족이라도 그 육신은 장례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땅 속에 묻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육신만 장례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영혼이 육신 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몸만 귀하게 여기고 삽니다. 그러다가 죽는 순간, 절망합니다. 영혼은 어디로 가느냐 말입니다.
지진이나 해일 등 큰 사고가 생기면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평안합니까?
폴 워셔 목사가 오하이오 주에서 설교를 했을 때 일을 말했습니다. “설교를 막 끝냈을 때 아홉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일어서더니 이렇게 떨면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강단에서 내려와 아이를 붙잡고 "아이야,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처럼 사악한 죄인도 구원하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그 때 교인들이 웃었습니다. 목사님이 웃는 교인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웃지 마세요.” 지금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아시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그 아이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작은 죄가 심판을 받아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채 지옥에 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영혼의 존재와 죄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죄 하나 때문에라도 우리는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르고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율법주의자가 되지 말라’ 는 말을 듣다 보면 율법이 나쁜 것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율법이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율법의 역할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롬 7:7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비추어 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아니었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알지 못한다!’ 정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 말이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습니다. “죄를 안 짓고 산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죄를 알지 못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을 예로 듭니다, :7 ... 율법에 "탐 내지 말아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탐심이 죄입니까? 몇 년 형입니까? 법정에 가면 탐심은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하여야 죄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보면 탐심이 큰 죄입니다.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 계명을 보고서야 탐심이 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남을 비판하는 것이 죄 인줄 몰랐습니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저는 말씀을 알기 전에 염려가 죄 인줄 몰랐습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어느 목사님께서 “나는 지옥 갈 죄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라는 교인에게 눅 10:27을 읽어 주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율법의 요약입니다. 당신은 잘 지켰습니까?” 그랬더니 그 교인이 대답했습니다. ”제겐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율법이 하는 역할은 이처럼 우리 양심을 깨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가 죄를 짓고 살기 때문입니다.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사람들은 율법이 없었다면 죄 인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죽어 죄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미국의 유명한 뉴스 해설가인 폴 하비(Paul Harvyy)는 추운 지방에 사는 에스키모들이 어떻게 늑대를 잡는가? 그 특별한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늑대를 잡기 위하여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묻힌 후에 그것을 얼리는데 이것을 반복하면 나중에 칼날이 얼어붙은 피에 숨겨지게 됩니다.
이 칼날이 들어있는 피로 된 얼음덩어리를 늑대가 많이 다니는 툰드라(Tundra) 지역에 칼날이 위로 올라오게 묻습니다. 그러면 늑대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서 얼어붙은 피를 혀로 핥기 시작합니다.
늑대가 계속 피를 핥아먹으면 날카로운 칼날이 나타나지만 늑대의 혀는 이미 차가운 얼음을 핥은 중에 감각이 없어져서 자기의 혀가 갈라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 줄을 모른 채 더욱 열심히 계속 핥아먹습니다. 드디어 늑대는 피를 많이 흘리고 쓰러질 때까지 피를 마시다가 죽는 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멸망시키는 마귀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도 죄에 대한 감각이 없는 우리에게 죄를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나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사실은 죄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1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죄는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더욱 죄에 옭아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알아도 오히려 더 죄짓게 만듭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 2권 4장에서 어린 시절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내게는 도적질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가난 때문은 아니었고 선행을 멸시하고 죄를 추구하는 강한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늦은 밤 소년들과 함께 배나무를 흔들어 배를 도적질한 후 돼지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오, 하나님! 그것이 나의 마음의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추구한 것은 죄악 자체였고 잘못 자체였고 부끄러움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율법이 오히려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한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9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아십니까?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아야 회개도 할 것이 아닙니까?
어떤 남편이 결혼 30주년이 되어 아내에게 생일 선물을 특별히 해주고 싶었답니다. 선물을 고르기 어려워 아내가 원하는 것을 사주고 싶어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한번 얘기 해봐요”그랬더니 아내가 정색을 하면서 생일 선물 같은 것은 원하지 않으니 두 시간만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완강하여 남편이 결국 아내에게 두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내의 생일 날,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나에게 두 시간을 주기로 약속하셨죠?” “그랬지” “그럼 지금 나에게 두 시간을 주세요.”
그러자 아내가 남편을 거실의 소파에 앉히고는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두 시간 동안 당신에게 이야기를 할텐데 당신은 그저 들으면서 ‘맞아, 옳아, 그렇지’ 만 해주세요.” 남편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하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는 남편 앞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 만나고, 데이트하고, 약혼하고, 결혼하고, 시집살이도 하고 애 낳고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듣다가 사실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도 나와 “여보, 그게 아니고, 그때 이랬잖아” 하였더니 아내가 “여보 두 시간만 두 시간만 제게 주세요. 당신은 그저 들어만 주시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약속을 했으니 더 말을 못하고 듣기만 하는데, 한 10분쯤 들으니까 미치겠더래요.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많더랍니다. 그런 말을 듣기만 해야 하니 20분을 들으니 더 듣다가는 죽겠더랍니다. 그런데 한 30분쯤 지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30년을 같이 살았는데, 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몰랐을까. ‘내가 그때 그랬었나?
아내가 어느 날은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했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한 여자의 생애가 이럴 수가 있나. 그리고 내가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게 했으며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가 말입니다. 두 시간을 정신없이 말하는 아내의 말이 끝날 즈음에 남편이 울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여보 다 이야기했어요. 내 이야기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워요.” 했을 때, 남편이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아내의 무릎을 붙들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너무 몰랐던 것이 미안했고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지도 못했음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은 아내/남편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부모, 자녀에게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알기는 다 아십니까? 하나님께는 어떤 죄를 짓고 살았는지는 아십니까?
부흥회 때, 한 청년이 통곡을 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더럽습니까?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죄가 많습니까?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를 도와 주세요” 율법은 이 역할 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자신의 죄를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서야 자기 죄를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우리를 회개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마틴 루터가 회심하기 전 회개의 역사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경건하게 수도하는 사제였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였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주님께서 "마틴 루터야, 하나의 죄만 있어도 지옥이다 백 가지가 아니고 천 가지도 아니고 단 하나의 죄라도 영원한 지옥으로 가기에 충분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의 성경적인 근거가 무엇입니까?"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 앞에서 몇 번이나 죄를 지었나요? 단 한 번이었습니다. 정말 단 하나의 죄가 있어도 하나님과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낱낱이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속까지 더러운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사제에게 가서 고백합니다. 어느 날 그 사제가 루터에게 "형제님, 다음부터는 고백할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와서 고백 하십시오" 라고 권면합니다. 그 사제는 어둠 속에서 길 잃은 영혼이었기에 루터를 이해하기 못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고 난 다음에야 루터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루터를 위해 하신 일의 영광을 보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루터가 말한 이신칭의 (以信稱義)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이신칭의 와는 극단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며 그들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사악한지 깨닫게 하신 적이 있나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여러분의 죄악을 보았습니까? 루터는 그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은 것입니다.
죄 중에 살면서도 회개가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큰일입니다.
마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죄인이요! 회개하시요!” 라고 말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진정한 회개의 문이 열려 십자가 부흥이 우리 심령 안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