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자신을 영내로 피신시키려는 천부장에게 되레 군중들 앞에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군중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증언하며 예루살렘에 온 사명을 피하지 않습니다.
22:4-11 예수님을 가감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선명한 경험을 주십니다. 바울의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에만 세 번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을 변호하고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증언은 사실을 진술하는 것으로, 결코 가하지도 감하지도 않은 말이어야 합니다. 유불리를 따지며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진술할 수 없고, 또 경험한 것을 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언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꾸미지 않아도 되는 분명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나는 증언자로서 매일 주님과 만나는 분명한 경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37-40절 바울은 군중들이 덤벼드는 어려움 속에서 이제 막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천부장에게 말을 걸어, 자신을 애굽인 혁명가쯤으로 오해한 그에게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지식인임을 밝히며 군중에게 말할 기회를 구합니다. 무리가 모인 상황을 활용해서 자신을 변호하고 예수를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집단 폭행에서 간신히 벗어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는 상황을 탓하며 복음 증언하기를 회피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돌파구를 찾았던 것입니다.
22:1-3 바울은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집단 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그를 몰아붙인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이들을 질책하지 않고 부형들 이라 애정을 담아 부르며, 예를 갖춥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동족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는 것을 목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바울의 태도를 결정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대사임을 기억하고 누구를 만나든 복음의 증인임을 기억한다면 우리 태도도 엇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성경, 2024.05/06, p.146-147,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사도행전 21:37-22:11에서 인용).
① 바울은 자신을 영내로 피신시키려는 천부장에게 되레 군중들 앞에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군중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증언하며 예루살렘에 온 사명을 피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가감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선명한 경험을 주십니다. 바울의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에만 세 번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을 변호하고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증언은 사실을 진술하는 것으로, 결코 가하지도 감하지도 않은 말이어야 합니다. 유불리를 따지며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진술할 수 없고, 또 경험한 것을 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언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꾸미지 않아도 되는 분명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나는 증언자로서 매일 주님과 만나는 분명한 경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② 바울은 군중들이 덤벼드는 어려움 속에서 이제 막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천부장에게 말을 걸어, 자신을 애굽인 혁명가쯤으로 오해한 그에게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지식인임을 밝히며 군중에게 말할 기회를 구합니다. 무리가 모인 상황을 활용해서 자신을 변호하고 예수를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집단 폭행에서 간신히 벗어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는 상황을 탓하며 복음 증언하기를 회피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돌파구를 찾았던 것입니다.
③ 바울은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집단 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그를 몰아붙인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이들을 질책하지 않고 부형들 이라 애정을 담아 부르며, 예를 갖춥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동족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는 것을 목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바울의 태도를 결정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대사임을 기억하고 누구를 만나든 복음의 증인임을 기억한다면 우리 태도도 엇나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