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53 수행을 열심히 하는데 삶은 언제 변화할까요 #지혜 #문사수 #일상의변화
Ⅲ. 견론지으며 권고한다
4:48 이와 같이 깊이 살펴보았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모든 약으로 치료해야 할 환자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치료할 수 있으리오.
#지혜
수행자에게 최고의 재산은 무엇일까요? 지혜입니다. 진지하게 수행에 임하는 분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진리를 볼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다!"
진리를 본다는 것은 지혜의 작용이니, 말 그대로 지혜에 목숨을 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행자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는 오랜 문화 때문일까요? 세간의 사람들도 지혜에 주목하고 또 집착합니다. 그래서인지 인류는 지혜라는 단어 하나에 정말 넓은 범위의 다양한 의미를 포섭했습니다. 이것도 지혜, 저것도 지혜! 정말 쓰임이 넓습니다.
불교에도 지혜는 다양한 정의가 있습니다. 경전 속에서는 100가지가 넘는 지혜의 묘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합니다. 어리석음을 무명無明이라고 칭한 것의 반대에 위치한 지혜는 명明을 근본으로 합니다. 마음이 밝아짐으로써 망상의 꿈에서 깨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니,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윤회 -> 명지혜 -> 각해탈'
#문사수
어제는 동지였습니다. 어둠의 힘이 극에 이른 날이기에 1년 중 밤은 가장 길고 낮은 가장 짧은 날이죠. 불교적 관점에서 어둠은 자주 무명의 비유로 활용됩니다. 그렇기에 동지 즈음의 시기는 1년 중 무명의 흐름이 극에 달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두움에서 벗어나 밝아질 수 있을까요?
붓다는 지혜훈련의 과정을 문사수 삼혜로 요약하셨습니다. 문혜와 사혜 그리고 수혜는 각각 1층, 2층, 3층으로 지혜가 성숙되는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삼혜 각각은 독립적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고 더불어 각각은 지혜는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순서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경전 속에는 수혜를 강조하는 가르침이 정말 많습니다. 예를 들어 <법구경>에는 가르침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남의 목장에서 남의 소를 세는 것처럼 전혀 쓸데가 없는 일임을 강조하십니다. 이 논전에서도 마찬가지로 환자가 의사에게 진단을 받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그 진단에 걸맞게 실천하는 치료의 과정을 충실히 실천할 때 병이 낳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모두 문사수 삼혜 중 수혜를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혜 중심 문화는 항상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기본기를 강조하는 반대의 비유들이 등장합니다. 사상누각의 예가 대표적입니다. 문혜와 사혜라는 기반 공사 없이 수혜의 3층을 지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항상 성문의 문화를 통해 문혜와 사혜를 강조하는 입장입니다.
#상호보완
문사수 삼혜는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는 상호보완의 요소가 됩니다. 문혜는 두뇌가 정보를 먹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두뇌에는 우리가 알게 그리고 모르게 수 없이 많은 정보가 입력됩니다. 그 중 주의력이 닿은 일부가 의식화 되어 경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두뇌는 이렇게 입력된 정보, 의미가 부여된 정보, 기억된 정보 등을 바탕으로 변화합니다. 이를 가소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정보를 먹고 소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두뇌의 다양한 부위는 활성화되고 새로운 생각길을 연결하고 강화시키며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붓다가 강조하는 문혜는 잡스러운 정보를 먹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문 즉, 성스러운 정보를 먹음으로써 생겨납니다. 정보는 크게 나누면 잘못된 정보와 올바른 정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정보는 이런 올바른 정보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지혜의 결과물로써의 정보를 의미합니다. 행복의 비결이요, 수행의 지도이며, 깨침의 원동력이 되는 이 정보를 먹는다면 두뇌는 행복과 수행에 걸맞게 모드를 바꿉니다. 이를 통해 마음은 행복을 성취하는 올바른 수행에 몰두하게 되고, 삶은 씨앗에 걸맞는 열매를 맺어 행복하게 개선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혜와 수혜 역시 녹아 있지만 그 시작은 항상 성문 즉, 문혜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혜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정보를 넘어 자기화 된 의미가 부여된 지식으로 승화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주의력의 질이 좋지 못하면 밑빠진 독에 물을 버리는 것처럼 정보는 지식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사띠가 있어 전념하고, 집중하며, 몰입할 때 정보는 해석되고, 이해되며, 공감되고, 분석되어 자기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를 공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식 = 정보(문혜) + 사띠 + 반복(사혜)'
2024년 1월 1일부터는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천일천독 어른수업을 시작합니다. 이는 문혜를 만드는 독서 프로젝트이자, 사혜를 만드는 아웃풋 독서 프로젝트입니다. 삶이 성장하고 성숙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자주 이 두 가지 문장을 강조합니다. 첫째, 독서하지 않는 자 먹을 자격이 없다. 둘째, 글쓰기 하지 않는 것은 의식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독서로써 문혜를 키우고, 글쓰기로써 사혜를 증장시켜야 합니다.
#일상의변화
독서와 글쓰기를 강조하다 보니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스님, 독서와 글쓰기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데... 제 삶은 언제 변화하나요?"
그럼 전 항상 충분히 정보를 먹고 사유하여 지식이 생성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정보와 지식이 흘러 넘칠 때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되는 것이요, 이 실천이 축적되면 나도 남도 인정할 수 있는 정도로 삶이 변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수혜의 실천입니다. 3층은 2층을 지은 다음에 올리는 것이죠? 그럼 2층은? 1층을 지은 뒤에 올리는 것입니다. 끝인가요? 아닙니다! 1층도 기반공사를 잘 한 뒤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럼 기반공사는? 주변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붓다스쿨 송덕사에서 공사를 여러번 목격하다보니 알게 되더군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수행자는 지혜를 추구합니다. 이 지혜로 삶을 개선합니다. 문혜로 개선되는 바가 있고, 사혜와 수혜 각각이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습니다. 더불어 이 셋이 함께 할 때 삶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선됩니다. 이 지속가능이 보장될 때 개선의 극에 이르러 윤회에 갇힌 불쌍한 신세를 열반에 도달한 대보살의 의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문사수 삼혜야 말로 중생을 붓다로 바꾸는 최고의 연금술입니다. 마법에 가까운 효능이죠. 그리고 이 삼혜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마음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확고하고 강력한 수행의 목적이 보리심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문혜와 사혜를 강조하지만, 당연히 수혜도 강조합니다.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키우는 것, 글쓰기를 통해 표현력을 키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를 실전에서 활용하여 관계와 경험 그리고 삶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다만 아무리 중요하고 아름다운 목표라고 하더라도 기반공사와 1층 2층을 짓지 않고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상호보완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문사수 셋은 모두 다 중요한 것이라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지혜롭고 싶다고 희망만 하지 마시고, 정진을 통해 문사수 삼혜를 증득하시길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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