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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축물
고려 시대
삼국 시대 불교와 관련된 목조 건축물은 현존하는 것이 없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만 파악하시면 됩니다.
고려 전기에는 주로 주심포 양식이 유행하였으며, 그중 13세기 이후에 지은 일부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주심포(柱心包) 양식은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면서 건물을 치장하는 장치인 공포가 기둥 위에만 짜여져 있는 건축 양식입니다. 반면 다포(多包) 양식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짜 넣은 것으로, 주로 건물을 위엄 있고 화려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배흘림 기둥은 건물의 안정감을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배가 나온 것처럼 불룩하게 만든 것으로 엔타시스 양식이라고도 합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알려져 있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균형잡힌 외관과 잘 짜여진 각 부분의 치밀한 배치로 고려 시대 건축의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답니다.
이들 목조 건물은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양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다포식 건물도 등장하였는데, 황해도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은 이 시기에 건축된 다포식 건물로 유명합니다. 다포식(多包式) 건물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짜여져 있는 것으로, 웅장한 지붕이나 건물을 화려하게 꾸밀 때에 쓰였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경북 안동) 주심포식 건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경북 영주) 주심포식 건물
예산 수덕사 대웅전(충남 예산) 주심포식 건물
부석사 무량수전의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기둥
황해 성불사 응전전(황해 사리원)
조선 시대
조선 전기에는 왕실의 비호를 받은 불교와 관련된 건축 중에서도 뛰어난 것이 많습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은 주심포식 건물로 검박하고 단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당시의 과학과 기술을 집약하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인 17세기의 건축으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법주사 팔상전을 제외하고는 다포식 건축물로,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18세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근거지에 다포 양식 등 장식성이 강한 사원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 같은 사원이 대표적입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전남 강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경남 합천)
김제 금산사 미륵전(전북 김제) 화엄사 각황전(전남 구례)
보은 법주사 팔상전(충북 보은) 부안 개암사 대웅보전(전북 부안)
불상
삼국 시대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나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서산 마애 여래 삼존불이라고도 함), 신라의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은 미소를 머금은듯한 당시 불상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삼국 시대에는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중에서도 탑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고류 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유사한 형태여서 삼국 문화의 일본 전파를 잘 보여줍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고구려)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왼쪽은 탑 모양의 관, 오른쪽은 삼산관을 쓰고 있음)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충남)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경북 경주)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와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기 조각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보살상들입니다. 석굴암 주실의 중앙에 있는 본존불은 균형잡힌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본존불 주위의 보살상을 비롯한 부조들도 매우 사실적입니다. 입구 쪽의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점점 정제되어, 불교의 이상 세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죠.
발해에서도 불교가 장려됨에 따라 많은 불상이 제작되었습니다.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도 발굴되었습니다. 이불 병좌상이라고 부르는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석굴암 본존불(경주) 발해의 이불 병좌상
고려 시대
고려 시대의 불상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초기에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광주 춘궁리 철불) 같은 대형 철불이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난 거대한 불상도 조성되었지요. 또,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같이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걸작도 만들어졌습니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
■ 불탑과 승탑
삼국 시대
삼국 시대에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여 예배의 주대상으로 삼던 탑이 건립되었습니다.
고구려는 주로 목탑을 건립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무왕 시기, 600~641)은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미륵사지 복원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며, 동탑을 복원해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서탑을 복원하기 위해 해체하였는데, 해체 과정에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리 봉안기의 내용이었지요. 사리 봉안기에는 무왕의 왕후가 사택적덕의 딸로 나와 있었으니까요. 이는 삼국유사에는 서동 왕자(무왕)와 선화 공주가 결혼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기존에는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라고 보는게 일반적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미륵사지 석탑을 계승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부여에 남아 있습니다(이 탑의 건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제 멸망 직전 시기로 봅니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신라의 탑으로는 황룡사 9층탑(선덕여왕14, 645)과 분황사탑(선덕여왕 3년, 634)이 유명합니다.
황룡사는 진흥왕 때 건축된 절이었습니다. 황룡사는 고려 때 몽골의 침입 당시 불에 타 소실됩니다.
분황사탑은 전탑(벽돌로 만든 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돌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이라는 것 잘 알아두세요. 이 탑은 원래 9층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현재 3층까지만 남아 있답니다.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충남 부여)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306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308
<신라> 황룡사 9층탑 복원 모습 분황사 석탑(경북 경주)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87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에 들어와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완성하였습니다.
통일 신라 초기의 석탑으로 대표적인 것은 감은사지 3층 석탑(신문왕 2년, 682)입니다. 이 탑은 현재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동탑과 서탑이 남아 있습니다.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습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고자 세우기 시작한 절로,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던 절입니다.
불국사(경덕왕 10년, 751)에는 통일 신라 석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불국사 3층 석탑(경덕왕 10년, 751)과 높은 예술성과 빼어난 건축술을 보여 주는 다보탑(경덕왕 10년, 751)이 있습니다. 불국사 3층 석탑은 감은사지 3층 석탑을 시원으로 하는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석탑이라는 통일 신라 석탑의 전형(典形)이 된 석탑 양식이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탑의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초에 만들어진 두루마리 불경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 인쇄물이랍니다.
그리고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 탑신에는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을 조각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 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 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라 말기에는 석탑에서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기단에는 천인상(天人像), 8부신중(八部神衆), 그리고 탑신에는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또,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하였습니다.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합니다. 이 시기 승탑으로는 진전사지 승탑, 흥법사 염거화상 승탑,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등이 있습니다. 이런 승탑과 탑비는 지방 호족의 정치적 역량이 성장하였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해에서도 석탑이 세워졌는데, 벽돌탑인 영광탑이 대표적이다.
감은사지 3층 석탑(경북 경주)과 사리장치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05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경주 불국사 다보탑(경북 경주)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96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97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전남 구례) (신라 말기)